윤여태 의원을 만나 기쁨



이번 뉴져지 여행 중에 만난 특별한 만남은
경치구경이 암만 좋아도 사람 구경이 제일 좋은 것이라던 

옛 스승의 말씀이 생각나는 만남이었다.
그를 나보다 먼저 만나고 감탄을 금치 못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은근 궁금하고 기대되는 점이 많이 있었다.

친구가 소개하던 그의 면모에 탁월함이 돋보이는 이야기 대목이 많았는데 
그중에 하나는 이렇다.
작년말 그분에게 정치 헌금을 2천불 가량 했던 일이 있단다. 
당연히 땡큐하고 받을 줄 알았더니 그분 이야기가 


"내가 무슨 한 일이 있어야지요.
이번에는 아니고,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 할때 그때 도와주세요! " 하더란다.

돈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정치가라면 돈 받는 것 당연지사로 좋아한다는데?
우선 받고 나중에 또 도와 달라해도 될텐데? 

그런데 그렇게 사양하니 진짜로 너무나 놀랐단다. 


뉴저지주 져지시티 시의원 윤여태, 마이클 윤...

져지시티 다음 번 시장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


우리들 서부에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알아볼수록 진정으로 존경이 가는, 큰 그릇을 만난 기쁨 때문에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이민 일세 한국인으로서 말 안통하는 미국에서 
삶을 지탱하고 자식을 교육시키면서 살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자존심을 접고 배짱과 근면, 끈기로 우리 한국인들은 다들 잘 해내고 있으니 참 자랑스런 국민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그 기본 위에 자기 분야에서 무언가 이룬다는 것은

남 다른 피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되는 일일 것이다.

더우기 정치인으로 우뚝 선다는 건 그 어느분야보다도 힘든 일일 것 같다. 

그런데 그는 맨주먹, 밑바닥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제 한 도시의 시장이라는 꿈의 실현을 눈 앞에 보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첫인상/만년 소년

그는 완전히 하얗게 된 머리를 이고 
소년같이 깨끗한 마음이 보이는 얼굴 위에 웃음을 가득싣고 정답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30 여년 정치를 했다는 분의 얼굴이 어쩌면 그럴수 있을까..하며 
소탈한 사무실로 동행들과 따라 올라갔는데

옛날 부터 알던 사람 만큼 금방 친해져서 그의 이야기 세계로 빠져들어 가게 되었다.


역사와 정치세계에 감겼던 눈을 번쩍 띄게 해준 한시간 강의.

이제와서 밝히기도 부끄럽지만, "정치와는 전혀 상관도 관심도 없다"며 선거조차 하지않는

대다수 한국 사람의 하나인 나에게

절대로 그런 태도를 더이상 유지하면 안된다는 자각을 단번에 갖게 해준 사건이었다.



져지시티는 정치 일번지












그는 이야기의 기선을 잡고 먼저 자기가 속해있는 져지시티의 역사와 위치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다.
져지씨티는 인구 26 만명을 바라보는 미국내 주요 도시 중의 하나이다.
자기가 선출된 지역구만 8 만명이나 될 정도로 지역이 넓고,

또한 미국의 정치 일번지에 해당하는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허드슨 강변 11 마일을 뉴욕 맨하탄과 맞대어 바라보는 지리상 위치로

경제적 가치가 대단한 곳이며 아름답기도 한 곳이다.
그것은 맨하탄 중심가까지 단 칠분이면 강을 건너 도착할 정도로 편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맨하탄 직장인들의 출퇴근 장소로 각광 받는 주거지로 주목을 받으며

웨스트 월드 스트릿이라고 불리는 요지로 모든 중요한 은행과 금융회사가 

빠짐없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5 년전 헨리 허드슨이 샌디훅에서 시작한, 유서 깊은 역사도 갖고 있는 이 도시에 

그 유명한 자유의 여신상도 세워져 있을 뿐만아니라 

북 아메리카의 창구 구실을 하던 곳이어서 

현재까지도 가장 많은 다 인종 분포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철도와 선박이 주요 교통수단이던 초창기, 각국에서 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앨리스 섬에 도착하여 검역을 받고, 

다리를 건너 센트럴 터미널에 가서 기차를 타고 미국 전역으로 퍼지던 곳이어서 

고용기회도 뛰어나게 많았단다.

한 블럭을 다 걸어가기 전에 직장을 찾았다고 했을 정도로 최고로 인기있는 이민 정착지였다.


한국 이민도 바로 그곳이 시작이었다.
져지시티 메디칼 센터에 의사 간호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미국 본토의 한인 최초의 한인회, 노인회, 교회, 이익단체가 다 져지시티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자녀교육을 첫째 프라이어리티로 여기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교육 시스템이 

별로 좋지 않았던 이유로 초기 이민자들은 버겐 카운티로 어디로 다 떠나고 지금은 

천명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본인 부부를 빼면 4명, 단지 6명만이 자기 구역에 속한 한인 유권자들이란다.

져지시티의 정치적 중요성


져지시티는 프랭크 헤이그라는 시장이 삼십년간 시장을 하는 동안 

데일리 시장이 시카고 시장을 오래 하면서

지방정치의 꽃을 피우며 서열 1,2 위를 다툰 유명한 곳이다.


헤이그는 "나는 보스다"라는 말을 하면서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에게 특혜를 

서슴지 않고 주기도 하고, 정적들은 수용소에 집어넣고,

노조를 만드는 사람은 공산당으로 몰아 처단하면서 

전국에서 공장 설립에 가장 좋은 곳으로 만들었고 

한편 오염문제가 지금까지 문제가 되게 했던 유명한 사람이다. 
미국 정치학을 공부하면 허드슨 카운티 폴리틱에 대해 진진한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이런 배경으로 뉴져지 주는 미국내 가장 잘사는 주, 2,3 등을 유지하고 있다. 

즉 인컴 레벨이 높다는 것.
한때 내리막 길을 걷던 이 도시에 1980년부터 개발 붐이 다시 불었고 

허드슨 강변에는 초호화 콘도들이 들어섰다.
젊은층, 프로페셔널들, 유학생들이 다운타운에 살기 시작했다.

현재 져지시티 개발 지역이 193 곳이나 지정되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연방 하원의석 2, 상원 4, 카운티 7의 의석이 나오는 표 밭이어서

져지시티 시장의 발언은 아주 강력하며 권력 순위 2-3번이나 된다는 것이다.


져지시티와 그와의 인연




유학생으로 미국에 도착한 그는 공부만 하기에는 경제적 문제가 뒷받침 해주지 않아서 

2-3 년 후인 81 년에 져지시티 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중국 음식점을 하는 중국인들은 자기들 입 맛때문에 마지 못하여 자리를 내 줄 망정 

그당시 알려지지 않은 나라 한국인인 그는 지독한 배타적 인종 차별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심지어 한국인이라고 아파트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인 특유의 쉽게 물러서지 않는 배짱과 열심으로 드디어
메인 스트리트에서 상점을 갖게 되었고

져지시티 메인 스트리트에 한국사람은 그가  최초였다. 
그렇게 간신히 발붙인 곳에서 꼭 8년만에  부시장이 된 사연은 자랑스럽고 눈물겹다.

인도 의사 부부가 폭행을 당해 죽은 사건이 터졌는데 

기득권자들인 유태인, 이태리인, 아이리쉬, 독일계 사람들은 

자기들도 다 당한 일가지고 일 크게 만들지 말라고 욱박지를 뿐이었다.

그는 위원회의 일원이 되어 부당한 일을  바로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단순 폭행사건으로 주정부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을 

인종차별적 사건으로 연방차원에서 해결을 보았던 것.
이 사건은 그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들어서 커뮤니티 일에 참여하는 중요성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
이때 감명을 받은 인도인들은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자원봉사자들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 넘은 고지는 역사 150 년 된 경제인 협회의 회장이 된 일이다.
무슨 일이든 마이클이 가져가면 해결된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밀어줘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영어는 잘못해도 배짱이 있는 한국인, 머리 좋은 한국인, 솔선수범하는 

한국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 일이었다.




약점을 강점으로 사용하는 법





                                                                      (맨하탄이 건너다 보이는 져지 시티,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들)


약점은 강점이 될 수있다는 진리를 그는 이야기에 자주 들먹인다.
영어를 잘못하는 것은 틀림없는 약점이지만

미국인들은 그 짧은 영어로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는데는 무슨 이유가 있다며 귀를 기울 일줄 안다. 

기독교 문화가 기초된 미국 사회는 소수자, 약자에 관심을 기울이며 

말 짧은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기때문이다.


말을 못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게 되는 것도 약점이 강점이 되게 만드는 비법이다.
말로 설득하는 리더쉽은 못 보이더라도 솔선수범을 보여주니까 

결국은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는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면서 일하였더니 

유태인, 이태리 인들이 꽉쥐고 있는데서도 돋보이며

점점 더 필요한 사람이 되어갔고  경제인 협회 회장에 선출이 된 것이다.


그런데 회장 취임식 때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그는 처음에 생각하기를 

"아무도 안 올 것이다. 식구들과 임원진 가족 2-30명만 초청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전례가 없다고 크게 해야 한다고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이클 윤이 누구관대 초청에 응해 100 불씩이나 들고 올 것인가? 영 자신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요 인사 이삼십명만 초대 한다고 하니 

그 몇명 안되는 주요 인사에 끼고 싶은 심정이 되었단다.
약점이 강점이 되는 것을 여기서도 보았는데 전화가 오기 시작하더란다.


왜 초청카드 안 보내냐 하는 사람이 이백명이 넘자 

이번에는 전략을 바꾸어 10 장 20 장 초청장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그랬더니 파티 장소에 4-500명이 가득차서 테이블이 모자랐다는 것.
사람들이 '마이클 윤이 장난이 아니다' 라고 입을 모았고..


소상인들을 설득하여 스페셜 경제개발 지역 (SID)을 만든 것이 그 당시 큰 성과였다.
세금을 더 내야하고 귀찮은 것인데 아무도 인기없는 이 일을 하려고 들지 않았지만 

나서서 한사람씩 설득을 시켜 일을 이루었다.


그래서 시장이 출마하면서 자기를 밀어주면 부시장으로 함께 일하자 하여서 
150 년만에 처음으로 공화당 후보가 시장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 1992-2001 년 9 년간 부시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부시장을 해도 무시를 하고 

자기 밑의 미국사람을 보내 스피치를 하면 더 좋아하는 것이어서 

한국 사람 사회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왔다.

그후 경제인 협회 소상인 보호하는 일을 하다가 자기 서포트를 받고 시의원이 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20 년을 시의원 하는데 자기 배만 불리는 것을 보고 
"이제 그만해라. 내가 하겠다."고 말하였다. 

감히 그런 말을 누가 할수 있겠냐만 그는 잘 알았다.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을.

 

그래서 그는 안 나오는 대신 막강한 연방 하원출신을 내보냈는데 

그 사람이 떨어지고 무명 윤의원이 선출된 것이다
이 일은 정치역사에 있을 수 없는 일로 기록되는 엄청난 일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누가 일꾼인지 잘 아니까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아무런 당의 후원을 조금도 받지 않고 

떳떳이 당선이 된 것이 얼마나 자랑스런 일이었는지!

그때 투표에는 별별 재미진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80 평생 투표를 한번도 해 본적이 없던 노인이 생전 처음 유권자 등록을 한 것도 
죽기 전에 꼭 한사람 마이클 윤에게 표를 주고 싶어서였단다.
병원 퇴원 사흘만에 기동이 불편한 사람이 세명의 부축을 받아 

선거에 나온 일, 등등 감명 깊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이 있다.




현재 그는 4년 임기 시의원을 2년째 하는 중인데 의정활동이 그 누구보다 많다. 

져지시티는 TV 중계로 주민들에게 회의를 보여준다. 

그래서 가장 의정 활동이 많은 사람이 바로 윤의원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스스로 잘 안다.


안건마다 1000 페이지 이상 프린트 물이 나오는데 팔십프로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오지만 

자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꼬박꼬박 읽어 가지고 간다. 뿐만 아니라 
분석하고  대안을 가지고 간다.

그런 자세로 일을 하니 꼭 시장으로 나와 주민을 위해 일해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단다.
최근에 40 년간 정치 칼럼을 쓰는 사람이 예언하기를 

"9 명의 시의원 중에 마이클 윤이 차기 시장이 된다." 라고 점쳤다.


"된다고 하니 되겠지요. 하지만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만 

누워서 기다릴수는 없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모든 선거는 돈과 후원 조직이 필수이다.
전번 시장은 2013년 선거에 320만불을 썼고 친위 단체는 100만불을 써서 총 420만불을 썼다.

그 돈을 어디다 쓰느냐 했더니 한번 우편 메일을 보내는데만 6만불이 든다는 것이다.

워낙 범위가 넓다보니 선거 홍보비가 그렇게 많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람은 머리가 좋고 배짱이 좋아 최소경비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가 있다.


만약 백만불에서 백오십만불만 모으면 시장에 될수 있다는 결론이다.
왜냐하면 미리 시작하여 선점을 취하면 감히 아무도 도전을 못하게 만들 수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

지난 시의원 선거도 가장 깨끗하고 머리 좋은 선거로 그같이 이겼던 것이다.

윤의원이 시장이 되면 어떤 유익이 우리에게?


의료계 재계 법률계 사업계등 훌륭한 이세들이 많이 나왔지만 아직도 정치계는 한국인들의 불모지이다.

정치의식도 타 소수계에 비해 너무나 뒤떨어지고 선거율도 제로에 가까우니

한국인들은 무시당할 일을 스스로 자초했다.

우리도 이제는 참여할 때가 지나고도 지난 것이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이때,

미국에서 한국계 이민들이 정치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여기 앉아서 아무 도움이 못되는 한국 정치만 왈가 왈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살아야 되는 미국 땅의 정치에서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누구보다도 정치에 뜻을 둔 우리의 청년들에게 그의 입지는 많은 유익이 될 것이다.
한국 이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출마할 때 연방 하원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있다.
그것은 돈이 엄청 들어가고 당선확률은 아주 적은 게임이다.


당이 밀어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길수 없는 자갈밭만 주는 것이다.

십불한장 안 도와주면서 밀어준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것인데 착각들이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선거에 나갔지만 아깝게도 큰 돈을 잃고 실패하였단다.


윤의원은 기꺼이 우리 이세들을 위해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정치일선에서 보고 배운 지혜를 조언 받기 원하는 젊은이는 혜택이 많을 것이다.

                                                                                       (소박하고 천사같은 사모님이 30여년 같은 가게를 혼자서 경영하고 있음)


또한 동포들에게는 여러가지 이익이 되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일례로 이번에 뉴욕주에서 터진 네일 살롱문제. 

공기 환풍기를 달고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법과
체불 보증 본드를 사게 만든 새 규례가 통과해 버려서 수많은 네일 살롱이 문을 닫게 생겼고
불이익을 당하게 될것이다. 체불보증 본드로만 매달 5천불을 내게 생긴 곳도 있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란다.


그러나 뉴저지는 조용히 지나가고 있다.

이는 그 문제를 다루는 윤의원이 얼마나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우선 그것을 발의한 의원을 불러다가 한차례 욕을 퍼부었다.
그가 깜짝 놀라서 어찌 해야 하느냐고 해서 그 발의를 취소하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는 안되고 그들을 모두 함께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피곤한 그들 모두를 모으겠는가, 임원진만 모이라고 해서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연구하여 이 법안이 통과 되지 못할 이유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환풍기를 다는 대신 공기청정기로 대체하고

대부분 99프로 여성 사업가, 소상인, 마이너리티의 사업이라는 

배려받아야 마땅한 점을 지목하게 하는 한편 

지연 작전을  펴서 잊어버릴 만하면 스스로 해결 되게 한다는 

지혜롭고 훌륭한 작전으로 풀어나가도록 했다는 그의 말을 들을 때 손뼉까지 치고 싶어졌다.

우리 한국인의 이익을 대변할 이런 정치 지도자가 더 많이 나섰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절로 생긴다.

시의원이 열을 했다면 시장은 천을 할수 있다.

자격과 연륜을 갖춘 지도자가 한인 중에 별로 없는 것은 참 슬픈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실력자가 이미 있는데도 불구하고 돕지 않아서 기회를 놓친다면

한국인들은 땅을 치고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한국 사람들은 나처럼 정치에 관심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이제라도 

다 깨워서 십시일반 도우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었다. 

미주 한인중 20만 동포가 십불씩만 모으면 200만불 모으는데 그것을 못하면 되겠는가?


우리는 미국에서 살만큼 살고 있고, 오래될만큼 오래 살고 있는데

이제는 이런 일에 나 몰라라 할때는 지났다.

뉴욕 뉴저지 사람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전국적으로 한마음으로 밀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 미주 한인 동포들은 이제라도 미국내 정치력을 반드시 모아야 한다!





끝 맺는 말








그의 오피스를 나와서 다운타운 이태리 계통의 어떤 리얼터를 만났다.

그에게 물었다. "마이클 윤을 아십니까"

그는 즐겁게 대답을 했다.

"잘 알고 말고. 그는 참 좋은 사람이야."라고.







우리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만든 우리 윤여태 의원의 앞날이 빛날 만큼 우리 미주 한인들도 빛난다.

그 자신의 말 대로 "초심을 잃지 않고" 정치 일선에 우뚝 서주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 않으며

이글을 마친다.(2015년 9월)


윤여태 의원의 연락처...MYUN@JCNJ.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