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에 세자매가 떴다…“우리의 멘토는 어머니”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주 트리오’가 나타났다. 주연주(33), 주연선(29), 주연경(27) 세 자매는 곧 나란히 서울시향으로 출근한다. 지난 2004년 4월, 서울시향 퍼스트바이올린 파트에 입단한 첫째 연주씨를 시작으로, 2008년 12월에 둘째 연선씨가 첼로 파트(현재 첼로수석)에 들어왔고, 올해 5월 입단이 결정된 막내 연경씨가 바이올린 부수석으로 10월부터 합류한다. 세 자매가 동시에 같은 교향악단에서 연주를 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지난 3일 세종문화회관 옆에 위치한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만난 세 자매는 서울시향의 ’클라라 국제페스티벌’ 참가하고 막 벨기에에서 돌아와 시차 적응이 덜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서로의 옷매무새를 봐주고, 함께 웃는 모습에서 피곤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2007년에 미국 뉴욕에서 세 자매가 뭉친 뒤로 해외에서 그렇게 함께 지낸 건 처음이었어요. 그 때 저는 연주를 하러 갔었고, 둘째는 일 하고, 막내는 공부를 하고 있었죠. 이번에 페스티벌을 셋이 함께 가니까 너무 좋더라구요.”(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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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연선씨가 고등학교 시절 일찌감치 유학길에 오르는 등 서로의 유학시기가 엇갈려 어린 시절에는 오히려 함께 할 기회가 적었다. 막내가 본격적으로 합류하는 올해 10월 이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셋이 함께 다니면 주위에서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를테면 ‘서로 닮았다’라든가 한명이 안 보이면 ‘오늘 둘째는 어디 갔어?’라고 묻는 식이죠.”(연경)
세 자매의 조화는 음악 안에서 더욱 커진다. “실내악은 사실 커뮤니케이션이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자매끼리 하니까 서로 너무 잘 알아 좋은 점이 많아요. 실내악에 가족 트리오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거예요.”(연주)

연주회에 앞서 이들은 서로를 관객으로 연주하면서 혼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평소에 직접적으로 조언하고, 가르치고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렇게 서로의 음악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무언의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음악 관련 일을 계속한 어머니(김명희씨) 덕에 어린 시절부터 세 자매는 음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플룻, 성악 등 여러가지를 배우면서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나섰던 것. “어릴 때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음악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엄마가 ’너 뭐할 거니?’라고 물어보셨고, 제일 잘 하고 좋아하는 걸 선택했죠. 피아노는 엄마가 너무 잘 치시니까 많이 혼나서 그런지 안했고…(웃음) 플룻은 저한텐 좀 어지러웠어요.”(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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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 주연주 시향 퍼스트바이올린

세 자매에게 "연습벌레가 누구냐?"고 묻자 이구동성으로 둘째를 가리킨다. “맞아요. 저는 초등학교 때도 하루 8시간씩 연습하고 그랬거든요. 우리들 세명의 연습소리가 진종일 끊이지 않으니까 아래층에서 무슨 오케스트라를 하냐며 항의하러 자주 올라오곤 했어요. 나중에는 노이로제에 걸리셨는지 연습을 하지 않고 있는 데도 시끄럽다며 초인종을 누르실 정도였죠”.
이웃의 항의도 있었지만, ’음악을 퍼뜨리는 역할’ 또한 톡톡히 했다고 회고한다. “저희들 때문인지 같은 아파트 라인에 음악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 때는 또 어머니가 연습실도 하고 계셔서 엄마들끼리도 친하게 지내셨죠.”

이런 과정을 거쳐 세 자매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주자들로 성장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첫째 연주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를 거쳐 예일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예종에선 김남윤, 이성주 교수에게, 예일대 대학원에선 에릭 프리드만 교수에게 사사한 연주씨는 활발한 연주활동과 함께 단국대 강단에도 섰으며 현재 예원학교및 서울예고출강 중이다.

첼로를 하는 둘째 연선씨는 정명화 교수에게 사사받은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커티스음대와 라이스대학원을 졸업했다. 그의 지도교수는 린 헤럴. 현재 연선씨는 예술종합학교에 출강 중이다.
막내 연경씨는 예술영재로 한예종에 입학해 김남윤, 이성주 교수에게 사사했으며 이후 미국 라이스대학원을 졸업했다. 또 음악명문(名門)인 맨하탄음대의 전문연주자과정도 마쳤다. 연경씨의 은사는 저 유명한 실비아 로젠버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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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주연선 시향 첼로수석

어머니 김명희 씨는 “세 자매가 저마다 음악적 스타일이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인데 신기하리만치 음악에 대한 치열한 열정만은 똑같았다"며 "당대 최고의 교수진에게 사사받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정말이지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일까? 큰 딸 연주씨와 둘째 연선씨는 지난 2005년 월간 ’음악춘추’가 선정한 "21세기를 빛낼 음악인 23인"에 나란히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한편 자매들이라 토닥거리며 싸우기도 하고, 시기심도 있을 법한데 이들은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만 우리는 진짜 안 싸운다”고 답했다. 나이 차이가 조금 나다 보니 자매들끼리 경쟁구도가 형성되거나 한 적이 없었다는 것. “같은 콩쿠르에 나가서 경쟁하고 그런 적이 없어요. 한 콩쿠르에서 제가 대학부 1등을 하고, 막내가 고등부 1등을 한 적은 있는데 그땐 정말 자랑스러웠죠.”(연주)

세 자매의 평소 성격은 음악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서로의 음악에 대한 평가를 묻자 난감해 하는 기색을 비추더니 이내 둘째가 총대를 메고 나선다.
“언니는 깔끔하고 정돈된 스타일이에요. 좋아하는 곡도 그런 스타일이고 그런데 반대로 막내는 열정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이죠. 음악에 꾸밈이 많은 편이에요.” 자매들은 이날도 액세서리를 한 막내를 가리치며 “언제나 저렇게 꾸미는 걸 좋아한다”며 놀린다.
“우리는 둘째 첼로 소리만 늘 들었으니까, 첼로 소리는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연주) “맞아요. 언니 첼로 소리가 기준이 되서 다른 소리를 들으면 이상해요.(연경)” 둘은 ‘둘째의 첼로 소리가 무척 깊고 그윽하다’며, 이제는 예쁜 첼로 소리를 들으면 좀 어색하다고 말한다.

듣기 좋은 말보다는 언제나 도움이 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어머니지만 세 자매를 자랑스러워 하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크다.
“어머니는 저희들에게 좀처럼 직접 칭찬하거나 그러시질 않으셨어요. 그런데 저희들 연주를 녹화한 비디오를 몇번이고 보고, 또 보시면서 ‘정말 잘한다’고 되뇌시는 걸 봤어요. 정말 뿌듯하더라구요. 오늘 이렇게 저희가 있는 건 어머니의 끝없는 인내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구나하고 가슴이 뻐근했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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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주연경 시향 바이올린부수석

어느새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큰 딸 연주씨는 어머니의 대단함에 뒤늦게나마 놀라게 된다고 한다. “가족을 가르친다는 게 정말 쉽지가 않아요. 남들 가르칠 때랑 다르거든요. 못하는 점만 눈에 띄고… 서로 관계가 좋을 수가 없는데 어머니는 우리 셋을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클래식공연 기획사를 하시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성장할수록 커졌다.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최근에서야 남들이 우리를 정말 부러워한다는 걸 알았어요. 어머니가 유치원, 연습실, 유학원, 지금은 클래식공연 기획까지 저희한테 맞춰서 사업을 하시면서 매니저 역할을 더할나위 없이 잘 해오셨거든요. 어떻게 사업까지 하면서 저희를 키우셨는지 모르겠어요.”(연경)

서울시향에서 뭉치게 된 이들은 올해 말부터 주트리오로 활동할 계획이다. 물론 이들의 트리오 활동은 기획자인 어머니 김명희씨가 디렉팅하게 된다.
음악스타일, 그리고 악기는 달라도 세 자매의 마음만은 똑같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활동할 겁니다. 이 점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어머니의 목표와도 같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