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CC 사진과 컴퓨터 클럽 ㅣ 포토 갤러리 - 게시판담당 : 김영희
매달 진행하는 출사가 어느덧 44차 출사군요.클릭
책갈피 한장 한장 넘기며
한권의 책을 다 읽어갈 때 채워지는 뿌듯함처럼
하루하루 깊어가는 가을이 우리 마음을 채워주고 있습니다.
이 가을 10월엔
김포, 강화로 가을 즐기기 출사를 갑니다.
이번 달은 목요일 출사이고
교통편도 봉사해주는 회원님들이 계십니다.
각자의 형편대로 참여하시면 될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출사 주제 : 마음비우기
일시 : 2015년 10월 8일( 목) 10시
집합 장소: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벽리
출사 장소: 수안산방 및 강화 초입
회비 : 1만원
교통편제공 : 서순하, 유순애, 조영선선배님
출사 나갈 때는 제목을 살피고 가야해요. <마음 비우기>
그저 뛰어나가 폰카를 꺼내들면 무얼 찍어야 하는지도 모르죠!
<대한민국 건국회>에서는 광복7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건국 정사인 <건국사>를 출간하였습니다.
저술은 서방님 김장군100%이고, 관련된 사회어른들의 감수를 거쳤습니다.
이번 참석자들에게만 <건국사> 한권씩 드립니다. (제가 요즘 마음 충만하여... 마음 비우기가 제대로 될런지.... 아니 이럴 때 비우기
연습이 필요하죠!) http://kor.theasian.asia/archives/author/kim-gukheon
건국사 출간 (김국헌 장군의 출판 보고서)
『대한민국 건국사』가 출간되었다. 건국사는 학술서적이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회가 취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이념적 입장이다. 『건국사』는 대한민국의 연원을 기미독립만세운동에 두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것도 여기에서 촉발된 것이며,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하여 이것이 대한민국의 건립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건국사』는 일제 강점기 국내외 독립 운동을 포괄하였으며, 중국과 만주에서 행해진 좌익의 활동도 포함하였다. 청산리 대첩
이후 독립전쟁이 사실상 종식되고 1930년대 김구가 지도한 의열단 투쟁이 독립운동의 주류가 되는 것을 부각시켰다. 윤봉길 의사의 장거가 장개석에
감동을 주어 한국의 독립을 약속한 카이로 선언에 작용하게 된 경과도 추적하였다.
『건국사』는 대한민국의 건국에 기여한 최고의
인물을 이승만 박사로 보고 그의 사상과 행적의 전개를 추적하였다. 그는 1875년 생으로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으로 투옥된 인물이었다.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에 이승만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받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그는 서방 지성인이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에
막연한 동경을 하고 있던 1930년대 초반에 이미 소련의 실상을 이미 간파하였다. 그는 또한 일본의 1941년 진주만 기습이 일어나기 전에
일본의 침략야욕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승만은 루스벨트 대통령과 미 국무성 간부들을 경륜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미국은 1947년 트루먼에
의해서야 소련의 실상을 알게 되고, 이승만은 트루먼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을 건설한 것이다.
『건국사』는 한반도 분단의 기원을
1945년 9월 20일 북한에 민주기지를 건설하라는 스탈린의 지령에 두었다. 이 사실은 1990년대 초 소련이 붕괴된 다음에야 밝혀진 것이다.
스티코프가 북한의 모든 것을 지령하였다는 것도 샅샅이 밝혀졌다. 이를 보지 못한 1970~80년대 해방공간의 연구는 허구다. 이승만이 이 문서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나, 당대 최고의 지성과 경륜으로서 이를 간파하고 있었을 것이다. 애국자로서 김구는 이승만에 못지않은 민족의
영수이나, 국제정치의 냉엄한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하고 북행, 결국 김일성에 농락당한 과정도
살펴보았다.
『건국사는 가급적 사실과 기록을 직접 인용하여 스스로 사실을 말하게 하였다.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이 새로운 사실-한국의 분단은 1945년 9월 20일 이미 결정된 것-을 알게 되면 생각을 바꾸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는
바꾸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등으로 시작된 이승만의 독재는 누구도 옹호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사실상 끌고 온 이승만의 혜안과 공적도 가려질 수
없었다. 이승만이 있었다는 것, 마침 트루먼이 소련의 공세를 봉쇄하는 대외전략의 전환을 단행할 수 있었다는 것은 천운이었다. 그러기에 트루먼은
625가 터지자 소련의 공세가 시작되었음을 직감하여 미군을 즉각 참전시켰던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사』는 이러한 과정과 논리를 정리하였다.
이번달은 총무님이 바빠 제가 공지를 올립니다.
참여하실 분은 총무님이나 저에게 신청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