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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날 밤이다.

아파트 베란다에 나서니 바로 머리 위에 보름달이 밝다.

몇 십만 km 떨어져 있는 달이 겨우 몇 만 km 가까워졌다고

호들갑을 떨 정도로 더 밝거나 선명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명색이 명절 중의 명절 한가위 보름달이니 카메라를 준비한다.


삼각대 위에 600mm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달에 촛점을 맞춘다.

피사체가 흔들릴세라 유선릴리즈로 셔터를 누른다.  

즉시 LCD 모니터로 결과물을 확인해 본다.

계수나무나 옥토끼는 보이지 않지만 

스팟 측광으로 달 표면의 음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아무리 한가위 보름달이라고 하더라도

캄캄한 하늘 한복판에 덩그러니 달덩이 하나라니.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ET"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보름달을 향해 한 줄로 늘어서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동네 아이들의 실루엣.

그리고 소년과  'ET'와의 손가락 인사. 


렌즈를 200mm로 바꾸고 앵글을 세로로 잡아 본다.

밤 하늘의 검은 바탕에 더 짙은 실루엣으로 남산이 누어 있고

그 위에 남산 타워가 밝은 조명으로 선명하게 들어온다.

위 쪽에 여백을 충분히 두고 남산 타워를 찍는다.


그리고

텅 빈 하늘에서 외로운 보름달을 내 상상의 꿈수레에 태운다.

허공을 가로 질러 꿈수레는 남산 위로 오르고

보름달은 남산 타워와 악수를 나눈다.


 한가위 보름달처럼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 충만하게 이루어지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