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날개위에 품바 그 일곱째 마당>

{중 장년기} 상(上)

1 : <이태리 본토에서 겁도 없이>
비철연합회 회원사 사장들과 시장조사 등 명목으로
유럽지역으로 보름여 나갔다.
불란서 대사관 앞에서 호기심에 부푼 사장들이 각자
넋 놓고 한 눈 팔며 이리저리 흩어진다.
반 이상이 외국어에 약한 이들이라 국제미아가 될 판이었다.
단장이 놀라서 돌아오라고 아무리 큰소리로
여러 번 다급하게 외쳐도 못 듣고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그때  단장 옆에 있던 내가 목청을 돋우어 대갈일성하자,
모두 단박에 모였다.
단장은 “아니 어떻게 그런 목청이 나오지?”
그때까지 기어들어가는 답답한 허스키로만 알아
어쩌다 버스로 이동할 때는 김 사장 등
평소 단장이 노래실력을 잘 알던
일부 몇 분만이 흘러간 뽕짝을 불렀는데
그 날 저녁 이태리 밀라노 코트라 관장 집에서 베푼 파티에서
그 목청이면 노래도 남다를 테니 불러 보라 한다...

장일남의 <기다리는 마음> 과 <돌아오라 소렌토로>, 가
이태리 땅에 퍼진다.
관장과 그 부인이 오랜만에 향수를 달랬다며 계속 앙코르이다.
앙코르 곡으로 김성태의 <이별의 노래>를 불렀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그런데 그 노래를 들으며 관장부부가
눈물을 훔치는 게 아닌가?
아차! 이 사람들 고국을 떠나온 지 10여 년이라 했지. 
공연히 이 노래를 불렀구나 싶었다.
그 때 이후 나는 <이별의 노래>를 부를 때면 1절은 안 부르고
일반적으로 누구에게나 공감이 갈 사랑의 정조가 어린 2절부터
부른다.

거기 관장부부는 정말 잉꼬부부처럼 살갑게 보였다.
내가 답가를 청하자 남편은 당시 유행하던 ‘하수영’의
“젖은 손이 애처로워” 로 시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고
이어서 부인은 같은 곡조에
가사만 다른 <지아비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다.
남편의 손을 꼬옥 붙잡은 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가정을 위해
애쓰시는 당신은 우리에겐 하늘이라오.
이 사랑이 꿈이라면 영원토록 깨우지 마소서
이 행복이 꿈이라면 나는 깨어나지 않으리라
나도 다시 태어나면 당신만을 사랑할레요

그때나 이때나 우둔하기 짝이 없는 나는
“이런 노래도 하수영의 노래에 2절로 붙어 있었어요?”라고
물었고 그게 그 관장부인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곡조에
노랫말만 자기가 새로 지어 붙인 거라는 말을 듣고는
그 가사를 알려 달라 해서 적어놓았다.
헌데 까마득히 잊었던 그 가사를 적어놓았던
종이쪼가리가 거의 30년이 지난 최근
지나간 사진들을 정리하는 중에 거기 낡은 봉투에서
누렇게 색갈이 변한 채 나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여기에 세상구경을 시켜준다.

어쨌든 난 있는 밑천 없는 밑천, 진짜 실력 가짜실력
다 동원해서 이태리에 살면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그들 부부에게
신나는 저녁을 듬뿍 안겨주었고 우리 일행도 오랜만에 자르르한
쌀밥에 칼칼한 김치, 고추장, 쌈 등 입맛 돋우는 음식과
이태리 고급 와인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문제는 다음날부터 난 잠간씩 졸지도 못하고
버스여행에 차출된 노래전담가수가 되었고
남들보다 곱절은 피로한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007영화에 멋있게 나오는 수상도시 베니스는
사실 여름의 뜨겁고 습한 공기와 함께
생활하수 등 오수(汚水)냄새로 저녁에는
잠을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낮에 우리는 상당히 큰 야외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다.
이태리 사람들도 점심시간에 술등을 많이 마시지만
우리일행은 이태리 사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정말 무진장 마시고 먹어댔다.
거기서 나는 술 취한 넘 부푼 배짱으로 <오 솔 레 미오>를
열창한다. 마침 저 앞에 부부싸움을
몹시 심하게 하던 외국인 부부가 있었다.
1cm는 족히 될 부인의 손톱이 막 남편의 얼굴을
그어버리려던 순간이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갑자기 그 둘은 정지된 화면이 되었고
내 노래가 끝나자 그 둘은 누가 더 열심히
박수치나 시합이라도 하듯이
거의 광적으로 앙코르를 외치고
박수를 치면서 방금 前까지
자기들이 싸우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사이좋은 부부로 돌아가 있었다.
앙코르까지 끝내고 잠시 가로등에 기대어
쉬는 나에게 인형처럼 예쁜 少女와 그 엄마가
내 옆에 슬금슬금 거의 몸을 붙여 선다.
저쪽의 아버지에게 “치즈”하며 사진을 어서 찍으란다.
조금은 수줍음을 타는지 아니면
워낙 내 인상이 시커멓고 겁나게 생겼는지
방금 자기네를 감동시킨 동양의 루자똥 가수와
자기들 마음대로 기념사진을 찍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음식점 주인은 사인이 잔뜩 담긴 크고 두꺼운 사인첩을
갖고 와서 내게 사인을 하란다.

Sahng Wook Yong from KOREA...
나는 신나게 사인했고...

“자그마치 200 만 원 이상 되는
식대(食代)를 치르는 내게는 사인해달라는 말없이
노래 두 곡 부른 용 사장에게만 사인해 달래네. 짜식들...”
질투어린 단장의 푸념이었다.
헌데 그 때만 해도 단체여행에 뭉쳐 다니는 데다
미처 모른 탓이지만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괴테, 스탕달, 바그너, 러스킨, 릴케, 하이네, 니체 등이
다녀갔다는 Cafe Florian에 가서 느긋하게
한 잔의 커피 향(香)에 빠지지 못한 것은 너무 아쉽다.
 
다시 카프리 섬을 찾아갔다.
조각배에 한사람씩 태우고 동굴로 들어간다.
거기서 이태리 뱃사공은<산타 루치아>를 멋있게 뽑는다.
조명으로 온갖 현란한 색이 산란되는 동굴은
공명이 잘되어 소리가 그럴 듯했다.
내가 가만있을 수 있나,
이태리노래라고 이태리 사람만이 부르라는 법이 있더냐?

“베니치아 라지레 발 게타미아 산타루치아 ......”

쭈~욱 뽑아대니 뱃사공 눈이 동그래지며
나보고 계속 부르란다.
“원더풀, 원더풀...” 하면서...... 

2 : <cherry boy>

당시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을 하던 나는  마치 양녕대군이나
된 듯이 이런 저런 핑계를 갖다 대고 술집을 편력했다.
직원 단합 대회한다고, 누구생일 축하한다고, 식으로
나는 낮보다도 저녁에 더 많이 바빴다.
트위스트 金 의 동생뻘인 체리보이를 만나고
당시 세계권투 챔피언 ‘김환진’ 과 어울려
팔씨름하던 시절이 그림으로 떠오른다.
나는 체리보이스타일은 아니었는데
분위기에 젖어 체리보이가
이 술집에서 노래 끝나고 다른 술집으로 떠나면,
체리보이랑 함께 택시타고 가서 또 박수치고
좌우간 술, 쇼, 노래에 푹 쩔었던 시절이었다.

3 : <때로는 건달이 부러워>

명동의 어느 맥주홀에 열심히 다녔다.
헝가리 무곡 5번 중 <로망스> 가
내가 그 집에 출근부 도장을 찍었다는 신호였다.
당시 kBS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김동석> 과 동기동창이었던 그 아저씨는
내가 나타나면 인사로 그 곡을 연주했다.
6개월을 열심히 출근했던 나는 어느 날
아저씨와 업무시간 전에 만나
독창곡을 연습해놓고 며칠 후 슬며시
아저씨가 “손님 중 누구 나오셔서
한 곡 불러보세요” 말하면
내가 자연스럽게 무대에 오르는 식으로
얼개를 짜놓고 D-day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 속셈(?) 을 마침 주워들은
영등포 어깨가 전날 그 맥주홀에서
여자 둘을 내게 데리고 와서
덕소 강변에서 수영복바람으로
신나게 놀아대는 통에
나는 그 맥주홀에 가는 발걸음을 마감한다.

“아직 무슨 얘기인줄 모르겠다고?”
“젖 더 먹고 와야 할 학생이 있네요.ㅎㅎㅎ...”

4 : <어릿광대 `마리오 란자,>

살다가 참 피할 수 없는 이상한 운명의 기로에 섰던
내 인생의 한 시점에서
2 년 간 나는 물에 빠진 넘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막판에 함께 얽힌 동업자 金사장의 묘한 생활패턴의 수렁에 빠져
1년 365 일 중 350 일 정도를
하루 최소 2~3곳 술집으로 내던져진다.
밤 1~2 시쯤 술에 젖을 대로 젖은 몸으로
기진맥진 귀가하여 다시 새벽 7시에는 어김없이
집 대문을 나서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작취미성(昨醉未醒)의 그 몸으로도
100 km 넘는 출근길에 늦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곤 다시 매일 저녁 술집에 갔고 거기서 나는 늘 끌려 나가
노래하는 ‘마리오 란자’가 된다.
어느 날은 내 노래에 뿅 간(?) 어떤 힘 좋은 취객의
한도 끝도 없는 강제성 앙코르로
무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김 승옥 ’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음대 성악과를 나온 작부에게
굳이 뽕짝을 부르게 해놓고
부르는 자나 듣는 자나 서로 망가지는
인간군상에 자위하던
그런 분위기도 한 몫 하던 그때
나는 일부러
‘문필녀’(=‘문주란’) 의 <이슬비>를 主로 불렀다.

그렇게 난 가슴속 흘러내리는 빗물에 울고,
쏟아지는 혈천(血川)에 슬픈 샤워를 했다.

0O1-Bohemian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