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하나 뿐이 없는 딸아이가 어제 영국 버밍엄으로 떠났다.


    오후 1시10분 비행기라 세 시간 전에 도착하려 곤하게 자는 딸아이를 깨워


    따스한 아침밥을 먹였다.


    이제부터 물설고 낯선 이국땅에서 제 스스로 밥을 차려먹으며 유학생활을


    견뎌야한다.


    짊이 하도 많기에 관리약사를 두고 공항까지 픽업을 책임지니 집사람도 따라


    나선다.


    공항은 이별과 만남의 연속이다.


    각자의 사연을 담고 비행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부산하다.


    큰 여행가방 둘을 체크 인하니 40키로가 넘어 20키로 초과다.


    공항직원이 47만원을 더 내야한다는 것이다.


    난감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짐을 풀어헤쳐야한다면 어찌할까?


    추가로 무는 돈도 돈이지만 잘 꾸린 여행 가방을 열고 짐을 덜어내랄까


    그게 더 걱정이었다.


    공부하러가는 학생임을 강조하며 아는 분을 대동하여 선처를 부탁하니


    직원은 집사람과 딸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 다짐을 받고 무사통과다.


    다행이다. 시작이 좋은 것 같다.


    털컥거리며 짐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공항까지 환송을 나온 딸아이의 친구들이 고마워 점심을 사주고 나니


    시계는 어느새 12시를 가리킨다.


    “아빠 나 갈께.”


    이제 딸아이 손을 놓을 시간이다.


    “그래, 기도생활 열심히 하고. 밥 잘 챙겨먹고.”


    그래도 씩씩하게 노트북이 든 가방이 안 무거운 척하며 게이트를 통과하려니


    딸애 여자 친구들이 포옹도 안 해주고 간다며 난리다.


    순간 딸애는 달려와 하나씩 뜨거운 작별의 포옹을 나눈다.


    잠시라도 곁에 두고 싶어 하이파이브를 하고나니 출국장 15번 게이트가


    속절없이 굳게 닫힌다.


    틈새로 엑스레이 문을 통과하는 딸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울컥하다.


    주변을 의식해 잘 참아냈다.


    부모의 심정은 모두가 다 이럴 것이다.


    대학생이라지만 부모의 눈에는 아직 어린애일 뿐이다.


    엄마처럼 갸름한 손톱을 안 닮고 아빠로 인해 네모난 손톱을 원망하던 딸,


    키를 잴 때 일부러 무릎을 굽힐 필요도 없이 아빠보다 한 뼘이나 훌쩍 더 커버린


    친구 같은 딸,


    자기가 쓰던 차를 자전거만을 고집하던 아빠에게 물려주며 내 차 엔진오일은


    뭐라고 친히 일러주던 딸,


    맞벌이가 뭔지 낳자마자 처가에 맡기어 주말에야 겨우 만나야만했던 딸아이가 자라


    혼자 어학연수 길을 떠난 것이다.




    공항에서 돌아와 딸애 방 컴퓨터책상에 정성스레 쓴 편지에 그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사랑하는 엄마아빠,


    지금 이 편지를 발견하는 시간 나는 푸르른 창공을 날고 있겠죠?”라고 시작하는


    편지에 그간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참 바보다. 남자가! 아버지가!


    잠시 속으로 기도했다.


    그래 푸른 꿈을 펼쳐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와라.


    인생은 혼자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다.


    오늘아침 로밍 폰으로 딸아이의 도착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사랑하는 딸아, 늘 건강하게 지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