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전화벨이 울린다.
"애기냐?
오늘 아침 일찍 큰 애를 이 곳에 올려 보내거라.
자동차 가지고 오라고 해라."

"저- 아버님!."
내 대답이 시작 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다.
아버님에게서의 전화는
항상 두 마디로 이어지지 않는다.
전화 요금이 많이 나올까봐 극심한 절약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릴
중요한 사항이 있기 전에는
전화 확인 없이 말씀하신대로 따르는 편이 아버님 마음에 맞는다.

"할아버지께서 일찍 청평에 오라고 하니
어서 가보거라."
아들이 혹시 "왜요? 라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어 대답할 말이 없는데
아들도 이유라고는 한 마디도 묻지 않고
서둘러 떠났다.

청평에 다녀온 아들은
쌀 20KG  한 부대와
갖가지 생선이 들어 있는
프라스틱 통을 내려 놓았다.
또 낯익은 봉투에
30만원도 들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곧바로 아버님께 전화를 했다.

"아가! 그 쌀은 오래된 쌀이라 우린 못먹겠다.
너희는 식구 많아 괜찮을테니 너희가 먹거라.
그리고 우리는 고기는 먹지만 생선은  안먹으니 너희가 먹거라.
돈 30만원은 구정에 너희들이 새뱃돈을  너무 많이 주어서
남았는데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돈을 자꾸 잃어버리니
간수하는 것이 더 힘들어서 보냈다.
나도 이젠 치매에 걸렸나보다."

"저- 아버님."
내 말은 한 마디도 못했는데 또 전화가  끊겼다.
  
아버님이 우리에게 보낸 쌀은
남편이 무공해 쌀이라고 올가을에 특별히 골라 사다드린 햅쌀이었다.
아버님은 옛날에는 이삼년 지난 쌀로 먹고
햅쌀로는 밥을 지어 먹지 못했는데  
햅쌀로 밥을 지으면 얼마나 맛있겠냐고 무척 기뻐하셨었다.
그리고 지난번에 우리에게 고기를 잔뜩 보내실 때는
"우리는 생선만 먹지 고기는 안먹으니 너희가 먹거라."고
이번과 정반대의 구실을 붙히셨었다.
어머님이 주신 정보로는
아버님이 손수건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챙기신다고 했다.

그러니까 전화 한 통화도 절약하는 아버님은
아버님이 가지고 계신 돈 전체를 봉투에 넣어 보내신 것이다.
아버님의 사랑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아버님! 치매에 걸리신 것이 맞아요.
사랑을 주고 또 주고 준 것도 모르는 최고의 치매에 걸리셨어요.
저도 아버님께 드리고 또 드려도
드린 것을 기억조차 못하는 아버님이 걸리신 그 치매에 걸리고 싶어요.

나는 전화기를 바라다 보면서
아버님께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아버님!
아버님이 진짜로 최악의 치매에 걸리셔도
나는 아버님을 진실로 사랑할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