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길을 걷고 있는 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보니
구두 수선공 아저씨이다.
손을 흔들며 부르기에
가까이 다가가며 "저를 부르셨나요?"

"예.
구두 뒤굽 고쳐야지 구두 다 망가져요."

그 곳은 4호선 숙대 앞 역이여서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데
어떻게 발소리만 듣고도 구두가 망가진 것을 아세요?."

"아 그거야 간단하죠.
내가 구두 고쳐야 먹고 사는 사람이니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이 구두 아니겠어요?."

나는 탄복하고 구두를 고쳤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구두 소리만 들어도
구두를 고쳐야 하는 시기를 정확히 알아내는
구두 수선공처럼 나의 일에 전문화 되어 있는가?
내가 하루 종일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여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내 가슴에 강하게 박혀왔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왕 되신 하나님을 존귀케 해야 한다.
나의 모든 말과 행실과 믿음과 사랑과 정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해 져야 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한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주인되신 하나님을 유익하게 해야한다.

주님은 이것을 한 마디로 가르쳐 주셨는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똑같아야 한다.

나는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람을 세우는 것(존귀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존귀케 되는 것은
학문이나 선행이나 인격 수양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가장 존귀해 진다.
그래서 내가 누구를 만나든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했는가? 이다.

또한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한다.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기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 까?
나를 만나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에게 유익하게 해야한다.
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전제는 그 사람에게 유익해야 한다.

내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것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시각,
예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나 쉽고 가능한 것이 있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다.
주님은 사람과의 관계도  
한 마디로 가르쳐 주셨는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누구를 대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이다.

그 날 이후.
하루 종일 이 세 가지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머지않아
소리만 들어도
눈빛만 보아도
이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있는지
이 사람이 무너지고 있는지
용기를 잃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가슴에서 슬퍼하는 말없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나의 어떠한 것도 버릴 수 있는 훈련을
수 없이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노라면
궂이 들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보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보이는
영혼의 일꾼 중
최고의 숙련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