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올들어 처음으로 눈다운 눈을 맞고있다.
맨날 잠에서 깨어나서야 눈이 오시는 것을 알았으니 오늘 눈은 정말 제대로지싶다.
오랜만에 마음에 맞는 친구 4명이 어울려
송도에서 점심을 먹고 청량산 자락에 위치한 찻집 "향수"에 앉아 그동안 년말년시의 일로 담소를 나누던 중이다.
그런데 넓은 창 너머로 굵은 눈이 나풀 나풀대며 흩날리더니 순식간에 함박눈이 되어 춤을 추며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어머나! 일기예보대로 눈이오네.
그런데 서울은 지금 일어서야겠다.
아니야, 이대로 눈을 보고싶어.
감성이 예민한 서울친구가 굳이 서두르고싶지 않겠다는 말에따라 우리는 다들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예전 대학시절에도 묘하게도 이런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신문을 마감하고 홀가분한 마음에 학보사 친구 넷이서 용대리행 직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종착지는 백담산장.
그런데 용대리에 가까와 오자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함박눈이 용대리 그 너른 벌판을 뒤덮으며 바람에 쓸려가고 있었다.
가도가도 끝없는 눈밭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광수의 "유정"을 생각했다.
도덕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금기된 사랑때문에
시베리아를 찾은 허석과 친구의 딸 정임이 이런 허허벌판 눈속을 헤멨겠지 하면서 우리는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용대리에 내리니 겨우 눈이 그치고
내처 백담사 산길을 올랐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산장에 도착을 해야한다.
용대리에서 백담사 가는 길을 누군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이라고 했던가?
눈이 소복이 싸인 산길 한켠엔 옥색물이 돌돌 흐르고 넓직한 바위들은 흰눈을 소복이 이고 있다.
2시간에 겨우 도착한 백담산장이 저멀리 보이고
제일 먼저 바둑이가 뛰어나와 우리를 반긴다.
털보아저씨가 우리를 위해 커피를 끓이는 동안,
우리는 썰지않은 독일빵집 식빵을 벽난로 속 장작더미위에 올려놓으면 구수한 빵냄새가 산장전체에 진동을 한다.
벽난로 앞에 오손도손 모여 앉아 구운 식빵을 손으로 뜯어 빠다를 발라서 커피와 먹던 그 맛
그리고 탁탁 타오르는 빨간 장작불에 얼굴도 수줍은 소녀처럼 발그래 피어오르고
그러면 산장 밖에서는 하얀 눈이 또 계속해서 소리도 없이 쉬임없이 내렸다.
언제나 찾아도 데모에 쫓겨 몸을 숨기고 의지하고 있는 남학생이 한 둘은 꼭 있어 꼭 미팅을 연상케 했던 백담산장....
그 때 그 남학생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렇듯 흰눈과 함께 백담산장은 내 마음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더 더군다나 그 곳을 못 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둑이"때문이기도 하다.
하산 길 자꾸만 따라오는 바둑이를 돌로 쫓아보기도 하고 바위뒤에 숨어 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은 용대리 차표파는 구멍가게까지 따라왔으니 별 수 없이 가게 주인아줌마에게 부탁을 드렸다.
그랬더니 그 아줌마는 벌써 그 바둑이의 집을 알고 있으며 쟤가 종종 저러니 걱정하지 말란다.
백담사에 올라가는 스님이 계시면 그 편에 올려보낸다고.
아마도 사람을 좋아하는 바둑이의 오래된 습관인가 보았다.
바둑이와 놀다가 버스가 도착을 하고 우리는 올라탔다.
그런데 바둑이가 따라 오르려하니 차장아가씨가 냅다 발로 차서는 내 보냈다.
바둑이가 넘어져 나뒹글고 버스는 쌩하니 떠난다.
우리는 가슴이 아파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도 바둑이는 흰 눈 위로 버스를 쫓아 결사적으로 뛰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작 이틀을 같이 했을 뿐인데 이렇게 홈빡 정이 들다니.....
바둑이가 걱정이 되어서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산장에 전화를 넣었다.
다행이 바둑이는 산장에 돌아와 있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바둑이와의 아픈 이별이 마음에 콕 박혀버려 절대로 강아지는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왜냐하면 정주고 내가 우니까...
오늘 쏟아지는 함박눈이 나를 용대리로 백담산장으로 그리고 설레던 20대 청춘으로 끌고간다.
눈 나리는 찻집에 앉아 상념에 젖어있는 저 친구들도 다들 어딘가 추억 속을 헤메고 있으려나?
밖에서는 다들 눈때문에 난리일텐데도
아직도 나는 눈 나리는 날이 그냥 너무 좋다.
우리네 인생길이
한고비 넘겼다 하면 또 고비가 기다리고 있듯이 수없는 산을 넘지만
그 중에서도 큰 산을 만나면 반드시 주위에 큰 강이 있습니다.
일을 벌이다보면 내 뜻과는 상관이 없이 규모가 커지고 자연스레 이런저런 넘어야 할 강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저 강을 과연 내가 건널 수 있을까?
큰 강을 앞에 두고 몇날 며칠을 고심했습니다.
누구는 그 사람이 견딜만큼만의 고통을 하늘이 준다 라고 했나요?
그 때
결혼식날 예외없이 듣게되는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비가 올때나 눈이 올때나 하늘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예"라고 크게 맹세하고는 그 맹세를 몇년 안 돼 헌신짝처럼 차 버립니다.
잘 나갈때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다가
힘없고 병이 들 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겨워합니다.
그 날의 맹세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약속.....
사람이 살아 갈 때 중요시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약속을 지키는 일이 인간의 근본 도리가 아닐까요?
불가항력의 일이 일어났을 때
그래도 나만은 약속은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요.
일부는 그만 접자 라는 의견도 내어 놓았지만 결국은 제 뜻을 따르겠다 했습니다.
그만두는 것은 제일 쉬운 길이지만 어떤 난관에 부딪힐지라도 약속은 지켜져야한다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료로 선뜻 허락을 해 주신 출연자들께서 오히려 힘을 주셨습니다.
이렇듯
내 앞에
강이 나오면 강을 건널 수 있게 손을 잡아주고 돌을 놓아주는 분들이 함께 하는 이상
"또라이"라는 말을 들어도
손가락질을 받아도
기꺼이 저는 "또라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믿어주시는 유정희 선생님을 위해 "선생님을 위한 헌정 음악회".....열심히 준비 하겠습니다.
에궁......
"약속"이라니까 내가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그래도 산학후배가 계속 추진하니까
참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또라이라니 당치도 않는 말이지......
나도 그 음악회에는 꼭 참석하려고 해...
선생님 드레스도 꼭 가지고 갈거야..
정말 수고가 많다..
고마워.
김춘자 선배님!
절대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런 험담을 하는 사람들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서 본얼굴을 가리는 법이니까요?
우리가 살다보면
제 뜻대로 되지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건강이나 집안의 우환등이 우리 의지대로 될까요?
맨처음 선배님께서 아프다 하셨을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쩐지 일이 너무 술술 잘 풀린다 했더니 드디어 터졌구나 했지요.
그리고 이 일을 어쩐다 하고 고민할 때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기가 막혔지만
나 혼자 욕을 먹는 것은 그렇다치고
출연자들을 운운 할 때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돈 한푼 안 받고 단지 좋아서 허락을 한 순수한 분들이잖아요.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요즈음같이 약삭빠른 세상에 "또라이"란 오히려 귀한 사람이 아닐까요?
"바보, 김수환"이란 추기경님의 책을 읽어 보셨는지요?
산학 후배,
계획했던 이벤트의 포맷이 바뀌게 되어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으리라 믿어요.
모든 일에는 CONTINGENCY PLAN이라는 백업 플렌이 있기 마련이지요.
현명하게 리폼시킨 후배의 결단력에 찬사 를 보냅니다
열심히 가르치신 제자들의 또 그들의 자녀들로 만들어진 헌정 음악회에서 감동하실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 하면서 쉽지 않은일들 뒤에서, 옆에서, 함께 하는
동문들에게도 감사 합니다.
김혜경 선배님!
일년 전 선생님과의 모임이 없었다면 과연 이런 생각이나 했을까요?
그 날, 악보도 없이 제자들의 즉석반주에 맞추어 10곡쯤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숙생"을 부르던 선생님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릅니다.
다 버린 듯
하늘을 보고 두손을 휘저으며 부르던 하숙생은
그 누구의 노래보다도 처연하고 아름다왔지요.
지금도
"자신이 없다, 없어 " 하시지만
그 날의 그 무대는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직접 그 자리에 함께 한 분이라면 아마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김혜경 선배님!
걱정스러워 멀리서 보내주시는 격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새 노래를 배울 때 유정희 선생님은
먼저 피아노를 쳐 주시는 일이 없으셨다.
딱딱이( ?)로 딱딱 박자를 쳐 주시면
우리는 악보를 보고 계명으로 먼저 노래를 불렀다.
그 작업이 먼저 끝나야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는데
그 날은 우리가 잘했다시며 선생님께서 상으로
노래를 불러주셨다.
'WHITE CHRISTMAS'였다.
그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12월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창밖엔 함박눈이 날리고 있었다.
* 정말 눈이 내렸을까? 어쩜 실제로는 눈이 내리지 않고
노래를 듣는 내 마음에만 눈이 내렸을까?
산학의 글을 읽으니
오랜만에 떠오르는 모습인데 이젠 기억이 흐려져 가고 있다.
내리는 눈 속에 묻혀가는 풍경들처럼......
영수야!
내리는 눈을 함께 바라보던 그 날....참으로 좋았다.
그리고 아버님 상을 치루고(힘든 중임에도)
마음을 여기까지 주었네.
고마워.
코롱붕겐.......
그것때문에 나는 음악시간이 싫었단다.
그런데 항상 우아하고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던 선생님은 좋아서 몰래 훔쳐보곤 했는데....
훗날 다른 학교 친구들은 코룽붕겐이 무엇인지도 몰라하길래
우리가 훌륭한 선생님밑에서 기초를 단단하게 배웠구나 하며 자부심을 느꼈지.
(돌아보니 우리 시절엔 참으로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런데 선생님의 또 다른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영수야!
네 말대로 눈 속에 묻혀가는 풍경들처럼
그냥 세월속에 무심히 잊혀지면 어쩌니?
이 동네는 아직도 눈이 오고 있네요? ㅎㅎ
몸은 조그만 사람이 일 처리 하는 것은 어찌 그리 통이 크신지 놀랍군요.
맘 고생 많이 했으리란 생각이 들어 안쓰럽기도 하고....
방향 전환 하였으니 이제 더 바빠지겠네요.
?혜경선배님,옥슨랑선배님, 광숙선배님, 춘자선배님,,,,
모두들 잘 지내시지요?
저도 염려해주시는 덕분에 올해 목표도
실천하고 벌써 2월말이 되가네요.?
4월되면 그리운 모습들을 만나뵐 수 있게됬네요. 감사드립니다.
김광숙선배님, 폰으로 보내주신 ?"자목련화"?,,,,,,
감사히 잘 받았읍니다.
늘 친언니처럼 걱정해주시는 김광숙선배님,,,,
올해도 더욱 정진하시길 기원합니다,
마음 가득 사랑의 꽃다발을 선배님들께 한아름 보내 드립니다.
산학아, 김수환 추기경님 자화상 "바보야" 생각나지?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맨 뒷면에 보면,,,
?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읍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십시오."
하고 적혀있단다,
나도 가만히 생각하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사는 것같아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난 상대방에게
사랑주는 게 항상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자르는 애라는 소리 들은지 오래됬다야아.ㅋㅋㅋ
?수고가 너무 많은 산학아!
여전히 변함없이 가녀린 몸인데 박수깜이다!
계획하고 추진하는 모든 일들이 성공리에 마칠수 있기를 빈다.
너무 무리해서 건강을 해치지 말도록 하고....
자랑스럽다! 7기의 박력감 넘치는 총무님
인선아!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라는 말이 있지?
그렇게 결과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잘 되겠지?
인선이의 격려에 힘입어 나도 주문을 외어본다.
도산학, 아마 저위의 노래 가사내용이 "조용필" 의 "정"같으네.
아마 기대치이상으로 좋은 성과가 있을테니
염려 꽉 붙들어 매고 날짜가면서 세부사항을
조직적으로 순리적으로 살펴보아야겠지.
난 큰도움은 못되도 성원의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울 친구를 위해서 산학이가 애썼는데.....
" 선생님 헌정 음악회 " 멋지구나야!!!
춘자야~~네가 올 4월을 기다려본다~~~
용선배님께서 드뎌 수술을!!!
잘 회복되시길 빌어요.
좀 더 빠른 수술이었다면 더 좋았을 걸.....
재화도 오랜만에 이 방에서 ,
항상 건강하그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