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저희 11회는 유정희선생님께 음악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존함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고,
홈페이지를 통해 많은 선배님들께서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지난 5월 김혜경선배님댁 혼사 시 축하연에서 유정희선생님께서 독창하는 순서가 있었죠.
김혜경선배님의 허락을 구하고 유정희선배님의 독창 부분 영상클립을
부탁하여 건네 받았습니다.
용량이 커서 재 인코딩해서 올려봅니다.
유정희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있으신 선배님들께
가슴 뜨거운 영상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도움을 주신 김혜경선배님 감사합니다.
영상 원본 제공 : 3회 김혜경선배님
인코딩 : 11회 전영희
선생님의 몸은 비록 쇠잔해지셨어도
목소리는 그대로 이십니다.
40여년만에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부디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어머 선생님 ! 40여년이 훨 지나 이렇케 목소리를 알현하니 눈물이 나오네요
건강하세요 선생님 ! 시애틀에서
온! 여기서도 아주 선명하게 잘 보이고 들리네 고마워
그런데 내 컴에 초기화면을 열면 작성자나 댓글 오린분들에 이름이 넘 작아서 읽을수가 없는데 방법은 ?
허나 단 크릭을 하면 내용만큼은 정상 크기에 글짜로 보여 지장은 없지 한 열흘쯤 되였어 총총
학창시절 유정희 선생님은 우리의 스타셨답니다.
소풍가서도 의례 클라이막스는 선생님의 독창이었고요.
선생님께서 인천여중으로 오시고 결혼하신 얼마 후에 학교에 들어갔던 저희가 고2 때
선생님은 부군과 사별하셔서 홀로 되시고 그다음에 이대교육대학원에 들어가셨기때문에
저희 이대학생들은(특히 음대는) 선생님과 2년간 함께 다닌 셈이었지요.
수업시간이야 달랐지만 그래도 밤늦게 기차를 타면 한번씩 선생님과 만났답니다.
2기의 최희순언니는 전속 반주자겸 거의 선생님 동생수준으로 함께 다니셨고
(그 언니는 선생님의 서울 음대 후배기도 했구요)
우리 음대지망생들은 언제나 선생님과 가까웠어요.
혜경언니, 저, 6기의 남원옥,효옥 자매, 춘자 그리고 희란이였던가?
아! 그리운 옛날이여~~~~~~~~~~~~~~~~~~~~~~
명옥 후배 그런 선생님과으 아릿다운 추억이 있구먼
나도 한번은 중학교때 극장을 갔는데 본 영화 상영전 대한 뉴스! 짜자자!!!하곤
덤으로 상영되는 일부중에서 유 정희 선생님께서 합창단 일원으로
해외에 나가셔서 고운 한복 차림으로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을 뵙게 된거야
아마 대학 시절이신것 같더군 그 시절엔 해외에 나간다는것은 거의 전무했던
시절이라서 그후 선생님을 뵐때마다 더욱 고해 보이셨지~
후배 이 야그좀 선생님께 전해드려
이내도!
아! 그리운 옛날이여~~~~~~~~~~~~~~~~~~~~~~ 총총
보모 전 영희 후배
시키는데로 했더니 갑작이 봉사 눈뜬 기분이랄가 ! 글씨가 커져 안 보이던것이 잘 보이니깐 말일세
가까이에 있어야 중국 냉면이라도 한 그릇 대접하지 ~ 고마워 ! 온 장마와 습도에 건강을
여기는 여름이라야 20도 정도에 밤엔 온도가 더 내려가 솜 이불 덮고 자니
추워서 슬픈 시에틀에 여름 한 가운데 있구먼
모든 고마움 이 내 머리속에 입력 했응게 총총
세상에 추워서 슬픈 시애틀이라니~~~~~~~~~~~~~~~~~~~~~~~~~
유정희선생님을 잊은 적은 없지만 객지생활만 하다보니
더구나 애들이 어릴 때는 어쩌다 친정 나들이를 한다해도 꼼짝 할 수 없쟎아요?
10몇년 전인가 갑자기 돌연사 병사 해서 주위분들에게 변고가 생기는 거에요.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안되겠다 싶어서 교육대학에 전화해서 자택 번호 받고(번호도 바뀌었대요)
한시간인가 통화하고 (그게 기본이거든요) 인천가서 찾아뵙고 왕수다를 죙일~~~~~~~~~~~~~~~~~.
참 그 해가 환갑이셨어요
.
얌전하게 여름 쟈켓도 걸치고 갔는데 너무 더워서
장남 내외가 있든 말든 벗어던지고 푹 파인 민소매티 하나로
예쁜 손자와 상냥하고 예쁜 일본 며느리하고도 놀고요.
며느님이 "어머니 탕수육하고 짜장면 시킬께요."라고 하더니 음식이 오자 마자 우선 김치부터 가져다 놓대요.
며느님왈 " 사람들이 어머니 무섭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우리 어머니는 정말 아기같이 순수한 분이세요.
전혀 무섭지 않아요" 그러대요.
진정으로 우리 선생님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며느님을 맞으신 것 같아 참 마음이 좋았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인일여고 분수대에서 장남인 선기하고 놀면서 찍은 사진이 그댁 앨범에도 있더라구요.
가끔 선생님 댁에 놀러 가면 고녀석이 1학년밖에 안됬으면서
"누나 엄마 외로우니까 자고 가" 했어요.
수십년 만난 적이 없는데도 선기가 명옥이 누나라고 불러주는 게 어찌나 고맙고도 미안하던지.......................
이거 쓰다 보니 너무 죄송해서 이번에는 꼭 가서 뵈야겠네요.
그 당시 허리 디스크가 나아서 겨우 살살 다닐 때 였는데 4시간인가 다섯시간인가~~~~~~~~~~~~~~~~~~~~~~
다시 허리는 아프게 되고 그다음은 무서워서 아직까지 못가고 있었답니다. ㅎㅎㅎㅎ
선생님은 그런 이유를 모르시니까 만나면 서운해 하시지요.
작년에 혜경언니댁 개원 60주년 행사에 오셨다가 만나서 서운해 하시는걸
6기의 광숙이가 "언니 그동안 아팠어요" 하고 많이 놀래켜드려서 그대로 무마!
음악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우리의 진정한 음악선생님! 사랑합니다.
혜경, 호문, 명옥언니~
선생님의 노랫소리 들으니 가슴이 찡하네요.
저 고3때 담임샘이셨고 인천교대 (경인교대)에서 교수로 계셔서
자주 뵈었어요.
혼자 되시고 야간 대학원 다니시면서 통행금지에 걸리셔서 손바닥에 도장 찍혔다고
보여주셨던 기억도 나네요.
인교에서 퇴직하시기 7~8전부터 붓글씨를 열심히 배우셔서 전시회도 가지셨어요.
名筆이셔요.
뭔가 하신다면 끝을 보시는 샘 참 존경스럽습니다.
오늘, 지금에서야 우리 유정희선생님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헐리우드볼에서 인일 써머 훼시티벌이 있었지요.
거기서 우리 저ㄴ희옥선배님이 어째 김춘자가 유정희선생님의 노래에 댓글을 안 달았냐고
하시길래 집에 돌아와 지금 밤 1시 27분인데
선생님의 노래를 연달아 두번 듣고, 그리움과 애잔함에 눈물 흘리며
이 댓글을 올립니다.
얼마전 홈피에 김혜경선배님네 결혼식에서 찍으신 사진을 보고 선생님께 전화해서
1시간 25분 통화했는데, 그 날 그러시더라구요~~~
선생님이 "어머님의 마음"을 독창하셨노라고-------.
내가 내년이 환갑인데, 그래서 노래 부르려면 많이 소리가 흔들리고 떨리는데
선생님 연세에 어떠헤 노래 부르셨나 많이 궁금했었는데.
전영희후배가 이렇게 올려줘서 정말 넘 고마워요.
숨이 좀 차시고, 좀 힘들어 하시긴 하지만 그 연세에 정말 아직 노래를 부를실 수 있다는것이 놀랍네요~~~
유정희선생님에게 고등학교때 율목동 선생님댁에서 토요일마다 렛슨받았었는데...........
선생님!!!!!!!!
많이 보고싶어요~~~~
그리고
사랑해요~~
다음에 한국에 가면 꼭 찾아뵈올게요~~~~
"한국오면 우리집에서 나랑 같이 자자!!"하셨는데......
전영희 후배,
잘 보이고 잘 들립니다.
언제 들어도 마음 뭉클한 어머님 마음을 유정희 선생님의 음성으로
들으니 더욱 느낌이 큽니다.
복숭아 빛 얼굴로 저희에게 오셔서 온갖 열정으로 가르처 주신 선생님덕분에
아직도 우리 인일 동창들 노래들도 잘하고, 슈베르트 가곡도 기억하고 있지요.
선생님께 깊은 사랑과 감사를 전하며
이젠 쉽게 듣기 어려운 선생님의 노래를 함께 들을 수있게 해 준 전 영희 후배에게도
감사의 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