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일(목요일)

개천절 아침 7시에 인천을 떠나려고 주안에 모였을 때 주안엔 이미 12대의 관광버스가 도열하고 있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모집관광버스들인데 우리와 같은 봉평행이라고...

아닌게 아니라 도로는 그냥 주차장인듯 느리게 느리게 고속도로를 달린다.

30여명의 일행이 조바심을 내는 가운데 도착 예정시간 10시를 훨씬 넘겨 12시가 다 되어 간신히 허브나라에 도착이다.

날씨는 그야말로 구름 한점 없이 높고 푸른 가을이다.

흥정계곡에 들어서니 물 속에 푸른하늘이 그대로 보이고

하얀 분홍 빨강 코스모스들이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우리를 반긴다.

아! 7년만에 다시 찾은 허브나라

이곳엔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라 그동안 발길을 끓었는데 이렇게 단체로  오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사람은 가고 없어도  자연은 변함이 없고

그래도 참으로 반갑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기다리던 작은 음악회의 시작이다.

연미색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김춘자 선배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올리며

이 음악회를 열게 된 사연을 소개한다.

제주도에 사시는 고모님의 팔순 잔치를  200여명의 친지가 모여 살고있는 미국에서 열어드리려 하던 중

갑작스러운 병마와 마주쳐 힘들게되자

한국으로 달려와 번개같이 밀어부친  孝 음악회.....

야외무대에는 그랜드 피아노 한대만이 뎅그마니 놓여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위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지

솔잎이 툭툭 떨어져 무대위를 뒹근다.

김대복 권사님이신 고모님이 소개되고  가족들이 인사를 하고  몇몇  동문이 소개된다.

 

드디어 소프라노 양지의 무대다.

맨 앞자리에서 똑똑이 바라본 그녀의 표정과 몸짓들이 전율을 일으킨다.

손을 천천히 들어올려  길게 뻗는다.

그리고 유명옥 선배님의 반주에 맞추어 긴 호흡을 가다듬는다.

멀리멀리 뻗어가는 맑고 높은 소리에  바람 한 점이 놀라 멀리멀리 달아난다.

가을 하늘을 맴돌던 하얀 나비도 양지의 어깨에 살짝 내려 앉으려다  긴호흡에 놀라 주위를 맴돌다 가을 하늘속으로 숨는다.

한 곡을 끝내고 살포시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마주잡는 그녀의 미소가 예쁘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영혼을  맑게해주는 양지의 노래는 괜시리 울음을 삼키게 하고 한숨을 내쉬게 한다.

무대위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저 산들도  한 순간을 잠깐 숨을 멈추었을까?

 

일주일 전 스위스에서 날아온

7기의 김희자가 전통 스위스요들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요들을 부른다.

반주도 없이 부르는 요들이 흥정산에 메아리 친다.

산 속에서 듣는 전통 스위스 요들이 우리를 알프스 산으로 이끈다.

우리는 양떼를 몰고 자꾸만 자꾸만 알프스 산으로 들어간다.

노래소리를 따라서 김희자에 대해 잠깐 아는 것을 이야기 해 본다.

인일여고  동문으로 인일을 위해 보람된 일을 했다.

요들교실을 만들도록 지원을 했고

이번에 스위스 국영 TV가  김희자를 촬영하러 한국에 나오는 길에 인일여고에 들러 요들교실을  소개하기로  했다고.

그러기 위해  일인당 20만원 하는 요들복을 단체로 김희자가 지원을 했으니

이런저런 이유로 스위스에 한국의 인일여고를 소개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이가 바로 김희자 동문이다.

스위스의 요들, 음반작업을 위해 한국에 온 김희자가  좋은 결과를 갖고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7기의 정정옥이는 양지가 "임이 오시는지"를 부를 때는

마치 자기 하나만을 위해 불러 주는 듯  연신 감탄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라며 "어떻게 알았지?"를 연발한다.

합창곡으로 "들장미"를 선택한 김춘자 선배님의 재치는 정말 만점이다. 

"들장미"를 소프라노, 알토로 나누어 자연스럽게 부르며 우리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우리가 언제 부터  이렇게 잘했을까?

7기 유순애의 지휘로 함께 부른 "어느 10월의 멋진 날에"도 의미가 크다.

바로 오늘이 10월 3일로 어느 10월의 멋진 날이 아닌가!

 

 2기의 최희순 선배님이 들려 준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도 오늘의 이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린다.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고 싶은 가을날 우리는 봉평의 허브나라에서 가을을 걷고 있는 방랑자이다.

악보도 없이

하얀 건반 위를 빠르게 빠르게 두들기다 일순  정지 그리고   툭 치고 가을 하늘로  멀리 달아나 버린다.

오늘따라 피아노를 치는 선배님의 뒷모습이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야외 무대에서 높고 파아란 가을 하늘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맞으며 듣는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오늘 최희순 선배님의 지혜로움으로

우리는 자칫 빠져나오지를 못 할 수렁의 순간을   빠져 나왔으니 순전히 선배님의 순발력 덕이었다.

점심 식사 후

자리를 옮겨 노래방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예배와 찬송 후

변호사인 두째 아드님의 답사가 있었다.

4명의 자제분을 둔 아드님이 말을 잘 하다가 작년까지 건강하시던 어머님이 하다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계속 흘리자

춘자 선배님도 울고 우리도 울었다.

그러자 최희순 선배님께서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라며  노래를 나직히 부르기 시작하자

너도 나도 다같이 "부모님의 은혜"를 부르는데

고모님도 울고 아드님도 울고 손주들도 울고 며느리들도 울고 우리도 울고 감동의 파문이 길게길게 번져나간다.

예정에도 없던 "부모님의 은혜"에 한마음이 되어 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른 사람의 설움이 바로 내 설움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 라는 말이 있듯이

진행 과정에서의 조그만  마음상함 정도는  이 거대한 감동의 물결로 다 사라지고 말았다.

전날 부터 와서 고모님의 식사 수발이며 기쁨을 드리기 위해 고스톱까지 같이 했다는 10기의 권칠화 후배와 조명애 후배

그리고 가족 사진부터 일체의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주신 2기의 윤순영 선배님

6기의 김광숙 선배님

17기 의 이주향 후배도 전날부터 함께 도왔으며

멀리 부산에서 반주를 위해 전날 도착한 5기의 유명옥 선배님

그리고 양지도 남편과 함께 전날 와서 연습을 했음은 물론이다.

아! 또 한 분

5기의 유영희 선배님은 일본에서 오셔서 10월 1일 부터 김춘자 선배님과 함께 움직였다고...

김춘자 선배님의 인덕이 보석처럼 빛난 하루이기도 하다.

 

효가 점점 사라지는 요즈음

심지어 OECD국가 중 노인 문제가 가장 최하위라는 통계를 볼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싶은  요즈음

자기 아이들에게는 최고로 먹이고 입히면서도  시월드니 뭐니 하면서 어른들을 경시하는 세태 속에서

조카가 고모님을 공경하고 가슴 아파하는 정경이 아름다운 오늘이다.

대동아 전쟁을 겪고

6.25를 겪고

황해도 안악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제주도까지 피난을 내려와 일가를 이루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우리는 감히 짐작이나 할까?

그리고 병이 들었다.

 

오늘 고모님께서 아리랑을 개사해 우리에게 노래를 들려  주셨는데

그 노래처럼  아리랑 고개를 넘고 넘어간다며  손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덩실덩실 춤까지 추셨다.

고개를 힘들게 넘어도 또 고개가 앞을  막아서고   

그렇게 넘어 넘어서 온 길이  80년이라니.....

그 분의 인생에 큰 박수를 보낸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 동참하면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아름다운 일을 한

김춘자 선배님이 아주 큰 사람으로 보였고

부모님께 한번도 즐거운 자리를 마련해 드리기는 커녕 가슴 아프게만 해 드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