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가는 강화길이 오늘따라 설렌다.
윤삼월 보름날
여름의 시작이라는 입하답게 먼산의 나무들은 아직도 연록색인데 덥다
울긋불긋 진달래 축제가 한창인 고려산도 한참  지나 하점면 신봉리 금화당이라는 표지석이 눈에 띈다.
표지석을 따라 눈을 돌리니 맨  꼭대기에 별장인 듯 싶은 집이 높게 자리하고 있다.
오늘 김금화 선생님께 촬영 허가를 받고 난생처음 굿구경을 나섰으니 호기심과 설레임이 어찌 없다 할까?


인천에서 6시에 출발해 8시에 도착한 우리를 스스럼없이 반기시는 김금화 선생님.
아침을 같이 먹자며 수저를 쥐어주는데 손길이 다정하다.
무형문화재82호, 나랏만신, 82세의 고령임에도 작두를 타는 큰무당 등등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호칭은 어디로 가고 그 모습이 너무 수수하다.
오늘 굿은 "내림굿"으로 하루종일이란다.

 

처음 시작은 마당에서 부터이다.
훤칠한 키에 아직도 고운 모습인 무복을 입은 선생님은  한마리의 학을 연상시킨다.

춤도 사뿐사뿐 땅이 꺼질새라 추는데 흰 버선발이 하늘을 향해 자꾸만 날아간다.
학의 춤이 저러할까?
뒤에 죽 늘어서서 같이 장단을 맞추는 6명의 애기무당들과 연록색의 박수무당도 조신하다.
빨간치마에 흰저고리, 쑥색치마에 분홍저고리, 겹겹이 입은 치마들의 군무가 화려하다.
덩더쿵 덩덕 장고소리에 징이 울어댄다.
소리는 다 알아듣지 못해도 대략 덕담이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 아픈 것 씻은듯이 낫게하시고 집안 편안하시고 다들 소원성취십시오"

"대한민국 평안하게 해 주십시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빨간치마에 흰저고리위에 무복을 걸치고 춤을 춘다.
커다란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37살의 당진에서 왔다는 여자가 이제부터는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겠다며 맹세를 한다.
무슨 형벌을 받고 태어났기에 "이제는 너는 신의 딸, 무당이다"이라는
운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엎드려 우는 것일까?
세분의 어머니가 있었으나 다 버림을 받고
이제 어미가 되었으나 내 자식을 거두지 못 한 내 죄를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니 굿당이 눈물바다다.

보다못한 임경선 선배님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딸과 같은 또래의 여자의 절규를 더 이상은 들을 용기가 없었나보다.

 

실상 이번 강화행은

김혜경 선배님께서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찍고싶다는 열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무형문화재로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더 극찬을 받고 있는 김금화 선생님이 이제는 82세의 고령으로

언제까지 작두를 타며 춤을 출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서둘렀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듣던 김포에 사시는 김은희 선배님 그리고 부군이신 김정웅 교수님, 최희순 선배님이 동행하셨고

임경선 선배님과 이수인 선배님

그리고  12기의 후배도 남편과 함께 했다.

특히 김금화 선생님의 자료를 많이 갖고 계신 김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던 장고잽이가

오히려 김교수님에게 스승 김금화의 자료를 간청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그 덕에 우리는 특별대우를 받으며 굿구경에 사진이며 비디오를 편하게 찍을 수 있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문 밖은 온통 연록색으로 화려한데도

여자의 울음이 그치지를 않으니 김금화 선생님이 다시 나와서 다독이며 그만 울고 신나게 한바탕 걸판지게 놀다가라 하며

손수 장고채를 잡으신다.

여자가 그 장단에 맞추어 겅중겅중 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테크노 춤같은 막춤을 천장에 머리가 닿도록 뛰어오른다.

드디어 여자의 얼굴에 웃음이 퍼진다. 

"이제는 살 것 같다. 할 일이 많은 나를 그동안 왜 묶어 놓았을까?

이제는 내가 너희들을 보살피며 살테니 걱정말아라"라며

한사람 한사람에게 공수를 준다.

호통을 치며 야단을 치기도 하고

예뻐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지긋이 쳐다보기도 하고

붙들고 울기도 하면서

열두거리를 번갈아 옷을 갈아 입으며 춤을 추고

그리고 공수를 받은 사람들은 차례로 나와 무복을 입고 절을 하고 함께 춤을 춘다.

죽은 배뱅이의 혼이 살아온 듯 한바탕 놀이마당이다.   

 

저주받은 운명을 치마폭에 감싸안으며 춤을 추는 여자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겠다며 맹세를 하는 여자의 앞날이 이후로는 마음이라도 편했으면 하는 바람을 하며  굿당을 떠났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짧다.

서울에서의 중요한 약속때문에

오전 공연만  보고 돌아서는 우리에게 김금화 선생님이 섭섭하다며 끝까지 서서 우리를 지켜보신다.

다 내려와 한참 위를 올려다보니

한 마리의 학이 그냥 거기에 고고하게 서 있다.

 

난생 처음으로 굿구경을 한 오늘

우리는 무언지 모를 감동에 할 말을 잃었다.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한바탕 놀고가도 100세도 못 살고 가는 인생길에 한은 왜 그렇게도 많아 켜켜히 껴안고 울고들 있는 것일까?

문 밖이 바로 저승인데 왜 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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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금화 만신이 가운데 서 계시고 그 왼편이  빨간귀고리의 오늘의 내림굿 주인공인 여인이다

파란만장한  무속인의 삶을 살아오심에도 불구하고  곱고 온화하게 늙으신 모습에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앞서게된다.  누가 감히 천한 삶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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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 김 혜경 선배님의 사진 찍는 모습이 살짝 보이고  내림굿의 주인공의 (성성한 머리숱의) 할머님 그리고 
 작은아버지라는분의 뒷 모습이  보인다.  신병이 들려  무속인이 된다는것에 처연함을  짧은 시간이지만
숙연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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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금화 만신의 첫번째 순서가  끝나고 무복을 벗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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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힘든 시기를 견뎌야 했을까?   흐느끼며 읖조리는 그녀의 넉두리에 가슴이 저려 온다.
 
인간문화재 만신 김 금화 선생의 신당에서 181.jpg
내림굿의 주인공여인의 할머님의 위로와  김 금화 만신의 위로가  보는 우리들에게도 위로가 되었다.
삶의 질곡을 견뎌온 선배로서의 따듯함이 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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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금화 선생의 수제자이자  무형문화재 전수자인 김 혜경 무속인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다음 행보도 중요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