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숨 1

1:<아! 千年의 신라여...>

오늘도 ‘지귀’는  그녀를 쫓아 불국사까지 걸음 했다.

그녀가 오늘

국태민안을 비는 불사를 위해 이곳에 행차한 것이다.

아침밥도 거르고 토함산 굽이굽이

아흔 아홉 자락을 눈썹 휘날리며

달려온 그는 그녀가 치성을 드리고 있는

대웅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만 지쳐 한 석등에 기댄 채 잠이 들고 만다.

이윽고 치성을 마치고 환궁하던 그녀는

세상모르고 잠자는 그를 보고

“저 자가 누구인가?”

“예 저 자는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자나 깨나 폐하를 사모하여

폐하가 납시는 주위를 늘 맴도는

‘지귀’ 라는 거지입니다

아마도 오늘 여러 시간 이곳에서 폐하를 기리다가

지쳐 잠이 든 듯하옵니다."

한참을 그윽이 ‘지귀’ 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팔에 차고 있던 팔지를 풀러

‘지귀’의 손위에 살포시 얹어주고 홀홀히 떠났다던가...!!!


아! 그리도 가슴 넓었던 그녀 ‘善德’女王이 보고 싶다.

한낱 거지였지만 한술 밥은 굶어도

‘선덕’의 모습을

먼발치에서라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배불렀던

멋진 원조(元祖)스토커 ‘지귀’가 보고 싶다.

아니 身分의 벽을 뛰어넘은 그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던 신라인들을 부둥켜안고

오늘 못하는 술이나마 한잔 하고 싶다!


허위단심 석굴암에 오르면 나는

흐르는 땀을 식히고 고단한 무릎 얹어놓기 위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름 없는 돌덩이에 걸터앉는다.

그래서 내게는  아미타불 본존불의 미소나

토함산 등성이를 타고 시뻘겋게 타오르는

日出보다는 그런 아무 이름도, 조각도 없는

돌이 늘 더 가슴에 와 닿곤 했다.

여기 이 돌이, 아니면 저기 저 돌이 그 옛날

‘아사달’과 ‘아사녀’가 꼭 붙어 앉아

사랑을 속삭이던 돌 받침이 아닐 가? 하는

千年을 가로지르는 진한 설렘 같은 흥분이

나를 꿈같은 상념에 빠뜨린다.

(너무나 가슴 저린

無影塔의 전설을 여기선 잠시 잊기로 하자)


‘미로’의 ‘비너스’같은 석조물도,

남원의 ‘춘향’과 같은 초상화도 없지만

그래서 더욱 자유로운 상상속의

‘아사달’과 ‘아사녀’가

내 앞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정경(情景)이 현란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경주는 언제나 내게는

가슴 아린 영원의 고향이다.

옛날 중3 때 수학여행을 앞두고

후일 인일여고 교장선생님으로

전근가신 ‘이성룡’ 교감 선생님이

쪼글쪼글해진 할머니에게서

젊은 날의 아름다움을

물레처럼 길어 올릴 수 있는

심미안이 있어야 한다던 말씀이

내 평생 가슴에 박혀 있어선지

경주에 가면 난 늘

신라의 이름 없는 촌부(村夫)가 되는

아련한 상념에 빠지는 것이다.}


2:<망부가(亡婦歌)>

루브르 박물관에 가보면

찰칵, 하고 기념사진 찍고 발걸음 재촉하는

우리네 여행객들과 달리

편히 배 깔고 엎드려서 몇 시간이고

<미로의 비너스>를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스케치를 하거나 어떤 단상(斷想)을 쓰고 있는

젊은 외국 배낭 여행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여기 타지마할 묘전에서

대리석 기둥에 기대서서

하염없이 몽롱한 눈빛으로

흘러간 과거의 어떤 실마리를 잡고자 하듯

끝없는 상념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그들은 우선 멀리서 全景을 본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천천히 다가가며

과거의 시간으로 沒入되어 간다.


400년 전 ‘샤자한’ 황제가

애비(愛妃) ‘마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22 년을 걸쳐 축조한

인류의 7대 불가사의라는 타지마할 묘전에서

그들은 ‘샤자한’이 되고 ‘마할’이 된다.

죽은 아내 ‘마할’만 생각하며

무덤 만들기만 골몰하던 ‘샤자한’ 황제,

결국 그 여파로 아들에게 왕위도 찬탈당하고

깊은 궁전 지하에 유폐되어

아내가 묻힌 묘 쪽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 生을 마감한 ‘샤자한’이 되어

황제가 내다보았던 그 좁은 구멍에

자기 시선을 맞추고

호흡을 멈춘 채 ‘샤자한’이 돼보고

죽어 말없이 누워 ‘샤자한’의 눈빛을

몇 년간이나 받았을 ‘마할’의 모습을

고요히 눈을 감고 그려보는 그런 젊은 여행객들...

그들은 그렇게 몇 시간이고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상념에 몸과 마음을 놓아버리고

배고픈 것도, 흐르는 시간도 잊은 채

타지마할의 一部가 된다.





3:<로마의 휴일>



막상 스페인광장을 가보니

별거 아니더라는 이들도 많다.

사실 패키지로 단체여행 가서

기념사진인지 증명사진인지

찍기가 무섭게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다른 코스를 향해 뛰어다니는

여행에서 무슨 느낌이 있겠나?

여행이란 어차피

일상에서의 탈출이 주는

자유로움을 누리는 것이기에

현지인이 아닌 우리가

여행지의 모든 것을 알 수도 없지만

사실 속속들이 알 필요도 없다

아무리 아는 것만큼 보인다지만

그건 지리공부이고 역사탐구이고

현장답사이지  

여행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하지만

알 필요까진 없지만 느껴야 한다.


인도의

타지마할 궁전의 벽에 몸을 기댄 채

‘샤자한’의 심정이 되어

몇 시간이고 타임머신 속에서

깊은 상념(想念)의 샤워를 하는

외국의 젊은이들!

그들은 그렇게 과거에 흠씬 젖은 머리와

시공을 넘나드는 가슴을 안고

대리석 계단에 앉아 종종

멀리 떨어진 사랑하는 연인에게

연서를 쓰기도 한다.

아! 그들의 그런 감성마인드에는

늘 내 가슴도 절절히 시려온다.


자! 그럼 다시 또 우리 이번엔

로마로 날아가서 ‘헵번’과 ‘펙’을 만나보자.

‘그레고리펙’이나 ‘오드리헵번’ 두 사람 모두

이제는 고인(故人)이 되었지만

스페인 광장에서 그들이 손잡고

걸어 내려오는 영상 속에

자신도 함께 들어가서 1시간만이라도

꿈에 빠지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여행자체가 차라리 아깝다.


연애는 연애고 내 직업은 직업이니

세기의 특종이 될 사진들을

신문에 터트려야겠다는 욕심을 훨훨 털어버리고

그동안 몰래 찍었던 ‘앤’공주의 사진들을

미련 없이 몽땅 ‘앤’공주에게 주어버리는

‘죠’記者의 모습은 정말 멋진 남자의

Fair Mind로 내 가슴에 박혀 있다.


아이스크림 입에 물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나게 돌아다니던 ‘헵번’의

그 천진스럽고 장난기 어린

모습이 우리들의 꿈같은 젊은 시절의

풋풋하던 푸르른 기억을 추억하게 해주던 영화

<로마의 휴일>에 다시 한 번 빠져 보자.






아마도 ‘샤자한’이 매일 밤

꿈속에서 만나던

‘마할’ 왕비가

‘사라브라이트만’의  

이런 모습이겠지요!



아! 나는 아무리 해도

신라의  

‘지귀’가 ‘죠’기자로

‘선덕’여왕이 ‘앤’공주로

또  

‘아사달’이 ‘샤자한’황제로

‘아사녀’가 ‘마할’왕비로

환생했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