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1월 1일 새해가 되면
차례상에 떡국이 올라가고 식구들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서로 세배를 하며 덕담을 나눈다.
아이들도 결혼을 하고 돈을 버니 옛날과 달리 세배를 하고 봉투를 내 놓는다.
엄마에게, 작은 아빠에게, 그리고 외할머니께 봉투를 드리니 그 돈도 실은 만만치가 않다.
그 와중에 우리 집엔 1월생이 유난히 많다.
1월 2일 부터 생일이 있으니 그냥 새해 첫날 케잌 하나 사서 이름만 바꿔 노래 여러번 부르고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딸과 달리 사위에게는 장모님이 특별히 챙기신다.
내 생일도 1월이라 바쁜 아이들에게 짐이될까 오지 말라고 한다.
설에 왔다 갔는데 엄마 생일이라고 오라 하면 누가 좋다고 할까?
불과 며칠전 새해라고 봉투를 받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일이니 생략하기로 한 것이다.
어려서는 큰딸이라고 미역국에 생일상을 꼬박꼬박 엄마가 차려주셨는데
시집을 오니 시어머니께서 명절 뒤끝이라 하며 모른 척 넘어가니 남편도 눈치를 보고 어영부영 하다보니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엄청 잘 나가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내가 같은 날 생일이라
언제나 진수성찬을 차려서는 몇명의 친구를 부부동반으로 초대했기에
우리 남편은 엄청 좋아했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마누라에게 생색을 내니 어찌 좋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혼자가 된 지금 .....
만사가 귀찮아진 나는 합리적인 이유로 새해 첫날에 몽땅 해 치웠는데
그러다보니 슬그머니 내 생일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잊고 지낸 내 생일이
얼마전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면서
주민등록상의 생일날 문자 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짜 생일이면 어떠하리.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니 웃음이 나온다.
이것은 내 생일이니 축하해 달라는 협박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얼마전 조카인 8살 지원이가 토요일 송림동에 오자마자
달력에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쳐 놓고는 "지원이의 즐거운 생일"이라고 써 놓는다.
그리고 "할머니! 내 생일 잊으면 안 돼"한다.
8살 계집아이의 노골적인 표현이나 스마트 폰에서 "오늘은 누구의 생일입니다. 축하해주셔요"라는 말은 무엇이 다를까?
엎드려 절 받기이다.
그리고 같은 일을 해도 아기는 깜찍하고 예쁘지만
늙은 여자는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축하를 강요하는 민망한 스마트폰의 문자 메세지, 이것 어떻게 지울 수 없을까?
요즈음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여자가 1월에 태어나면 팔자가 드세다고 했는데
요즈음은 팔자가 드센 여자가 사회성도 좋고 출세를 한다 해서 좋아한다.
초등학교에서 큰소리 치는 아이들은 다 여자아이들이다.
남자아이 말이 우리반에서 1등에서 10등 까지는 다 여자들이예요 "그러면 너는 뭐하니?" 했더니
"나는 착해요"
우리 남자 조카아이가 초등 때의 일이다.
여자아이들이 토요일 날 백화점으로 쇼핑을 가자 했는데
남자들은 그냥 우리 보디가드로 짐 들어주고 따라만 다니라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내 동생 화를 내며 "가지 마" 했더니 약속을 해서 안 된다 하니
그러면 "가서 너도 쇼핑 해" 하였으나
결국은 보디 가드 역활만 하고 왔다는 우리 조카때문에 지 엄마 화만 돋구었던 사건을 보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특히 우리집은 딸 7명을 낳고 얻은 8번째 막내아들때문에 우리 엄마 속이 다 뭉게진다.
딸 두명이 지 아빠에게 매달려 맨날 업어달라 안아달라 야단이니
업고 안고 다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얻은 귀한 아들인데 지 아빠 등골 뺀다고 우리 엄마 속이 다 타들어간다.
아이들의 주장도 거침이 없고 강하다.
치사하게 생일 차려 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해 달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우리 둘째네 손녀딸은 4살인데 썬그라스와 핸드빽을 엄청 좋아한 나머지
자기 생일 날, 영어 유치원을 가면서 원복에 썬그라스와 핸드백을 들고 간다 해서 지 엄마가 결국은 졌다.
미장원에 가서도 하는 말이
"웃기게 짤라 주셔요" 하는데 묘하게 귀엽다.
요즈음 드라마 "도깨비"에 꽂혀서는 공유만 나오면 텔레비죤 앞에 붙어서 보니
30살 이모 말이 "승아는 이모랑 라이벌이네" 라고 하면 배시시 웃는다.
세상이 정말 변했다.
우리 세대는 왜 그렇게 힘들게 주눅들어 살았을까?
4살 짜리가 핸드폰으로 뽀로로를 찾아 보며 좋아한다.
4학년인 예원이는 아예 내 핸드폰 선생이다.
몰라서 물어보면 투덜대지 않고 세세히 가르쳐 주고 해 보라고 확인까지 하니 이런 좋은 선생님이 어디에 있을까?
언제나 긍정적이고 밝은 인선아!
오랜만이다.
너 살고있는 그곳에선 설날이라고 특별히 하는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멀리에 있는 가족들이 많이 보고싶었겠다.
떡국은 먹었니?
그러고보니 우리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을까?
건강하렴.
오늘은 영수의 부탁으로
김재옥 선생님 댁을 찾아갔는데
이사를 가고 안 계시더라고.
집주인에게 선생님의 근황을 물으니 본 적도 없다며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더라.
아마도 내가 입원해 있을 때 요양병원으로 들어 가신 것이 아닐까 해서
관라사무실에 가서 물었더니
전혀 모른다고....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락이 끊기니 찾을 길이 망막하네.
이처럼 코 앞에서도 연락이 두절되니
너처럼 먼 곳에 있는 친구는 언제나 볼 수 있을런지...
보고싶다.
산학후배님, 구정새해맞이의 정경을 잘 그려 주셨네요.
아직도 대가족의 모습을 지니고 사시니, 힘도 겨우시겠지만 그로 얻어지는 기쁨 또한 많겠지요.
인선후배님 말씀대로 자그마한 전형적인 한국여인이 체구로 그 큰 일들을 다 감당해 나가시니 대단하십니다.
글을 읽으며 어릴적 생각이 나서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대목,,달력에 크게 동그라미 그려놓고 잊으면 안 된다고
돌아가며 강조한다는 지원이,,꼭 어릴적 제 모습같네요.
막내이던 저는 새해 달력이 오면,,,제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찿아내어 빨강 크레용으로 동그랗게, 크게 표시를 해 놓고는
식구마다 보여주며,,돈 얼마씩 줄거냐고,,,떡도 별로인 저는 떡은 하지 못하게 하고 국수를 해 달라고 새언니한테 부탁을,,
왜냐믄,,어린 소견에 떡은 해 봤자 다 나눠먹고 마니,,내가 좋아하는 국수와 돈으로,,,하하하하ㅏ
새삼 그 시절이 그립네요.
생일 케잌 하나 준비해서 이름만 바꿔가며 생일노래 부른다는 것도 참 재밋네요,,
우리는 요상하게 우리 내외가 3일 차이,,큰딸네는 29일 차이, 작은 딸네는 같은 달,,,
그냥 중간 날자로 나가서 식사하는 걸로,,,,,,,
올해도 감기거틍거 들지 마시고 건강하셔야 합니다.
정순자 선배님!
세월은 변해도
사람의 품성은 변하지 않지요.
선배님도 예전엔 깜찍 발랄한 소녀로 주위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셨네요.
지나간 것은
다 그립고 아름답습니다.
연탄불 때던 열악한 부엌에서 명절 전날이면 쉴새없이 만들어진 강정은
식힌다고 마루 가득 꽃처럼 널려 있었지요.
그 많은 것을 누가 다 먹어 치웠을까요?
지금은 집에서 직접 만드는 집도 없건만 힘들다고 야단들입니다.
심지어는 명절증후군 이라고 병원을 찾아 치료도 받기도 합니다.
방앗간 앞에서는
떡쌀을 앞에 놓고 순서가 되기를 기다리며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갈래떡을 쳐다보며 밤이 깊어 갑니다.
이제는 다 없어진 풍경들이 몹시 그립습니다.
옛날에는 힘들었어도
인심이 훈훈하고 정이 넘쳤는데
요즈음은 먹고 살만해 졌음에도 더 각박해졌음은 왜일까요?
온 나라가 홍해가 쫙 갈라지듯 좌 우로 갈려 싸우고
내 탓은 없고 남의 탓만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는 금물이 되어 버렸지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정순자 선배님!
닭은 벼슬을 자랑하지 않고 인간에게 단백질의 원천인 달걀을 무상없이 제공해 사랑을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선배님의 가족사랑도 닭 못지않게 대단하시지요?
정유년 새해!
선배님 가정에 평화가 음악처럼 흐르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도산학 선배님 ,
늦었지만 생신을 축하드리며
선배님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쇼팽의 피아노 곡을 올립니다.
앞으로는 구정 설날과 별도로
선배님 생신에도
부디 축하기념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옥인 후배!
쇼팽의 로망스가 저와 분위기가 비슷해 올려주었다니 황공합니다.
조용하고 감미로운....
특히 눈 나리는 밤 홀로 들으면 얼마나 환상적일까요?
그리고 고국을 떠나 치열하게 살면서도
순간순간을 카메라에 담으며 아름다움을 찾는 모습에서는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세상 사는 것이 뭐 별 거 있나요?
내 삶 자체가 한편의 소설이고
내 삶 자체가 한 폭의 수채화가 아닐런지요?
또 그것만이 거짓이 아니기에 남에게 감동도 주는 것이고요.
아름다운 나라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쓰여지는 한 편의 소설...
계속 기대합니다.
도산학 선배님 주말을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위의 올린 음악을 들으며
주말 이틀간 지냈던 근교마을을 떠나왔습니다.
선배님의 글방에 들어오니
저의 소설을 계속 기대하신다고 하셔서
중단한 글을 생각하며 뜨끔하여 몇 자 적어봅니다.
인생이 소설 같다.
소설이 실화 같다....라고 흔히들 말 할 때가 많지요.
작년 초에 저의 인생이 소설과 혼합되어
오가는 듯하여 일단 소설쓰기를 놓았습니다.
얼마간은 현실의 실제적인 일들에만 충실하고 싶었습니다.
2009년 인일홈피 가입하고, 고국을 떠나 살며 그동안 적조했던 한글을 대하면서
내면의 끓어 오르는 그 무엇을 주체하기 어려워 마구마구 쁨어내던 때가 있었어요.
그 시기가 얼마큼 지나고 나니 너무 속을 보인 것 같아 주춤해지면서
언어의 절제로 시를 쓰기 시작하며 내면을 다스리기 시작했어요.
형식이 다르나 스스로 위로 받았습니다.
다시금 내면의 외침이 넘쳐나면 긴 글이 엮어지겠지요.
선배님의 조용조용 나긋나긋한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웁니다.
김옥인 후배!
좀 거창하게 말하면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 라고들 합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작품은 전쟁을 통해 나온다 " 라고들 하지요.
그 사실은 극한상황에 처했을 때가 인간의 본능이 가장 진실해서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고요.
예를 들어
헤밍웨이가 고교를 졸업한 직후 기자가 되어 제1차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일은 그의 소설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쿠바 어촌마을에서의 생활은 단편 "노인과 바다"로 태어나
그에게 퓰리쳐 상과 노벨문학상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렇듯 작가의 경험은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잘은 모르지만
김옥인 후배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좀 특별합니다.
그런 경험을 왜 했을까요?
혹시 나에게 어떤 소명이 주어진 것은 아닐까요?
우리 젊은 날,
독일에서 글을 쓴 전혜린에게 열광했잖아요?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니 어쨌든 기쁩니다.
건강하십시오.
새해에 생일을 보내었네~
축하드려요!
우리세대는 왜 그렇게 힘들게 주눅들어 살았을까?..... 이 말이 마음에 묘한 여운을 남기는데, 까닭은 세대별로
정말 서로 다른 세월을 지내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
-부모님 세대: 노인공양도 하고, 본인들이 노인 되어서 공양도 받으셨음.... 본인들이 이룩한 말년 외에는 누려본 시절이 없으심
-우리 세대: 시부모님 공양 하였지만, 우리는 다음세대에게 공양을 받지 못하네. 다만 이땅에 살던 인간중에는 최초로 전세계로
여행다니며 대단히 유복하게 지내고 있다.
-다음 세대: 남편과 아내 모두 벌지 않으면 도저히 어렵다는 이 세대는 부모공양도 생략하고, 오직 열심히 매진. 그러나 글로벌한
분위기는 이 시대가 늙었을 때도 한국의 'Won'이 과연 세계여행을 가능하게 할런지는 미지수라는 것.
순애야!
얼마전에 강순옥 선생님께 전화해 김재옥 선생님 근황을 알려 주어서 고마워.
김재옥 선생님을 비롯
우리의 80대는 정말 불운했다.
6.25 동란을 직접 겪고 못 먹고 못 사는 나라를 이렇게까지 경제대국으로 일구었음에도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저렇게 병상에 쓸쓸히 누워 계시니
무어라 할 말이 없네.
마아가렛 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선생님!
꽃엄마라 불리웠던 아기같은 선생님이 요즈음 더욱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응. 인공구조로 양분을 넣어 공급받으시니, 무척 야위시고... 이미 인식은 없으시니...
이런 경우는 요즘 많아요. 누구 탓이거나 누가 제대로 잘 못하거나... 그런것도 아님.
아예 인식을 잃어가실 때부터 뉴런의 시냅스 연결이 줄어들 때부터 문제가 발생된 것인데
기억이 가물거릴 때부터 사혈로 머릿속 어혈을 제거해야 안전하다고 할까...
(요즘은 이런 인공수명연장장치를 원치 않는다고 미리 서명을 해두는 경우도 많지요. 이미 우리가 아는 그분은 아니에요)
김재옥 선생님, 나에게는 직통 대학 학과 선배이시고
열거하는 동기들 이름이 모두 우리과 교수님들이셨음
순애야!
내가 송도중학교에 있을 때
선생님께서 바로 옆 학교인 남인천 여중에 계셨어.
유승완 선생님은 남인천에 교장 선생님으로 계셨고....
이런저런 이유로 퇴근 후에 선생님 하고 용동 칼국수 집에서 더러 만났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걱정이 있다는 거야.
그 때 늦둥이로 난 아들이 3살쯤 이었는데
대학생인 형 둘이 동생이 예쁘다고
공 갖고 놀듯
이쪽에서 휙 던지면 저쪽에서 받으며 논다는 거야.
가슴이 조마조마 한데 하지 말라고는 못하고 보고만 있는데 죽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아마 그 때가
선생님께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해.
그 늦둥이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연대 응원단장을 하기도 했지.
그리고 몇년 전
치매에 걸린 교장선생님께서 밥을 차리면 엎어버리는 등 힘들게 하자
맨날 복도에 나오셔서 울다
견디지 못 하고 요양병원에 보내셨는데
결국엔 3일만에 다시 모시고 와서는 지극정성으로 교장선생님을 간병하다 돌아가셨단다.
그 후엔
요양병원에 교장선생님을 보낸 3일을 끝까지 후회하다 우울증에 걸려 결국은 쓰러진 선생님!
우리 학창 시절에도 어려운 제자들에게 학비를 대 주는 등 좋은 일을 꾸준히 해서
존경하고 따르는 제자가 많았는데
안타깝다.
? ?산학아~
생일 이야기 썼다는 말 듣고도 이제서야 읽어보았네.
어제도 이사 갈 준비 대강 대충 한다고 해도 할 일이 끝도없더라
버릴것이 많다는것은 필요이상으로 욕심을 내고 사는 일에 매달려 사는게 인간이라는것 나도 마찬가지지싶고.
여튼 간단하게 살려고 노력중이다.
그래도 본집에 큰물건들은 두고가니 드나들면서 양쪽 살림을 할 수 있게 분리하는것도 머리 좀 아프네....ㅎㅎ
이사가는일이 이제 더 이상은 없기를 바라네 힘이들어서 말이지
영구히 떠나는길 말고는말야.
산학이는 음력 1월인데 서류상으론 양력으로 올려져 본의 아니게 1월에 생일축하인사를 받고
나 또한 음력 2월인데 양력 2월이면 페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와장창 인사를 받고있네.
옛날 어른들은 그냥 그렇게 음력생일로 호적에 올리고 양력으로 계산하여 생일상을 받게 하셨으니
생일날이 매해 양력날자가 바뀌고는 하지 무심하게 있다간 생일도 놓쳐버리는 경우도 생기곤했었다.
딸 칠형제 ............
산학이네 어머님은 대단하신 어른이시다. 돌아가신 아버님도 그러하시고말야.
애뜻한 부부애를 가지신게 분명하셔요.
김 재옥 선생님의 근황은 나도 교장출신이신 큰언니께 들었어요
1월이 큰언니 생일이였거든 네자매가 자매끼리 서로 생일을 챙겨주기로 해서 만난단다.
그래서 큰언니한테 들어서 요양병원에 계시고 치매신것도 알게되였단다.
우리 큰오라버니와 연세가 같으시고 서순석 샌생님과도 같으신것으로 아는데말야.
착하신 김재옥 선생님께서 말년에 어려운 병환에 계시니 안타깝네그려.
선생님의 수채화 그림도 아직 우리집에 있는데말야......................
우리 산하기의 가족글을 읽으면
늘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더라구요.
사람 사는집 같아서요.
부럽기도 하고요.
점점 핵가족화 되 가는 이시기에
대가족이 그렇게 단합이 잘되는것은
맏자식의 노고라 여겨집니다
그만큼 희생도 하고 끌어주고 댕겨주니
질서가 잡혀 어린애들까지 모두 행복한 모습이
가까이에서 느껴집니다.
부디 어머님 더욱 강건하시어
자녀분들의 생일을 많이 즐기시기 바랍니다.
글구...
은희온니~!
너무 반가워요.
워디로 이사가셔요?
아파트로 가시는거예요?
두분 건강은 어떠신지요?
그 넓은집은 어떻게 하시고 가시나요?
별장같이 모셔두고 가시는건지요?
그간 안부도 못여쭙고 지내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곳에서라도 뵈오니 늘 궁금했던
맘이 좀 풀리는 듯 합니다.
부디 두분 건강하셔서 오래
여행도 다니시고 손주들 자라는 모습도
지켜보시며 즐거우신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김순호 선배님!
선배님께서 나를 불러주는 호칭 "우리 산학이"를 들으면 힘이 절로 납니다.
몇년 전이었지요?
한창 제가 게시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을 때
나는 이제부터 "우리 산학이" 라고 부를거야 하신 것이 시작이었는데
그 날부터 지금까지 잊지도 않고 그리 불러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얼마 전에
선배 한 분이 제게 읽을 만한 책이라며
최진석교수의 노자강의 "노자인문학"을 선물 했습니다.
요즈음 인문학 강의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어 심심한 차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읽는 중에 김순호 선배님이 생각났습니다.ㅅ
신석기 시대 전기는 약1만년 전부터의 시기를 가리키는데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하늘의 뜻 즉 천명이라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신을 섬기고 살았으나
망하는 일이 생기자 천명보다 인간의 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것이 德이라는 것을 중국의 사마천이 "사기"에서 역설합니다.
그리고 仁 義 禮 智가 생겼다 합니다.
즉 천명을 실천하기 위해 인간의 힘인 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상입니다.
왜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냐 하면은
선배님께서 말없이 행한 그 말 한마디가 德이었구나 깨달았기 때문이랍니다.
솔직히 말해
선배님을 제가 몇번이나 보았을까요?
그래도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내게 위로를 \준 그 말 한마디....
그 때 차마 못 한 "감사합니다" 라는 한마디 이제라도 드립니다.
?순호야~
아마 내가 이 글을 쓸때쯤이면 넌 깊은 잠에 빠져있지 싶은데말야
살다가 생각도 안하던 일도 생기게되네
이곳서 살다가 어디로 움직일 생각은 안했었거든
나이먹어 추위에 약한 심장을 가진 산이할아버지를 위해
겨울을 좀더 따듯하게 살려니 천상 아파트로 옮겨 겨울을 나기로 결정하고
이사란것을 가려니 그것도 간단치가 않네.
이곳을 아주 떠나진못하니 서울 병원도 가깝고 수안산방도 가깝고 산이네도 가깝고....ㅎㅎ
그런 자릴 그래도 찾아 분양을 받아서 힘들어도 이사란것을 가는거야.
봄서부턴 농사도 짓고 오락가락 하면서 살려고그래.
늙은이들이 살던 가구 잘 닦아 살면되지 했는데 그게 그렇치가 않더라
그냥 모든 가구 대부분 다시 마련하고 그랬네
엊그제인가 그렇치않아도 산이할아버지가 순호 이야기를 했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지
이곳 산학이 이야기방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려고 그랬나싶네......ㅎㅎㅎ...
니네 은범이 은초도 엄청 컸겠지.
산이도 열살이되었고 초등 3학년이 되였단다.
규리도 여덟살 1학년에 입학할거고 막내 시윤이도 네살이되여
총알같이 말을 잘하네.
옆에 볼 수 있는 손주들이 효손이지뭐냐.
순호말대로 고물고물 그것들 자라는 모습보면서 행복하네.
그래 우리 몸건강 마음건강하면서 행복하자꾸나.
김은희 선배님!
이사 갈 날이 일주일 남았네요.
새 아파트지만 이것저것 인테리어에 가구 들여 놓는 것 까지
신경 쓸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니 얼마나 힘이 드실까요?
그러면 아파트는 신혼집 이고 김포 집은 별장이 되는 셈인가요?
앞으로는
"신혼일기"를 쓰셔야 겠습니다.
70대에 쓰는 신혼일기는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까요?
자못 기대가 큽니다.
얼마전
선배님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더니 굉장히 화려했습니다.
글과 더불어 태블릿피시로 직접 그린 그림들
그리고 명화들
거기에 덧붙여 큰아드님의 노래와 화려한 율동까지....
왜 꼭꼭 숨겨놓고 혼자 보실까요?
그 작품들
언젠가는 공개하실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도산학 후배 !
1월이 생일달이었군요.
늦게나마 생일 축하해요.
맏딸이라 어머니께서 얼마나 든든하고 미더웁게
키우셨을까...
형제들이 같은 달에 생일이 여럿이 있는 것도 참 재밌네요.
서로 기억하기도 좋을 것 같고요.
설에 왔다간 아이들에게 또 생일이라 오지 말라고하는
산학 후배의 마음이 와닿더군요.
가녀린 몸매, 귀염성있는 표정으로
막내일지 모른다는 이미지로 느꼈다가
맏딸이라는 걸 알고 평소에 뿜어 나오는
산학 후배의 다부진 책임감과 믿음직한 부분
조용하면서도 내공으로 꽉 찬듯한 매무새가 바로
형제간의 서열에서 오는 걸 수도 있겠다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답니다.
우리는 6남매로 자랐는데 각자 다른 달이 생일이다 보니
생일이 들어 있는 달에 생일 축하파티가
자연스레 가족 모임이 되더군요.
여러 형제들속에서 부대끼며 자란 사람들이 이해심도
많아지는 것 같죠?
산학 후배의 글을 읽을 때마다
감동,감탄하게 되는 것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물흐르듯이 매끄럽고 편안함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만나서 떡국 한 그릇씩 먹고
차 한 잔 나누는 일이
왜이리 쉽지 않은지...
항상 건강하고 계속 멋진 글 기대할게요.
조영선 선배님!
"한번 만나 밥 먹자" 한 것이 언제인데 해가 바뀌었음에도 만나지를 못 하고 있네요.
실은 선배님의 일주일 스케줄을 꿰고 있는 사람이라면
왜 그런지 이해를 하고도 남습 니다.
오히려 그 나이에 열정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선배님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2년 전이었나요?
프랑스에서 어느 유명한 스님의 명상 교육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서 그 먼 길을 다녀오셨잖아요.
언어등 모든 것이 낯선 곳을 혼자서 다녀 온다는 일이 감히 하고 싶다고 선뜻 짐을 싸서 떠날 수 있는 일일까요?
만약 지금 다시 가라하면
그 때처럼 할 수 있을까요?
얼마전엔
설날이 끝나고 어떻게들 지냈나 궁금해서 우리집에 모였습니다.
설때 넉넉하게 해 놓은 갈비찜과 떡국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몸은 늙었는데 마음은 30년전 그대로인 것입니다.
옛날 사진을 보며 "어머! 어머!" 완전 소녀네 하며 깔깔거렸답 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인정 못 하는 것에 우리의 슬픔이 있구나 하면서요.
어제는 대보름날 이었지요?
보름달을 보며 선배님은 무엇을 두 손 모아 비셨을까요?
올 한 해
건강하고 행복하십시오.
산학아~~~~~그저 불러보고 싶네.
넘 오랜만^^
너의 글을 항상 읽고 동감할 수 있었는데
한 3년 전부터 노안이 오려해서 컴을 멀리하곤
오늘은 모처럼 들어왔다가
자기 글을 읽고 또 한번 조용한 마음의 움직임을 느꼈어 ㅋㅋㅋ
천상 여자인 1월생 산학이!!!
전엔 그렇게 생일이 넘어가는거 태반 아니었니?
추석 때도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
우리 집도 딸 6, 아들 2
그러나 겹치질 않아서 다행이 도매금에 넘어가진 않았지만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니 그 옛날 힘들게 살았던 그때가 머릿속에 ㅎㅎㅎ
산학아 아픈 다리는 괜찮은지?
너랑대화 나눠떤 때가 언젠지 모르겠어^^
항상 너의 글을 사랑하는 이 언니가 너를 그려본단다.
항상 건강하기만을 빌어.
특히 이 겨울철 낙상, 미끄러짐 조심하길 바래.
지난 구정 바로 전날에
30대의 친구딸!!!
서울대 석박사까지 다한 팔망 미인이면서 효녀인 딸이
회식 후 층계 내려오다 넘어져서 뇌가 함몰되어 중환자실에 열흘 정도 있다가 결국
6개의 장기를 기증하곤 엊그제 하늘나라로 가는 슬픈 사연을 접했단다.
이런 날벼락이 있다니!!!
눈 온 날은 물론
비 온 뒤에도 하여간 한발 한발 조심하자꾸나^^
김광숙 선배님!
비록 만난지 일년이 넘었다 해도 바로 어제 만난듯 스스럼이 없는 선배님이
바로 당신입니다.
그만큼 상대방을 편하게 무장해제 시키는 힘을 갖고 계시니 참으로 신기하며
이 힘이야말로 여러 형제와 부대끼며 살아온 저력이 아닐런지요?
그리고
들려주신 슬픈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오래 살았구나" 라는 생각에 빠집니다.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요?
산다는 것은
쓴 것, 단 것, 다 겪고
종내는 지푸라기처럼 바스러지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선지자들이 인생이 뜬 구름 같고 거품이라 했음에도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도 더 세지고 뭐라도 움켜 쥐려고 아둥바둥 합니다.
어찌되었든
그 젊은 꽃다운 청춘의 사라짐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산학아 새해에 복많이 받고 건강하길 바래.
1월생이니 나보담 몇 달 언니일세?
허약한 몸매로 대가족의 맏이노릇을 톡톡하게 해내고 있는
친구 산학이가 자랑스럽고 부럽기도 하고
내 자신이 부끄럽고 면목이 없기도 하네.
ㅎㅎㅎ 난 왠만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피해가려고 하거든.
너를 통하여 많은 반성도 하고 또 결심을 하게도 만들어주네.
네가 차롓상이나 제삿상 차림준비하는 글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고 지혜로움도 조금은 익혔었거든.
너희 가족들의 알콩달콩 어우러짐에
사랑과 웃음과 행복이 흘러넘치는 것이 모두들에게
새해벽두부터 앤돌핀이 팍팍 돌게 만들어주니
?산학이는 복받을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