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동안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꽝꽝 언 땅속에서 새  생명을 언제부터 틔우고 있었을까요?
봄의 풍경화는
새 생명때문인지 언제나 설레입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나는 늘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천재 시인 소월은 왜 30대 초반에 스스로 세상을 버렸을까?
겹친 생활고를 이기지 못 해서라고 하는데
글쎄.....
그래서인지 진달래꽃으로 불리우는 소월이
봄이면 더욱 그리워집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로 시작되는 진달래 꽃은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시로 나도 처음으로 외우고 다니던 시었습니다.
그리고
첫사랑의 기억처럼 아련한 진달래꽃의 시인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 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그 때 우리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소녀시절은 김소월의 진달래 꽃과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부터 시집을 끼고 다녔으며
처음으로 모임을 만들고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중2때 인일여고 1학년 선배들과 어울려 "난초"라는 모임을 만들고
시화전 같은 것도 열고 했으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나의 순수시대가 아니었나 합니다.


느닷없이
새삼 이런 일을 들먹이게 된 것은 순전히 봄이 왔기 때문입니다.

봄이 어느 틈에 내 곁에 왔고

활짝 핀 진달래 꽃을 보니 김소월이  그리워지고

한동안 사느라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이 문득 눈물나게 그리워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시절을 잊고 살았을까요?


그리고

재앙이라는 장수시대와 함께 찾아온  수많은 질병 중에서도

누군가는 치매가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런 증상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명사가 생각나지 않는 등

겁이 덜컥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시작한 것이

어릴 적 좋아하던 시를 외우는 것입니다.

휴대폰에 저장을  해 놓고는 하루에도 몇번씩 들여다 봅니다.

그러다가 나 혼자 웃곤 합니다.

어릴 적엔 무조건 좋아서 미친듯이 하던 짓을

이제 나이를 먹어서는 치매예방으로 하게 되다니

세월이 야속합니다.


내가 김소월을 좋아하기 시작한지 벌써 5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나는 많이 변했지만

소월의 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

나를 다독여주고

내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동심의 세계로 곧장  내  손을 잡고  이끌고 있습니다.


물론 생존하지 않기에

노벨문학상은 탈 자격이 없지만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자격이 있는 시인이라면  김소월이 아닐까 합니다.

매해 노벨상을 발표할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고은 시인이 탈 것이라고

그 집 주변을 전날부터 가서 진을 치고  발표를  기다리던   우스꽝스러운  기자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김소월의 시는 애송하는  사람이  많으나

고은의  시를  누가  애송할까요?


오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간단한  시부터 낭독을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로운  때를

고초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님과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