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겨울동안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꽝꽝 언 땅속에서 새 생명을 언제부터 틔우고 있었을까요?
봄의 풍경화는
새 생명때문인지 언제나 설레입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나는 늘 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천재 시인 소월은 왜 30대 초반에 스스로 세상을 버렸을까?
겹친 생활고를 이기지 못 해서라고 하는데
글쎄.....
그래서인지 진달래꽃으로 불리우는 소월이
봄이면 더욱 그리워집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로 시작되는 진달래 꽃은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시로 나도 처음으로 외우고 다니던 시었습니다.
그리고
첫사랑의 기억처럼 아련한 진달래꽃의 시인이
생활고를 이기지 못 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그 때 우리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의 소녀시절은 김소월의 진달래 꽃과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부터 시집을 끼고 다녔으며
처음으로 모임을 만들고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중2때 인일여고 1학년 선배들과 어울려 "난초"라는 모임을 만들고
시화전 같은 것도 열고 했으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나의 순수시대가 아니었나 합니다.
느닷없이
새삼 이런 일을 들먹이게 된 것은 순전히 봄이 왔기 때문입니다.
봄이 어느 틈에 내 곁에 왔고
활짝 핀 진달래 꽃을 보니 김소월이 그리워지고
한동안 사느라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그 시절이 문득 눈물나게 그리워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시절을 잊고 살았을까요?
그리고
재앙이라는 장수시대와 함께 찾아온 수많은 질병 중에서도
누군가는 치매가 제일 무섭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에게도 그런 증상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명사가 생각나지 않는 등
겁이 덜컥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시작한 것이
어릴 적 좋아하던 시를 외우는 것입니다.
휴대폰에 저장을 해 놓고는 하루에도 몇번씩 들여다 봅니다.
그러다가 나 혼자 웃곤 합니다.
어릴 적엔 무조건 좋아서 미친듯이 하던 짓을
이제 나이를 먹어서는 치매예방으로 하게 되다니
세월이 야속합니다.
내가 김소월을 좋아하기 시작한지 벌써 5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나는 많이 변했지만
소월의 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
나를 다독여주고
내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동심의 세계로 곧장 내 손을 잡고 이끌고 있습니다.
물론 생존하지 않기에
노벨문학상은 탈 자격이 없지만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자격이 있는 시인이라면 김소월이 아닐까 합니다.
매해 노벨상을 발표할 때는
우리나라에서는 고은 시인이 탈 것이라고
그 집 주변을 전날부터 가서 진을 치고 발표를 기다리던 우스꽝스러운 기자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김소월의 시는 애송하는 사람이 많으나
고은의 시를 누가 애송할까요?
오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간단한 시부터 낭독을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로운 때를
고초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님과 벗)
명제야!
이럴 수가...
영수의 석사 논문이 홍윤숙 시인이었구나.
실은 홍윤숙 시인의 딸이
나랑 같은 대학 동기로 영문과 출신이고
결혼 후엔 남편이 올림포스에 다녔기에 바로 우리 옆집에 살았단다.
그 후엔 일본으로 갔는데 소식을 모르고,
그런데 그 집 이야기를 너에게서 듣다니...
참으로 신기하네.
그 친구 아주 부잣집 딸이었지.
내가 이 글을 쓰기를 잘 했나보다.
옛 친구 소식도 듣게 되었으니 말이야.
최경섭 선생님!
또한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다.
서순석 선생님도 그렇고, 우리 학창시절은 좋은 선생님들이 너무 많았지.
그 당시는 몰랐지만
졸업 후에야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너도 나처럼 시를 외운다니 반갑다.
그런데 너처럼 똑똑한 친구는 왜 시를 외울까?
물론 나와는 다르겠지만
글을 쓸 때 번뜩이는 너의 감성이 다 이런 곳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감히 짐작해 본다.
그리고 한번 얼굴 보고싶네
이 봄날이 가기 전에....
새벽 세시나 되어서야 일용할 양식 만들기가 끝났기에
잠들기 전에 들어와 본다.
반가운 명제글도 오랜만에 만나보는구나
진달래하면 애지중지 키우던 울안의 꽃들이 생각난다
얼마전 가본 수안산방집엔 아직도 꽃봉오리가 맺혀있지 않더라
산학이 글을 읽고 4월 초순에 피던 울안의 꽃들도 볼겸
나물도 캘겸 가보아야겠네.
명제랑 산학이는 그래도 시심이 생겨 시를 읊고
아름답게 나이들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난 요즈음엔 서재에 빼곡히 자리잡은 수많은 시집을 쳐다보지도 않게되는것이
세월감이 무덤덤해지나봐.
그래도..........오래전 찍어놓았던 진달래 사진과 동영상 올려보마.
김은희 선배님!
오래전에 찍었다는 진달래꽃의 색깔이
어찌 저리도 기가 막히게 예쁠까요?
인간이 저리 고운 색을 만들 수 있을까요?
자연의 신비가 생각할수록 오묘합니다.
작년인가 KBS에서 색의 신비를 갖고 특집을 한 적이 있는데
눈을 떼지 못 하고 본 기억이 납니다.
지금쯤 선배님의 수안산방은 다투어 피는 봄꽃들로 꽃대궐을 이루어 장관이겠네요.
그곳에서 따뜻한 봄햇살을 맞으며
하얀 민들레도 캐고 질경이도 캐고
봄밥상이 풍성해지겠지요.
햇볕 잘 드는 곳에 놓여진 채반에서는 어란이 꾸득꾸득 말라가고...
선배님이 담근 게장에
게다리 잔뜩 넣고 푹 고아낸 달고 시원한 국물 맛...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늘같은 날
수안산방이 그립습니다.
김은희 선배님!
다정한 두 분의 모습이
전설의 새 "비익조"와 비슷합니다.
혼자는 날지 못 하지만 암 수가 만나면 그제서야 힘차게 난다는 전설의 새 말입니다.
요즘같은 장수시대에 두번 결혼은 당연한 것이라며
황혼이혼이 늘어만 갑니다.
그러나 은혼식이니 금혼식이니 하며
오래 해로한 부부를 축하하는 우리의 관습은
다른 것이 아니라 두 분이 인내하고 살아 온 그 상처뿐인 고통에 대한 상이겠지요.
서로에게 부족한 면을 채워주고
감싸주는 마음
그래서 진짜 사랑은 불타오르는 정열이 아닌
연민임을
나이 들어가면서 알았습니다.
모진 인고의 세월을 뒤로 하고
다정히 선 두 분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오래 오래 행복하셔요.
우리 산학이~!
정말 또 다시 봄이 왔군요.
이곳에 그리운 분들이 모두....ㅎ
3월이 되며 봄이 그리워 매주 산에 갔지요.
어제의 유명산입니다.
산속은 아직 봄이라고 하긴 추운데
깊은 숲속에,
부끄러운 듯....
추워서 힘든 듯....
그러나 새봄이 그리운 듯...
진달래가 조금씩 꽃송이를 내보이고 있습니다.
만져보고 싶었지만 내손의 힘때문에 호르르 떨어져 버릴 것 같아
가까이도 못보고 나뭇가지 사이로 사진만 찍었습니다.
올해도 모두 건강하시어 이곳에서 자주 뵙기 바랍니다.
김순호 선배님!
건강하셔서 산을 자주 찾으니
이런 축복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저도 한 때는 바람 난 여자가 그리할까요?
차를 타고 가다가 산만 보이면 내려서 그냥 올라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니
산의 매력은 무궁무진 합니다.
한번은 산에 오르는데 향기로운 더덕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얘요.
다들 그 냄새를 따라 갔더니 굵은 더덕이 곳곳에 숨어 있더라고요.
우리가 더덕밭을 발견한 것으로 얼마나 놀랐는지요.
그 때 그 황홀함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산더덕의 진한 향기와 함께 말입니다.
흔히들 우리는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산다고 합니다.
춤에 미쳐서
도박에 미쳐서
종교에 미쳐서...
그런데 산에 미쳐서 사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선배님이 들려주시는 산 이야기에
마음이 설레는 하루입 니다.
오랫만에 홈피에 들어오니
도산헉후배의 글이.....
덕분에 나도 소월의 진달래꽃을 외워보았네.....
정말 오랫만에 지명제후배의 글도 대하게 되어
참 반갑고.
순호언니!
봄이면 한국의 진달래꽃과 개나리꽃을 그리워하죠....
얼마동안이나 지지않고 피어있을까요?
3주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해주세요...
도산학 선배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요즈음 시를 즐겨 읊으신다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저는 한 5년 전에
당시 70 넘으신 노부부와 며칠동안 여행길을 다녔었어요.
그때 사모님께서 잠이 안오면 시를 암송하신다고 말씀하시며
매일매일 저에게 시시때때로 적절한 시를
읊어주시는데 깊게 감동하였었습니다.
어느날 남자어른께서 자기는 딱 한편만 외울 수 있다며
들려준 시를 옮겨봅니다.
이 시는 송창식씨가 곡을 붙여 잘 알려진 것이기도 하지요.
그분들과의 인연으로 시작하여
제가 시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선배님 건강하시어 계속 좋은 글 보여주세요.
푸르른 날
-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김옥인님!
역시
옥인 후배도 시를 좋아하는군요.
실은 옥인 후배를 한번도 보지 못 했음에도
글로 만날 때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저자 전혜린이 생각났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머리로 앞날이 보장되었지만
낯설고 물설은 독일로 유학을 가
온 몸으로 인간의 고독을 밑바닥에서 체험하고
불꽃같이 살다 간 전혜린이 왜 생각이 났을까요?
물론 나만의 느낌이겠지만
외국에서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한 때 우리가 열광했던 전혜린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래 그래서인지 후배지만 좀 어렵게 느껴지기까지 했고요.
열심히 살아가는 후배의 모습에서
여러가지를 배우는 선배랍니다.
늘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또 다시 봄이,,,산학후배님의 시 야그로부터 이어지네요.
이 사막에 있는 우리 집에도 개나리가 아주 운치있게 피었어요.
먼 말인고 하니,,언제나 단정히 다듬어 삐죽삐죽한 것들을 잘라버렸는데,,
올해부터는 자라는 그 모습을 그대로 두기로 하니 마치 한국의 개니리의 모습이 느껴지네요..
내년엔 진짜 호드러지게 느러질듯,,,앙증스런 수선화가 한창입니다.
숙자네서 시집 온 더덕도 쑥쑥 올라가고 있고 도라지도 나옵니다.
그 바람에 생전하고도 처음 본 더덕꽃은 고개를 몽땅 아래로 떨어뜨려 한번도 위를 보는 일이 없는데,
어쩌면 색갈도 솜털도 할미꽁같기도 하고, 졸망졸망한 모습이 초롱꽃 같기도 하게 앙증맞네요.
다음 주 쯤에는 참으로 겔른 저도 ,,,,좋다는 민들레를 캐서 한번 데쳐서 묻혀먹을가 합니다.
근데, 어쩌죠? 더 이상 카메라를 들이대던 옛 버릇이 없어지고 그냥 쳐나만 본답니다.
손주녀석들이 부쩍 커 버리니 이제 서둘러 카메라를 들이댈 이유없이 갸들이 구엽지를 않으니 말입니다.
어느새 으젓해 버려서, 얌마들아,,너희들 하미한테는 틴에이져 노릇 하지마! 라고 호통치는데도 벨로 도움이,,,
진달래,,,김소월,,,시라고는 전혀 한 줄도 쓸수없는 저에게도 그 시는 저의 가슴을 흔드는데,,,
그렇게 어렵게 사시다 갔다니,,,세상에,,이 좋은 세상을 보셨다면,,,지금도 그렇게 저린 시가 나올가요?
어쩐지 그래선지 산학님의 글은 가슴 밑에서부터의 느낌을 공감하게 합니다.
시를 욾고 외울 뿐 아니라, 진작 좋은 글들을 써 내시기 바랍니다.
정순자 선배님!
고국의 봄을 뜰 안에 가득 담고 사시네요.
더덕과 도라지 꽃까지요.
제가 얼마전에 태국의 구도시를 간 적이 있는데
허물어진 성벽들 사이로 남색 도라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옛날의 영화는 간 곳이 없고
무너져내린 성벽 사이로
도라지 꽃만이....
그래도 내 나라의 꽃이라 무척 반가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만약에
뜰안에 작은 장독대라도 만들어
올망 졸망 항아리들을 올려 놓으면 얼마나 운치가 있을까요?
그런 저녁이면
선배님은 남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라도 끓일 양으로
부지런히 장독대로 달려가 된장 고추장을 퍼 오느라 바쁘겠지요.
오늘 인천은 강풍이 얼마나 센지
강풍 재난 경보가 울리고
아파트가 큰 소리로 울고 있습니다.
역시 TS 엘리어트가 황무지에서 노래했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던 싯귀가 생각나는 날입니다.
정순자 선배님!
이 봄날에 좋은 시가 있어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처음 본 날 웃었지요.
먼데서 웃었지요.
가만가만 웃었지요.
꽃잎 내린 강물처럼
잔 물결이 일었지요.
발 밑에서 일었지요.
날리는 꽃잎처럼 발 길에 밟혔지요.
한 잎 한 잎
또 한 잎 뚝 뚝 떨어져
내 눈에 밟혀서,
오!
봄이여!
꽃구경 가다가
날 저물어 길 잃고
나는 너를 얻었네.
김용택님의 "처음 본 날"
詩心을 아직도 챙겨보려는 산학이
요즈음의 안개속같은 세상사에도
꺼져가는 감성을 살려보려 애쓰는구나
꺼내보려고도 않던 시집들속에서
옥인후배가 올린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39년전의 빛바랜 시집을 꺼내서
읽다가 ...................눈물 한방울 떨어트렸네.
사모님 돌아가신뒤 곡기 끊고 얼마뒤 뒤 따라 가실때 생각이 나서 말이지.
山 査 (산사)꽃
산보네 산 보네 밤낮 산 보네.
그대와 나 둘이서 바라 보기엔
번갈아 보며 보며 쉬기도 할 겸
그대 길이 잠들고 나 홀로 깨어
산 보네 산 보네 두 몫 산 보네.
그대와 나 둘이서 맞추었던 눈
기왕이면 끝까지 버틸 일이지
무엇하며 지긋이 감고 마는가.
그대 감은 눈 위에 청청히 솟는 산
산 보네 나 혼자 두 몫 산 보네.
39년전 시집속에 1979년 11월 9일이 얼마전같은데 말야.
큰딸애 다섯살 큰아들애 두살때
대명포구에 망둥어 낚시를 함께 하시고 잡은 망둥어 매운탕을
맛나게 끓여주시던 사모님의 음식솜씨는 문단에 짜그르 해서
제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곤했었지.
내나이 삼십중반이고 세째인 막내는 태어나기전이니...............옛날 옛날 한 옛날에 이다.
김은희 선배님!
정말 귀한 사진을 올려주셨네요.
사진 속의 웃고 있는 미당 선생님 내외분이 벌써 세상을 떠났으나
선생님의 시는 남아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네요.
여론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이 제일 애송하는 시가 "국화 옆에서"라고요.
선배님이 그러셨지요?
추천에도 까다롭고 매사 자신에게 엄격했던 선생님이
사후 친일파로 몰려 매도 당했을 때
제일 앞장선 사람들이 선생님 생전엔 그 앞에서 입 안의 혀처럼 굴던 작가들이었다고요.
감싸기는 커녕 선생님을 폄하하던 유명한 모모한 작가 등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고요.
세상의 인심이란 것이 이러하니
요즈음 미투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겉과 속이 전혀 다른 모습은 이상하지도 않다고요.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살아 무엇하냐며 곡기를 끊으신 선생님이 안타까와
좋아하시던 게장을 속만 발라내 가져다 드리면
그나마 겨우 한 두 숟갈 드시고 고맙다 라고 하셨다니
어찌 눈물이 안 날 수가 있을까요?
요즈음 이렇게 부부애가 애틋한 남자가 있을까요?
미당 선생님은
정말 겉과 속이 같은
훌륭한 작가임에 틀림없습니다.
산학후배님, 저에게 특별히 올려주신 시 -김용택님의 '처음 본 날' 감사 합니다.
요즘처럼 직설적이지 않은 표현법, 저로서는 좀 알듯말듯 하지만,,,그 시절, 그 분들의 가치관을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그리운 님도 그 앞에 콱 나타나지 않고 진달래꽃 입에 물고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살짝이 내다보던,,여인들,,,
옛날의 순애보적 사랑이란,,,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였기에,,,,라고 노래하며
손목한번 잡혀봤을가? 한 아련한 사랑만으로도 내 가슴을 준 이유만으로,,,
나의 평생의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대의를 위해 떠난 님의 앞길을 원망은 접어두고,,
믿어주고 밀어주며,,,자랑스런 마음으로 평생을 그리움이라는 형벌을 감내하며 살았던 수많은 옛여인들,,,
시대적인 대의가,,,즉 일제압제의 독립운동이라든가,,육이오가 나면서 나라를 위한일들,,
또 내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한가정의 남자이기보다는 한 국가의 남자로서의 의무를 ,,,,등등,,,하던 시대가 요구했던 상황,,,
그래도 그때 그 여인들의 사랑은 그 대상을 한번도 원망 안하고 자랑스럽게 그리움과 고생을 누르고 버티지 않았든지요.
김은희선배님을 통해서 서정주 시인을 더 알게 됬네요. 정말로 귀한 사진이네요.
세상 인심이라는 것이,,,바로 그렇지 않던가요?
산학후배님 언급처럼,,요즘에 폭로되는 고귀한 인격들의 몰락,,그 이면의 지독한 위선,,
그러기에 목회에서도 아무리 세상의 유명세를 떨쳐도 그 평가 기준은;,,,돈, 여자에 깨끗한 인격,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한듯해도 탐욕과 탐색을 하면 위선자이지요.
그러기에 돌아가신 빌리그레헴- 그 분의 철칙은 절대로 성경에 의거한 말씀만을 선포하시고,
절대로 엘레베이터에도 여자 혼자 있으면 타지를 않고 어디든 누군가를 대동하고 둘이 가는...
속과 겉이 같기에는 그 만큼 그 분의 생활철칙이고 그것을 준수해 오신것이지요.
오랫만에 나눈 귀한 대화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요.
정순자 선배님!
김은희 선배님 부군이신 김정웅교수님이
미당 선생님으로부터 그 어렵다는 추천을 받고 등단을 하고
동국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김수영 문학상등 굵직한 많은 상을 받은 시인이라
문인들과 교류가 많았습니다.
당연히 김은희 선배님도 문인 부부들과 어울려 여행을 다니는 등 교류가 많아
그네들의 이야기를 소상히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는 했습니다.
누구나 존경할 만한 박경리 박완서 작가
그리고 무엇보다 미당 선생님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미투운동이 벌어지면서
설마 했던 일들이
아! 그래서 예전에 그런 말을 선배님이 했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그런 분들은 어쩌다 한 두명이고
그런 행동을 안 하고 바른 분들이 더 많지요.
며칠 전에는
비가 온다는 예보에 벚꽃이 다 져 버릴까
벚꽃 구경을 다녀 왔습니다.
벚꽃이 터널을 만들어 온 주변이 눈이 부시게 환했습니다.
이 벚꽃도 며칠 후면 쓸쓸히 다 떨어져 앙상한 나무만 남겠지요.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의 (낙화)
와아~~~
산학이 글도 댓글들도 멋지다.
읽고 있자니 한두시간이 휘익 지나네.
한 6~7년 전에
바젤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 소개 모임을 했어요.
이곳에 사는 한인들이 한 15명이 모였습니다.
많이 와야 다섯 여섯명 일거라 생각했는데 조금 놀랐습니다.
간단한 식사후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고
좋아하는 이유를 얘기 했는데 우는 사람도 있었어요
시를 낭송하면서 울컥 감정들이 터진것 같았어요.
내가 소개한 시는 물론 소월의 진달래 꽃
그런데 경상도 출신 한분이 이 시를 경상도 사투리로 다시 읊어 주어서
나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나도 이제부터 시를 좀 외어야 하겠네
자꾸 단어가 생각 안나고....
희자야!
보고싶은 희자야!
너도 그 먼 곳에서 "시 낭송" 모임을 갖었었구나.
만약 그 모임이 지금까지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네.
내가 보기에
봄에 피는 꽃들은 이름모를 야생화까지 다 예뻐
사람도 아기일 적이 제일 예쁘잖니?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 하면은
오늘 내가 사진 한 장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단다.
실은 오래전에 명제가
김재옥 선생님의 그림을 구입한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그 그림을 원래는 인일여고에 걸어두고 싶어 하셨나 봐.
그런 이유로
선생님 살아 생전에 그 소원을 들어 드리고 싶어
얼마 전에 학교에 기증을 했는데
명제가 오늘 나에게 선생님 사진을 보내 온 거야.
예쁘고 앳된 모습의 선생님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선생님도 저렇게 예쁜 시절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눈물이 왈칵 나고
그 사진을 선생님 아드님에게 보내주니
아드님이 전화를 해서 같이 울었단다.
봄날은 짧고
청춘도 후딱 가고
우리네 세월이 그렇게 가 버리네.
선생님 사진을 네게 보여 주고 싶은데
내가 못 올리니
누구에게 부탁해 올려 줄께
덕분에 선 생님 젊은시절도 뵙고
초창기 대곶집에 고추도 같이 심으시고
꽃모종을 그 먼곳에서 손수 가져와 심으시던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추억해봅니다.
제자가 칠십중반으로 향해가며 선생님 뒤를 따라갑니다.
산학이 봄 타나보다.
사실 나는 김소월 선생 잘 모르는데, 이 양반 이야기 들으면
늘 최경섭 국어 선생님이 함께 떠오른다.
자신의 고향인 선천 이야기를 하실 적마다. 그 부근이었던
소월의 고향 정주 이야기를 꼭 하셨었거든.
시인이 참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 선생님 덕분이 아닌가 싶고.
인일 졸업생들의 문학적 감성은 그 선생님이 심어준 것이 분명하지?
고등학교 졸업후 시는 잊고 살았던 듯하다.
그러다, 20대 후반 "성북동 비둘기"라를 시를 읽게 되었고,
누군가 제일 좋아하는 시를 물어오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시 를 가장 깊숙하게 생각하게 된 배경은
김영수의 석사학위 논문을 읽고난 뒤 같다.
제목은 확실치 않은데, 홍윤숙 시인의 시에 나타난 페미니즘 에 (혹은 카톨릭 정신이었을거야)
관한 논문이었던 듯해.
영수가 관심을 갖는 시인이라니, 나도 좀 기웃 거려봐야 했던 모양이야.
마침 홍윤숙 선생의 아드님인 양윤 교수와 면식도 있던차여서
훨씬 가깝게 여겨졌기도 하고.
그러다 흐지부지.... 간혹 받는 시집도 완독은 커녕 몇편만 읽고
접어 두곤했지.
헌데 얼마전부터
다시 시가 마음에 들어오고 있었어.
송년 모임 노래방 등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대신
시 한편을 암송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고....
나도 요즘 너 처럼 시를 외우곤 해.
주로 목욕탕에서 하는데.
요즘은 박정대 시인의 "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에
빠져 주절거리고 있단다.
내가 외우는 것도 좋지만, 열심히 외우는 다른 사람의 음성으로 듣는 시도 참 좋더라.
어젠가 오늘 인가 조간에서 초등학교 교실에서 동요가 사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그 아름다운 귀한 말들로 만들어진 우리 동요를 지켜야 할텐데 싶어
조바심도 들더라고.
이제 가곡이나, 가요는 부르기 힘들기도 하여서
정말 동요 부르기 혹은 동요지키기 모임이라도 만들어야 하는가
싶다.
우쩼거나, 봄날은 간다.
아침에 이웃 부인이 어쩌면 비기 이렇게 왔는데 꽃잎하나 떨구지 않았는지
비가 예뻐요. 라고 엘리베이터에서 문지도 않은 말을 하더라.
오늘 반포친구들과 벚꽃길 걸었어. 시절은 우울하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어
그대도 행복한 봄날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