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한 해를 보내며
나는
나에게 상을 준다.
열심히 살았다고
잘 견디고 여기까지 달려온
나의 어깨를 "잘했어" 라며 다독인다.
멈추어서서
뒤돌아 보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순간의 연속이었지
그래도
네 곁에 내가 있잖아
라는 말 한마디에 힘을 얻었고
가끔 무심한 듯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보고싶다는 마음이 원망이 되어도
한 삼일간 펑펑 울고나면
지나고 마는 것을
잘 견디었어
잘 견디었어
인생은 그냥 사는 것.....
한 해를 보내며
나는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산학아
로그인이 안되어 며칠동안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더니 이미 로그인 도어 있다고 뜨네.
왜 안되었는지 또 왜 되는지 모르지만 지금 몇자 쓸께.
답글들이 너무 많고 좋아서 읽다 보니 반나절이 휙 지나네.
며칠전 전화 통화하고 네 목소리가 아주 반가웠어.
맨 밑에 답글 올리면 네가 못볼까 하여 다른 동문님들 미안하지만 여기 잠간 새치기 한다.
댓글들도 너의 답글도 멋진 글들.
얼마전 한국 아는분이 내게 말하길:
옛날 사람처럼 말하시네요. 요즘은 그런말 안써요.
그후부터는 무슨 글을 쓰기가 좀 그렇네.
오랜동안 외국 살았다는 흔적인가봐.
너와 동문들 모두에게 좋은글 읽으면서 감사 드리네
보고싶은 희자야!
며칠 전에 네 글을 보고는 금방 답을 하려고 했는데
마음과는 달리 집안 일이 겹치다 보니 차일피일 늦어져
오늘에야 컴퓨터 앞에 앉았네.
미안하다.
너와 오랜만에 긴 통화를 하면서
"희자는 정말 열심히 자기 일을 확실히 하며 사는 멋진 친구"라고 생각했단다.
평창 올림픽 때문에
라듸오로 텔레비젼으로 불려 다니며 한국을 알리고 다니느라 바빴다는 너는
누구보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고
대한민국의 멋진 홍보대사 였으니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는 10월에 인일여고 요들 합창단과 함께
무대를 마련해 스위스 요들을 모두에게 선보일 예정이라니 대단하다.
몇년간 공을 들인 요들반이 이번 공연으로 빛을 발한다니 지금부터 기대가 크네.
그 날을 위해 스위스에서 선생님도 두 분이나 초빙한다니
물심양면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의 그 정열에 큰 박수를 보낸다.
한국을 떠나
낯설고 물설은 스위스에서
기반을 잡고 한국의 홍보대사가 되기까지 수십년....
이제는 스위스의 요정으로 돌아오는 희자야!
반갑 다.
그리고 빨리 10월이 왔으면...
그리고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날이 궂은 날
한잔 술이 그리워
소래포구를 찾았다.
목구멍을 후벼파며
넘어가는 짜릿한 매운탕의
진한 아픔
밀물과 썰물을 견뎌낸 저 바다처럼
조수간만의 차를
온 몸으로 견뎌낸 바다는 말이 없다.
하루에 두번씩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은
49분씩 늦어지기에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매일 달라지는
만조와 간조의 시간표를
포구의 아줌마도 외우지를 못 해
명함 뒷면에 친절히 소개하고 있는 소래포구.....
우리네 시간과 다르게 흘러가는 물의 시간은
인간에게도 때가 있음을 알려준다.
나는 돌아갈 때가 언제일까?
그 때를 몰라
오늘도 소래포구에 앉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소래포구에서)
벌써
몇년 전이네요.
사진 작가 김혜경 선배님과 소래포구를 찾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포구의 아줌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었는데
다음에 꼭 오라며 명함을 받았습니다.
혜경 선배님!
생각 나시지요?
명함 뒷면에 빼곡히 적혀있던 바다의 시간표를요.
바다의 시간은 왜 다를까?
그 때부터
그것이 궁금했답니다.
ㅎㅎㅎ 그럴 땐
"별들에게 물어봐 ~~"하듯이
바다에게 물어봐~ ~ ~
친구 산학아~ ~ ~
"참~~잘했어요!"
고무도장 하나 파서
너의 손등에 팍! 찍어 줄게요.
황금의 개...무술년엔
올해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드립니다.
인선아!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렴.
오늘은 2017년도 마지막 날이라고
일출 일몰을 본다고
몰려들 나와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라네.
보신각의 종도 몇 시간 후면 울릴테고.....
심지어는 남태평양에 있는 조그만 섬나라 피지에
날짜변경선을 경험하러 간다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세상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기에
날짜변경선 팻말 앞에 서서 다리를 쫙 벌리면
이 다리쪽은 오늘 저 다리쪽은 내일이라는 피지에 날짜변경선을 체험하러 간다니...
세상도 참 많이 변했다.
산학이도 한해 끝자락에
시심도 울어나 시로 한해의 마침표를 찍고
지낸 시간을 뒤 돌아 볼 여유가 생긴듯해서 좋아보이네.
그러니 산학이가 잘 견디어 온 시간에 박수를 보낸다.
삼 사년전 부터 나도 연말이면 뒤돌아 볼 여유가 생기더구나.
한해 뿐 아니라 어느덧 칠십 중반으로 달려가니
어느때이고 마무리 할 시간이 가까워온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정리를 하게 되더구나.
사진으로 젊은 나를 만나보기도 하고
오래전 써 놓았던 글들도 들쳐보기도 하지.
새로히 맞을 시간들을 생각하기전에 ........살아온 길을 돌아다보는 일도 중요하더라.
반성도 하고 스스로 칭찬도 하며 용기도 갖게되고 산학이처럼 말야.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얼마인지 또 모르지만
열심히 살아가자~!!!
고궁의 고목을 그리던 중의 두번째 그림이야.
늙어 상처도 많고 하지만 꾿꾿하게 서있는 모습이 좋더구나.
김은희 선배님!
선배님이 그리신 고궁의 고목을 보니
그 고목이 흡사 선배님의 모습인 듯 싶어 반갑습니다.
한때는 선배님이 박경리님의 토지에 나오는 서희 할머니를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만석꾼의 안주인으로 일제의 수난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만석꾼의 종가를 지켜낸 여인 말입니다.
흡사하지 않나요?
8000평이나 되는 운동장 크기만한 집에
엄한 남편에
꼭 독립운동하듯 들락거리는 자식들을 사랑으로 보듬고 사는 선배님....
그 많은 것을 견뎌내려면
글쓰기 그림 그리기등 예술이 최고가 되겠지요.
장수시대라
90에 시집을 내는 등 세태가 달라진 요즈음에
선배님께서도 꿈을 잃지 않고 정진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여전 우리 산학후배님,
나를 잘했다고 칭찬해 줄수 있는 마음도 아무나 가질수 있지 못 하지요.
질경이같이 오직 희생과 사랑으로 살아 온 한국 여인/어머니들의 삶,
오늘에 서서 뒤 돌아보는 삶속에서 아직도 짓밟혀지만은 않은 나에게 남은 자존감,,
그리하여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해 줄 수 있는 여유,,
철저히 절약과 희생만을 해 온 우리 어머니 시대에서는 아마 자신을 칭찬할 마음의 여분이 없겠지요?
지금의 우리 세대의 어머님들은 높은 교육도 받고 자신들의 삶을 즐겨온 분들이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헌들, 삶 속에서도 어려운 속에 휘말리지만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노력해온 결과이지요.
많이 어려우셨을 지난 날들 속에서도 아직도 좋은 글을 뽑아내시고,
보기에는 아주 연약한 여인이시나, 폭도 넓고, 강하신 산학후배님, 잘 살아오셨읍니다.
앞으로도 그런 맘으로 밝은 모습과 좋은 글 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세요.
모짤트의 곡을 2000번 넘게 쳤다는
정순자 선배님!
그런 피나는 노력과
인내와
정열을
누가 감히 흉내 낼 수 있을까요?
모짤트의 아름다운 곡들은
선배님의 가슴 속에서 녹고 녹아
그냥 선배님 자체가 되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타고난 재주가 출중하다 해도
노력하는 사람을 따를 수는 없겠지요.
제 친구 중에 우리 인일여고에서 맨날 1등을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통학을 하는 중에도 영어 단어장을 손에서 놓지 않고 보고 다녔답니다.
뒤에서 "언니, 교복치마는 왜 안 입고 왔어요?" 라는 후배 질문에 아래를 보니
치마는 그냥 집에서 입던 평상복이더라고요.
영어 단어를 외우느라 깜빡 치마 갈아 입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서울대를 갔고요.
노력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는 선배님을 또 여기서 뵙게 되네요.
비록 나는 못해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뜻합니다.
이런 분이 인일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201 8년 새해에도
건강하셔서
하고싶은 일에 또 도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와ㅏㅏ 과분하신 칭찬,,,일단 한번 쳐서 발표한 곡은 뒤도 안 돌아보지요.
그 다음에 보면 헝? 하게 낮설고 언제 그토록 쳤던가? 싶답니다.
왜냐면,,,기초가 없이 쳤다는 말이지요.
한 마디로 쳐 냈다는 말이 맞지요.
어떤 땐, 영 가망이 없고, 재질도 없고, 래슨을 그만 두고 나 혼자?할까 라는 유혹도 있지만,
지난 8년간의 공백이,,,노!노! 할수 있게 힘을 주기에 앞으로만 나가지요.
얼마나 살지 모르는 지금 세상에,,,100살 먹은 이닐 할매가 여전 어린 학생들 틈에서 발표하는
나를 상상해 보믄,,,스스로 미소를 짓게 되며 해야할 이유를 얻지요..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언제나...
오래만 사세요, 하하하하
제가 한 80세때에 한국에 방문할때, 인일후배님들 위한 전액기부 장학금 연주회?를 한번
동문회 및 여러분들이 힘써주신다면? 하하하하ㅏ 꿈도 야무져라.
제 연주를 보시러 오시기야 뭐 하긋지만 적어도 80세 인일할매라는 대목에선
시선과 관심을 확 끌것두 같네요,,,하하하하하
사실 나이가 더 먹어 실력을 좀 쌓고 칠 줄 아는 곡이 다양해지면,,
찬양곡들과 가곡들을 겸해서부르고, 피아노 연주회를 가져보려 노력하겠읍니다,
적어도 제가 찬양을 하면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감동을 드릴테니까요, 하하하하
물론 우리 산학후배님이 제일 애써 주시겠지만, 저 청중속에 산학후배님이 맨 앞자리에
앉아 계실 꿈도 꿔 봐도 되겠지요?
맞아요. 뭔가 꿈을 가지고 살면, 확실히 삶이 쫄깃쫄깃해 지겠지요.
꿈 자체가 삶의 끈이고, 완존 긍정적이니까요.
꼭 책 하나 쓰시는 꿈을 향해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1살에서 89세까지.....
함남여고 출신인 시어머님이 함경도 출신으로 의사인 시아버님을 만나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멀리 미국에 살아도
한국의 미풍양속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 온 이 가족을 자랑하고 싶어
새해에 받은 연하장을 올렸습니다.
단결력이 남다른 가족임을
함께 맞춰 입은 옷이 증명해 줍니다.
얼마 전
텔레비젼에서 56명의 대가족을 소개한 일이 있는데
친구네 가족도(물론 전부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28명이라니....
인류 번영에 제일 공이 큰
친구의 시어머님께 존경을 보냅니다.
선배님!
좋다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제 친구가 게시판에 들어와 읽기는 하는데
쓰지를 못 해 인사도 못 드리고 안타깝습니다.
실상
이 집안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옛 말에 한 사람이 벌어 여럿이 산다 했는데
그 말이 딱 맞습니다.
큰 돈을 번 사람이 베풀 줄을 아니 집안 전체가 화목하고 서로를 아끼더라고요.
"이번에 크루즈 여행 가자" 라고 하면
20명 분이라도 몽땅 한 사람이 지불을 하니
병원 문이고 뭐고 다 닫고 함께 여행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베풀어야
더 잘 된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집안이라
존경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옛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요?
김은희 선배님
아드님이 1월 17일 (수요일) KBS1 아침마당 에 출연을 합니다.
등대오빠 김선주가 노래를 하는데
선배님도 함께 나온다고요.
트로트를 부르는 프로인 모양인데
그 날 함께 시청하시고
응원 해 주셔요.
새해 벽두부터 좋은 소식이 날라드네요.
한 해를 보내며
나는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도 이 글귀를 보고 눈물이 났다.
역류성식도염이 생겨서 힘들었어.
영양제 3대나 맞고 이제 조금 가라앉았네.
한해동안 수고많았어.
오늘 오랜만에 외출에서 돌아 와 보니
반가운 얼굴이 있네.
아들 결혼시키고
알콩달콩 사느라 연락이 없거니 했건만
그것이 아니고 병때문에 꼼짝을 못 했구나.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이만큼 나이를 먹으며 살다보니
하루는 아프고
하루는 바쁘고
하루는 즐겁기도 하면서
그렇게 세월이 바빠 바빠 하면서 지나가고 있네.
그런데
왜 우리는 만나지도 못 하며 사는 것일까?
가까운 시일 내에 얼굴 한번 꼭 보자.
보고픈이들이 이곳에 다 계시네.
먼저,
은희언니~!
여전히 잘지내시지요?
아드님의 이름이 많이 알려지니
듣는 우리도 좋습니다.
두분 올해도 건강하셔서
이곳에서라도 자주 뵙기 바랍니다.
멋쟁이 순자온니~!
온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가히 세계적이십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들의
롤모델로 계셔주세요~!
재화~!
큰일 치루느라 힘들었을텐데
이제 재화의 건강 챙기시고.
맘놓고 다니시기를....
일이 있어 결혼식에 참석 못한죄로
양평가서 옥천냉면 살까?
우리 산학이~!
아름다운 글에 댓글 달 챤스를 놓치니
선뜻 글이 안써지는구료.
조근조근 풀어낸 글들을 읽고 또 읽으며
이제사 맘 잡고 글쓴다오.
그 글이란것이.....!
그냥 맘속에서 나오는 소리를
풀어 내는것 인데
한해를 보내며 연말쯤 되오니
몸과 맘이 공중에 떠서
차분하게 풀어 써지지가 않습디다.
이제사 돌아온 누이가 되어
그대에게 인사를 전하는구료.
올해도 건강하셔서
글 많이 쓰시고
가족들과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 바란다오.
늘 다정한 김순호 선배님!
제가 이 공간을 좋아하는 것은
선배님같은 분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공간이 아니었다면
선배님이 어떤 분인 줄 알 길이 있었을까요?
할머니로써 최선을 다하며
육아일기를 쓰고
틈틈이 여행을 하며 나 자신에게도 충실한 선배님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오며
자칫 허물어지기 쉬운 나 자신을 채직질 합니다.
오늘도 저는 어느 선배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창시절엔 몰랐는데
사회에 나와 여러 학교 출신과 어울리다 보니
우리 학교가 정말 좋은 학교임을 알았다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욕을 할 줄 모르는데
다른 학교 친구들은 욕을 서슴없이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요?
실상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훌륭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선생님들께서 남몰래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꾸준히 내 주셨기에
졸업을 하고 지금 행복하게 사는 친구들이 어려웠던 그 시절 그 은혜를 잊지 못 하고 찾아뵙곤 합니다.
그런 훌륭한 선생님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음을 이제야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배운 우리들.....
참으로 좋은 동문들이 여기에 있는데
어찌 외면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 공간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이곳이 아니면
어디에 가서 선배님 같은 분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감사하며
또 감사드립니다.
김은희 선배님!
오늘 아침마당 잘 보았습니다.
방송에 절대로 나가지 않겠다던 교수님도 나오시고
언니도 아들을 위해 노래도 부르고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았습니다.
"역시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다" 라고요.
주위에서 하는 말들이
"저 인물에 저 끼에 연예인 한다고 나설 수 밖에...."라고들 하더라고요.
누구 아들인지 인물 정말 잘났습니다.
올라 온 댓글들도 노래보다 인물 칭찬이 더 먼저였지요.
아침마당이 시청률이 높아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언니도 슈퍼라도 갈 때 옷 제대로 입고 가시고요
그런데
화면으로 보니 언니 피부가 엄청 예뻤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잠 설치고 난생처음 방송국
생방송에 출연................
개인적으로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이 칠십삼세에 나로선 색다른 경험이였지
아들이 더 실력있는 프로 가수가 되길 응원하게 되더라
아버지도 ...자기는 반쪽짜리 광대였지만 아들은 온전한 광대가 될것같다고 하더라구
5승한 여자가수보다 신문기사도 많이 뜨고
티벗댓글로도 격려의 글이 많아 본인이 고무가 된듯싶어 다행스럽네
사진은 홈피가 거부를 하네...동영상도 보이려나 모르겄네.
페북이나 블로그 밴드엔 다 잘보이는데.........
은희선배님,,,저는 아침마당 프로를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 9시 조금넘어
Tv 를 보았읍니다.선배님이 노래를 부르시고 계셨습니다.
아드님위해 혼신을 다하시는 모습뵙고 가슴이 뭉쿨하였습니다.
아드님도 보았습니다. 모두 최선을 다하심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시 수영을 시작하였습니다. 선배님의 모습에서 힘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수고많으셨습니다.
.
하이구 차아암!!! 뉘집 아드님이싱가암?
시상에,,어찌 그리두 알맞게 잘 생겼는지,,,춤과함꼐 하는 노래솜씨며, 가사의 내용이며
표정관리며 어디하나 나무랄때가 없네요.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표현이랄까?
마지막에 샤악 웃는 모습이 일품입니다.
아이,,요즘엔 자꾸 아들이 가지구 싶어지는지 몰라요,,,하하하하
광고를 할까? 뉘 집에 아들이 너무 많으믄 하나 쯤? 하하ㅏ하하
은희선배님,,얼마나 흐믓하셨어요. 두분다 건강한 모습으로 테레비방송에 보이시니 참 좋읍니다.
보람이라능게 바로 그런거겠죠...근데에,,,솔찍히 말하믄 어머니꼐서 그리신 그림하구 아드님 사진하구
자세히 봉게,,빠진건 하나도 읎는데,,,아드님이 훠얼씬 잘 생기셨어요. 에헤엠,,,
산학후배님,,요즘 다움이 죽어있어서 못 들어왔읍니다.
오늘 열어보니 되네요. 그 바람에 17일 아침마당을 못 보았네요.
은희선배님의 노래부르시는 것도 못 보고,,
반가운 최재화후배님, 겅말로 건강하셔야 합니다.
어른이 되어서 안 할일들,,,절대 넘어지지 말고 미끄러지지 말고, 감기 걸리지 말고,,
아드님 결혼을 시키셨으니 이젠 자신을 위하는 일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순호후배님,,,방가방가,,,언제나 건강히 멋지게 힘차게 살고 있는것 같애요..
순호는 얼마나 컷을가요?
저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세계적?이라기 보다는 70세 할마시의 열정이?가 더 맞겠죠?
거냥 100세 때의 저의 모습,,여전히 어린 학생들과 리싸이틀에 낑겨 발표하는 인일 할마시의 모습이 용기를 주네요..
지금 생각해 보면,,이것만이 저를 절대 떠나지 않을 칭구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들 열심히 사는 모습이 다들 보기좋고,,이 인일 홈피의 위력은 모두 모인 선후배의 삶들을 통해서
서로 격려받고 도전받는 우리가 됨이 참으로 보람됩니다...
모두들 열씨미 삽시다...
정순자 선배님!
3박4일로 일본 마쓰야마로 온천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부쩍 약해지셔서 우울해 하는 엄마를 모시고 8명이 다녀온 여행으로
9살에서 89세까지
여행객들의 시선을 끈 일행이었습니다.
30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도고온천.....
우리 돈으로 입장료가 4000원인데 물이 얼마나 좋던지
지금도 제 얼굴이 매끈매끈 합니다.
비누 샴푸 등을 쓰지않고
물로만 씻었는데도 이렇게 좋다니 새삼 온천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탕안에 동상을 세운 것도 신기하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대중탕입니다.
옛날 우리동네의 대중탕을 연상시키는 나무로 만든 옷장등이 정겨운 곳입니다.
한국엔 매서운 한파가 몰아 닥치고
동경엔 폭설이 쏟아졌다는데
이곳은 우리 제주도보다 남쪽으로 영상 5도로 겨울비가 쏟아져
스타벅스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라보는 시계탑의 춤추는 인형들도 인상 깊었습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는 마쓰야마 성도
비에 젖어 아련한 멋을 은은히 풍기고 있었고요.
우리 엄마가 휠 체어를 타고 다니는데도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로
친절하고 깔끔하고 질서정연한 마쓰야마의 추억을 잔뜩 안고 돌아 왔습니다.
이제는 설을 앞두고
열심히 일만 하면 되겠지요?
마스야마성에서 .........예쁜 조카들
그러셨군요. 산학후배님, 참 잘하셨읍니다.
정말로 딸부잣집 어머님 호강하셨네요. 얼마나 흐믓하셨을가요?
돌아오니 한국이 엄청 더 춥게 느껴지겠죠?
더러 일본의 테레비를 보면,,언제나 급 변화가 없는 차분한 자기들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것 같아 평화스럽개 느껴지네요.
한번 가 보고 싶어요...
사실은 이 미국도 주민들이 도무지 자기가 사는 곳이 변화 발전 되는 것을 싫어하죠.
그래서 뭐 하나가 더 더해 질려면 공청회를 하고 그 곳의 통과를 얻어야만 할수 있곤 하지요.
그래서 관광지를 가 봐도 뭐가 희안한 것들이 있는것이 아니고 원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대자연을 즐기지요들,,
가면 제대로 된 식당하나 없이,,,조그만 매점하나에 간이식당 정도...
이러저러케 여행을 자주 하시는 모습이 참 좋읍니다.
많이 즐기시고 부디 건강하시고 다시 좀 악착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사세요,,,하하하하
정순자 선배님!
선배님같은 분이 일본을 가시면
너무 좋아하실 것 같네요.
옛 것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일본입니다.
마쓰야마 만 하더라도
전차 버스 택시 자가용 자전거가 평화롭게 다니고(물론 소도시인 까닭도 있지만)
개천에 잉어가 살 정도로 깨끗하고
담배꽁초는 물론 휴지 하나 거리에 나뒹글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행의 재미는 가족\간의 소통인 것 같습니다.
마쓰야마 성을 올라가는데 비도 오고 계단도 많으니
9살짜리 조카가 힘들어 못 올라가겠다며 울었습니다.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도 안되니 결국은 6째 고모가 업고 올라갔습니다.
그것을 본 6째의 딸인 19살 짜리가 하는 말
"나는 지원이가 너무 얄미워"
"맨날 예쁜 척만 하고 어리광만 부리니까...."
그 말에 우리는 다같이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너는 10배나 더했다" 하니
아니라고 우기며 자기가 한 일을 이야기 하라고요.
왜 듣고싶냐 했더니
이제라도 늦었지만 사과하려고 한다고요.
아이고....요것 봐라 입은 살아가지고.
송림동에서 할머니 손에 자랄 때
할아버지가 들어 오시면 인터폰에 대고 물어 봅니다.
"내 햄버거 사왔어?"
깜빡 잊고 못 사왔다 라면
난리가 나고
손녀라면 죽고 못사는 우리 아버지
다시 동인천까지 가셔서 햄버거를 사 들곤 들어 오시곤 했습니다.
어느 하루는 꽃박람회를 갔습니다.
"꽃이 너무 예쁘다" 라는 정지운아빠의 감탄사에
지운이가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더니
"그럼 아빠는 지운이보다 꽃이 더 예쁘다는 말이야" 하더라고요.
5살 아이의 깜찍한 항변에 다들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운이 아빠가 장모님에게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니! 아무래도 어머님이 지운이를 잘못 키운신 것 같아요"
그랬던 아이가 이제는 컸다고
예쁜 척 하는 동생 도지원이가 얄밉다고 하니 다들 웃을 수 밖에요.
"너 할아버지께 어떻게 사과를 할래?" 했더니
"할 수 없지? 안 계시니 대신 할머니에게 잘해야지..."
세상이 돌고 돕니다.
하하하하 정말로 가족얘기가 재미있네요.
아이들이 어찌 그리도 귀여운가요...샘,,꼭 두 형제자매사이에서 비교하면서 부리는 샘,,,
근데 그게 얼마나 갸들에게는 심각한지요..
얼마나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열망이 아빠가 꽃을 예쁘다고 했다고...하하하하
저도 두 딸들을 키워봤지만,,,꼭 둘이 비교를 하며,,작은 아이는 얌체노릇은 혼자 다 하고도
무사통과?같은 막내로서의 혜택? 큰 아이가 보기에는 너무 얄밉고,,모두들 그 아이를 더 귀여워 하는것 같고,,등등,,
가족속에서 자라는 야이들 얘기 참 재미있네요...
정순자 선배님!
이모티콘이 너무 귀엽 고 예쁩니다.
그리고 살다 보니
우리의 옛날 풍습 대가족 제도가 좋은 점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습니다.
함께 살면
현재의 노인문제 즉 고독사 등은 없어지지 않을까요.
물론 아이들의 육아문제도 저절로 해결이 나고요.
우리집은
4살짜리 조카가 잘못을 해서 자기 엄마에게 야단을 맞으면
옆에서 보고있던 9살짜리 이모가 먼저 울어서 야단을 못 친답 니다.
그러면
4살짜리가 9살짜리 이모에게 다가와
눈물을 닦아주며
"이모 울지마. 내가 이제 부터는 엄마 말 잘 들을께" 합니다.
얼마나 웃기는지요...
아이들의 세계는 너무 예쁩니다.
9 살짜리 이모?라니 전혀 짐작이 안 가네요?
이모면 엄마의 여형제 아닝가요? 그럼 엄마는 결혼해서 4살짜리 아이가 있고
9살짜리 여동생도 있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다른 여형제의 딸이니 머 사촌이모인가요? 하하하하
그렇네요, 정말로 대가족제라면 그런 현대적 문제들이 다 말끔히 해결이 되네요.
근데ㅔ,,,사실인 즉슨,,그너메 현대교육이 사람을 아주 개인적인 사고방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가족중에 현대 교육을 받은 여자들이 들어와서 그렇게 살려고 해야 말이죠?
그런들 저는 항상 생각이 한국이 그토록 급속히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변한것은 아파트문화가 도입되면서라고 생각해요.
꿈에도 그리던 현대적 삶을 살수있는 보금자리를 거금을 들여 갖고보니,,
거기에는 방이 세개, 거실,,,들뜬 마음으로 방하나씩 차지하여 개성을 담아 꾸며내다 봉게,,
거기에 어디 노부모들이 낑겨 며칠인들 지낼 공간이 있겠어요?
거기다가 침대까지 놓으니,,도무지 없디요..
또 투기 겸해서 값이 천정부지라 자기들 힘으로 도저히 마련을 못하니
자꾸 부모 돈이나 바라고 탐내고,,하면서 인간미가 없어지는것이라고 생각해요.
거기다가 현대생활은 갖고 싶은게 너무 많잖아요. 자동차며,,,사치품이며
남들과 비교의식하며 갖춰야 하는 문화니,,,
예전에 쪽방 삭월세 전세에서 시작하며 쌀한줌 콩나물 한줌이라도 애껴서
둘이 죽어라 애들까지 키우며 늘쿼가며,,자신들은 째지게 어려워도 또 할 도리는 다 챙겨야 했던 지난 분들,,
한 마디로 세상이 뒤비진거죠,,,그러니 그 후유증으무도 많은 문제가 온다고 생각되네요...
희생은 절대로 못하는 현대사람들,,,,,,,,,,,,하하하하하
늘 그렇지요.
세상살이 라는 것이
고생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 열매를 힘 안들이고 똑똑 따 먹는 사람이 따로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하는데
요즈음 현대인들은 이기심에 꽉 차 절대로 자기를 희생하려 하지 않으니 걱정입니다.
얼마 전
시인 김지하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세종대왕을 꼽았는데
요즈음 다시 생각을 해 보니 박정희 대통령을 꼽을 수 밖에 없다고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세계 최빈국에서 10위 안에 들게 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준 인물이기 때문이라고요.
아시다싶이
우리는 북한보다 못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 던지게 해 준 분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어쩔 수 없다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의 지혜와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편하게 살고 있고
그것을 깬 분이기에 최고로 위대한 인물이라고 김지하 시인은 주장합니다.
김지하 시인이야 말로
박정희 시대에 반정부운동으로 사형선고 받은 분이 아닌가요?
물론 그 당시 고문등으로 공황장애 등 숱한 병을 얻어 지금도 힘들어 하지만
그런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누구나 다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살 때
우리 사회도 건강해집니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희생을 하며 살았기에
그것을 보고 자란 자식들이 우애있게 사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엄마는 20살에 첫딸인 나를 낳고 46살에 우리 막내 남동생을 낳았기에
나와 막내의 나이차가 24년으로
용띠가 두번 돌아 용띠로 끝맺음을 하셨습 니다.
그러니 9살짜리 이모가 생긴 것입니다.
딸들이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들이 결혼을 해 또 자식을 낳으니
이모 조카들이 같이 어울려 노는 풍경이 펼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무리 어려도 명칭을 헷갈리지 않고 부른다는 사실입니다.
옛날엔 우리집 같은 집이 많았다는데
점점 사라지는 대가족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합니다.
세상살이라는 것....그 자체가 커다란 제목이 되어 글이 써질수도 있겠네요.
고생고생 하는 사람 따로 있고..그 열매를 똑똑 따먹는 사람 따로 있고...하하하하
그 표현만으로도 많이 위로가 되네요.
숫한 희생을 감수해가며 숫한 도움을 줬건만, 전혀 알아주는/감사하는 마음을 못 느낄떄
아렷던 저의 마음들이 위로가 되네요.. 그것은 저만 당한것이 아니고 큰 진리라는 것을,,
이맹큼 살고 보니 깨달음이라는 것이 생겨요.
재물을 그토록 모을려고 온갖 에너지를 다 부어 긁어 모으지만,,
사실상 하루 삼시세끼 먹는 것을 너무 잘 먹어도 부자병이 걸릴것이고,
좀 더 넉넉히 잘 먹고 잘 입고 살겠지만,,,본인이 세상을 떠난 후의 재산은 대부분이
엉뚱하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버리는 것을 많이 보게 되더라라고.
크게 살다보면 가족관계도 복잡해지고, 머리 터지게 재산싸움을 하다보면....
그런것을 진작에 듣고 보고 배우고 꺠달았더라면,,아마 그 본인도 좀 더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가 싶네요.
마치 자손 몇대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왕국을 이루고 살게 하기 위해 그토록 갖은 수단방법 안 가려가며
그럴 필요가 있었을가요?
참으로 그 가난이라는 것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 무단히 노력해 온 한국의 발전은 기적이라 아니할수 없지요.
옥의 티라고, 추구하는 방향이 그렇다보니 인간성의 결여...물질지상주의,,,성공지상주의등등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요상한 방향으로 돌아가 버리니,,선한 사람들이 실망을 하게 되는 거지요.
또한 자라나는 어린/젊은이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 가치관의 혼돈등이 염려되지요.
특히 테레비에서 여과 없이 노골적으로 쏟아내는 언어표현들이 얼굴이 붉혀지고.
그것을 들을 아이들이 받을 상처가,,참 요즘 아이들 불쌍하다.
우리떄는 비록 어려웠어도..상상이 있었고, 동경심도 있었고,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있었는데...싶은 아쉬움이 있어요.
어느분의 말이 독재자도 나쁘고 부패한 정국도 어려렵고...한들,,,제일 무서운 것은 무정부라고 하더라고요.
그토록 어려운 정치들을 왜?들 저렇게 머리가 터지게 하려하나? 라고 의문도 들지만..
다들 나같이 치사하지 않고 용감하게 하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참 고맙다라는 생각도 해 보았읍니다.
정치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 결코 결점이 없을수가 없는 모냥입니다.
어떤때는 만일 내가 임금님이라면..그 많은 신하들이 조아리며 각각 다른 제안을 할때,
나는 과연 궁안에서만 갇혀사는 입장에서 옳은 판단을 내릴수 있을가?
또 과연 나의 판단이 또 모두에게 옳을가? 라는 상대적인 생각을 할때 영판 자신이 없어지더군요.
아 그래서 나이가 들면 저절로 상대를 보는 중용이라는 것이 늘게 되는구나 싶네요.
들려주시는 대가족 얘기 너무 너무 재맛고요.
저희도 옛날 고향 얘기에 아주 나이어린 할아버지벌도 있고 삼촌벌도 있다는 얘기 들었어요.
그런들 나이와 상관없이 서열대로 호칭을 깍듯이 부르며 지낸다더라구요.
특히 직계에서 형의 배우자가 나이가 어려도 나이 많은 아랫배우자가 깍듯이 형님으로 모신다고.
아무튼 그 댁의 아이들은 풍부한 인간미가 넘치는 대가족에서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는 축복받은 아이들이네요.
"음악은 음표 안에 있지 않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 안에 있다"
모차르트가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세계를 알아차린 모차르트는 정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입니다.
음악은 음표가 아닌 그 사이의 침묵이라고요.
이 이야기는
인간의 세계도 이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즉 관계론 "인연" 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그 중에서
가장 단순한 인연이 가족이라는 이름이고요.
그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 때
더 나아가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다들 하나만 낳으니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된다 봅니다.
아이 하나에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4명이 바라보고 있으니....
당연히 아이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없고 자기만 아는 아이로 성장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개인주의로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아름다운 인연도 마다하고
혼자 사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이유도 그런 곳에 있지 않을까요?
차라리
어려웠던 60년대 시절
한 방에 여러명이 지지고 볶으며 살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우리집은 봉숭아 물들일 즈음이면
꼭 한바탕 난리가 나곤 했습니다.
엄마가 마당의 봉숭아 꽃을 뜯어 백반을 섞어 절구에 콩콩 찌어서는
자기 전에 순서대로 손톱에 물을 들여줍니다
봉숭아 이파리로 손가락을 곱게 싸서는
굵은 실로 칭칭 동여 매 주면
행여 풀러질까 얌전히 잠을 잡 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누군가의 손가락에서 빠진 봉숭아가 나뒹글고 있으니...
며칠 전 싸운 화풀이로 자는 사이에 몰래 빼 버린 것이랍니다.
당연히 씩씩대며 한바탕 싸움이 나고....
우리는 그렇게 부대끼며 인연을 키워 왔습니다.
-음악은 음표안에 있지 않고 음표와 음표와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 안에 있다-?
와ㅏㅏ 어찌 그런 말을 할수 있을가?
그 말 자체로도 모짜르트가 갑자기 그가 음악이 아니었다믄 철학자도 될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그런 생각으로 썼기에 그의 음악안에 형언할수 없는 표현들이 숨어있나 봅니다.
혼자 자라는 아이가 남을 배려함이 적다는 것을 근자로 경험하였어요.
공적이 아닌 사적인 차원의 가정 카운슬링?을 하는 관계인데,,
저에게도 또는 남에게도 엄청 사랑스럽고 인정스럽게 잘 하고
아주 귀엽고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수단가이고 뭐 나무랄데가 없는데,
재혼인 결혼생활에서 남편과의 관계가 전혀 원만치를 않는데,
그 내막을 들으며 짐작컨데, 뭐든지 나의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여.
상대방에게는 전혀 틈을 주지 않는 거예요.
본인은 상대방에게 결코 용납 안 하고 닥달하며 싸우던 것을
자신이 도루 다 하면서 상대방은 왜? 그러냐는 식으로,,,
문제가 많더라고요.
본인도 저의 조언에 어쩜 사모님은 보시지도 않고 들여다 보듯 알고 말씀을 하시냐고? 하면서
엄청 고마워하고 그때마다 무척 노력을 하면서도 본인도 이길수 없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에 지쳐 있다고나 할가요?
그런것을 보면 역시 우리가 대가족 속에서 서로 부댓기며 사는 중에 배운것들이 어떤 교육 보다도 나은 것이지요.
또 그 분 엄마만 해도 신여성에 속하여 자기 하고자븐것 다 하고 살며 패기 넘치게 살다보니
여식에게 삶을 통한 올바른 충고를 전혀 못 해준거죠.
사위가 내 딸한테 잘 못하면 당장 달려가서,,,,,,,,라는 식의 ,,,,
현대적 학교 교육은 자존감, 자존심은 가르치나 절대로 인간성을 가르치질 않는 오류를 범해 온것 같아요.
대가족속의 봉숭아 들이는 얘기 너무 재밋어요.
사실 그 옛날, 아랫목에 큰 요, 이불 펴 놓고 함께 둘러 앉아 있으면,
늦게 들어온 언니,,,이불속으로 들어와 그 중 제일 발이 따듯한 형제에게 들이대면
차갑다고 소리지르며 발을 빼며 또 깔깔대며...
그런 추억을 먹고 살은 우리가 아니겠어요?
추억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같이 먹던 음식입니다.
어릴 적 자식이 많으니
아침은 맨날 전쟁이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아침이면 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벼 숟가락만 꽂아 넣으면 우리의 아침은 해결이 되었습니다.
김치 송송 썰고
콩나물을 무쳐서 참기름 듬뿍 넣고 비볐는데
우리는 질리지도 않고 경쟁하면서 게눈 감추듯 먹어댔습니다.
그리고 머리 빗고
도시락 하나씩 챙겨 학교를 가곤 했지요.
당신 평생을 도시락을 쌌다는 우리 엄마는
건강을 잃으면서
제일 먼저 걱정이 막내아들 음식 걱정이었습니다.
집에서 기름 바르고 소금 솔솔 뿌려 불에 직접 구운 김만을 먹는 아들에게
그리고 엄마가 해 주는 깍두기만을 고집하는 아들에게
그것을 못 해 주는 것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리고는 누나들이 엄마 대신 해 주었으면 했지만
누가 해도 엄마 맛은 아니라서 우리 엄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지금도 깍두기를 하면 막내 동생 것을 꼭 챙깁니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막내네 자식들이 자기 아빠를 닮아 김과 깍두기를 엄청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몸이 아프면
그 옛날 우리 엄마가 해 준 콩나물 비빔밥이 생각납니다.
한 그릇 뚝딱 먹으면 벌떡 일어 날 것만 같고요.
이제 며칠 후면
명절입니다.
음식을 하나 둘 준비하면서
옛날 생각이 소록소록 납니다.
요즈음 나는 김치찌개에 꽂혀서....
겨울이면
다른 것 하나도 필요없지
흰 쌀밥에
파래 김
김치찌개만 있으면 돼
푹 익은 김장김치에
설탕 한 스푼 넣고
김치가 푹 무를 정도로 끓이고
살짝 구운 파래 김은
육등분으로 자르고
간장에 식초 넣고
깨소금 솔솔 뿌려
식초 간장 만들어서
김 한장에
기름이 잘잘 흐르는 흰 쌀밥을 얹고
돌돌 말아
식초 간장에 콕 찍어
입에 넣고
김치찌개를 곁들인다.
입안에서 번지는
바다를 머금은
파래의 향
이 바다의 향기를
김치찌개의 얼큰함을
어디에다 비할까?
파래 김이 있고
얼큰한 김치찌개가 있는 겨울
그래서 겨울이 좋다.
도산학 후배님~~~
바로 위에서 친구 은희의 글을 읽고
이제서야 산학 후배님의 글로 찾아 왔어요.
너무나도 오랜만이죠?
만나서 얼굴 보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는 이벤트(?)도 좋지만
오늘 이렇게 산학 후배님의 속마음이 후련히 가라앉는 것 같은
매끄러운 글과 시를 읽으니 좀 더 일찍 홈피를 열어 봤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맏딸로 자라면서
부모님에 대한 효심과 형제들간의 우애 속에서
삶의 폭을 한없이 넓혀 나갔을 것만 같은
산학 후배님의 사람됨됨이 큰 그릇의 가녀린 몸집에
피와 살이 되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동문님들과의 답글 대화속에서도
넘치는 사랑과 존경의 기품이 가식없이
피어 나는 것을 보며 나는 감동 감탄합니다.
작은 스마트폰에 의존하다 보니 큰 모니터의 홈피와
오랫동안 떨어져 생활하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불현듯 홈피 로그인 위해 클릭하자
패스워드조차 깜깜하네요. 그 답답함이라니...
다행히도 세 번째 시도로 오픈 성공했답니다.
도산학~~ 이렇게 답글을 작성하다보니
그동안 못 만났었던 시간과 미안한 마음이
살며시 사그러 들며 정겨운 마음이 됩니다. 반갑고.
매운 날씨가 계속돼 산행도 몇주 쉬고
집에서 모처럼 잡채를 큰 볼에다 무쳐 맛있게 걷어 먹었답니다.
구정 쇨준비도 해보면서...
봄이 저만치서 와 성큼 다가서면 그땐 얼굴봐요.
조영선 선배님!
오랫만에 불러보는 이름입니다.
실상은 선배님의 미소를 본지가 오래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미소는
잠깐 밖에 스치지 않지만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있기 때문에
조영선 선배님....하면 미소 띤 얼굴이 먼저 떠 오릅니다.
얼마전
문득 선배님이 궁금해서
같이 합창하는 분에게 물었더니
"여전히 열심이고 정열적이지" 라고 근황을 들려 주었습니다.
합창단을 이끌고
합창단 홈페이지에 적극적으로 답글을 달고
거기에 악기까지 새로 배운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요.
실상은 언젠가 모임에서 수다를 떨 때
선배님과 저만이 음악을 못 해서 유정희 선생님이 제일 무섭다고 했는데
그런데 이제는 음악 속에서 살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일이래요?
노래를 아는 것도 없어 맨날 "등대지기"만 불렀는데
이제 세월이 흘러
노래를 못 하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네요.
여하튼 선배님의 정열과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시들해져 가고 만사가 귀찮은 법인데
여전히 소녀같은 미소를 잃지 않고 정열적으로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한번 만나서
강의라도 들어야 겠습니다.
정말
며칠 후면 명절입니다.
음식 솜씨도 출중하니 상차림은 걱정도 안 하실테고
명절 지나고 꼭 한번 만나야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벌써 또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유난히 힘들었던 한 해
무서운 사건도 많았고 안타까운 사연도 유난히 많았습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하늘이 차마 천사와 악마를 만들지 못 해
인간을 통해 그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요.
이런 혼란함 속에서도
그저 하루를 감사하다 하며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한 해를 보내며 큰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