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푹푹 찌든 폭염에
시달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추석이 지나고
벌써 산에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더니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벌써 가을이다.
시간은 우리네 생각과 달리 빨리 지나간다.
가을인가 했더니
벌써 첫눈이 오고
12월 이라니,
2018년도 모든 시름을 안고 긴 꼬리를 감추고 있다.
무엇을 하고 삼백여일이 지난 줄도 모른 채 살아 왔을까?
벌써 한 해를 갈무리하는 김장철이 다가왔다.
일년내내 준비해야 하는 김장.....
마늘 사서 까 놓아야 하고
고추는 사서 잘 말려야하니 손이 이만저만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친정동네는 옛날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는 정많은 동네 송림동 샛골이라
우리 엄마가 이번엔 힘들어서 못 말리겠다고 하면 난리가 난다
사다 놓기만 하면 골목에 좍 펴서 너나없이 말려주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덕분에 고추는 무조건 태양초이다.
실상 나는 평생을 김장을 하지않고 살아왔다.
매해 친정엄마가 해 주니 걱정이 없고
더 더군다나 맛이 좋으니 모든 식구들이 엄마의 김치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다.
엄마에게 김치 담그는 솜씨가 최고라 하면
우리 엄마 하시는 말이
"음식은 많이 해야 맛있는 법이다.
많이 해야 제 물에 서로 섞이고 어우러져 맛을 내니
음식은 솜씨가 아니라고....."
원래 식구가 많고 딸들 다 퍼 주어야 하니 많이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한번은 내 친구가 김치가 똑 떨어졌다 해서 몇 포기 가져간 적이 있는데
남편이 이 친구네 김치는 이럻게 맛이 있는데
너는 김치를 손으로 하지 읺고 발로 담그냐고 퉁박을 주길래
이 김치 산학이가 한 것이 아니고 산학이 엄마가 한 것이라며
다음부터는 절대로 너네 김치 안 가져 갈 거라고 하니 얼마나 우습던지.....
그러나 이것도 벌써 옛일로
엄마가 허리수술 두번 끝에 걷지를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니
김장은 엄두도 못 낼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죽으란 법은 없는지
동생네 사돈들이 형제분이 많으니 나누어 먹으라고 넉넉하게 보내니 더 무슨 말을 할까?
사이다처럼 톡 쏘고
한잎 쭉 찢어 입에 넣으면 속이 뻥 뚫리는 김장김치.....
김장은 솜씨가 아니고
나누는 마음이라는 말이 참이다.
미국에 사는 내 친구는
세살짜리 손녀딸이 할머니 김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손녀를 위해 김치를 담그는 일이 너무 행복하단다.
김치를 해서 보내주면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넣어
과자처럼 들고 다니며 먹는다니...
이런 아기가 얼마나 대견하고 예쁠까?
꿈도 없는 긴밤을 깨고 일어나니
김춘자 선배님의 반가운 글이 올라와 있네요.
매번 선배님이 올리신 글은 보고 있습니다.
주위의 많은 좋은 동문들의 격려와 관심을 보면서
상식조차 없는 저는 조심스러워 자제하며 지켜보고만 있었답니다.
분명 하늘이 무심치 않아 좋은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대하고 보니
오늘이 제일 소중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됩니다.
얼마전 김포 은희언니네 에서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바쁜 일정임에도
은희언니네서 점심을 하기로 했는데
희순이언니가 인천까지 달려가 유정희 선생님을 아무도 모르게 모셔왔습니다.
선배님이 유정희 선생님을 부여안고 엉엉 울고
그 와중에도 큰절을 올렸지요.
멍하니 서있던 유영희 선배님이랑 임경선 선배님등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솜씨좋은 은희언니의 음식이 나오자
언제 울었냐는 듯 싹싹 비우고
유정희 선생님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인일여고생 아니랄까 봐 화음이 척척 맞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선배님은 유정희 선생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더라고요.
생각나시지요?
그 때가 너무 아름답고 행복했습니다.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한번 우리 그날처럼 뭉쳐요.
그깢 국수말이 메밀묵이 대수겠습니까?
선배님이 오늘따라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감기가 좀 와서 무엿을 먹고 잤더니
목에 있던 가래가 없어졌네...
산학후배의 자상스럽게 쓴 글을 읽으며
그 때 그 자리, 은희언니의 그 정성스럽게 차린 상이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지면서 그 꽃게찜이 너무 먹고싶어요..
여기 미국엔 꽃게가 없어요.
냉동을 사다 꽃게탕을 해보니 살도 없고 싱싱하지도 않고...
유정희선생님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이제 내가 병들어 투병생활을 하게되니
지난 세월이 많이 후회되고 내가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산학후배는 늘 맛갈스런 글로 사람의 마음에 큰 감동을 주지요.
오늘 또 항암치료 받으러 갑니다.
은희언니도 늘 건강하세요..
산학아~
춘자후배 글 때문에 눈물 났다더니
"김장김치"가 제목이였구나.
우리집도 올해는 내가 어깨 다쳐 김장을 못 할줄 알았는데
그냥 용기내서 했단다.
두 아들애가 모든 것을 해 내어서 열 세통이나 해놓았네.
강화 풍물시장에서 잔굴을 사고 단골 할머니네 무, 등등 채소구입하고 해서
그런대로 마무리를 잘해냈어요.
가을 꽃게무침으로 자리를 함께 했었으니
시간 나면 김장김치로 한번더 밥을 먹어야겠다.
춘자 후배도 내년엔 한국에 나와서
산학이랑 정답게 만나길 바라네.
김은희 선배님!
올 한해는 악몽이었습니다.
갑자기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투병생활을 하셨으니까요.
특히 올 여름은 지독한 폭염이었으니 더 말 해 무엇할까요.
여기 저기 다치는 바람에 모든 주위분들께 신세를 진 일이 많아
절대로 면회도 오지 말라 하셨지요.
이제 겨우 회복되었음에도 손가락부터 안 아픈 곳이 없다 하셨음에도
김장을 하셨네요.
엄마를 닮아
노래도 잘 하고 음식도 수준급인 아들들!
급하니 다들 팔 걷고 나섰으니
요즘 세상에 드문 효자 아들들을 두셨습니다.
얼른 얼른 나으셔서
솜씨 좋은 선배님의 음식을 맛볼 날을 기대하렵니다
이제 사고는 끝이지요?
아파트 단지내 헬스장에서 런닝머신하다 넘어졌다누....
내가 칠십삼세 노인이라는걸 자꾸 잊나봐
내 자신을 너무 과신해서 속도를 젊은이들처럼 높이다가
꽈당 했어요......순식간에....~!
나 다치기 몇달전엔 젊은 엄마가 넘어져서 두개골 골절로 아직도 고생한다더라구
지금 마음은 식구들 더 고생 안시키게된걸 감사하네.
운동기구도 단순한 기계가 아닌걸 다치고나니 알게 되였어요.
춘자도 키모도 잘 견디고 경과도 좋아진다니 더욱 화이팅 하기를 바라네.
나도 친구 만나러 미국을 더 늙기전에 가보길 소원하고 있어요.
거의 육십여년이 되오는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 가보고싶거든
될 수 있으면 아들도 데리고 가서 잘 놀고 오고싶어요
이곳엔 주부노래교실이 엄청 활성화 되어 있어서
곳곳에 있다하더라구.....집귀신인 나는 부럽더라구
이렇게 답답한 세상의 스트레스를 푸는 여성동지들의 모습
아들도 같이 잘 놀더라.......ㅎㅎㅎ(가을 소풍을 갔는데 비가 와서 실내에서 뒤엉켜 노는 모습)
춘자도 잘 노는 스타자녀~!
산학이 덕분에 인일홈피에 나타난다마는
이젠 페이스북만 한지도 아들애 펜들과의 교류로 3년이 되였네
여튼.....젊은이들과 소통하니 나도 젊은 기를 받아좋고
오늘은 새로운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구
김장 이야기는 아니란다.
내가 오래전 유투브에 그냥 동영상 만들기위해 내 방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오늘 유투브에서 젊은이의 댓글이 날라와 들어가보니
조회수가 만삼천이 가까워 감짝 놀랐네. 구독자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더라.
전혀 생각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지금은 유투버 세상이라니 한번 도전해볼까 싶기도하고 ......ㅎㅎ
인일홈피는 유투브 소스를 퍼와야해서 그렇긴한데 한번 올려보마
작년 여름에 제고6회 인경석씨 고향 덕적도에서 찍은 사진들이거든
스마트폰으론 화면이 작아도 깨끗하게 보이더라.
누구보다도
젊게 사는 은희 선 배님!
유투브에 도전하겠다 하시니 정말 멋지십니다.
얼마전 최순실의 태블릿 피시가 문제가 되었을 때
제가 언니에게 태블릿 피시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설명을 해 주면서 언니는 벌써 사용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에니메이션에 종사하고 있는 따님이
엄마 그림 그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사서 선물을 했답니다.
그리고 따님에게 배운지 몇달이 되었다며
자유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제 사진을 태블릿 피시로 다시 그려 올려 주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갑자기 멋있어진 내 모습이 믿기지 않았으니까요.
은희 언니는 복이 많으셔요.
이런 효녀 딸을 두셨으니까요.
아빠때문에 꼼짝 못하는 엄마를 위해
태블릿 피시를 사고 그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지혜로운 딸을 곁에 두셨으니까요
걱정마시고 유투브에 도전하셔요.
주위에 따님같은 고수들이 버티고 있잖아요!
이 글을 쓰기 전에
은희 언니 블러그에 들어가 예전에 올리신 그림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역시 생기가 넘치더라고요.
화이팅 입니다.
김춘자 선배님!
오늘도 항암치료로 힘든 하루를 보내셨네요
고생많으셨지요?
이런 시가 있어
다시 한번 되뇌어 봅니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은 것을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무산스님의 아득한 성자"
욕심없이 하루만 살다가는 하루살이가
도 닦는 스님보다도 오히려 성자 라는 시입니다.
참말로 오랫만이야 산학아 ~~
어젠 오랫만에 배추 한 박스와 무 반 박스를
욕심나서 사와서는 언제 저걸 하지?
요즘은 이래저래 김장을 안하고 사먹고 얻어먹고 했어.
정말 몇 년만에 김장김치를 담글려고 했지.
어젯밤에 온도가 2 자리로 떨어진다해서
새벽 두 시에 부랴부랴 반 박스 절구고 잠자리에 들었어.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슬슬 준비하곤
오후 4 시가 넘어서야 김칫통으로 한 통이 나왔어.
파란잎이 엄청많고 속은 도르스레한 것이 고소하네.
막상 모처럼 내 손으로 해놓으니
맘도 뿌듯하고 대견해서...헌데 맛이 큰 문제 ㅎㅎㅎ
애기열무총각도 탐나서 세 뭉치 샀는데
고넘이 가라지에서 춥다고 떨고 있네? ㅋㅋㅋ
얼기 전에 마저 얼른 다듬어야겠다.
잠시 커피들고 들어와
김치박사님 맏따님, 산학친구에게 깨알 지자랑하고 간다.
오늘 하루도 건강하고 행복하여라~!
보고싶은 인선아!
잘 지내고 있지?
어쩌다 영수도 만 나고 명제도 만나면
괜히 네가 곁에 같이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잘 익은 김장김치 통째로 올려놓고 죽죽 손으로 찢어서 같이 밥 한번 먹고싶다
한국인의 유전자라고 하면 김치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단다.
한국도 한번도 안 온 혜원이네 손녀딸을 보면 정말 유전자의 힘을 느낀단다.
세살짜리가
김치통을 들고 다니며 과자처럼 꺼내서 먹고 다닌다고 하니 신기하지.
물론 밥도 잘 먹고
뉴스도 코리안 뉴스만 틀어 달라고 한다니 더 무슨 말을 할까?
우리 엄마 김치박사가 아니야.
그러나 음식은 많이 해서 같이 먹어야 맛나다는 말씀은 진리가 아닐런지.
같이 먹는 밥 ....
우리 남편이 가고 나서 내가 혼자 밥 을 먹는데
우리 아들이 "이제부터 우리 엄마 혼자 밥 먹어야 하네" 하는 말에 눈물이 그냥 쏟아지더라고.
옛날 학창시절
커다란 양푼에 콩나물 밥을 하나 가득해서 둘러앉아 먹던 그 맛....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지금도 몸이 아프면 꼭 생각나는 음식이지.
분명 이번 너희 집 김장김치 맛있을거야.
우리 며느리가 나보다도 포기김치를 더 잘해먹고
또 전라도의 맛난 맛이라서 아들집에 가면 맛나게 먹고와.
친정엄니가 전남 광주이시고, 며늘은 12 살에 이민을 왔거든.
"어머니, 김치 좀 싸드릴까요?"
"그럴래." 하다가 남편한테 한소리 듣고...ㅎㅎ
"야~남들은 시어마씨가 김치해서 아들집에 갖다준다더만 넌 양심도 없나."
해서 며늘에게 됐다, 담에 와서 또 먹을게.ㅋㅋㅋ
애기열무인 줄로 알고 산 것이
갑자기 눈이 내리고 추워서 못자란 무를 뽑고, 겉줄기를 다 떼어낸 것인가봐.
고것이 오히려 더 맛날것 같구먼.
다아 ~해놓고나니 마음이 푸근해지고
안먹어도 배부른것 같아.
김장이라고 준비하면서 옛날 생각도 많이 나더라구.
가을이면 김장한다고 배추랑 무를
몇 접씩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것이
학교다녀오면 보이는 것이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생각 ㅎㅎㅎ
엄마가 외삼촌이 하시던 고아원 것까지
다 해주시느라고 시장에 떨이로 몽땅 사오셔서는
온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서 하시는 뒷치닥거리며...
그때는 끔찍했었는데 이젠 추억으로 남네.
명제, 영수랑 가끔씩 만나면서 지내누나?
모두들에게 많이 미안해.
다음에 모두들 만나면 미안하다고 전해주셔.
새로운 월욜 아침과 하루종일
기쁘고, 즐겁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다 !
인선아!
고아원을 운영하시던 외삼촌네 김장까지
몽땅하셨다는 너의 친정어머니
학교에서 귀가하다 배추더미만 보아도 끔찍해 도망가고 싶었다는 너의 어린시절이 그림같이 그려진다.
네가 유난히 넉넉한 품성을 지녔다 했더니
친정엄마를 꼭 닮았구나.
요즈음은 각박한 시절이라
더 더군다나 넉넉한 너희 친정엄머니 같은 분은 찾아 보기도 힘들잖니?
몇 접씩 하셨던 김장만큼이나 자식들이 잘 되었으니
다 어머니의 공덕이 아닐런지?
먼 데 살아도
어쩜 그런 며느리를 곁에 두고 살까?
어머니의 공덕이 대를 두고 내려온다.
내가 조금 힘들어도 베풀고 살면
그 빛이 대대로 내려온다는 평범한 진리는 우리는 외면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너의 친구 명제는
요즈음 외손녀 재롱에 푹 빠져 있고
영수는 성당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녀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으니
친구라고 해도 존경할 수 밖에,
네 말 꼭 전해줄께
우리 아프지 말고
잘 지내자.
안녕.....
산학후배님, 정말로 오래간만입니다.
김장김치라는 제목으로,,,하하하하하
김장땀시 참으로 한국여성들 고생 무지 하지만,,또한 한국만이 있는 특수한 전통으로
그 무서운 겨울을, 그 무서운 어렵던 시절을 그래도 김장이란 특별한 지혜로
그 대가족들이 무사히 그 긴 역사를 버텨오지 않았나 싶네요.
그 긴 겨울에도 신선한? 야채를 먹을수 있었던 지혜는 정말로 우리 조상들의 우수함입니다.
지금같으면 소매 썩썩 걷어부치고 도움울 줬겠건만, 그 철없던 시절,
아랫목에 앉아 손은 엉덩이 밑에 깔고 쳐다만 봤던 철딱서니가 지금의 저 입니다.
그 바람에 일도 지지리도 못 배웠으니 고생 좀 했지요.
또한 고생은 말도 못하게 많지만 그렇게 모여서 하는 음식 준비에서 오가는 정이라는 것,,
결코 물질로 살수 없는것..
건강하시죠? 부디 하루하루 기쁘게 사시며 건강하세요.
저는 근자로 우리 이이의 말년 놀이터?를 짓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허나 너무 지칠때, 부쩍 기운을 일으키며,,아이고 이토록 능력있게 살게 해 주셔서 가암사 합니다.
하며 기염을 토하면 또 기운이 불끈 나데요...하하하하하
그래서 흔히들 도를 튼 분들 말씀이 천국/극낙은 네 안에 있느니라,,,라고 하시는가봐요.
좋은 성탄 보내시고 새해에는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이 방에 들어온 모든 인일분들도 모두요ㅗㅗㅗㅗ
그리운 이름!
정순자 선배님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그동안 무얼 하고 살았는지
바쁜 일도 없었음에도 문자 한 번 전하지 못 한 저의 게으름을 용서해 주십시오.
편안하셨지요?
늘상 느끼는 일이지만
재주가 아무리 출중해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선배님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피아노에 이어 집짓기에 두 분이 매진하신다니
꿈을 꾸는 아름다운 집을 언젠가는 한번쯤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어제는 동지라고
새해는 중동지 이라고들 하네요.
어느 여류시인이 쓴 " 한 허리를 베어내어 님 오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하던
그 싯구절 처럼 밤이 제일 긴 날입니다.
절에서는 한 해의 액을 물리친다는 개념으로 팥죽을 쑤어 먹었습니다.
팥죽엔 배추 김치 사이사이에 넣어 놓은 무섞박지가 제격이지요.
시원한 김치국물과 함께 내 놓는 무 섞박지의 시원한 맛
일품이랄 수 밖에요.
돌이켜 보면 인간의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맛나게 먹던 습관이 우리들 유전자에 녹아서 몇백년을 녹아 들어서
아무리 먼 곳에 살아도
한번도 접해보지 않았어도 찾게 되니
우리 선인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음식입니다.
만약 일년 열두달 스테이크를 좋아한다고 매일 먹으라고 하면 과연 먹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김치는 한끼만 안 먹어도 안 됩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져도
김치가 없으면 안 되잖아요?
너무 먼곳에 계신 선배님께
김치 타령을 너무 많이 했을까요?
죄송합니다.
천국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 속에 있다는 말씀이 콕 박히는 아침입니다.
산학 후배!
글이 사람을 마음을 감동시키는 반면
반성하게 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걸
오늘 아침 새삼 깨닫게 되네요.
바쁘고 스마트폰 핑게로 가끔씩 들어와 보는
홈피를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
세월은 가거라 하며 이일 저일 두서없이
지냈었던 한 해였답니다.
기쁜일도 많았지만 여동생을 하늘 나라로 보내는
마음 아림도 있었고요.
신학 후배의 글 속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 삶의 순간순간의 경이로움이 그대로 담겨 있으니
그만큼 오색찬란한 산학의 일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감사함도 담겨 있답니다.
언제보아도 변하지 않는 갓 태어난 아기같은 순수한 모습에
정신없이 한 해를 보냈던 마음이 비로소 잔잔한 호수물처럼
고요해짐을 알아 차립니다.
"음식은 많이 해야 맛있는 법이다.
많이 해야 제 물에 서로 섞이고 어우러져 맛을 내니
음식은 솜씨가 아니라고....."
산학 후배님의 친정 어머니 말씀처럼
어우러진 맛... 감명 깊어지는 명언 이십니다.
그 연세에도 지난 가을 예쁜 물고기를 바느질 해주셨었던
선물을 받고 합창할 때 악보를 넣고 다니는 가방에 달고 다니며
그 분의 올곧고 섬세한 솜씨를 만끽했었습니다.
산학후배~ 난 올해 처음으로 김장을 건너 뛰었답니다.
일산사는 여동생이 시댁인 서산에서 바닷물에 절인 배추를
왕창 실어 보내 주시어 우리 김장까지 담궈다 준 고마움이었습니다.
제삿상, 김장 등이 젊었을 때 같지 않게 괜시리 꾀가 나더군요.
세월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게으름이죠?
"천국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마음 속에 있다는 말씀이 콕 박히는 아침입니다."
산학 후배님의 이 문구를 고이 가슴에 새겨 둘게요.
조영선 선배님!
올 한 해는 정말 잔인한 슬픈 한 해이었네요.
평생을 곁에 같이 산 여동생을 먼저 보내셨으니 그 슬픔은 무엇에 비교가 될까요?
더 더군다나 투병생활을 계속 지켜 보셨으니 더 말 해 무엇 할까요?
한 가지에 태어나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라고 읊던 옛 시조, "제망매가"가 생각납니다.
하두 슬퍼하시길래
제가 물었습니다.
부모님 만큼 힘드시냐 했더니
부모님보다 더 슬프다고 하셨습니다.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 2019년도에는 본래의 유쾌한 언니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리고
선배님 말씀처럼 글을 쓰면(예를 들면 일기 몇 줄이라도요)
정리가 되면서 마음이 차분해 집니다.
제가 보기에 글쓰기의 제일 큰 장점이지 싶습니다.
요즘 같은 바쁜 세상에 카톡이 제일이라지만
왠지 인간성이 없어지는 같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너도 나도 바쁘다 바빠라고 할 때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는 제어장치가 꼭 필요한데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 고
글을 한줄이라도 쓰는 것이 아닐런지요?
올 해는 처음으로
김장을 안 했다 하시니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됩니다.
살림솜씨나 음식솜씨, 무엇하나 빠지지 않지만
이제는 더러더러 건너 뛰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하십시오.
우리의 이팔청춘은 벌써 강건너 갔으니까요.
은희야!
참 오랜만에 여기 산학 후배의 글에서 마주하게 되는구나.
어깨를 다쳐 한동안 그 고통으로 불편했었다는 소식이
마음 아팠었다.
다행히 지금은 완쾌되어 일상으로 돌아와
평안하다니 감사하기 이를데 없다.
김장 김치, 꽃게젖 맛은 얼마나 예술이었는지
나는 지금도 그 푸짐하고 예술적인 네 손 맛을 잊을 수 없단다 , 그리움이지.
일년에 한 두번 네 소식을 산학으로부터 듣곤하지.
은희네 김포 소식은 늘 정겨움과 풍성한 대화로 이어지며
바다 같이 넓은 큰 나무와 같은 네 품성을 떠올리며
편안한 마음이 느껴지는데 흔치 않은 즐거움이란다.
아파트 생활이 정착되니 신혼 생활이지?
교수님께서도 건강이 많이 좋아지시셨고?
언제 뵙게 되면 반가워 하실 것 같지?
매일 카톡, 메시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이렇게 모처럼 홈피에서 글을 토닥거리니
다시금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느낌이 드네.
덕희 언니께서도 재건축 된 초현대적으로 탄생한
정든 보금자리로 복귀하시고 만족해 하신다는 소식을
수요 산행에서 요즘 자주 듣는단다. 형부로부터.
은희야, 잘 생긴 인기 가수 아들 김선주 너무나 근사하다.
김선주! 브라보!
춘자 후배님!
그 동안 소식이 궁금했었는데
경과가 좋아졌다니 너무나도 반갑고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멋진 글을 올리시는
춘자 후배님은 분명 남다르고 환상적인 사람입니다.
한국에 왔을 때의 호탕한 모습
우리 2회 동문들의 LA에서 멕시코 '엔세대나' 까지의 크루즈여행을
배웅하고 마중나와 주던 열정과 흰 웨딩드레스 스타일의 드레스를
송별 파티 때 특별히 저를 위한 것이라며 골라 주던 배려 깊고 폭넙은
마음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답니다.
또 우리 외손녀 탄생했을 때
너무나 예쁜 옷을 그 먼 곳에서 동부 뉴욕까지
보내주었었던 고마움은 경이로움이었었답니다.
원주 장현심 네에서의 1박2일
봉평 허브 마을에서의 고모님 팔 순 잔치
어느 것 하나 춘자 후배의 강렬한 열정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지요.
세월이 흘러 갔지만
곰곰 돌이켜 보면 보석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느새 또 한 해가 가는 거룩한 성탄절입니다.
손사래쳐도 또 한 살이 보태어져 오죠?
아무쪼록 새해에도
건강, 또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조영선 선배님께서 제게 댓글을 주신것을
이제야 보았어요.
부족한 저에 대한 여러가지 일들을 기억하시네요 .
사실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제가 기억하는것은 한국에 나갔을때
시청앞 근처에 어느 높은 빌딩의 레스트랑에서 식사대접을
받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참 고마웠습니다.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었는데.....
참 감사합니다.
투병중인 후배에게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선배님도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우시기를 바랍니다.
Happy Vew Year!
김춘자 선배님!
그 힘든 일을 겪어내고
다시 우뚝 서셨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지나온 2018년을 더듬어 보면 "인일을 빛낸 올해의 멋진 동문"으로 김춘자 선배님을 감히 추천합니다.
누구에게나 한번은 찾아오는 시련을
의연하고 꿋꿋하게 치루었으니
당연히 인간승리 입니다.
그리고 선배님으로 인해서 치유받고 용기를 갖는 동문들도 많음을 알고 계신지요?
이 글을 처음 쓰고 선배님이 답글을 주셨는데
그것을 읽고 제가 하루종일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은희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 몇 줄인데
종일 눈물을 흘림으로써
제가 치유를 받았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육체이든 영혼이든
상처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끝도 없는 나와의 싸움.....
김춘자 선배님께서는 나와의 싸움에서 이긴 진정 멋진 분이십니다.
2019년도엔
더욱 더 건강하셔서
평안하고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대!
수고많으셨습니다.
산학후배의 댓글을 읽고 얼굴이 뜨거워지면서도
내 부족한 글들을 읽고 용기와 힘을 얻는 동문들이
있다는 글은 날 감동시키며 큰 위로가 되어지네..
사실 어떨땐 내 투병 이야기가 뭘 자랑이라고
매일 올리나 혹시 동문들을 우울하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될 적이 많았는데....
그래도 올리는것은 나처럼 이런 어려움을 당한 자들에게
쓰러지지 말고 일어나서 희망을 가지라고......
나도 산학후배처람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내 마음을
잘 전달할텐데, 말을 하라면 참 잘 할 수 있는데..
오늘
산학후배 댓글을 읽고 참 기쁘고 또 기뻤어.
고마워.
용기를 갖고 나머지 어려운 과정 잘 견디고
골수이식 잘 받을게.
글을 쓰면서 눈물이 너무 나서 자꾸 오타가 난다.
김춘자 선배님!
며칠 전 텔레비젼에서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실은 10번도 더 본 영화이지만
보고 또 보아도 좋은 영화입니다.
벤허나 십계도 중학교 때 부터 보아 왔어도 역시 감명깊게 보는 영화 처럼요.
"쇼 생크 탈출"을 보면
희망이 있으면 아무리 갇혀 있어도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년에 걸쳐 차곡차곡 실행에 옮기고
탈출을 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또 얼마전에는
해외토픽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어린 딸이 불치병이라는 진단을 받은 부모가
딸을 걱정해 주는 주위 분들에게 다른 것은 다 필요없고 우리 아이를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일어난 것이지요.
의사등 모든 분들도 아이가 일어난 이유를 모르고
다만 "기도의 기적"이 일어났다고요.
김춘자 선배님!
이제 9부 능선을 넘으셨으니
나머지 능선도 가뿐히 넘으실 것입니다.
2019년 새해에는
더 큰 희망을 품고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해요
김장김치! 제목부터 은유하는 바 크네~
원스 어펀 어 타임
우리집 가장 큰 행사가 김장이었지
큰 독 두개 땅에 묻고 한 200포기를 가득 채웠으니까
배추와 함께 들어간 석박지 무는 또 얼마나 맛있었던지......
서울에서 귀티 좔좔 흐르던 왕족의 후예라는 친구와 여러 친구분들이 큰오빠를 찾아 아니 실은
김치 먹으려고 우리집에 오곤 했었어
그만큼 우리집 김치 맛은 특별히 맛있었다오
담백하고 시원하고 개운한 그 맛을 어디다 비할까
내가 김장을 담그기 시작해서 그 맛을 살리려해도 도저히 안되더라구
세월이 무궁무진하게 흘렀어
우리 엄마도 가시고 엄마 솜씨를 그대로 이어받았던 우리 큰언니도 가셨고...
지금 난 큰언니보다 몇년이나 더 살고 있는 중
김장은 추억이다
김장은 그리움이다
김장는 단란함이다
이렇게 주절거리면서도 올해 김장을 나는 담그지 않은 아이러니
나에게 샷 더 마우스 외치며 이만
임경선 선배님!
추억이 그리워 자유게시판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제가 60년 이상을 살던
우리 친정동네 송림3동 샛골은
워낙 변화가 없고 사는 주민들도 그냥 계속 살아
지금은 달동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그렇다 보니 다들 한 집안인 것 같기도 해서 인심이 좋습니다.
우리 엄마는 아침에 국을 끓이면 먼저 한그릇 퍼서 이웃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갖다 드리곤 했습니다.
그런 동네이다 보니
김장은 품앗이 입니다.
어느 집에 김장을 한다 하면 다들 몰려가 해 주고 아침 밥까지 같이 먹지요.
그런 이유로
일 못 하는 딸들은 엄마가 돈을 주고
어디 가서 영화를 보든지 놀다 오라고 하니 신이 날 수 밖에요.
우리 동네에 있는 문화극장이나 현대극장에 가서
어느 때는 동시상영까지 보고 오니 좋을 수 밖에요.
그래서 김장하는 날은 신나는 날이었습니다.
어느 하루는
현대극장에서 동시상영을 보고 나오다
동생이랑 무단횡단을 하다 경찰아저씨에게 딱 걸렸습니다.
그 때는 무조건 사거리 중심에 새끼줄로 쳐진 공간으로 들어가라 해서 벌을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곳에 갇히니
오고 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얼마나 창피했던지요?
동생이 나에게 귓속말을 했습니다.
"언니! 경찰아저씨가 누구 잡으러 갈 때 무조건 도망가자" 라고요.
드디어 아저씨가 다른 사람을 잡으러 갔을 때
내 동생은 잽싸게 도망 갔는데
저는 무서워 도망을 못 갔습 니다.
드디어 아저씨가 호통을 치는데 나는 무서워 울기만 하고
한참 후에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 후로 나를 두고 혼자 도망간 내 동생이 미워
한동안 말도 하지 않았는데
동생은 오히려 나를 "도망 못 치는 언니가 바보"라며 비웃고 다녔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끼줄로 공간을 만들어 교통위반 사람들을 가두던
우리나라의 어려웠던 그 시절이 그립기 조차 합니다.
김장하는 날 하면
아직도 잊히지 않는 한 조각 추억입니다.
산학후배의 글은 내가 지나치질 못해서
어느방인지도 모르고 들어왔어요.
갑자기 그 찡한 한국의 김장김치가 먹고싶네요..
움에서 얼음이 숭숭히 있는 김치를 꺼내다 국수말이도 해먹고
지나가는 메밀묵 장사를 불러 메밀묵 사서 김치를 송송 썰어넣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무쳐서 먹던 그 맛......
갑자기 한국이 그립고 김장김치가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