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든 폭염에
시달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추석이 지나고
벌써 산에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더니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벌써 가을이다.


시간은 우리네 생각과 달리 빨리 지나간다.
가을인가 했더니
벌써 첫눈이 오고
12월 이라니,
2018년도 모든 시름을 안고 긴 꼬리를 감추고 있다.


무엇을 하고 삼백여일이 지난 줄도 모른 채 살아 왔을까?
벌써 한 해를 갈무리하는 김장철이 다가왔다.

일년내내 준비해야 하는 김장.....

마늘 사서 까 놓아야 하고

고추는 사서 잘 말려야하니 손이 이만저만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친정동네는 옛날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는 정많은 동네 송림동 샛골이라

우리 엄마가 이번엔 힘들어서 못 말리겠다고 하면 난리가 난다

사다 놓기만 하면 골목에 좍 펴서 너나없이 말려주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덕분에 고추는 무조건 태양초이다.
실상 나는 평생을 김장을 하지않고 살아왔다.
매해 친정엄마가 해 주니 걱정이 없고
더 더군다나 맛이 좋으니 모든 식구들이 엄마의 김치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다.


엄마에게 김치 담그는 솜씨가 최고라 하면
우리 엄마 하시는 말이
"음식은 많이 해야 맛있는 법이다.
많이 해야 제 물에 서로 섞이고 어우러져 맛을 내니
음식은 솜씨가 아니라고....."


원래 식구가 많고 딸들 다 퍼 주어야 하니 많이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이다.

한번은 내 친구가 김치가 똑 떨어졌다 해서 몇 포기 가져간 적이 있는데
남편이 이 친구네 김치는 이럻게 맛이 있는데
너는 김치를 손으로 하지 읺고 발로 담그냐고 퉁박을 주길래
이 김치 산학이가 한 것이 아니고 산학이 엄마가 한 것이라며
다음부터는 절대로 너네 김치 안 가져 갈 거라고 하니 얼마나 우습던지.....


그러나 이것도 벌써 옛일로
엄마가 허리수술 두번 끝에 걷지를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시니
김장은 엄두도 못 낼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죽으란 법은 없는지
동생네 사돈들이 형제분이 많으니 나누어 먹으라고 넉넉하게 보내니 더 무슨 말을 할까?


사이다처럼 톡 쏘고

한잎 쭉 찢어 입에 넣으면 속이 뻥 뚫리는 김장김치.....

김장은 솜씨가 아니고

나누는 마음이라는 말이 참이다.


미국에 사는 내 친구는

세살짜리 손녀딸이 할머니 김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손녀를 위해 김치를 담그는 일이 너무 행복하단다.

김치를 해서 보내주면 조그만 플라스틱 통에 넣어

과자처럼 들고 다니며 먹는다니...

이런 아기가 얼마나 대견하고 예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