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김재옥 선생님께서
8월 9일 오전 숙환으로 소천하셨기에 알려드립니다.
*고인(87세) 김재옥
*빈소....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지하2층 17호실(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50)
*발인.....8월 11일 일요일
*장지.....인천 강화군 양도면
*연락처
오중석(010 8759 0811)
선생님
청량한 웃음소리
귓가에 여전히 쟁쟁합니다
너그러운 성품으로
일러주신 큰 가르침
늘 기억하겠습니다
가시는길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부음 알려준 산학에게도 감사.
안녕히 가세요.하느님께 인사청탁드렸읍니다.
입추가 되자마자 서늘함이 나무잎사귀마다 주루룩 열려 있네요.
생각나요. 우리들의 만남을.그때에는 저는 모든 사실을
알지 못 하던 때이였지요. 석순이는 엄마의
사랑을 듬뿍받아서 좋겠다던 그 음성도
아직 기억합니다.
이 생애서의 길이 민들레 꽃 같았으면 , 이제는 다홍빛 장미꽃이 되어 그 귀함과 향을 마음껏 자랑하세요.
열심히 잘 살아오셨어요.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빈대떡에 막걸리 한잔해요. 세포의 숨을 전달하는 미토콘드리아처럼 그 언젠가 함께 했던 날들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읍니다.
편히 잘 가세요
어제 37도를 웃도는 더위에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저희보다 먼저 오신 4기의 선배님들이 계셨습니다.
무척 반가와 하시며 김재옥 선생님의 생물반에서 6년을 같이 하며 온실클럽을 했다고요.
그러면서 인일이라는 이름의 조화가 없는 것이 섭섭하다며
직접 백순이 라는 선배님이 주문을 하셨습니다.
꽃을 유난히 좋아 하시는 선생님 가시는 길에
우리 인일인이 드리는 꽃이 없다는 사실이 유난히 마음에 쓰였나 봅니다.
장례식장 한켠을 장식하고 있는 조화를 보고 김은희 (인일 2기) 선배님께서
선생님의 젊은 시절과 함께
우리 모두 보라고 사진을 올려주셨네요.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4기의 백순이 선배님!
큰 마음을 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생전에 베풀어 주신 은혜
받고 간다는 말을 오늘 똑똑이 보았습니다.
선생님께는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꽃이 아니었을까요?
삼가 인사 말씀 드립니다.
공사 다망하신 와중에도 조문해 주시어
따듯한 조위와 호의를 베풀어 주신 덕분에
어머님 장례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찾아와주신 인일여고 동문분께도
감사말씀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김재옥 선생님의
장례를 모두 마치고
아드님이신 오중석님이 감사 인사를 보내 왔습니다.
찾아와 주신 인일 동문분들께도 감사 말씀 꼭 전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요.
저는 게시판에 올리기만 했을 뿐인데
그렇게 많은 동문이 찾아 왔다니....
선생님의 생전의 발자취를 다시금 새겨본 날들이었습니다.
친구분을 잃었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 하시던 강순옥 선생님
허회숙 선생님과 그 부군되시는 교수님
그리고 현재 인일여고 총동창회장인 김혜경(인일 9기)님
전임 회장이신 배정희 선배님
선생님께서 친딸같이 아끼셨다는 한금자 2기 선배님
조화를 보내주신 4기의 온실클럽 백순이 선배님 등등
한분 한분 잊지않고 그 아드님에게 전하겠습니다.
역시 우리는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잘 배운
명문 인일여고 학생들입니다.
감사합 니다.
꽃엄마....
이 말은 우리 아파트 아줌마들이 김재옥 선생님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비가 부슬부슬 올라치면 하얀 비옷을 입고 호미를 든 선생님이 쭈그리고 앉아 모종을 심습니다.
조그마한 공간만 있으면
그 넓은 아파트에 꽃을 심고 다니니 이런 별명이 생길 수 밖에요.
맨드라미, 채송화, 나팔꽃, 분꽂 등이 선생님의 손에서 예쁘게 피어납니다.
모든 주민들이 궁금해 했습 니다.
저 분이 누구냐고요.
그러면 저는 괜히 으쓱해져서 이야기를 합니다.
학창시절 우리 생물선생님이신데 그 당시 여자가 서울대를 나왔답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아줌마들이 감탄을 합니다.
저렇게 수수하고 소탈한 분이 선생님이었냐고요.
선생님은 특히 하얀색 마아가렛을 좋아하셔서 아파트 입구마다 심으셨는데
달이 밝은 밤이면 그 꽃 덕분에 주위가 얼마나 환하고 빛이 났던지요?
이제야 선생님 가시고 나니
여러 상념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정말 좋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했음을
꽃을 가꾸듯 제자 한사람 한사람을 가꾸고 정성을 다 해 키웠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또 이런 추억도 생각이 납니다.
선생님이 남인천 여중에 내가 송도 중학교에 있을 때
바로 옆 학교인 덕으로 가끔 만나 용동칼국수 집 에서 저녁을 먹고는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의 행복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 니다.
얘야, 내가 지금 너무 행복한데 걱정이 하나 있단다.
세살 짜리 동생이 예쁘다고 대학생인 형들이 공을 갖고 놀듯 여기서 흭 던지면 저기서 받으니
마음이 조마조마 한데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고....
그 때의 행복해 하시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 그 애기가 컸을 때
사람들이 내 아들이라면 믿질 않잖니?
나는 못 생겼는데 우리 아들은 너무 잘 생겨서 말이야.....
그 아드님이
어머님을 보내드리지 못 하고 끼고 있다고
어른들께 야단을 많이 맞았다 합니다.
심지어 강순옥 선생님께[서도 얼마전 중석이에게 어머니 그만 놓아드리라고 야단을 치고 왔다며
가슴 아파하셨습 니다.
아, 그랬었군요.
꽃을 심는 여자, 저는 해바라기, 수국, 나팔꽃을
구려보았는데 폰으로는 여기에
올려지지 않네요. 선생님댁도 그 옛날 용동을
쭉 따라내려가서 있었던 것 같읍니다.
먼 곳으로 이사를 해서 사니
거의 모든 연을 꿀꺽 삼켜버리고 살았네요.
또 한분의 생물 선생님, 정 면호(?) 님은
인일 교정에 컴프리라는 짙푸른 채소를 심었는데
이것이 뭐예요? 했더니 살이 잔뜩 오른 나를 힐끗 보더니 넌 절대 목으면 안돼 하셨지요.
이곳 탑토마토라는 야채상에 가면 요새 컴프리가 듬뿍 쌓여 있읍니다. 그래서 난 흥 난 먹으면 안되지 하고 씩 웃어봅니다. 실은 컴프리를 녹즙을 내면 모를 거 요리 할 줄을 몰라요.
하여튼 생각나는 이들은 미리 미리 만나야 할 것 겉읍니다.강순옥 선생님은 땀을 많이 흘리셨는데
한번은 유리병에 얼음을 넣어 코카콜라를 준비했는데
날이 더워 그 얼음이 녹아서 음료는 그런데로 시원했으나 선생님이 물었읍니다. 참 맛난 차로구나. 무슨 차니? 대답을 못 하고 크윽대고 속으로 웃었지요.
하여튼 아직도 화학 주기율표: 수 리 나카 마 알을 조금
기억하네요..
김석순 후배님!
아직도 화학 주기율표를 기억하고 계시네요.
저는 그것을 못 외워서 강순옥 선생님이 무서웠고 행여 마주칠까 슬슬 피해 다녔으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습니다.
만약 마주치면 붙들어 놓고 야단 칠리도 없건만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겠지요.
이제 많이 늦었지만
선생님들을 본 받으며 살려고 노력하겠습 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신 우리 선생님들
몇십년 후 그분들의 선행을 알게 되고 많이 부끄러운 우리들....
이제 그 분 덕으로 훌륭하게 자란 제자들이
그 크신 사랑에 가슴 아파하며 선생님을 그리워 합니다.
조금 전에
김재옥 선생님의 아드님께서 연락을 주셨네요.
오랫동안 숙환으로 고생하시다가 가셨다고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이승에서의 무거운 짐 훌훌 벗고
편히 가십시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