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얼굴이 창백했다.
황급히 방으로 데리고 들어오자마자 그는 맥없이 쓰러졌다.
타들어간 그의 입술은
그의 마음이 까맣게 타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친구는 조금 누웠다가 냉수를 마시더니
이번엔 두 발을 쭉 뻗고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한다.

"무슨일인데 그래?."
나는 친구를 안아 주었다.
그는 내 옷이 다 젖도록 눈물을 쏟았다.
"지금 병원에서 오는 길인데
이번에도 또 딸이래. 나는 어쩌면 좋아.
연주 아빠는 이번에 또 딸이면 그 자리에서
낙태 수술을 하랬어.
수술 안하고 또 딸을 낳으면 무조건 이혼하겠대.
그런데 또 딸이야."

사태는 심각했다.
이 친구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다.
사업을 하고 있는 남편은
엄청난 재산을 갖고 있었다.
사회적인 지위도 인정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아들이 없는 것이다.
딸, 딸, 딸.
딸 셋까지는 이미 낳았으니 어쩔 수 없으나
딸 넷은 죽으면 죽었지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먼저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낙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데?'
친구는 나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살인이지. 하지만 이혼을 하게되면 어떻게 해.
더구나 10달동안 당할 남편의 핍박을 난 견딜 수 없을거야."
"그러면 남편에게 이혼 안당하고
10달동안 핍박 안당한다면 너는 아기를 낳을거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벌써부터 서슬이 시퍼렇단 말이야."
"내 말 잘 들어.
오늘 병원에서 검사하니까 아들이라고 해."
"안돼! 안돼! 연주 아빠 성격을 너도 잘 알잖아.
나중에 발각나면 그 땐 정말 죽음이야."
"그럼 엄마가 편안하기 위해서 자식을 죽이니?
아들이라고 해야 10달 동안
뱃속의 아기가 안전하잖아.
또 핍박없이 잘 자랄 수 있어.
아기를 보호 하기 위해서
아기를 낳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돼.
친정 어머니에게도 친정 언니에게도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절대 비밀을 지켜야 해.

그 날 집으로 돌아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에게 검사 결과가 아들이라고 했더니
남편이 어린애처럼 뛰어 다니고
친구들, 친척들,
특히 그동안 아들이 없어 설움 당했던 골프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야단이 났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내 친구를 여왕 대접을 하고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무엇이든지 해주겠다고 하니
차라리 남편에게 핍박당하는 것이 낫지
자기는 지금 더 무섭고 떨려서 죽겠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오늘은 이런일이
내일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 때마다 나에게로 달려오기를 수 십번...
어쨌든 여왕 대우를 받으며 잘 먹고 쉬는 가운데
아기는 뱃속에서 안전하게 잘 자랐다.

드디어 예정 산일이 보름이 남았다.
친구는 남편의 실망을 감당할 길이 없다면서
그동안 성심을 다해 자기를 보살펴준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조롱 당할 남편의 체면을 어떻게 보상 할 것인가?
아내에 대한 배신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나는 친구에게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떤 것도 아기의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위로했다.
친구의 걱정은 "남편이 낳은 아기를 갖다 버리라고 하면 어떻하냐고" 까지 했다.
"최악의 경우 그렇게 되면 내가 길러 줄께."
그랬더니 친구는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 싶었다.
"그래. 너라면 난 마음 놓을 수 있어.
나보다 더 잘 기를텐데 뭐. 그럼 너는 자식이 5명이나 되겠구나."

나는 친구에게 이제쯤은
"산일이 다가와 다른 병원엘 가서 진찰했더니
딸 이라고 하니 어쩌냐"고 남편에게 말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의 반응은
"먼저 진찰한 병원이 우리나라 최고의 산부인과이니
걱정 말고 있어야지 그렇게 걱정하면 아기에게 안좋다"고 하더니
내일은 다른 병원엘 가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날 검사 결과는" 다시 아들이라"고 하게 했다.

친구는 15일동안 병원에서 오락가락
딸, 아들, 딸, 아들 검사 결과를 내는 것이 되었다.
산일 전날.
친구의 남편은 아들이든 딸이든 이제 낳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라도 해서
남편의 실망에 작은 완충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내 친구는 남편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실망을 주며
야속하게도 딸아이를 분만했다.
그 날 병원에 가있던 내 앞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이 비참한 얼굴로
병원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던 그 뒷모습을 보며
"아기의 생명이 가장 최우선이야."이렇게 혼자 수없이 되뇌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주저 앉을 것 같았다.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친구는 식음을 전폐했다.
"괜찮아. 자기 자식 버리는 부모는 없어.
조금 있으면 아빠도 아기를 사랑하게 될거야."
  
"아빠가 아기에게 눈길 한 번 안주고
나하고 말 한마디도 안해."
이런 냉전의 중간 보고가 계속 들어오는 기간은 보름 뿐이었다.
20일 쯤 지났을 때.
"아빠가 드디어 아기 얼굴을 들여다 봤어.'
친구는 흥분했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목소리였다.
여자는 왜 이렇게 죄가 많은가?
산고의 고통을 말하지도 못하고
왜 남편에게 자식을 낳아 주었는데 그렇게 미안해야 하는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아빠가 딸 넷 중에 연민이가 제일 미인이래."
이젠 아기가 울면 우유통을 찾아 다닌다는 것이다.
나역시 기뻐서 "딸아이 하나 공짜로 데려오긴 다 틀렸네."

아기가 백일이 될 때쯤
친구는 그동안의 우리의 음모를 남편에게 이실직고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남편은 그 날로 정관 수술을 하고
"만약 막내로 아들을 주셨다면
내가 우리 이쁜 딸들에게 얼마나 소홀히 하고
아들만 편애 했을 것인가
아들 하나 때문에 딸 넷을 잃을 뻔 했잖아.
나는 이제 딸 넷을 정말 잘 기를거야." 라고 했다는 것이다.

연민이의 백일 날
나는 연민 아빠의 특별 초청을 받았고
이번엔 내가 여왕 대우를 받았다.
연민 아빠는 자기의 우매함으로 하마터면 딸을 잃을 뻔 했는데
고약한 음모로 구해준 댓가라고 하면서 나에게 큰 사례금을 주었다.
나는 그 돈을 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님에게 보냈는데
그 돈으로 하얼빈, 장춘, 심양에 30개의 처소교회가 세워졌다.
아들 하나를 포기한 그 아버지는 수많은 새로운 아들을 얻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사업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데
네명의 딸들이 자라는 모습을 한달 간격으로 사진 찍어 나에게 보내준다.
보내오는 사진 마다 아빠 옆에 꼭 붙어 있는 아이는
막내 딸 연민이다.
그리고 아빠는 딸을 쳐다보느라 언제나 카메라와는 상관이 없는 모습이다.
그 사진을 내어 놓고 볼 때마다
나는 내 친구만큼 행복하여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음~고약한 음모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