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살의 노총각인 우리 도련님이 장가를 갈것 같습니다
여자친구만 생기면 살맛 날꺼라며 다리를 놓아 달라며 졸랐었는데....

우리 도련님은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입니다. 충남 당진 시골에서 자라 초등교육도 받지 못하여 한글도
잘 모릅니다. 정신지체가 있어 언어의 이해가 부족하며  어떤 상황에 대한 이해는 더더욱 힘이 듭니다.
그 때문인지 자기안에 자기를 가두고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리려 하질 않습니다. TV와 오락,라디오 듣는
것이 하루의 전부이고 성당가는것, 장애인 모임인 엠마우스에 나가는 것이 사회 생활의 전부 이지요.
도련님과 9년을 같이 살았는데 6년동안은 울기만 한것 같아요.  결혼초 22~3평 남짓 한 작은 빌라에서
시부모님,남편과나 도련님,아가씨.큰딸 소정이, 이렇게 일곱식구가  살았을때는 아침에 상을 세번이나
차렸었어요. 5:30 엔 시아버님,7:30 엔 남편,어머님 아가씨 , 마지막엔 우리 도련님.
도련님은 일어나는 시간이 아침 먹는 시간이라 항상 불규칙하고 10시나 11시에 일어 날때도 있어 정말 미웠습니다. 거기에다 먹을 반찬이 없다며 포크로 상을 탁탁 두드리며 화를 내면 어머니 눈치 보여 도련님이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식구는 많은데 방이 모자라서 도련님이 거실에서 잠을 자는데 머리를 우리 방문 앞에 놓고 자서 어려움이 많았었고 샤워할 때는 옅보려고도 했었구,  어느 날인가는
"형수, 밤에 형하고 그거 했어요?"라고 물어 보더라구요. 어찌나 당황스러운지 그냥 울어 버렸습니다.
다섯살난 딸 소정이와 조카만 아니면 죽여 버렸을 꺼라 서슴없이 말하며 싸워 야단도 치고 달래기도 했구,
부엌칼을 들고 죽겠다고 어머니와 실갱이 하며 싸우는 것을 말리다 어머니와 같이 목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간질을 앓고 있어 약을 꼭 먹어야 하는데 그 약을 다 털어서 버리기도 수 십번 , 여러 고비를 넘기며
힘겹게 지냈었습니다.
몇년간 힘겨운 일들이 하나,둘 지날때에는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었고, 셋,넷이 지날때에는 그냥 펑
펑 울었습니다. 다섯,여섯이 지날때 쯤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습니다.
일곱,여덟,아홉............
지금은 점점 작아져만 가는 가엾고 안쓰러운 도련님이 보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도련님과 나는 한 울타리안에 있었습니다.
가시 덤불을 끌어 않고 높은 벽을 등지고 살고있다 생각 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나를 애인이라 부르며 가끔 볼에 뽀뽀도하고 장사하느라 고생한다며 어깨를 감싸 안아 주는 도련님이 있어 지금은 행복합니다.

이제는 애인 자리를 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이모님이 중매를 놓아   곧 선을 보거든요. 상대분은
정신지체 2급장애라고 하는데 수 계산을 못할뿐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한 좋은 일이 될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면 일년정도 같이 살다 분가를 시킬 계획인데요,사이좋은 동서지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