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천여중을 다니던 60년대는 매우 가난한 시절이었다.
시골에서 아가씨들이 도시로 식모살이하러 떼지어 몰려왔다.식솔 하나라도 덜기위해서이다.
우리집에는 충청도 당진에서 초등하교를 갓 졸업한 나보다 2살어린 아이가와 있었다.
한 마디로 끝 내주는 아이였다. 근면, 성실, 부지런함 등등 .....
온 식구가 좋아했다.  친동기간 이상으로 친하게 지냈다.
시집 갈때까지 근 10년을 같이살았다.
내가 시집가게되었다.
자질구레한 나의 시중을 묵묵히 들어준 그애와의 이별이 아쉬웠다.
"언니 이거유 가서 클러봐유"
혼수짐속에 무언가 꾸려넣어주었다.
신혼여행에서 다녀온뒤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이것 저것 정리하다 종이꾸러미가 발견되어 풀어보니 상상하지도 못했던 가발이 하나 튀어나오는것이 아닌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월급은 꼬박 꼬박 시골로 보내고  선물 살돈은 없고해서 삼단 같은 고운 생머리를 잘라서 가발을 만들어 선물한것이다. 이때나 저때나 머리숱 없어서 고민하는 나에게
정말마음찡한 고마운 선물이 아닐수없다.
금요일 본 v.j특공대라는 프로에서 중국으로 진출한 우리나라 가발공장이 최고의기술을 자랑하며가발시장을 석권하고 있다며 중국처녀 질 좋은 소수민족 처녀의 생머리를 사러다니는것을 보면서 옛날똑같았던 우리나라의모습을 보는것 같아 감회가 새로와서 이글을 쓰게되었다.
요즘 가뜩이나 늙어가면서 얼굴 모습도 초라하니 쭈글거리는데 머리마저 빠져버려 정말 골 가관이다.
정말 거울보기가 두렵다.
동병상련~
머리때문에 나보다 고민이 더심한 우리동창 노정희
멋이라면  나름대로 일가견갖고 노력하여 자칭 타칭 *멋쟁이*노정희왈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것은 미친여자 머리숱 많은것이란다.
생각하면 할수록 웃지않을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