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일여고 2학년 때이니
31년전의 아련한 일이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길
어머니는 새벽기도 가기전
나를 학교에 바래다 주고 교회로 가시곤 했다.

그 날 학교 교문에 거의 다달았을 무렵
나는 한 남학생이 전봇대 밑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무심코 교문을 들어왔지만
하루 종일 그 소년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생각의 끝은 혹시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니었을까로 진전이 되었다.

그 이튿날은 내가 먼저 그 곳을 유심히 보았다.
키가 큰 그 학생은 그 날도 여전히 그 곳에 서 있었다.

삼일째 되는 날엔
어머니와 같이 가지 않고 나혼자 등교하였다.
조금 더 멀리서도 그  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렇게 심장이 뛰는지
쿵쿵! 소리가 새벽길을 울리고 있었다.
심장의 박동은 빨랐지만
그 곳에 가까이 갈수록
나의 발걸음은 천천히 가게 되었다.
마치 그가 그 곳에 서 있는 이유를 나에게 말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무심한듯 그 곳을 지날 때.
"저 저좀 보세요."
그 학생이 드디어 말을 건냈다.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뒤돌아 보았다.

"저 여기서 여러날 기다렸어요.
그렇게 앞만 보고 다니시네요.
눈길 한 번 받는 데
보름이 다 되어가요.
그렇게 앞만 보고 다니지 말고
가끔은 눈길을 받고 싶어
주변에 서성이는 사람이 있나 둘러도 보세요.
시낭송하는 것을 듣고 부터
만나고 싶어서
이름도, 집전화번호도 알아보았어요.
많이 당혹스럽겠지만
이렇게라도 안하면
난 요즈음 공부를 전혀 할 수 없어요."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는그는
불량해 보이지 않고
진실되어 보였다.
어쩌면 그가 제고 교복을 입고 있어서
나에게 믿음을 더 주었는지 모른다.
이럴때 어떻게 해야하나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이 학생이 3학년이라는 것과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그럼 내일 다시 한 번 만나서 말씀드릴께요."
하고는 황급히 교문으로 들어섰다.

큰 바위 덩어리가  가슴을 누르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안절부절 고민을 했다.
아무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그 학생도 나도 학업에 열중하려면
내일 그 학생을 만나
"대학에 붙으면 만나준다."고 하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나는 그 학생에게 선생님이 일러준대로 말했다.
그는 너무나 기뻐하며 단숨에 학교 앞
언덕 길을 내려갔다.
그 학생은 더이상 그 곳에 서있지 않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지던 날.
까맣게 잊고 있던
그 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에 붙었으니 만나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내가 예비 3학년이었고
입시 준비에 대한 무거운 부담을 안고 있을 때였다.
그렇지만 약속을 해놓았으니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를 만나서 대학에 합격한 것을 축하해 주었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게
약속해 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이번엔 "내가 대학에 합격해야 만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선뜻 공감했다.
그는 봄부터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여학생들과 만나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니
저절로 나를 잊을 수 있을 것이고
혹시 1년을 더 기다리고 있다면
그 때는 그를 만나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3학년이 되었다.
그 때 우리 학교는
무감독 시험과
복도 끝에 학용품 무인 판매를 실시했다.
인일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자랑스런 제도였다.
아침 6시 40분에 수업시작
밤 9시 30분에 수업이 끝났다.
통금이 있었던 그 때에도
우리들은 밤 11시가 넘도록 도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월요일 마다 전과목 시험이 있었다.
봄부터 시작된 강훈련의 입시 공부 속에서
지치고 지쳐가던 6월의 어느날.
그 학생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2월말 부터 급성 장암으로 세브란스 병원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둔 아들의
마지막 소원이니 지금 병원엘 가자는 것이었다.
고운 얼굴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시면서 부탁하셨다.
나는 담임 선생님이셨던
임순구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의 조퇴 허락을 받고
그 학생의 어머니를 따라 기차를 탔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
수많은 호스들이 얽히어 있었다.

그가 어머니에게 무어라고 얘기하더니
간호사가 오고
의사가 오고
무언가 급한 의논이 있는 듯 하였다.
그러더니 그의 몸에 얽히어 있던 호스들을
다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병실로 들어가지 못했다.

"나 어때?
이젠 하나도 안무섭지?"
네가 나를 보고 무서워 겁먹을까봐
간호원 누나에게 호스를 다 빼달라고 했어."

"나 조금도 겁나지 않았어요."
나 때문에 호스를 빼서
이 학생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사실은 더 겁나고 있었다.

"공부 열심히 했니?
나하고 약속한 것 지킬 수 있겠어?

나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했다.

"나 너에게 한 가지만 물어볼께.
나하고 약속한 것 너의 진심이었니?
혹시 그 때 나를 거절하기 위한 핑계는 아니었니?
그의 진지한 물음에 나도 모르게
"진심이었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럼 너도 나 보고 싶으면서도
공부하느라 꾹꾹 참았겠네."

이 물음에도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아.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애.
단 한 가지
너에게 약속한 것 내가 못지키게 된 것 미안할 뿐이야.
이건 불가항력적이었으니 용서해라.
대학에 꼭 합격해라.
너와 약속한 날짜는 안되었지만
죽기전에 너를 꼭 한 번 보고 싶었어."

내가 대학에 붙으면 만나 주겠다고 약속한
그 첫 날 처럼 밝게 웃으며 나를 보내는
그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입안에서만 뱅뱅 돌았다.

며칠 후
그의 어머니의 오열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의 동생이 오빠가 죽음을 행복하게 맞이했다고 전화해 주었다.

그 학생은 그 날부터
내 인생의 그 곳에 서 있다.
영원히 늙지않는 제고 3학년의 모습으로

내가 앞만 보고 달려갈 때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너의 눈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나
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나 주변을 둘러보라."고
나의 분주한 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는 우리 인생의 길이 언제나 달려야만
전진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서는 것이
곧 전진하는 것임을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날 그  병실에서
엉겁결에 한 나의 대답이
그를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면
그와의 약속은 지켜진 것으로 믿고 싶다.

그 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은 진지하게 했고
대답은 항상 진실이여야 했다.

그 학생과의 짧은 만남은
그 학생과의 긴 이별은
나에게 성공하는 삶이 아닌
가장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어하게 했고
그것은 내가 신학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