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창 형이 보고싶다.'

 

이 글은  페이스북. 제고넷에 올리기도 한것입니다

어떤 마눌이 이럴 수가 있을까?

울 마눌은???
어림도 없을것이다 

 

백수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 컴 앞에 앉아 있는 시간도 많아진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CS일보에 두번 글을 기고 했더니
그것이 채택이 되어 近日에 두번 다 기사화 된 일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는 내가 글을 잘 쓰는줄 알고<사실은 No ...>
조영선 형수님은 돌아가신 남편<신도창>의 유고집을 낸다며,
한 글, 부탁을 해 온다.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고, 한편 영광?스럽기도 하여
부족하지만 아래와 같은 보냈다.

-우선 첨기를 해 둔다. 나는 故 신도창 선배님을 '도창 형'이라 부르겠고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평상어를 씀을 양지 바랍니다.-


도창 형은 인천중학교<480명> 입학<8회>당시 수석으로 입학을 했다.
그당시 인중 졸업생<480명>중 반정도가 제고<5회>에 입학을 했다.
-제고를 명문으로 전파한 훌륭한 우리 선배님들...-
그중에서도 5회 하면,
동문이면 누구나 다~제고의 꽃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형님들은 모교를 빛낸, 처음이자 마지막 역군들이 아닌가 싶다.

240명 졸업생 중에 3군 사관학교에<육, 해, 공> 20여명 가까이 합격을 했고,
소위 말하는 S,K,Y에 150여명이 합격한 것을 비롯하여
명문, 서울대학교에 수석합격자까지 배출한 걸출한 선배님들이셨다.

까닭에 우리나라 대표 일간지인 CS일보에는
어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아들 손을 잡으며,
'인천 제물포高로 가자'는 만평까지 게재할 정도였으니,
5회 선배님들의 모교에 대한 공헌은 자못 지대하다.
그 정도의 수재들 가운데 수석으로 입학을 했으니... 그 형의 천재성은 알만 했다.
그리고 제고는 개교 이래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무감독 시험을 시행했으며
지금도 그 전통으로 계속되어 오고 있다
.

내가 그 형을 알게 된 것은 제고에 인터넷이 활성화 되면서 부터다.
도창 형은 생존시 무려 471회의 글을 제고넷에 게재 했고,
다른 동문들이 쓴 제목 및 본문을 합쳐 29회, 총 500회의 글이 게재 되었다.
그만큼 모교, 동문들에 대한 사랑이 컸고, 선후배들의 사랑과 존경도 많이 받았다.
도창 형은 매사에 사리가 분명했고, 철두철미 했으며,
굳이 성향을 따진다면 '실용보수'에 속했다고 불수 있었다.
그래서 度를 넘는 후배들, 극좌? 성향의 후배들과 간혹 부디치곤 했다.
그것은 선배로서 또는 아우들에게 할수 있는 말이었다.

그 형은 청탁을 불문하고 술을 좋아 했고,
모교와 선 후배들을 아주 많이 사랑했다.
이는 어쩌면 나와도 비슷한<실용보수> 성향이라,
내가 가까이 할 수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어울렸고, 형의 여의도 집에도 가끔 들리곤 하여
여행 때마다 사 모아, 진열장에 고이 진열된 비싼 양주를 축내곤 했다.
그래도 형수인 조영선님은 마냥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아마 우리가 간 후에는 다툼이 있기도 했었겠지...'술 좀 줄이라고...'

한번은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 형이 사는 여의도 삼익아파트에서...
1차를 밖에서 끝낸 후 집으로 가려는데, 당신 집으로 가자고 끄는 바람에
마지 못 해 들어가 또, 그 예의 진열장에 진열된 양주를 깐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는 술에 관한한 되게 무식 했나보다. 지금도 그렇지만...
洋N들은 한잔을 가지고 코로 마시며, 몇 시간을 보내는데...
우리는 그것이 무슨 보약인 양, 소주 마시듯, 스트레이트로 마셔 댔으니...

술이 취하여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도창 형과 형수님이 배웅차 따라 나선다.
형수님은 얼른 택시를 잡아 나를 태워 준다. 목동, 집에 들어서니
마눌이 '당신 코트는..' 한다. '어~'하고 보니, 입었던 버버리 코트가 없다. '하~~'
나는 그 코트 보다는, 며칠 전에 큰사위가 일본 출장 가, 최신형이라며 사다 준
아주 얇은 지갑형 디지털 카메라<니콘>가 생각났다.
'어~' 이를 어쩌지???' 했다.
 
혹시 '코트를 도창 형네 벗어 놓고 오지 않았나?' 해서 전화를 했다.
도창 형은 '분명 입고 나갔다'며,
택시 넘버와 회사명을 적어 놓았으니, 얼른 알아보라고 알려 준다.
그래서 부랴부랴 전화를 걸고, 야단법석을 떨며, 마눌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달려가
찾아온 일이 있었다. 도창 형은 그렇게 매사에 빈틈이 없고 철저한 수재形인 兄이었다.
'하느님은 왜 착하고 훌륭한 사람들을 먼저 불러다 쓰시는 건지... '
도창형이 보고 싶다.
이재성 성관형님?멋있어요
우창명 신도창 형님이 뵙고 싶군요,..|
             항상.. "허.. 허.."하시고 웃으시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현승림 선배님 개교 60주년 사진전시회 작품 내시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