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7일 새벽 4시 30분-

L.A 미주 동문회 참석차 토론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눈이 내렸습니다

둘째 딸도 그 날 선교차 탄자니아로 떠나게 되어 있어 같이 타고 가는데

 

"엄마!

 눈 때문에 비행기가 못 뜨지는 않겠지?"

" 설마 이정도의 눈 때문에 못뜨겠니? 

"..........."


아침 8시에 떠나야 할 비행기가 2시간을 용쓰더니  탑승객 모두에게 안내 방송을 통해 기내에서 내리라고 말하는 것이였습니다

기내에서 내리면서 카톡으로 미주 동문회장인 백 경수(11기)에게 제 시간에 도착 못하겠다는 멧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L.A 공항에서 택시 타고 갈 생각으로  파티 주소를 문자로 받아냈습니다

 

6시 파티 시간에 맞추어 간다는게 힘들 것 같았습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망설여지는데 귓가에서 맴맴 도는 친구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순정아! 파티 끝나고 그냥 가지 말고 울 집에서 자고 놀다 가!"

 

파티가 끝나는대로 토론토 오는 티켓을 사려했던 내 마음을 살짝 틀어 준 친구(미주동문회회장)의 말에

L.A 타임으로 월요일 밤 10 시 비행기 티켓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설령  비행기가 파티 시간이 다 끝난 뒤 L.A 도착한다해도 일요일과 월요일이 있으니 

친구들 만남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공항에 남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조금 후 오후 1시에 출발할 예정이라는 방송이 들렸습니다

L.A 공항엔 3시 54분 도착이였습니다

그 시간에 도로는 한창 붐비고 있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파티장에 들어가기까지 붐비는 차량으로 인해 파티 시간에 맞추어 들어간다는게  꿈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꿈은 깨어지고 그 이후의  모든 시간들은 꿈이 아닌 현실이였습니다

꿈에서 깨니 꿈 이상으로 버금가는 현실이 펼쳐진 것이였습니다

그런 꿈 이상의 현실을 만들어 낸 인일이 자랑스러웠습니다


L.A 인일 동문들이나 한국의 인일 동문들이나

인일에 대한 긍지가 여고 시절로 끝나지 않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에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인일에 대한 긍지가 도대체 무엇인데 이토록 변절하는 험한 세류조차 무너 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 긍지를 더 키워냈을까?

더구나 미주는 한국도 아닌데 말입니다

 

돌아보니 우리는 인일에서 공부만 한게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인일 교정에 있는 분수대와 더불어 역류할 수 있는 인생의 물보라를 생각했고,

인일의 뒷동산을 산책하며 이끼 하나일지라도 심지여 낙엽일지라도 어울려 숲이 된다는 것을 생각했고

인일의 옥상에 올라가면 보이는 서해안의 푸른 바다를 보며 바다 너머 저 곳에도 뭔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여고 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가정과 주변의 따뜻한 체온속에 자라 반듯했던 인일 여고생들을 선망하는 그들의 시선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열심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찍 터득한 것 같습니다


주변의 기대에 책임감을 갖고 하루 하루 주어진 과제에 충실한 채 여고를 졸업하고 보니,

그 열심과 그 성실이 고스란히 성품으로 다져지게 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 수많은 계단들을 하나 하나 오르며 아무리 많은 계단들일지라도 하나 하나씩 오르다 보면 목적지에 이른다는 걸

배운 것 같습니다


이번에 동문회에서 만나뵙게 된 선배님들과 저희 동기들을 보며

인일에 뿌리를 내린 여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내면을 일궈내었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천지개벽과 같은 이민 생활속에서도 찌들지 않고 오히려 더 발랄한 완숙미를 풍기시는 선배님들을 보며

늙는다는게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찌 후배들에게 드레스를 입혀 환갑파티를 열어 줄 생각을 했을까요?

미주 인일 동문회원님들이야말로 저희 11기 환갑걸들이 바다를 건너올 수 있도록 만는 추진력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눈 많은 나라에 살고 있는 저로하여금  그 파티에 참석케하기 위해 눈조차  멈추게 만드는 따뜻한 바람이였습니다

또한 바다 건너 오는 11기 회장의 손에 거금까지 들려 보내 준 인일총동창회에도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제 작은 언니가 저의 동문들의 환갑 파티를 보곤  "명문은 과연 틀리구나!" 라는 말을 해주었답니다

제 남편은 환갑 파티를 위해 과감하게 일상을 버리고 가는 마눌에게 "경기여고 나왔음 어쩔뻔했을꼬?" 라며 웃기는 것이였습니다


이젠 파티도 끝나고 한국에서 온 친구들도 이제 곧 다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환갑 파티 전과 환갑 파티 후의 우리들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달라졌는가는 각각 앞으로의 삶으로 말해 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인일의 긍지는 환갑을 시점으로 또 다시 거듭난다는 것을 보여 줄 것입니다


모든 인일인들에게, 특히 연로하신 모든 선배님들께 더욱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