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지난 겨우내 나는 사람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용케도 버티며 지내왔다.
??어느날은 저 사진속에 유채밭처럼 밝은 금빛의 희망이 보이기도하고
하늘은 날씨를 가늠할 수 없는 구름과 빛의 조화를 보여주듯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려나 하는 알 수 없는 긴장속에 시간을 보내기도했다.
나이들어 육체가 병들어 생명의 끈이 끊어질듯 말듯 하는 환자를
지켜보는일은 모든 힘든 일 중에서도 제일 힘든 일이지 않을까한다.
생로병사에서 끝부분에 위치한 나이가 되고보니
한편으론 담담해지기도 하지만 왈칵 걱정이 앞서기도한다.
그동안 머리로 알던 모든것들이 별반 도움이 안되는 순간이 오기도해서
무엇을 안다고 큰소리치던 행위들이 부질없는 일이였다는것도 알게되었다.
봄이 왔지만 아직도 나의 봄은 오지않고 겨울에 머무르는듯 한데
다행스럽게도 그 추운 겨울을 그나마 버티게 해준 유일한 따듯한 빛이 있었으니
음악을 듣는 일이였다.
고급한 고전음악도 아니고 경쾌한 경음악도 아닌
대중가수가 부르는 노래소리였다.
반년 가까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 들었던 노래
티비프로중 옛 흘러간 대중가요를 나름대로 재해석해 편곡해서 부르는 불후의 명곡이란
프로에서 보고 듣게된 노래들이다.
아마도 흘러간 시간속에 귀에 익엇던 노래들이라
오래된 옛친구가 좋듯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으리라.
힘들고 지칠때마다 듣고 위안이 되던 문 명진이란 가수의 노래
우리집 막내아들 나이쯤 되었다는데 알엔비 소울 음악을 듣는 이들의 호 불호가 확실하게 갈려서인지
십오년이란 길다면 긴 무명시절을 보냈단다.
불후의 명곡이란 타이틀을 가진 TV프로에서 선배들의 노래를
자기만의 독특한 알엔비 쏘울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
청중들에게 뒤늦게나마 극찬을 받으며 알려지기 시작한 가수이다.
살아오면서 노래소리의 위안을 많이 받고 좋아하는 편이였지만
칠십나이에 문명진이란 가수의 열렬한 열성 펜이 될줄은 몰랐었다.
지금은 TV에서 정규프로가 끝나면 유투브에 올려진 것을 복사해와 되풀이해서 수없이 듣기도 하고
댓글을 달아 느낌을 적기도한다.
유투브에 실명을 쓰고 그 누구보다도 첫번째로 댓글을 쓴 노래
삼일간의 단독 콘서트를 끝내고 난후라 조금은 가라앉은듯한 목소리로 부른
기도라는 제목의 노래.
성모앞에 드리는 기도 라는 구절을 듣고 있을때마다
함께 따라 부른 노래이다.
인간의 생과 사
살아있는자와 죽는자 있어 어떤이는 먼저 가고
?어떤 이들은 남아 눈물을 흘린다.
어제 10기 이 인옥후배가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읍니다.
찾아가 생전에 꼭 손에 쥐어주고 싶었던 성당묵주를
사후라도 다행스럽게도 입관식에 마추어 찾아가 마지막 떠나는 얼굴모습도 보고
묵주도 전해주었읍니다.
유별나게 노래하길 좋아하던 인옥후배의 생전의 모습을 기리며
사후에는 아픔없이 평화로운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며 이노래를 올립니다.
그곳에서도 즐거운 노래를 부르소서
인옥후배의 노래소리는 남아있는 동영상으로만 만나보아야 할것같군요.
부디 잘 가오.
수인이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있지?
오랜만이야
참 무심한 세월이였네.
지난 몇개월 하루 하루가 조심스러울때가 많아서
옆에 사는 친구와도 며칠전 겨우 만나보았으니말야.
스맛폰 세상이라서 겨우 가까운 지기들의 근황은 알고있었어.
그 외에는 연락없으면 몰라서
사람 노릇도 못했네.
동창일도 전 영희 후배가 알려주면 사람노릇 비스므리하게 했을 정도이니뭐
대부분 우리집 울안에만 있었으니
텔레비젼으로 세상을 보게되고 선호하는 프로를 찾아 마음을 달래고했거든
나도 문명진이란 가수의 행색이 남다르다 싶었지만
해바라기의 노래중 "슬픔만은 아니겠지요"를 처음으로 부르는데
대중가수치고는 가창력이 훌륭하더라구 가슴깊은곳을 건드리는 깊이를 느끼게 하더라
우리나라의 우리정서의 한을 담은 창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하고말야.
5월달엔 김 시인도 좀 나아져야겄지
강화오는길이라면 와서 전처럼 지내다가면 되지뭐
생전에 누구말마따나 몇번이나 얼굴 볼 수 있겠나싶네.
저도 문명진을 통하여 재능이 있으면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준다
진실에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문명진 펜카페에 가입해 글을 남기기도 했었지요
인옥선배님의 노래는 못들어봤지만
노래를 좋아하시고 잘 부르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옥선배님의 명복을 빕니다
김은희 선배님!
지난 겨울은 정말 힘드셨습니다.
겨울을 위해 준비해 둔 따뜻한 나라 태국의 코사무이 별장에 가기도 전에 교수님께서 덜컥 누워버렸으니....
벌써 6개월인가요?
6개월 만의 나를 위한 첫외출이 인옥 후배를 만나러 가는 길이 되었으니
인옥 후배도 선배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간병 중에 노래가 있어 위안이 되셨다니
이래저래 음악은 대단합니다.
언젠가 본 중국영화가 생각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 우울하고 칙칙한 느낌은 정말 답답하고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힘든 와중에도
아드님이 가수로 데뷔할 예정이라니
이것이 무슨 일이래요?
역시 인생은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니 살만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드님이 엄마의 피를 물려받았나 봅니다.
선배님!
집안에 기쁜 일이 있으니 교수님도 훨훨 털고 분명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런데
선배님, 사진이 안 보여요.
그냥 배꼽이네요.
산학아~
어제 전화 했더니 잠이 들어 주무신다고 큰 아드님이 그러더구나
깨우지말라했네.
그동안 내 개인 블로그는 그때그때 기록해두고 싶은데로 써왔어.
삼일전인가 쓴 글인데 그대로 복사해 옮겨왔더니
이곳 홈피에선 사진은 다시 파일첨부해야하는데 깜빡했네
산학이가 다시 홈피에 글을 올렸다 알려주니 반갑더라
병원 생활도 4개월이나 했으니 이젠 별일이 없으면싶다.
에이휴~
아들아이는 벌써 이십대때 그룹으로 정식데뷰했던 전적이 있어요.
이런저런 사정으로 유학을 떠나 그길에서 다른길로 가나했는데
타고난 팔자는 어쩔 수 없나보네
이젠 뭐라 할 수도 없지뭐.
노트북으로는 보여서 얼른 안방 컴퓨터로 가봤네.
안보여 아차싶어 얼른 수정했어요....땡큐~!
은희언니가 오랫동안 보이지않어서 걱정했었어요.
형부께서 편찮으셨군요..
올리신 음악 제 폰애선 안 열려서 유투브에 가서
봤어요.
정말 감동이예요....
귀한 묵주를 후배손에 쥐어주신 그 자상함
너무 따뜻합니다.
춘자도 건강하게 잘 지내지?
이곳 김포에 내려와 15년을 잘 버티어 왔는데
칠십이 넘으니 본인 말로는 "이젠 한계 인가봐" 해요.
뭐.....우리집에만 있는 일은 아니니
받아들여야 한다 하면서도 좀 그러네.
그래도 또 알 수 있나.....좀 오래 이곳에 함께 있게 될지....하는 바램이고.
춘자도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고 좋아해서
어떤 장르의 음악이라도 실력있는 뮤지션의 노래라면 통할거라 생각해요.
인옥후배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알고는 있었지만
내코가 석자라서 마음만 있었거든
병원 병실까지 알아놓고 가려고 하는날 하루전날 떠나더라고
아쉬웠네.
우리집 시누 수녀님이 준 묵주라서 주고싶었거든.
김은희 선배님!
문명진이라는 가수를 볼 때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외모이지만 노래를 시작하면 3분간의 드라마틱함에 흠뻑 매료됩니다.
노래 잘 하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요?
스트레스도 풀고 돈도 벌고 남들에게 행복도 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노래는 절대로 따라 하면 안됩니다.
듣기만 해야지요.
선배님께서
좋은 노래를 올려주셔서 요즈음 귀가 호강을 합니다.
오늘 우연히 제고넷에 들어가 보니까 드라마 "밀회"의 삽입곡들을 죽 올려 놓았더라고요.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들으면서 나같은 사람이 더러 있구나 했습니다.
산학이의
염려하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이젠 인옥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동창홈피에
전했으니.......충분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언가 짚히는게 있어 다시 열어보았더니
댓글을 산학이가 올려놓았구나....에효~
난 그러면
불후의 명곡에 나와 노래부른 가수 중의 박 기영이란 여자 가수의
노래를 올려볼게
오페라 스타 라는 프로에서 우승하기도했고 해서
대중가수는 그만두고 다른길을 모색하려나 했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그냥 대중가수 박 기영으로 활동을 하더라구
클래식한 가수가 어디 그리 만만하겠냐구........돈도 벌려면 가요도 불러야하고 말야
이 대중가수인 박 기영이 불후의 명곡에서 김 수희의 멍에를 불렀는데
거기서 김 수희의 이 노래취입할때 코러스 했다고 인사하더라
자기 기억 하느냐고.....하니 김 수희가 고개를 끄덕이데.
반년가까이 이어폰을 끼고 가장 많은 대중가요를 들었지 싶네
박기영이라는 가수....
아기 엄마라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예전엔 김수희가 멍에를 처음 부를 때 코러스로 활동했다지요.
실은 김수희보다 훨씬 괜찮은 가수임에 틀림 없습니다.
요즈음은
장르에 관계없이 넘나들면서 노래를 하니 청중에게는 더 볼거리가 풍부해진 셈인가요?
팝페라 가수 임형주도 트로트로 음반을 내고 인기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
기다리는 가수가 있는 것
알고 계시지요?
대중가수도 이즈음엔 진화해서 실력있는 가수들이 많은것같아.
어제는 두어시간 잠 자고나서 새벽에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어찌된 일인지 이어폰으로 혼자 음악을 듣는 날보고
같이 듣자해서 임태경의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함께 들었네
"잘하네....좋네...." 하더라구
훌쩍 새벽이 넘어 동이 터오데.......
오랜만에 감성적인 대화를 해보았어요.
임태경도 유재하의 노래 그대 내품에를 부르는데
역시 문 명진이 나은것같고....
인옥후배가 있었으면 내가 이런 저런 기회를 만들어보고 좋았을텐데말야.
은희 언니,
할머니이시나, 감성은 소녀시네요. 사실 우리 모두 그렇지만요.
저희들 언제고 은희 언니댁 그 천정 높은 모던한 건물에서
연극 한판 벌여보기로 했었잖아요.
저는 <지나가는 행인 1> 이나, 도로에 누어 있는 취한 행인 즉 대사 없는 출연자로 캐스팅
될 줄 믿고 있걸랑요.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동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동쪽으로 쓰러진다는 말 처럼
생각하고 있으면 실현되는 것이겠지요.
자주 오시니 좋네요. 홈피가 버라이어티 해지는 느낌 입니다.
가끔 Y에서 하는 시니어 연극을 관람할 기회가 있는데요.
소품으로 모든 등장 인물들이 부채를 들고 있었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부채에는 대사가 빼곡하여서 살짝 살짝 커닝.
어설프지만, 열정이 예쁘고요. 객석에는 남편과 손주들이 그득하여 다소 시끄럽기도 하지만,
보는 동안은 흐뭇해요.
돌이켜 보니 예전 연극에는 잊은 대사 땡겨주는 사람이 있었던 듯도 해요.
리딩 크럽이나, 암송 시낭송 크럽 같은 것이 있어
누군가 이끌어 주면 우리 늙음이 덜 무료할 듯도 합니다. 암송은 치매 예방도 될터지만요.
언젠가 김동길 선생 모임에서 식사 후에 차를마시면서 영시를 근사하게 낭독하시는 모습을 봤는데
이건 영 다른 차원의 감동이더라고요. 여러번 실행하고 연습한 결과겠지만요.
주말 아침에 흰소리 하였습니다. 좋은 봄날 잘 지내셔요.
명제야~
오늘 토요일 점심시간을 마추어 두 아들 며느리 대동하고
자기는 기냥 집에서 모두 돌아 올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겠노라는 산이 할아버지를
손자들이 할아버지 안가시면 우리도 안가겠노라 한다고 부추겨
외식하는 게 겁나 하는 사람도 함께 무사히 임무 완수 하고 돌아왔네.
파주 헤이리까지 가서 손주들과 책방까페까지 들리고
거기서 가까운곳에 사는 인천출신 연극배우 전 무송씨와 통화를 하고
요사이 아프다고 하니 자주 연락을 해오거든
토요일이라서 집에 있거니 했는데 서편제에 나오고 아마도 문화부 장관도 한번 참여정부때 했을라
김명곤씨 말야 그 양반이 세일즈맨의 죽음을 한국판으로 번안을 해 연출을 한단다.
전 배우께서 칠십 중반에 나이에 주인공 역을 맡았다네.
줄곧 쉬지않고 연극무대에 출연을 했지만 들리는 후배연극인들의 말을 빌리자면
대사를 씹는단다....ㅎㅎ....그게 대사를 빼먹어서 그 대사를 받는 역활배우가
치고들어가 대사를 받아야 하는데 대 선배인 전 배우가 대사를 빼먹으니 그 한줄 대사도 못해보고
그저 그림자 노릇만 하다 내려온다고...불평아닌 불평을 한대나 뭐래나
그래도 노련한 경험을 한 노배우를 쓰는 이유가 분명 있을거야
우리 신혼시절부터 드라마쎈타 초창기 연극배우 시절 배 곯아가며 연극에 미쳐들 살았을때
외국유학은 못하게 되었지만 그나마 연극쟁이들과 만나는 그때가 행복했거든
시아버님이 해주신 결혼패물 전부 전당포에 들락거리다 결혼반지만 말고는 몽땅 팔아서
다 연극판에 써버렸으니말야....ㅎㅎ
실은 우리집 아이들도 막내만 빼고는 모두 연극을 했지.
큰딸애도 미대를 나오고도 몇년간은 극단에서 활동하다 다른길로 빠졌지만
허규씨 연출에 이호재 김명곤 방은진씨가 하는 연극에서 조연출을 맡아 하며 연출도 배우기도했어요.
엄마가 그런 꿈을 가지고 있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겠노라하고
산이할아버지도 처음엔 뭐라 뭐라 하더니........뭐 그렇다면야 도와주지뭐 했었거든
그런데 저렇게 맥을 못추고 있네그려...에효~
오늘 날씨도 화창하고 따듯해서인지 처음으로 장시간 외출인데도 아직은 멀쩡해서
최고로 기분 업 되었는데 돌아와 명제글까지 들여다보고는
몇달만에 서서히 죽어가다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야
육십이 넘어 칠십을 향해 가는 우리들이지만
팔순이 넘은 김 동길 선생님만 멋진 영시를 암송하시겄어
우리들도 흉내라도 내봐야겄지.
종편 방송에서 그 양반 조 영남 김 동건아나운서와 함께 트리오로 하는 프로에서도
영시도 가끔 암송하고 그 특유의 달변 솜씨에 감탄을 하곤해요.
그 연세에 이제 무서울게 뭐 있겠나 싶네
명제의 흰소리에 나 또한 흰소리로 답했네.
곧 만날 일이 있어요.
은희 언니 소식을 토옹 들을 수가 없어
겨울 내 김 선생님께서 많이 좋지 않구나 생각했어요.
저도 이제 완전히 '불후의 명곡 팬이 되었답니다.
문명진은 언제나 모자를 쓰고 나와서, 그의 노래 조차 좀 불쾌했는데
요즘에야 조금씩 그의 노래를 이해하게 되더군요.
알 앤 비 창법이 뭔지 잘 모르지만
알 앤 비 창법의 교과서 같은 존재라고...
4월 말에 한국 나가니, 뵐 수 있을 런지요....?
고려산 진달래 보기를 누군가 간절히 원하니
(아마 그 분의 고향이 강화인 것 같아요)
고려산 진달래를 보고 그 분에게 고향 소식을 전해 주고 싶어요.
선생님과 더불어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