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겹겹이 푸른 초록의 5월을
노란 나비가 되어 날아간 사람,
달을 따라 갔을까?
꽃이 지고
잎이 진다고
사랑이 가 버린 것은 아니지
그리움 속에 젖어드는 물기어린 눈속에
혼불이 탄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의 마즈막날,
혜원 후배가 먼길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통이 엄청 컸다 하더니 결국은 가고야 마는구나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2년 전 어느 날,
혜원 후배와 만나기로 한 하루 전날
아들 우진이가 전화를 했다.
엄마가 쓰러져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라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다고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혜원후배와 통화를 했는데 대상포진이라 하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전화도 안 받아 걱정을 하던 중에 가평에 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는데 결국은 이런 비보를 듣게 된 것이다.
아! 혜경언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혜원 후배의 고운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가 알고있는 사람 중
제일 결이 고운 여자였던 헤원 후배!
가끔 우리집앞 꽃이 많은 커피집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다보면
이 세상의 것들과는 거리가 먼 듯 언제나 조용하고 아름다와서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들곤했을 정도였다.
내가 오죽하면 "영국 황실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 할 정도 였으니까.
그리고 집안 내력때문일까?
피아노도 수준급이고 그림도 잘 그렸던 혜원후배는 타고난 예술가이다.
한번은 자매가 함께 전시회를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혜경언니는 일년에 한번은 꼭 동생과 함께 전시회를 하고싶어 했는데
그 때의 전시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줄 그 때는 짐작이나 했을까? .
흔히들 말을 하기를
일찍 세상을 뜨는 사람은
지은 업보가 적어 이승에서의 숙제를 다 마쳤기에 저 세상으로 일찍 가는 것이라고.
결국은 죄많은 사람이 죄값을 치루느라 오래오래 죽지도 못 하고 살아 고통에 허덕이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 인연법에 의해
착하고 착하기만 한 혜원후배는
그래서 빨리 서둘러 갔겠거니 위로도 해 본다.
분명 혜원 후배는 이 세상 짐 다 벗고 노란나비가 되어 사뿐이 날아 고통이 없는 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엄마를 닮아
반듯한 아들 우진이가
일일이 문상객을 배웅한다.
"엄마가 평소에 네가 장가가는 것을 제일 많이 걱정했단다.
그러니까 네가 결혼을 하면 아줌마가 꼭 참석할께" 했더니 눈물이 나는지 고개를 푹 숙인다.
나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허둥지둥 그 자리를 쫓기듯 빠져나왔다.
왜 이렇게 기가 막힌 날
날씨는 기가막히게 좋은 것인지......
"오월의 별헤는 밤"
신촌의 한 대학 축제의 달... 마지막 날 노천극장 공연의 부제입니다.
제 마음 속에는 이 날.. 이공연이 혜원 후배를 더욱 선명히 기억하게 하는 이미지로 남습니다.
마침 그 날 공연은 미국에서 16년만에 한국을 찾는 후배를 위해 미리 표를 예매해 두었던 터라
우리는 낮부터 만나 공연 시작 시간 전까지 대학 주변을 산책하며 실로 오랫만에 회포를 풀고 있었습니다.
후배 - 10 최영희- 가 말하길 혜경 선배님이 아마도 한국에 오셔서 아픈 동생을 돌볼고 계시는 것 같다고....
곧 혜원씨가 떠올랐습니다. 혜원씨가 아프다고???
전 몇 년 전 혜경 선배님과 2인전을 가졌던 혜원후배에 대해... 그 종이 작풍의 단아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공연 시작 전 한 시간 정도 남기고 공연장을 향하며 무심코 확인 한 전화문자.....
거기엔 너무도 놀랍고 슬픈 소식이 있었습니다. 혜원후배 큰 아들이 어머니의 마지막 소식을 알리는...
너무나 큰 충격이 가슴을 막아 한 동안 씩 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프다는 걸 안지 한 시간 남짓에 다시 듣게 되는 마지막 소식....
바로 오늘... 얼마 전... 혜원씨가 세상을 떠나갔다니...
그 날 공연 프로그램에는 혜원후배 동생인 김광진씨 무대도 들어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알고 어떻게 공연을 할 수 있을까...
히는 생각에 더욱 크고 생생한 애잔함이 마음 속 깊이 스며왔습니다.
김광진씨는 첫 공연자로 나와 세 곡을 불렀습니다.
(그리곤 곧 병원으로 향해 갔겢지요)
첫 곡, 동경소녀....
축제 분위기의 노천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 머리 위 5월의 마지막 토요일 밤하늘에는 맑은 달 하나 둥긋 떠올라 있었습니다. .....
밴드의 리듬은 얼핏 흥겨운 듯하지만 제 마음 속엔 노래의 악절마다 혜원후배의 이 세상 마지막 날이란 슬픈 감회의 인사로 가득했습니다.
다음 노래, 편지... 마법의 성... 을 부르는 광진씨의 얼굴에도 그런 깊은 표정이 어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최영희후배와 저는 월요일 영결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고인을 위해 드리는 마지막 미사에 함께 참여하면서 혜원후배에게 다시 한번 더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먼저 가는 모든 이들은 남은 이에게 '길'을 보여주는 거라고 썼다는 어느 의사작가를 인용한 신부님 강론 일부분이 마음 속에 남습니다.
5월의 별헤는 밤과 김혜원테레사를 위한 마지막 미사의 특별한 감회를
맑고 조용한 표정으로 선사하고 가신 혜원후배님....
보여주신 길... 늘 기억하겠습니다.
그곳의 평안을 누리소서.
이은화 후배!
동생인 가수 김광진은
바로 전날도 공연이 있어
입술에 물집이 생기는 등 그렇게 피곤해 보였나봅니다.
공연은 취소할 수도 없었으니 순서만 바꿔 출연을 하고는 후배 말대로 병원으로 달려왔겠네요.
각오는 하고 있었어도
형제가 느끼는 비애는 어찌 표현이 될까요?
그 와중에도
식구들은 물론
형제들과 조카들이 많으니
그래도 쓸쓸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고
수녀님과 친지들이 계속 연도를 올려 가는 길을 축복했습니다.
더 더군다나
이은화 후배나 미국에서 16년만에 고국을 찾은 최영희 후배 같은 분들도
영결미사에 참석해 가는 길을 배웅했다니
혜원 후배는 가는 길이 정말 쓸쓸하지 않았구나 합니다.
수년 전
천상병 시인이 죽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서울대 재학중 옥살이로 병을 얻어 제대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시인은
장모의 구박을 받아가며 막걸리 한병으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동네 꼬마들과 놀면서 말입니다.
욕심없고 착하기만 했던 시인이 죽자
주변 친구들이 부의금이라고 봉투를 가지고 왔는데
집이 하두 허름해 큰돈을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었던 장모님이 그 돈을 아궁이 속에 숨겼습 니다.
그런데 마침 발인하는 날
장모님이 돈을 아궁이에 숨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추워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말았답니다.
거금 삼백만원이 홀랑 탔습니다.
그 사건을 두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기를
현대의 정주영회장도 저승가는 길에 노잣돈으로 삼백만원을 못 가져갔는데
시인은 아기처럼 착하게 살았기에 노잣돈으로 삼백만원을 가져갔다고요.
혜원 후배 가는 길에
왜 이 이야기가 오버랩 되는 것일까요?
인생은 억지로는 안되고 순리대로 되는 법인가 봅니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김은희 선배님!
모차르트의 레퀴엠-라크리모사.....
모차르트가 이 곡을 다 끝내지 못하고 운명을 하였기에
마지막 부분은 제자가 만들었다는 바로 그 곡이네요.
이 경건하고 아름다운 곡을 들으며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사뿐사뿐 걸어가는 혜원후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던 내가 종내는 울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누구나 내 설움에 운다하더니
그 말이 한치도 틀림이 없네요.
누가 뭐라 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이런 음악을 만든 모차르트는 천재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글의 주제에 따라
선배님께서 올려주는 음악들..........
얼마만큼을 알아야 이런 선곡이 될까요?
?선배님~~
제가 보는 혜원이도 선배님 말씀대로
세상의 것들과는 거리가 먼 듯 언제나 조용하고 아름다왔던
혜원이었습니다.
더 좋은 곳에서
아픔의 고통 없이
편안하기를~~~
현숙 후배!
인천에서 지성소아과 김관철 박사님 하면
신세를 안 진 사람이 없는
명문가로 알려져 있지요.
그러니 그 자제분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아버지 이름에 행여 누가 될까 조심조심 살아왔겠지요.
그래서 더욱 세상의 것들과는 인연이 없는 듯 보여진 것이 아닐까요?
제가 알기로
이문열의 작품 속에
인천의 지성소아과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어느 작품인지 기억이 나지를 않네요.
그 방면에 박식한 어른이 아직도 생존해 계시는데 한번 만나 여쭈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명문가에 속하는 또 한 집안이
우리 7기의 유순애의 집안이랍니다.
그나저나
그 날 집에는 잘 갔지요?
일요일이라 식구들이 전부 집에 있는데도
인천까지 찾아와 친구 혜원이를 마지막으로 보러 왔잖아요?
감사합니다.
그렇겠군요 .
재작년 우연히
편지라는 가사가 맘을 당겨서
홈피에 올렸었고
그래서 김광진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들었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고
가사만으로는 이별로 가슴이 아렸었는데
현재 진행형은 해피라 참으로 좋았습니다.
~~~~~
저도 인옥이 따라 같이 가서
선배님이 내 주시는 차 마시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택시에서
내렸어요~~
선배님을 매번 멀리서만 뵙다가
가까이에서 뵈어 영광이었습니다.
나이 70 중반을 넘고 보니
이제는 살고 죽움에 대하여 까지 초연해 진다.
먼저 가고 나중 가는 것 차이 일 뿐...
'나이 70중반이 넘으면
대통령 이름을 불러도 결례가 안되고
애 경사에 빠져도 결례가 되지 않는 나이'라고들 하니..^ㅎ^
제 동창들 20%가 갔습니다
옛날에는 성적 10%내에 들려고 그렇게도 기를 쓰더니만
가는데는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나는 행운?이지요..
하느님은 착한 사람을 먼저 데려다 쓰시는 모양입니다
'하느님! 나빠요... ㅋ'
아직 이상이 없는것을 보면, 나는 악한 짓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 "나"는 원래 없었다.
나는 내 의사대로 세상에 나온것도 아니다.
고로, 내가 내 의사에 반해 간 들, 본전인 셈이다.'
목적지가 대전인 사람이 차표를 끊고 가는데
부산까지 같이 가자고 떼를 쓸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우리네 삶이다
우리는 태어날때 부터 목적지가 정해 진듯 하다
그것은 하느님만 아신다
고로, 먼저 갔다고 넘 슬퍼하거나 애처러워 할 필요도 없다
어른이 가시면 '돌아가셨다'는 말을 쓴다.
'원 위치로 갔다'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사이는 곡 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며느리가 웃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이 웃는다'는 말이 있다.
그 뜻을 곰곰히 생각해 보며, 웃음을 감춘다
나는 냉혈동물인가. 경제적 동물인가
아니면 정말 나쁜N인가
내가 나도 모르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씁슬....
선배님!
선배님의 글을 읽으니
17세기 조선의 천재화가 취옹 김명국의 "죽음의 자화상"이 생각납니다.
긴소매에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화가의 뒷모습이지요.
이 분의 "지옥도"도 재미있습니다.
스님이 지옥도를 그려달라고 부탁을 하니 술을 사 주면 그리겠다해서 술을 사 주었는데
그린 지옥도를 보니 몽땅 스님 들 뿐이라 화가 잔뜩 난 스님,
술을 더 사오면 지옥에서 나오게 해 주겠다 해서
술을 사 주니
스님의 대머리에 머리털을 다 심어놓았다고요.
당연히 스님들을 지옥에서 구한 것이지요.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 이야기는
우리 2기의 김은희 선배님이 잘 알고 있는데요.....
산학아~
오늘 손주 둘하고 벚나무 열매 뻐찌 따먹다
산이녀석이 넘어지면서 진도견 보리꼬리를 밟아 버리는 바람에
놀라 그런지 산이 다리랑 등을 깨물어 상처를 내어
나 다리다쳐 입원했던 병원 응급실에 다녀오고
난리도 아니였네....다행히 피도나고 상처도 생겼지만
전에 백신을 맞아 괜찮다 해서 다행히 수습이 잘되였어요.
그 우리집 보리녀석 ....스님한테 보리란 이름 받았다는데...주인을 무네그려.
산이말이 "보리의 약점인 꼬리를 밟아 그런거니
용서해주어야지요" 해서 어른들이 할 말을 잃었었네.
그리고 이곳에 그림이야기는.....글쎄다....
이왕지사 어렵게 꺼낸 이야기일테니 한장만 올리마.
연담 김 명국하면 불자인 산학이도 잘아는 그 유명한 그림 "달마도"가 있고
많은 일화와 그림이 있지만
그림 가져오는법은 잘 아니 그 "죽음의 자화상" 을 올려볼게.
죽음의 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에 쓰여진 글 풀이...
"없는 것으로 있는 것을 만드니
그림으로 모습을 그릴지언정 어찌 무슨 말을 전하랴
세상엔 시인이 많고 많지만
누가 이미 흩어진 혼을 불러주리오"
은희 선배님!
이것이 무슨 날벼락이래요?
흔히들 好事多魔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그만 하기를 다행입니다.
그런데 산이가 어쩌면 속이 그리도 깊을까요?
워즈워즈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다시 생각납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이 "내 탓이오" 켐페인을 벌여도 모르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산이는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고 있으니
역시 심성은 타고나나 봅니다.
어제는 신문에 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밤에 자고 일어났더니 발가락 5개가 몽땅 없어진 사연입니다.
당뇨로 고생을 하던 60대 후반의 남자가 키우던 애완견에 밤새 발가락을 야금야금 씹어 먹었는데
식구들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답니다.
감각을 잃어버린 환자는 당연히 몰랐고요.
나중에 경찰 조사 결과 강아지 뱃속에서 발가락이 나와 사건은 종결 되었지만.....
글쎄요.....!!!
아 무리 그래도 애지중지 키우던 애완견에게 당하면 안되는 것이 맞지요?
하기는 인간사 모두도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법이니까요.
그나저나
지혜로운 산이가 놀라지는 않겠지요?
나도 몇년전 김혜경선배님 사진전에서
처음 혜원후배를 만났었지.
그 곳에서 그 날 산학후배도 처음 만났고
은화가 친구랑 함께 와서 만났었고.....
과연 나에게 남은날은 얼마나 될까??
요즘 엄마가 투석하시느라 오랫동안 고생하셨는데
이젠 더 이상 하실 수 없게되어.......
...........
나의 먼 훗날을 보는듯하여 가슴을 안고 울었네...
산학후배,,,아끼는 후배를 보내는 산학후배의 마음이 더 짠 한것같아서,,
또 혜경이의 동생이라니 ,,,뭐라고 조문의 글을 올릴지 망서려지네요,
나의 경험속에서,,또 모두들 하는 말이 부모님은 언젠가는 가신다는 생각을 하고 살지만,
형제가 갈떄,,,대개는 전혀 기대없이,,갈떄,,참으로 어렵다고 하데요,
저도 그런 경험을 했어야 했죠, 이 이억만리에서 가 보지도 못하고 전화로만 모르는듯 하는 마지막 인사 ,,,를 나눠야 했던,,
그 어렵던 시절,,,1970년대의 유학생의 삶,,그러면서 형제를 보냈어야만 했죠,,,
그러면서 나의 삶을 돌아보는,,,자신의 훈련을,,,
예전에는 막연히 무섭기만 하던 죽음이,,,아아,,언젠간 나도 가능거구나,,가야하는거구나,,
우리 모두 다 자기 분량대로 마음 속에서 겪어내야 하는 일들이 아닌가 합니다,
많이들 어려우시겠어요,,혜경이 친구가 얼마나 어려울른지,,,
산학후배,,속히 건강을 회복하시길 빕니다,
정순자 선배님!
옛날 학창시절에 향가 라고 배우던 "제망매가"가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월명대사의 작품입니다.
살고 죽는 길이 여기에 있음에 두려워지고
나는 갑니다 말도 다 이르지 못하고 갔으니
어느 가을 이는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아아! 극락에서 만날 것을 믿고서
내가 도 닦으면서 기다리겠다.
공부하는 스님도 피붙이의 죽음이 이렇게 가슴이 에이는데
범인들이야 말 해 무엇할까요?
선배님께서 겪었을 70년대의 일이 저같은 사람은 짐작도 못하겠습니다.
얼마나 막막했을까요?
어릴 적엔
지나가다 영구차를 보면
얼른 엄지 손가락을 감추고 빨리 지나치라고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60이 넘어
한번은 결혼식에 한번은 장례식장을 다니다 보니
그것이 인생이려니 합니다.
앞 선 사람이 간 길을
내가 그대로 따라 가는 길,
모든 일이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내 일입니다.
우리 이별 정서를 잘 표현해주는 노래 별리
왜?
절절하게 토해내는 노래 소리가
차분하게 슬픔을 정리해 주는걸까요?
떠난 최 인호 작가도
떠 올려지기도 하네요.
문명진의 노래는
창자가 끊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옛 시조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오늘 갈는지 내일 갈는지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놨나,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정들이고 가는 임은 가고 싶어서 가나.
예나 지금이나 별리의 정은 어쩜 이리도 똑 같을까요?
가끔씩 그리운 사람들이
못 견디게 보고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에는 이런 시를 몇번씩 외우곤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가지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까.......
이 목숨 태어남은 한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오
이 목숨 스러짐은 한조각 뜬구름 사라짐이라.
뜬구름 그 자체가 원래 없던 것
인생의 오고 감도 그와 같으니
아아! 이 몸도 오래지않아
다시 흙으로 돌아가리라.
정신이 한번 몸을 떠나면
뼈만이 땅에 버려지나니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쉼없이 타고 있는데
무엇을 탐하고 무엇을 의지하랴
이 세상 모든 것은 물거품인데.......
법화경에 나오는 싯구입니다.
오늘 그냥 곯아떨어져 자리라 했는데
요즈음 자기전 찾아보던 동영상 TED .....그 중 뇌의 관한 동영상을 즐겨보다
전에 보았던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산학이 글을 읽고
다시 찾아보았네......
죽음을 앞둔 랟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
한번 보렴.
올려주신 동영상을 보니
일요일 EBS에서 방영한 "뷰티풀 마인드"가 생각납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쉬의 전기를 다룬 영화인데
공교롭게도 한달전에 86세의 존 내쉬 부부가 택시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하늘나라로 갔다고요.
천재 수학자인 존 내쉬박사는
평생을 정신분열증을 겪으며 꿈과 현실을 분간 못하는 과대망상증으로
정신병원을 오가며 사는 중에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해 위대한 업적을 발표하고 종내는 노벨경제학상을 받는다는 줄거리인데
죽음을 앞둔 랜디포시의 강의와 비교해 보면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루하루 성실히 사는 것만이
결국은 본인의 고통도 이겨내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 뇌의 20%도 못 쓰고 죽는다고 했습니다.
천재들은 그 이상을 쓰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쳐야 "하는 경계를 넘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인간이 위대한 것은
머리가 좋고 나쁨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생도 참을 줄 아는 것이라고요.
어찌되었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는 순간까지 고생을 하며 사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 인생인가 합니다.
결국은 나를 위해 살기보다는
남을 위해 살때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겠지요.
내일이 벌써 혜원 후배의 49재이네요.
불가에서는
죽은 날부터 7일마다 심판을 7번 받고 드디어 49일째 되는 날 갈 길이 정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49일 동안이 중요해
식구들은 몸과 마음가짐을 단정히 하고
망자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극락왕생만을 위해 49일을 지내야 합니다. (물론 혜원 후배는 카톨릭신자 입니다)
이제 혜원 후배는
생전에 착하게 잘 살았고
식구들은 물론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동문들의 기도가 있었기에
좋은 곳으로 훨훨 날아 갔으리라 믿습니다.
이 글을 한번이라도 읽고
그동안 혜원 후배를 위해 기도해 준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김혜원 후배,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그 날 함께 문상을 위해
김포에서 달려오신 은희 선배님과 부군되시는 김정웅교수님
그리고 14기의 최인옥과 이현숙 후배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