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가을이 깊어간다.
추적추적 나리는 가을비에 거리는 낙엽으로 뒤덮이고 노오란 은행잎도 우수수 떨어져 그 위를 덮는다.
누군가가 수없이 밟고 갔을 그 길을 나도 걷는다.
이런 날이면 이해인 시인의 싯귀가 저절로 생각난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너만이 채워줄 수 있다" 라고 했던가?
베란다에 서서 그를 배웅하던 나날들
"안녕"이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보냈기에 베란다에 서서 그의 뒷모습을 본다.
그가 마치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뒤돌아보고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나도 두손을 들어 크게 흔든다.
그리고 모통이를 돌아가며 또 한번 돌아보고 아쉬운 듯 손을 흔든다.
보내고싶지 않은 내 마음을 그도 알아챈 것일까?
국화꽃 향기 가득한 베란다에서 나도 오늘은 그에게 그윽한 꽃향기로 스며들고 싶었는데.....
나는 이즈음
세상에서 제일 많이 달고 사는 말 "사랑"에 대하여 생각한다.
살아오면서 나는 우리 부모님이 과연 사랑이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했을까? 라는 의문을 품어오면서 살아왔다.
항상 바람같았던 아버지 곁에서
엄마는 내가 너희들 때문에 산다를 넋두리처럼 달고 살아 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엄마가 두번의 수술을 하면서 지병이 있는 아버지를 걱정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아픈 것은 괜찮으나 네 아버지가 걱정이다"
라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
정말은 우리 엄마는 7년이라는 아버지 병수발에 힘들다고 하시면서도
물 한그릇 아버지가 떠 드시지 못하게 했다.
병 때문에 입맛이 까다로운 아버지를 위해 하루 세끼 더운 밥을 해 드리니
기가 딱 막힌 나는
나는 한번 해서 3일을 먹는데 라며 지청구를 하면
아무리 반찬이 좋아도 밥이 따끈따끈해야 하는 법이라며 세끼 더운 밥을 고집하신다.
그렇게 정성을 쏟는 엄마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소 닭보듯 하며
병석에서도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이제껏 살아 오신 것이다.
그런 엄마가 두번의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되니 문제는 당신 손으로는 아무것도 안 했던 아버지가 문제가 되어
간병인을 두고 두분이 2인실에 같이 입원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달라졌다.
엄마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원래 말이 없던 분이 우리들에게 엄마에 대한 걱정을 늘어 놓으시는 것이 아닌가?
그토록 다정한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우리들은 정말 신기하다.
평생을 밖으로 도는 바람같은 아버지를 향해
엄마가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아버지는 뱀띠고 엄마는 닭띠이기 때문에
결국은 뱀이 닭의 목을 칭칭 감아서 죽일 거라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말은 알타이어에 속한다.
알타이어에 "사랑"이란 "무정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배웠다.
옛날 몽골의 유목민들에게는 하나의 관습이 있었다.
귀한 손님이 오면 아내를 내어주는 것이 그것이다.
어느날 한나라의 유명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려고 이곳을 찿았다.
물론 남편은 손님의 잠자리에 아내를 내보내고 시중을 들게 했다.
그런데 이 화가가 여자에게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루는 여자가 남자가 그림 그리는 산으로 점심을 해 가지고 나갔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 여자가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벼랑에 대롱대롱 걸렸다.
그것을 본 화가가 머플러를 주우려고 절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여자가 깜짝 놀라 "싸랑" "싸랑" 이라고 외쳤는데
그것이 변해 오늘날의 "사랑"이 된 것이란다.
한치 베게도 못 넘어오는 사람이 위험한 절벽은 왜 내려가느냐 하며 "무정한 사람"이라는 뜻의 "싸랑"을 외친 것이다.
화가는 여자를 사랑했을까?
요즈음 도도맘이라는 예쁜여자가 나와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불륜이 아니예요"
"그는 그냥 남자사람 친구로 술친구일 뿐이지요"
"잠자리를 안 했거든요"
이런 여자는 사랑을 할 자격도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 여자임을 왜 모르는 것일까?
사랑이란
참고 또 참고 살아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
상대방의 단점도 감싸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님을 나는 환갑이 지난 이 나이에 알게 되었음을 부끄럽지만 고백한다.
칠화 후배!
저런 아름다운 가을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한 것이지요.
늙어 가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나이 먹는 것"에 두려움까지 생긴답니다.
항상 밝고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산학 작가님~~~~~~~~~~~
오랫만에 주옥같은 산학 작가의 글을 읽으며 눈물이 왈칵 날꺼 같았어요.
사랑의 유래나 부모님의 사랑이나 너무 마음에 와 닿네요.
요즈음 애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안하면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기 까지 한다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정말로 말은 안해도 깊은 사랑을 하고 사셨던거 같아요.
세상이 각박해져가고 이기적이 되가니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참으며 부부 사이를 유지했던 부모님 세대가
이젠 다시 돌아올 수 없을꺼 같다는 생각에 아쉬워지는 아침 입니다.
감기 조심하고 어머님이 빨리 완쾌하시길 빌어요.
윤순영 선배님!
작가도 아닌 제게
작가라는 호칭을 주시니 정말로 민망하고 죄송하네요.
오랜만에 두서없이 글을 쓰고보니
제 마음이 혹시 잘못 전달되지는 않았을까 해서 걱정했는데
역시 기우였습니다.
지혜로운 선배님들이 계셔서 큰 힘을 얻습니다.
거짓사랑이 판치는 세상에
순수함을 찾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윤순영 선배님!
고맙습니다.
?그사이에 '사랑' 이 '무정한 사람' 이 되었네?
사랑이란 살며시 왔다가 살며시 가는 것이라고 패티킴의 노래 가사가...
우리 엄마랑 아버지를 보는 듯 했어.
친정아버지는 늘 엄마의 병수발을 받고 사시다 가셨는데
울엄마는 토론토의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면서
그렇게 자식이 많아도
정작 당신이 아프실 땐 물 한 그릇떠다 바치는 자식이 곁에 없으시니....
그래서 내가 참으로 많이 미안하고 불효를 하면서 산단다.
나이가 점점 엄마의 나이로 되어가면서 느끼는 것이
"자식도 다 소용없어. 뭐니해도 부부가 최고야.
그러니까 음식 불평말고 뭐든 잘 먹고 건강해서 오래오래 살아."
특히 음식솜씨 없는 내가 달랑 반찬 두어가지 상에 올리고
남편에게 하는 나의 변...ㅎㅎㅎ
엄마는 지금도 후회하고 속상해 하시는 것이
"이놈에 영감~! 이 담에 늙어서 보자 ~" 하고 악담아닌 악담(?)을 하신것이
제일 맘에 걸리신다고...
"너는 남편이 뵈기 싫어도 절대 그런 말 하지마라!"
그런데 워쪄~ ~
울남편은 경상도 하고도 경북에
거기에 더하여 대구....이번에 통계상 제일 남편감으로 순악질???ㅎㅎㅎ
건강하게 돌아와서 글앞에 앉은 산학이
인선아!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며
산넘어 또 산 이라는 말들..... 요즈음 아주 절감하고 있단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오늘같은 날이 있어 숨을 돌리는가 싶다.
오늘 용순이네 혼사에 다녀 왔단다.
물론 네가 보고싶어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으로
지명제 김영수 이승자 유순애 정갑순 이정수 김원희
그리고 10기의 권칠화 최송학이 왔단다.
오랫만에 모여 용순이네 멋진 사위도 보고 예쁜 신부도 보고
특히 아직 미장가인 용순이의 잘난 아들도 보았단다.
오랫만에 만나 긴 이야기에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는데
서울에서 온 친구들
시위대로 서울 도심이 아수라장이라는데
다들 잘 들어갔는지 모르겠네.
분명 너도 마음은 이곳에 와 있었을터
보고싶다.
위 본문을 읽으면서 두번째 문단까지는 아주 로맨틱한 마음으로 읽어갔다
그런데
세번째 문단에서 <살아오면서 나는 우리 부모님이 과연 사랑이라는 것을 한번이라도 했을까? 라는 의문을 품어오면서 살아왔다.>를 읽으면서는 실소가 나와, 입에 머금었던 차가 터져 나왔다. 한국적인 상황에서 내 부모님들이 과연 사랑을 했을까.... 하는 의문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품고 지냈을 것임. 나만 빼고! (왜냐하면 우리 엄마 자체가 로맨티시스트이니 어찌 연애감정 없이 살았으랴)
우리 한국부모님들은 저와 같은 식으로 진실된 깊이 있는 사랑을 하신 것 같다. 몸과 마음을 다하여...
?언젠가 제 책을 읽으시고 보내주신 글이 많은 격려가 되었답니다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 전해들었는데---- 건안하신지요 저는 요즈음 두번째 책 ---시집---을 준비하고 있답니다 해도 될까---아니지---하면서 여러번 망설이다가 내가 사는 삶의 기록을 서로 나누고 공유하자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해본답니다 올려주시는 선배님 글은 상처입은 영혼들을 치유해주는 그런 힘이 느껴지네요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금재 후배!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쉽지만은 않을텐데...축하드립니다.
어제는 음식을 하다가 냄비에 팔이 슬쩍 스쳤는데
고놈의 새끼 손톱만한 물집이 얼마나 아프고 신경이 쓰이던지요.
모든 상처는 2주가 지나야 회복이 된다니
좀 더 조심을 할 걸 하며 후회를 합니다.
그리고
다치기 전의 그 날들이
고맙고 행복했음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어리석고 교만합니다.
하루하루의 스쳐가는 일상을 꾸준히 글로 기록한다는 것은
이런 어리석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을
모쪼록 자유로운 영혼이
보석같이 영롱한 귀한 詩語로 태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전화를 받으면 우선 나쁜 소식인가하고 걱정부터 생기니..........
부모님 병환중인 친지에게서 온 전화번호를 보면
이젠 그러네그려.
자정을 넘긴 이 시간에서야 시간이 나서
오랜만에 산학이글도 만나보고하네.
깊은 겨울이 오기전에 준비해야 할 이것저것 때문이기도하고
이것저것 다 접고 내 울타리 안에서만 지내면서
이젠 습관처럼 되어버린 일상사들이 오히려 평화롭다는 생각이야.
산학이 어머님께선 참 사랑을 아시는 분 이지싶네.
참으로 무정한 사람을 사랑하시줄 아는 분이시니.......
김은희 선배님!
벌써 올 봄이었나요?
일산에서 선배님의 고희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차안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박홍도 선배님이 말씀하기를
"얘들아! 은희는 어제도 밤 12시 넘어 남편이 메밀 수제비가 먹고싶다고 해서 끓였대"
다들 그 소리에 "나는 그렇게 못 해"를 외쳤습니다.
그 순간 나는 우리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술만 드시고 들어오면 무조건 국수를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 덕인지
우리 엄마 국수는 세상에서 제일 맛이 있습니다.
그렇게 남편이라면 끔찍하게 대하는 현모양처가
우리 세대 끝나면 볼 수가 없을까 걱정입니다.
나만 해도 잠이 들면 세상이 끝나도 모르게 잤기 때문에
우리 남편 생전, 오밤중엔 라면도 못 얻어 먹었잖아요.
누가 뭐래도
현모양처인 은희 선배님!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눈이 오는 아침.....
떠나는 것들을 12월은 눈으로 조용히 덮는다.
거리를 뒹글던 낙엽들마저 텅 빈 길섶이 애절하고 쓸쓸하다.
며칠 전 김영삼 대통령의 애도기간으로 분주했던 어느 날,
바로 밑에 살던 남자가 사업실패로 10층에서 스스로 몸을 날려 생을 마감했다.
그 날도 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려 안개가 잔뜩 낀 날이었다.
집에 혼자 있던 남자가 화단으로 떨어졌는데
화단이 계속 내린 비로 부드러워 그냥 땅속으로 나무처럼 머리가 쑥 들어갔는데 119가 와서는 삽으로 퍼서 끌어냈다고.
그 남자는 죽어 나무가 되었을까?
88세에 떠난 김영삼 대통령과
65세에 자살을 한 남자로 인해
떠나는 것들이 유독 밟히던 2015년도의 끝자락
친구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나도 오래 살았나 보다" 라고.
그런데 오늘은 눈이 오니 괜히 어린아이처럼 좋다.
좋은 것 나쁜 것 다 덮어버리고 하얀 세상이 되니 말이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최면을 건다.
"산학아! 괜찮아. 괜찮다니까.....너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았잖아"
비가 오면 눈이 오는 날도 있고 쾌청한 날이 있으면 바람부는 날도 있으니까.
2016, 새로운 시간을 기대로 맞으며, 2015를 되돌아 보니
산하기의 로맨틱한 글이 이어지네요.
최근 패자부활전 글도 써보았지만, 7방에 전규태 선생님의 실패와 재기 스토리가 실린 <단테처럼 여행하기>를 소개하기도 하였지만
백년해로하고 계신 친정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부럽기도하구요.
감사하기도 하네요.
의리로 사시는건 아니고 참으로 깊은 사랑이 느껴집니다.
동반자로서 부모님의 남은 인생이 꽃길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