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나 걷기나 어디라도 한번 가보려면 꼭두새벽에 일어나 서울까지 쫓아가야 했는데 인천출발의 트레킹 카페가 있단다!

사진작가 친구 덕에 알게되었다.

폭풍검색에 들어가 주시고~

가장 가까운 날짜의 수요일 트레킹을 신청했다.

성원이 되려나 조마조마해 하며 매일 인원수를 체크하다가 출발확정이란 공지에 마음을 놓았다.


아침 6시,인천시청앞 출발이다.

남편이 태워다 줘 편하게 갔지만 여차하면 걸어가도 20분이니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하다.

잠시 후 웬 여자가 올라오는데 이런! 여고동창이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친구다.

인천이 좁긴 하다.

다른 친구 둘도 합류하기로 했으니 두루 반가운 나들이가 될 듯 하다.


몇 군데 정차하며 회원들을 태우고 고속도로에 올랐는데 안개와 미세먼지가 엉켜 가시거리가 무척이나 짧다.

차들이 영 속도를 내지 못한다.

기사님이 신경을 많이 쓰시게 생겼다.

창문이 열려있었는지 연탄가스 냄새(!)가 들어온다.

머리가 다 아프고 숨쉬기 힘들 지경이다.

미리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주는 센스가 아쉬운 순간이었다.


카페지기님의 간단한 소개.

그저 우직하게 뚜벅뚜벅 걷는 게 좋아서 "뚜벅이 트레킹"이란다.

남편이 자주 가는 뚜벅이 산악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조용하고 차분한 걷기여행을 추구하는 취지에 걸맞게 차내에서 잡담,음식물 섭취를 금하고

종이컵 대신 개인컵 소지를 권장한단다.

마음에 드는 모토이다.

알고보니 평일트레킹은 일년에 한 두 번 밖에 없는 이벤트성 행사라는데 운 좋게도 끼게 된 거였다.


평일인데도 단풍구경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인가 길이 무척이나 막힌다.

각오하고 나선 길이니 불평할 일은 아니다.


괴산호는 괴산댐을 막아 생긴 산중의 호수다.

괴산호를 둘러싼 길은 충청 양반길과 산막이 옛길로,두 길이 이어져 있는데 상대적으로 산막이 옛길쪽이 입소문을 타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괴산댐 옆으로 난 좁은 길은 일방통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좁은데

상대편에서 오는 차를 어찌 피해줄런지 궁금해질 정도다.

운전자들의 숙달된 솜씨가 요구되는 곳이다.


9시 경 도착.시작점은 짙은 안개 속에서도 선명하게 눈에 띄는 노란색 출렁다리다.

안개는 여전히 자욱한데 일단 개기만 하면 날은 꽤 맑을 것 같다.  

덥지도 춥지도 않으니 걷기에는 최적의 날씨다.


출렁이는 다리에 동심의 기억을 되살리며 건너편 산길로 접어든다.

좁은 산길엔 단풍 든 낙엽이 카펫퍼럼 깔려있다.

인공의 편리함이 가미되지 않은 길을 걷는 맛이란...

아는 사람은 그 느낌 때문에 자꾸 길을 나서게 된다.


산중의 호수는 주변의 기암괴석과 곱게 물든 단풍으로 실제의 풍경보다 물에 비친 그림자에 더 감탄하게 만들어 준다.

중간에 작은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젊은 부부가 인사성 바르게 맞아준다.

주변 경관을 둘러보며 듣는 해설이 구성지다.

 

사과나무는 묵직한 열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가 축 처져 있다.

부사인가,아주 선명한 붉은색은 아니나 어차피 겨울에 먹는 거,느긋하게 익어가고 있는 것 같아 괜히 여유로워진다.


식당가에 도착.

충청 양반길과 산막이 옛길의 경계지점이라고 할까.

원래의 주민들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들이 몰려오며(연 150만명.대부분 산막이 옛길에 편중된다고...)

외지인들이 들어와 더 크고 더 폼나게 건물을 짓고 영업중이라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는 얘기에 씁쓸해진다.

카페지기님이 공정여행을 위해 노력하는 분이라 점심 한 끼라도 원주민의 식당에서 먹는다고 한다.

곱게 늙으신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는 집.

이름하여 "하얀집".

도토리묵 무침이 깔끔하고 올갱이 토장국은 시원하다.

직접 운영하는 과수원에서 따왔다는 사과는 단맛도 적당하고 크기도 손에 쏙 들어온다.


수몰지구에서 옮겨온 수월정이라는 건물 하나가 유일하게 옛날의 정취를 보여준다.

호젓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한 길을 걸었는데 이 곳은 어디서들 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단체관광객들로 떠들석하다.

들뜬 마음들이라 웃음소리가 필요 이상 높고 요란하다.


양반길의 끝자락 쪽으로 되돌아가 잠시 걸은 후,산막이 옛길로 접어든다.

건너편에는 전에 들어본 적 있는 환벽정이란 정자가 올려다 보인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한반도 지형을 닮은 섬이 호수 가운데 하나 떠있고 그 섬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정자다.


길을 걷다보니 팬서비스(?) 차원인지 바닥에 유리를 깔아놓은 전망대가 호수쪽으로 불쑥 나와있기도 하고

곳곳에 쉴 곳도 마련되어있다.

잘 한다 했더니 뜬금없는 호랑이 조형물이 나타난다.

호랑이 전설이 있는 곳에 실감을 낸다고 만들어 놓은 거다.

무어라 할 말 없게 만드는 장면이다.


산막이 옛길 쪽 주차장을 목표로 걷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로 길이 비좁을 지경이다.

괴산호의 단풍을 보겠다고 온 사람들이다.

주차장에 당도해보니 세상에나! 관광버스가 스무대는 되게 주차되어 있다.

대개 식당가까지 걷거나 배를 타고 가서 식사를 하고 되돌아 나오는 게 여행사들이 짜놓은 일정일 것이다.


경사가 급하지 않다고 해도 길의 오르내림을 따라 10km 가량을 걷고 나니 다리가 뻐근하다.

실제로 걸어보니 충청 양반길 쪽이 좀더 자연스럽고 흙길의 정취가 완연하다.

산막이 옛길 쪽은 정비를 많이 해놓은 대신 사람들로 북적거리니 조용히 길을 걷고싶은 사람에겐

그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것도 같다.

어쨋든 뿌듯한 피로감에 기분은 날아갈 듯 하다.


돌아올 때는 집까지 오는 버스를 갈아타느라 인천터미널역에서 내렸다.

어딘가를 다녀오며 이렇게 마음이 가볍기도 쉽지 않다 할 정도로 내게 인천출발의 위력은 대단하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는 않으나 앞으로 기회 닿는대로 참가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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