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전철로 떠나는 여행(5) 수도권전철 1호선 인천역
중화中華의 바람,
비상飛上하는 붉은 열정의 거리
글. 사진 박성실
지리산에 사는 시인이 한겨울에 벙그러진 매화를 만났다며 보내준 화사한 꽃사진을 보니 성급한 봄이 느껴진다. 춥지 않은 날씨 덕분에 서울에도 눈이 되지 못한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쓸쓸한 발걸음으로 찾아가는 1호선의 처음이자 끝이기도 한 인천역. 이 역은 근대역사문화 여행지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1900년에 준공된 경인선 최초의 역사로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월미도로 갈 수 있는 이곳엔 언제부터인지 ‘차이나타운’이라는 역명이 함께 붙었다. 전철에서 무리 지어 내린 일행을 보는 순간 밀려오는 중화(中華)의 바람이 거세게 느껴진다. 비릿하고 짭쪼름한 바다냄새는 항구가 가까이에 있다고 알려 주는 듯하다. 웅장하고 화려한 전각을 머리에 얹고 서 있는 패루(牌樓)가 건너편에서 손짓한다. ‘차이나타운(中華街)’으로 오르는 첫 관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인천은 1883년 제물포항이 개항되면서 이양선이 드나들기 시작했고, 많은 일본인과 서양인, 그리고 청국인이 이 일대에 조계지를 설치하고 살기 시작하면서 근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곳.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외국인 사교클럽 ‘제물포구락부’ 등 서양식 건물과 일본은행이었던 개항박물관, 일본식 상점과 주택, 중국풍의 집을 돌아보노라니 개항 당시 얼마나 많은 강대국의 문물이 혼합적으로 흘러들었는지 알 수 있다. 바닷가의 고요한 마을에 뻗쳤던 열강의 야욕 또한 쉽게 가늠된다.
자유공원으로 오르니 지척에 있는 항만과 멀리 인천공항과 서해, 옛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홍예문과 벚나무길을 돌아내려 간 송월동 옛집 담장마다 알록달록한 벽화가 동화의 나라로 이끄니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겐 풍성한 볼거리. ‘요우커’들은 아기자기한 그림 앞에서 환한 표정으로 인증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거리마다 풍미가 진동하는 ‘차이나타운’으로 향한다.
순간 이동을 했는가, 중국의 어느 거리를 걷는 착각에 빠진다. 짜장면의 역사가 시작된 요릿집 공화춘을 개조한 짜장면박물관,국내의 유일한 중국 절 의선당, 최초의 화교학교인 중산학교, 삼국지벽화거리, 화교들이 비법을 고수해가며 맛을 내는 요릿집이 즐비하다. 중국 여인들의 전통의상인 치파오, 차와 도자기, 각종 소품이 쌓인 상점 앞에도 인파로 북적인다. 건물코드 ‘레드’로 보이는 길가, 수북이 쌓아놓은 왕만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다른 한편엔 구수한 화덕만두와 공갈빵이 아련한 추억으로 이끈다. 예쁜 모양과 다양한 맛의 월병은 구경만으로도 엔도르핀이 솟는다. 그러나 이 거리에서 짜장면을 지나친다면 오늘의 기행은 헛걸음이 아닐까?
차이나타운은 제물포항이 개항한 후 청나라 영사관이 세워지고 그 주변으로 본토에서 온 무역상과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과 함께 시작됐다는데, 처음 짜장면은 산둥지방의 음식과 비슷하게 무척 짠맛에 채소도 적어 중국인들만 먹었다 한다. 그러구러 1950년대 중반 무렵, 한국인 손님을 끌기 위해 양파와 고기를 많이 넣고, 물과 전분으로 연하게 만든 춘장을 면에 비벼 먹게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한국식 짜장면’! 게다가 푸짐한 양에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값도 쌌다는 것. 한국전쟁 후 무역의 중심지였던 인천항을 오가는 많은 상인과 부두 근로자의 허기를 달래며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바람에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메뉴가 되었고 이 거리에만도 짜장면을 파는 곳이 25곳 이상 모여 있다니, 중국요리에서 한국의 대중 음식이 된 짜장면의 변신은 무죄일 뿐 아니라 대성공을 거둔 음식혁명이 아닌가.
몇 년 전, 오랜 외국 생활을 하고 귀국한 후배는 짜장면이 제일 먹고 싶었다고 했다. 짜장면 한 그릇에 부모님의 사랑이 얹혀 있었고, 졸업식 날 함께 먹는 그것은 희망과 즐거움의 맛이었다.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앉아 먹으며 이사하는 기분을 내던 음식.내 유년의 기억에서 첫 번째 외식도 아버지가 사주신 짜장면이었다. 젓가락으로 면을 돌돌 말아서 먹는 것이라며 가르쳐 주셨지, 조그만 손으로 젓가락을 돌려가며 입가에 시커멓게 장을 묻힌 채 먹던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오늘도 그날처럼 면을 돌돌 말아 후루룩 넘기니 짭짤하면서도 달곰한 맛이 입에 착착 감긴다. 음식점을 나서는데 “쉐쉐~ 짜이찌엔~”으로 인사하는 왕서방에게 엄지를 높이 치켜세우며 화답해 준다.
어린 내게 각인된 그 맛은 왠지 ‘자장면’ 대신 ‘짜’에 힘을 주고 된소리로 발음하는 순간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었다. 이젠 짜장면도 표준어로 인정되었다니 많은 이들의 미각에 스며든 추억이 공인된 느낌이다. 불현듯 그룹 ‘god’의 <어머님께>라는 노랫말이 떠오르며 눈자위가 촉촉해진다.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짜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짜장면 맛을 가르쳐 주신 아버지도,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어머니도 없는 거리엔 종일 겨울비가 추적거린다. 중화의 바람 세찬 언덕에서 짜장면이 향수를 달래주었던가, 마음속에선 말갛게 갠 하늘이 고개를 내민다.(여행작가 2016. 3,4 월호)
고향! 인천!!!
고향을 40년 전부터 떠나 살면서 인천얘기를 듣게 되면 저절로 솔깃해집니다.
위의 본문을 4월 2일에 읽으며 어린 시절이 바로 어제인 양 다가왔습니다.
여행작가 3 /4월호에 글과 사진을 올린 작가 박성실님은
월간 좋은수필 2013년 12월호에 '붉은 고개'로 신인상 당선자입니다.
특히나 인일여고 10회 동문이라는 사실에 접하니 더욱 더 친근해지며
여러 동문님과 나누어 읽으며 고향 인천을 상기하고 싶어 이렇게 올립니다.
제가 선곡한 배경음악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작이 고국을 떠나 미국에 살면서
어느 날 시골을 거닐다가 자신의 고향을 떠오르며 작곡한 ' 신세계 교향곡' 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동시에 이 음악을 듣다가
오래 전 제물포항에 정박하게된 화교인들의 심경을 잠시 그려보았습니다.
그들이 낯선 이곳에 와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여기가 그들의 ' 신세계' 였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보면서 먼 나라를 나름대로 동경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뜻깊은 글을 쓰신 박성실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건강하여 건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4월 15일 아침에
비엔나에서
9기 김옥인 올림
성실한 성실이의 글 잘 읽었어.
다른 글도 자주 보게 되길.
우리 친구들 모두 차이나타운에 대한 기억 하나쯤씩은 있을거야.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니 고맙다.
붉은 고개 독후감도 말씀 못 드렸었는데....
몇 달 전 뵈올 때 여행 작가 책에 글 씀 요청을 받으시고, '무엇을 쓸까 ' 가 아니라
그 유년의 경험과 살아옴의 단아함을 표현하리라 짐작했었습니다.
선배님 늘 응원해 주시고 곁에서 내려놓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몇 자 적지 않음은 또 언제까지 연락을 미루게 될까 후다닥 쓰고 갑니다.
벌써? 5월이 다가 오겠지요?
홈피에 옮겨 주신 김옥인 선배님께도 인사드리며 감사드립니다.
박성실 선배님은 결코 이 페이지에 나타나실 것 같지 않아 제가 대신 외람되게 ~~~~~~~~
사랑합니다.
샌스쟁이 옥인아~~고맙구나~~*^^*
박성실 작가를 소개해주고
인천을 사랑하게 하고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도 들려주고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고향~~
속으로 읊조리게 만들도록
감성을 일깨워주는
고마운 우리친구 옥인이~~건강하게 잘 지내렴~~*^^*
10 윤석란 후배님, 14 유진숙 후배님, 9 구창임 동기
같이 읽고 댓글도 놓아 주어서 감사합니다.
박성실 작가의 발표된 다른 글은 기회가 오면
동문광장 ' 글사랑'에 올려 보겠습니다.
제가 요즈음 인일 동문작가님들의 출간 발표된 글들을 찾아 보고 있습니다.
아하ㅏ,,,,짜장면,,,수도권 전철 1호를 타고 여행하며 옛 중국촌 동네를 여행하며 우리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성실후배님의 여행기 재밋게 읽었읍니다.
그곳에서 나서 자라고 컸으면서도 제대로 모르던 인천의 역사,,문화의 변화,,,등 유익하고 흥미롭군요,
특히 짜장면을 묘사하는 글 솜씨는 능숙하다기 보다는 솔직하고 순수한 표현이라 너무 재밋군요,
그 어린시절에는 사실 어린 아이들이 짜장면을 사 먹고 시켜다 먹기에는 쉽지 않았던 시절,,
꿍쳐돈 돈을 헐어 짜장면을 사 주면서 나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던 어머니,,
음식이 귀하뎐 그 시절, 정말로 싫었을가요?
짜장면 색갈만큼이나 찐한 어머니의 사랑,,,뭉클하네요.
어릴적,,,자식이라면 껌뻑 죽으시던 엄마,,,하도 건강하니 생전 아플리가 없던 나는
자주 요기조기 아픈 작은 언니가 부러워 엄마가 방문을 여시는 기척을 살펴
일부러 아랫목에 이마를 데우고는 이마를 만지니,,,엄마가 ,,놀래셔서 너 어디 아프니?
하며 이마를 만져보니 따끈하니,,,일차로 하시는 말씀,,너 뭐 먹고싶니?
항상 아픈데는 약보다도 먹는것을 먼저라고 믿는 엄마,,,
몇번 머뭇하다가 자꾸 물어보시는 엄마에게,,,짜ㅏㅏㅏ장며ㅓㅓㅓㄴ,,,
분명 꿍쳐논 돈일거예요,,,짜장면 한 그릇 시켜다 먹었던 추억이 있읍니다.
엄마는 안 먹어? 라고 물어봤는지도 생각이 잘 안 나네요,,
분명 엄마는 난 배 안고프다,,라고 하셨겠지요,,,
어려운 시절들이였으나 너무나 끈적한 사랑을 받았던 우리 모두들의 시대,,
축복된 시절,,,끈끈한 인정과 사랑의 시절이였어요,
돌아다보면 항상 미소가 지어지는 따듯했던 시절이라고,,,
올려주신 글 고마워요,,,옥인후배님,,,
Anton?n Dvo??k - Symphony No. 9 in E Minor "From the New World", Op. 95 - II. Largo
Wiener Philharmoniker - Herbert von Karaj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