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에 젖고 비에 醉했다 : 付 後記},

살다보면 때로
도무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느닷없이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치 갑자기 뒤통수를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다.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줄 알아
미처 그 존재도 잊고 살았던
오랜 내 친구를 떠나보낸 어제,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과
안타까운 회한(悔恨)이 나를 휘 감았다.

며칠 전까지도
속으로는 눈물을 흘릴지언정
겉으로는 늘 웃고 호탕하고
비록 주량은 대수롭지 않아도
한 잔 술이나마 술을 사랑하고
무척이나 즐기던 친구,
거기에 사실은
반(半) 쯤은 음치, 박치면서도
노래도 무지 좋아하고
게다가 염치 좋게 가끔은 직접 부르기도 하고
사실 쮀끔은 제법 부르던
그 친구가 속절없이 가버린 지금...
오늘 아침 기분이 무척이나 산란(散亂)하다.

하여
모처럼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않고
집에서 쉬면서 혼자 조용히 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송파 사는 한 친구가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전화다.
그 친구 집에 내 차를 대놓고 친구 차로
문막 지나 간현(艮峴)관광지에 갔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나서부터
각 지방에서는
나름대로 특색이 있거나
좋은 풍광(風光)이 있는 곳을
개발하는 붐이 일고 있다.
여기도 그런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했는데
도대체가 찾는 손님이 없다.
입장료를 받는 여직원은
오랜만에 사람 구경하는 것이
꽤나 반가운 듯 붙잡고 사설이 길다.

이렇게 산듯하게 시설을 단장해놓고
텅텅 비어 있는 모양새가 차마 안타깝다
너무 ‘불친절한’ 입장료 탓도 있다.
주말과 평일에 요금차등(差等)제를
적용하든지 하면 좋을 텐데...
참 국가적인 낭비인 듯싶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사람멀미 안하고 안성맞춤이다.

여기는 산도 야트막하고
산을 감돌아 흐르는 강이
고즈넉하고 잔잔한 것이
참으로 옛날 초등학교시절
바지 걷어붙이고 피라미 잡던
그 때의 아늑한 감흥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등산로를 따라
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자는
친구를 주저앉히고 그냥 천천히
다리 건너까지 걷기만 해도
마음은 벌써 부드러운 자연에
감싸이는 느낌이다.

한 식당을 찾아들어가
매운탕이 되냐고 하니
“오늘 재료도 없고 해서
장사 안 할란다.”는 답이다.
마다하면 굳이 더 시키고 싶은 것이
우리들 장난꾸러기 심보!
결국은 손님인 우리가
오히려 주인을 달래고 설득해서
그곳에 자리 잡고 매운탕과 소주를 시킨다
(사실은 그 집이 풍광이 제일 좋은 때문
절대 주인 여자가 예쁘거나 등 다른 이유가 아님
뭐라고? 강한 부정은 긍정에 다름 아니라고?
인생만사가 다 그렇게 수학공식처럼 돌아가지는 않으니
그런 말은 심리학교실에서나 하게)

매운탕에 곁들인 수제비가 하도 맛이 있어
좀 더 달라고 아줌마를 부른다
내 목청이 최소 50m 는 간단히 커버하는 데
도통 대답이 없다.
할 수 없이 길 건너가서 “아줌~~마”
(목소리가 마에서 쫄아 듬) 하면서 보니
주인아줌마 대낮부터
편한 자세로 버둥대며 누워 있고
그 옆에 시커먼 턱수염의 건장한 남편이 누운 채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덤벨 운동을 한다
어쨌든 추가로 수제비와 라면까지 얹어
위장을 호강시킨다.
(애주가 반쪽친구를 바로 전날 떠나보낸 나는
술은 한 방울도 입에 안 대고)

그이들은 장사에 전적으로
목을 맨 것이 아니고
아마도 그 지역 토박이거나
아니면 건강상 이유 등으로 좋은 공기 찾아
거기에 정착해서 채소 기르고 운동하며
맑은 자연 속에 살며 장사는
순 부업으로 곁들인 듯싶다.
아님 그렇게 손님이 없으면 스트레스 받아
화병(火病)이라도 생길 텐데 여유만만이고
몸도 마음(?) 도 글래머다.

마침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올라오는 태풍 <나리> 콧김을 업고
평상(平床)지붕인 천막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양철지붕이면 더 좋았을 것을...

해오라기 물고기 낚으며
숨 쉬는 자연을 펼쳐 보이고,
송사리 헤엄치는 맑고 시린 물빛
바로 강 건너에는 빗줄기 속에서도
꿋꿋이 암벽 클라이밍을 하는
몇 명 사나이들의 힘차고 굵은 몸짓들,
병풍(屛風)처럼 길게 휘어 드리워져 있는
산과 강들이 안겨주는 멋있는 풍광,
휘돌아 감기는 곳의 물빛은
연두 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하고...
조용하다 못해
적막(寂寞)하기까지 한 사위(四圍),
맛있는 매운탕,
허물없는 친구,
거기에 미치도록 좋아하는 비와
이어지는 장쾌한 빗소리...

친구는 소주를
나는 비를 마시며
우리는 그렇게 비에 젖어 갔다.
아! 술을 안 마시면서도 이렇게 취할 수가 있구나.!
비, 친구, 그림과 같은 자연, 맛있는 음식, ...
이런 4박자가 어우러진 속에
우리는 앞 강(江)에 도도히 노래를 실어 보낸다.

이런 곳을 진작 알았으면
친구들과 한 번 쯤 나들이 왔을 것을...
하는 아쉬움에 목젖이 간지럽다.
저기 저 앞 넓은 공터에 자리 잡고
돗자리 깔고 둘러앉아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그러나 이런 관광지일수록
차라리 자릿값을 내고
제대로 음식을 시켜먹으며 놀아야
목청 돋우어 노래라도 할 수 있는
떳떳함이 생긴다.
또한 그것이 그런 데서
장사하는 이들에 대한
기본 예의(禮儀)다.

나에게 내비게이션만 의지한다고
꽤나 핀잔을 주던 친구는
갈 때와 돌아올 때 두 번 다 길을 잘못 들어
상행 길 하행 길을 가고 되 오고
두 어 번 헛발질을 한다.
그래도 우리의 영원한 가희 ‘김추자’
그리고 오페라 아리아들, 또
30여곡을 완전 트로트로 편곡해서
‘김수희’가 부른 CD들이 닳도록
핏대 줄 세워 기를 쓰고 따라 부르며
빗속 막히는 지루함을 떨쳐버린다.
송파 오금동 친구 집에서 겨우 15km인 집까지
두 시간이나 걸려서 오니 완전 파김치가 됐다.
이제는 운전도 못하겠더라.
한 시간만 지나도 10년 쯤 전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이 아직 남아
컨디션이 별로일 때는 나를 몹시도 괴롭힌다

친구들!
자네들도 언제 낙엽이 온통 쌓여
가슴에 쓸쓸한 고적(孤寂)이
굳은 앙금처럼 가라앉기 전에
한 번 시간 나는 대로 가보게.  
2007.9.16.
011-Bohemian 씀


후기(後記) :

친구들!
“어제 죽은 친구가
옛날 너 인천 살 때 친구냐?
초등학교친구(?) 중학교친구(?)”
라고 자네들 물었었지?
나와는 전혀 아무 상관도 없는
먼 남의 나라 얘기로만 들리던
힘깨나 쓰는
강도에게 불의의 기습공격을 받고... !
칼 앞에 사시미(=자신(刺身)) 신세 됐던 것도
어느 새 3년 가웃!
그래서 그동안
그 강도와 맞닥뜨렸던 사실조차 잊고
지내던 일상(日常)에서...
지난 9월 15일 병원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안 좋은 검사결과가 나와
앞으로는 절대로 술을 끊으라 하더라.
그러면 최소한 20년은 자기랑
(의사가 옛 중학교 동기동창)
넉넉히 볼 수 있다나(?)

나는 폐병 말기이면서도 폭음(暴飮)을 마다 않던
시인(詩人) 이상(李箱)(=김해경(金海卿))처럼
자기 생명을 갖고 희롱하는
스타일까지는 못 되지만
나의 그 알량하게 마시는
술마저 놓고 살자니
앞으로 20년 아니라
60년을 다시 더 산다 하더라도
앙꼬(=팥소)없는 찐빵이요
김빠진 맥주와 같은 여생(餘生)이
정말 허망하게 느껴지더라.

“저에게 그 만큼
시련과 고통을 주셨으면 됐지
지금 이 마당에
또 어떤 각본을 준비하신 건가요?
어차피 인생은 한 마당 연극이고
그 연극은
종당에는 막(幕)이 내리는 연극이고
나는 그 무대에서 중간에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終身徘優라 하지만
이렇게 자꾸만
무섭고 힘든 배역(配役)을 맡기시니
아무리 연극이라지만
저 지금 떨고 있잖아요? 그것도 엄청요...”
난 그렇게 하늘을 향해 하릴없이
푸념 섞인 빈주먹만 날렸다.
    
그래서 바로 그날까지도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그런 검사결과가
툭 튀어나오리라는 건 꿈도 꾸지 않고
자유롭게 술도 마시고
즐거운 척 노래하고
호탕하게 어깨 흔들어가며
웃고 떠들던 나 자신을
갑자기 하루 전날
세상 버린 나의 오랜
애주가(愛酒家) 반(半)쪽 친구인
가상(假想)인물로 객관화시켜
윗글을 썼던 것이다

다행히(?)
신(神)이 아직은 <나>라는 캔버스에
아주 보기 싫고 칙칙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당분간은
유보하셨는지 아님 좀 싫증이 나셨는지
현재 내 상태는 청명(淸明)한 가을 날씨다.
(물론 앞으로도 남은 평생
술은 그림의 떡이고,
떠나 가버린 버스인 것에는 변함없지만...)

따라서 나도
그나마 다시 용기를 내어
한 꺼풀 휘장을 걷고 재차 이 글을 보내니
그런 사실을 새기며
새로운 기분으로 보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