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제사를 지낼 때에 주로 사용하고 있는 "현고학생부군 신위"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현 = 모습을 나타내 주십시오. 후손이 정성껏 지내는 이 제사에...
고 = 돌아가신 아버님. 이 글자는 후대에 내려와서는 "생각하다"란 뜻으로도 쓰임.
학생 = 품계나 관직이 없는 분을 일컫는 말. "진사" "생원"도 못 딴 사람임
부군 = 돌아가신 조상님을 높여서 부르는 호칭
신위 = 신령님. 동양에서는 돌아가신 조상님도 "신"으로 모심.

그러니까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전에 아무런 품계도 벼슬도 하지 못한 경우에 사용하는 표현이라고 보면 됩니다.

돌아가신 분이 정1품 영의정에다 문정공이란 시호를 나중에 받았다면
<현고대광숭록대부영의정시문정공부군신위>
라 쓴다는 이야기입니다.

품계란 요즈음의 이사관, 서기관, 사무관, 주사, 서기 등과 같은 것이어서 조선 시대에는 대광보국숭록대부, 숭정대부, 자헌대부, 가선대부, 통덕랑, 봉직랑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대식으로 지방을 써서 붙인다면
<현고서기관인천광역시교육청○○과장부군 신위>
라고 써야 되겠지요. 그런데 요사이에는 무조건 다 "학생부군"이라고들 하고 있지요.

여자분들에 대한 제사를 지낼 때에는
<현비유인김해김씨 신위>
라고 쓰고들 있는데,

여기서 "유인"이라 함은 원래 남편이 종9품 하급관리였을 때에만 그 배우자에게 붙여 주는 호칭인데요. 사실 "학생부군"의 배우자에게는 맞지 않는 호칭이긴 하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구 쓰고 있는 편이지요.

관리들 배우자의 호칭도 품계에 따라서 다 달랐는데, 정경부인, 정부인, 숙부인 등이 고위 관리들 사모님들이고, 숙인, 영인, 공인 등은 하위 관리들의 사모님들 호칭이었습니다.
근데, 요즈음에는 아무에게나 다 "부인"이라고 하지요.

물론,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양반네들에게만 한정된 법도이지요.
지금은 아무 집에서나 다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평민들에게 제사는 엄두도 못내는 일이었지요.

말 나온 김에 오늘은 제사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야 되겠군요

제사란 원래 관리자들이 자연신이나 조상신에게 예를 갖추어 음식을 올리는 의식을 말하는 건데요....

우선 자연신부터 먼저 약간 설명하고 조상신에 대한 설명을 하기로 하지요.

아주 먼 옛날,
“인간이 대자연보다 보잘것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많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이 주민들의 입장을 배려하기도 할 겸, 자신의 권위를 재확인하기도 할 겸 여러 가지 목적으로 주민들이 믿고 섬기는 자연신에게 예를 갖추어서 제사를 지내는 곳이 많았다.

사람들이 믿는 자연신 중에는 천신(天神), 즉 하느님을 섬기는 부락이 가장 많았는데, 이는 전 세계 나라 중에서 농사 지어 먹고 사는 종족이 가장 많았고, 농사 짓는 농경문화 사회에서는 항상 하늘의 힘과 조화를 제일 두려워 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옛날 신화에도 하느님과 그의 가족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단군신화에서 단군의 할아버지 환인(桓因/하느님)과 아버지 환웅천왕(桓雄天王),
고구려 주몽의 주민등록상 아버지인 금와왕 출생신화에서의 천제(天帝/하느님), 해모수(解慕漱), 해부루(解夫婁)
주몽신화에서 주몽의 할아버지 천제(天帝/하느님)와 아버지인 해모수(解慕漱),
김해김씨 시조 김수로왕 신화의 황천상제(皇天上帝/하느님) 등이 그 증거이고, 또한
박혁거세 신화에서 “말이 하늘로 올라갔다”든가 “나중에 왕이 늙어서 하늘로 올라 갔다”라든가 하는 이야기와
경주 김씨 김알지 신화에서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 왔다”라든가 하는 이야기 역시
모두 하늘을 어렵게 여기고 하늘을 모시는 데에서 나온 이야기인 게지요.

중동 지방의 유대인이나 아랍인들도 하느님을 섬기고 있었다는데,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여호와”라 불렀고,
아랍인들은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른다는데...
이들은 자기네들의 하느님만 “진짜 하느님”이라고 서로 우겨 대는 통에 항상 서로 죽이고, 죽고 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지요.

그러나 동양권이나 그리스. 로마 권에서는 하느님 말고도 많은 신의 존재를 서로 인정해 주고, 오랫동안 “신들의 평화공존 시대”를 유지하여 왔지요.

그래서 동양에서는 하느님 말고도 모시는 신(神)들이 참 많아요....
산에는 산신령, 바다에는 용왕님, 마을 어귀에는 서낭신, 부엌에는 조왕신....
엄청나게 많은 수의 신들이 있고,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지방자치가 잘 되고 있지요.

참, 중국 사람들은 이 신(神)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 가면 안 된다고 하면서 집 단장을 잘 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너무 깨끗하면 신들이 별로 안 좋아 한대나 어쩐대나...
(중국 사람들 전통 가옥은 보통 번들번들 때가 많이 묻어 있는 것이 특징임)

그리고 우리 동양에서는 하느님을 비롯한 많은 자연신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섬기는 신(神)이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조상신(祖上神)입니다.

조상신은 모든 신에 우선하여 정성껏 모시는데, 이는 나중에 동양으로 진출한 기독교에서도 거의 못 말리는 수준입니다.
동양에 먼저 진출한 천주교는 하느님과 조상신의 평화공존을 시도하여 성공했는데, 개신교는 아직도 평화공존이 잘 안 되고 있지요.

그러나 엄격했던 옛날 계급사회에서 아무나 다 사당을 만들어서 조상신을 모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황제는 하느님, 즉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수십 명의 조상님들을 모두 종묘 사직에 모시고 제사를 지낼 수가 있었지만
바로 그 밑의 제후나 왕들은 4대조 할아버지까지만 혼령을 사당에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낼 수가 있었지요.
임금이 바뀌면 사당에 모셔진 조상님도 맨 윗 대부터 한 분씩 위패가 철거되지요.
---우리 나라 임금들은 중국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중국 황제 흉내를 내기도 했지요

그럼, 철거된 그 분의 혼령은 어떻게 되냐고요?
그야 뭐...
제삿밥 못 받아 먹으니까 그 날부터 신(神)의 위치에서 귀(鬼)의 신세가 되어 “춥고 배고픈 귀신”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요. 그 귀신 분이야 좀 불쌍하겠지만 재산도 넉넉하지 못한 후손이 그 많은 조상님들을 모두 제사 지내 드릴 수도 없지요.. 쯧쯧...

--원래 제삿밥을 받아 먹을 수 있는 혼령을 신(神)이라 하고,
--제사 지내 주는 사람이 전혀 없는 혼령을 귀(鬼)라고 했거든요.
--나중에는 이 둘을 합쳐서 귀신(鬼神), 또는 신귀(神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5대 째에 가서 귀(鬼)의 신분으로 떨어진 분들은 그래도 행복한 편입니다.
후손이 제후도 왕도 아닌 정3품 정도의 벼슬이라면 증조부까지만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었고
그 아래의 관리들은 할아버지까지만 제사를 지내고,
또 그 아래에 벼슬도 못한 사대부들은 아버지까지만 제사를 지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현재 살아 있는 후손의 벼슬과 직급에 따라서 몇 대까지 제사를 지낼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옛날에 제나라의 관중이 제후의 위치에서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자 노나라에 있던 공자님이 관중이 건방지다고 하며 불평을 한 적이 있는데, 이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근데, 요즈음 종손 집안에서는 아직도 4대까지 제사 지내는 데가 많은 것 같은데 그건 어떤 연유인가 궁금하다고요?
엄밀하게 말하면 현재 그 집의 가장이 임금님이나 대통령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중국의 힘이 점차 약해지고...
일본이 들어와서 우리 조선인들의 독립정신도 팍팍 길러주었고...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사람도 좀 생기고...
그래서 한 마디로 제사의 질서가 좀 망가진 것이지요 뭐...
하기야 조선의 임금님들도 중국 몰래 종묘에다가 역대 임금들 위패 모두 모셔 놓고 제사를 지냈으니까요.
왕년의 그 법도라는 것이 상당히 변질되었다고 봐야 되겠지요.

그럼, 옛날에 양반 아닌 보통 평민들은 제사를 어떻게 지냈냐고요?
참... 대단히 날카로운 질문이군요..
그건 참 말씀 드리기 곤란하지만 그래도 말씀을 드려야겠지요.
그런 분들은 돌아 가시는 즉시 바로 귀(鬼)의 세계로 들어 가게 됩니다.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했던 소위 쌍놈(?)들은 사당도 못 짓고 제사도 못 지내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잘난 양반들이 제사 지내는 걸 못마땅히 여긴 일부 쌍놈들은 몰래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조선 말기 김삿갓이란 분이 완전 거지가 되어 지방을 떠돌고 있을 때에
저녁 나절에 어느 마을에 들어 갔더니 어떤 농부 한 사람이 어렵게 부탁을 하나 하는데
오늘이 아버지 돌아 가신 날이라 제사를 지내 드리고 싶은데 글자를 몰라 “지방”을 쓸 수 없어 그러니
지방을 하나 써 주고 가면 안 되겠느냐 하는 것이었지요.

동네에 다른 양반들에게 부탁을 해도 되겠지만 건방지다고 당장 야단을 맞을 터이고
거지 차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삿갓 쓴 걸 보니 왕년의 양반 출신 같아서 부탁을 한 것이겠지요.

김삿갓은 배도 고프고 그 쪽 사정이 딱한 것같기도 하여 쾌히 승낙하고 즉석에서 그 좋은 글씨로 지방을 써 주었는데...
그 내용은 “유유화화(柳柳花花)”란 네 글자였지요.

그 농민은 아주 기쁘게 받아들고 돌아가신 아버님께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는데....
버들 류 두 자에 꽃 화가 두 자이니 이를 해석하면 “버들버들 꼿꼿...” 즉 죽었다는 뜻이었다고 합니다.

김삿갓이 배가 고파 써 주기는 했지만 그 자신 양반 출신이란 것은 분명하였고
쌍놈이 국법을 어기고 건방지게 제사를 지내겠다고 하니 괘씸한 마음에 그런 욕지거리 비슷한 지방을 써 주었던 것이지요.

근데요.. 지금은요...
개신교 다니는 사람 일부만 빼 놓고요...
우리 나라 사람 거의 다 열심히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 모두가 양반들 후손이냐고요?

거, 참,,
곤란한 질문만 계속 연속해서 하시네...

답을 해 줄 수도 없고 안 해 줄 수도 없고
답을 해 드리면 대단히 실망하실 수도 있는데...

말 나온 김에 화끈하게...
과거사 밝히기 차원에서 몽땅 말씀 드려야겠네요...

우리 나라 어떤 고전 소설을 보아도 등장 인물에 양반보다 쌍놈이 훨씬 더 많이 나오는 것은 다 아시죠?
그렇다면 지금쯤 제사 지내는 분들이 우리 나라 인구의 10%도 안 되어야 맞는데
요즈음 보면 집집마다 족보가 다 있고 집집마다 정승 판서 후손 아닌 분이 없고...
옛날에 그 많던 쌍놈들의 후손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요?

우리 나라 전 국민들을 모두 양반의 후손으로 승격시켜 주고
꿈속에서도 부러워 하던 조상님 제사를 마음껏 지낼 수 있도록 해 준 고마운 분들이 있지요.

고마운 은인 1호는 법적으로 쌍놈의 신분에서 벗어 나게 해 준 일본 제국주의 정부이지요.
1900년대 초에는 누구든지 신고만 하면 호적에 성씨를 쓸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하여 수많은 쌍놈들이 주인집 어르신의 양해(?)를 얻어서 단체로 같은 성씨를 등록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이제는 떳떳하게 양반의 후손 자격(?)으로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 물론 옛날 주인집 사람들을 만나면 아직도 좀 찔리는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또 1940년대 초에는 일본식 성씨로 바꾸어도 좋다는 법률이 공포되어 이제는 일본 사람들과도 차별이 없는 성씨를 갖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사실 이 일본식 창씨개명은 조선 청년도 일본 청년과 똑같은 자격으로 군대에 끌어가고자 하는 속셈에서 나온 “내선일체” 작전의 한 부분이었지만...---

나중에 해방 될 때까지만 해도 각 동네에서 가짜 양반과 진짜 양반의 구분이 뚜렷했는데....
제2의 은인이 북쪽에서 내려 왔다. 그는 바로 김일성이 지휘하는 공산군이었다.

김일성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왕년의 양반된 비밀을 아는 노약자들은 대부분 전쟁통에 돌아가시고.... 또 인민위원장이니 하는 걸 만들어서 왕년의 골치아픈 어르신들을 모두 처단(?)할 수도 있었고...

이래저래 두 번에 걸친 큰 난리통에 우리 나라는 “전 국민의 양반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햔재 우리 나라는 쌍놈의 후손은 아무도 없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간에 일제와 김일성 덕분에 실질적인 계급의 평등, 전 국민의 양반화 완전범죄(?)에 성공하였다.

요즈음 과거사 밝히기 운동이 추진되고 있다고 하는데, 일제 시대 때 본의 아니게 양반의 후손이 되어 버린 우리 나라 과반수의 국민들이 족보에서 가짜 조상을 밀어 내고 “쌍놈 후손”으로 복귀하는 작업도 그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 조상은 진짜 양반이라며 큰 소리 치는 사람부터 과거사를 밝혀 보는 것은 어떨지?
쌍놈의 후손을 전원 양반의 후손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해 준 일본과 북한 정부에게 감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은 고민이다.

일본제국주의와 많은 친일파들, 그리고 북한 공산주의와 빨갱이들이 우리 나라 전통 신분과 질서를 망가뜨리지 않았던들, 현재 우리 나라의 대다수 많은 국민들이 쌍놈 주제에 어디 감히 조상님에게 제삿상을 차리고 큰절을 올릴 수나 있었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전 국민이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좋은 나라 국민이 된 이상, 공무원 부모님을 모셨던 사람들은 "현고사무관행정실장부군 신위"이든, "현고교사부군 신위"이든 지방을 써 놓고 제사를 지내면 될 터인데...

돌아가신 부모님이 공무원이 아닌 경우에는 모두들 예전처럼 "현고학생부군 신위"로만 쓸 것인지, 아니면 "현고○○회사전무이사부군 신위"라고 쓸 것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지방 쓸 때에도 종9품 "유인" 첩지를 받지 않은 상태인 데도 계속 "현비유인전주이씨 신위"라고 쓸 것인지, 아니면 "현비밀양박씨순희여사 신위"라고 할 것인지도 생각을 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이러한 한자 문구가 어려우면 아예 한글 표현으로 바꾸어서 "아버님 ○○○ 공 신위(혼령임)" 등으로 하면 또 어떨까요?

신년을 맞이해서 그냥 한 자 써 보았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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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용산고 22 / 문학박사 황재순(제물포고등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