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니 받거니 얘기가 되는 네 친구가 길을 떠났다.

떠나기 전날 ?

“야 네 차 4륜구동이냐?

“아냐”

“그럼 전륜구동이냐? 후륜구동이냐?

“나 그거 잘 몰라.”

 

떠나는 날

“내 차 전륜구동이더라. 그리고 오늘 갈 식당에

아침 일찍 전화 했더니 눈 다 치웠더래요. 하더라. ”

 

“그래도 강원도에 눈이 30cm 이상 왔다고 하는 데 괜찮을까?”

한 친구 : “가다가 눈이 많아 못가면 되돌리면 되지 뭐.

그래서 어디 찜질방이나 들어가서 놀다 오면 되지 뭐.”

또 한 친구 : “가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체인 사서 걸고 가지 뭐.”

 

그렇게 우리는 출발했다.

그런데 홍천 좀 못 지나서 주위의 산은 은백색으로 막 옷을 바꿔 입은 장관이었다.

미처 다 갈아입지 못한 푸른 나무들이 마치 쑥을 버무린 백설기가 펼쳐진 듯 장관이다.

더 앞으로 나갈수록 그 쑥 색깔은 희미해지고 온전한 백설기가 드러난다.

“야 오늘 누가 날 잡았냐? 정말 멋있다.” 전부 들 이구동성이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가 있고 풍광은 배경이다.

 

마침내 한계령 휴게소에 이르니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치고 3m 앞도 보이지 않는다.

구불구불 산길을 내려가는데 오금이 저린다.

그러나 운전하는 친구 말처럼 아주 갑작스런 예상치 못한 폭설이 아닌 상태에선

요즘 제설포크레인이 쉴 사이 없이 한계령 등의 눈을 치우기에 다닐 만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거의 다른 차(車)들은 보이지 않는다.

“야 누가 날 잡았어? 좀 무섭데이.”

 

그런데 조금 더 내려가니 정말 장관의 설경이 펼쳐진다.

이제 우리도 설경의 한 점(點)이다.

 

오색약수터 맛 집을 찾는 길에서

운전을 하던 친구의 입담이 터진다.

“내가 20 여 년 전에 네델란드 거래 선과 이 설악산을 올랐을 때

멋진 초 중년의 아지매 네 명을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서 만났지.

근데 그 네 명이 다 예뻤지만 그중 한 여자가 완전 김지미인 거야.

그래서 작업을 걸었지.

그 후 몇 번 함께 만났고 나중 내가 마음에 담은 김지미와도 단 둘이 데이트도 3번이나 했는데

난 단체 앞에선 B & G(=뻥 and 구라)가 술술 터져 나오는데 막상 단둘일 때는 그게 잘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결국 그렇게 아쉽게 마감했지.”

 

“아 그런데 여기가 어디야. 내가 길을 잘못 들어온 듯싶네.”

거기는 큰길에서 좀 들어간 시골 외가닥 길로 돌아 나올 수가 없는 좁은 길이었다.

가까스로 후진(後進)으로 낭떠러지 눈길에 미끄러지며 제 길을 찾아 들어서자, 우리는 전부

“야 오늘 김지미가 우릴 곧장 황천길로 끌고 올라갈 뻔 했네.”

 

그런데 거기 두 눈을 찌르는 황홀한 설경이 우리를 감싸 안는다.

넓은 고속도로에선 먼 산의 설경이 배경이었는데 여기 양쪽으로 무거운 눈을 걸머지고

축 늘어진 좁은 길은 그야말로 눈 터널이었고

우리도 이미 그 속에서 주인공과 배경이 구분되지 않는 풍경 자체가 되어 있었다.

“야 누가 날 잡았어. 정말 잘 잡았다.” 그날 이 말이 여러 번 오락가락했다.

 

친구가 25년을 1년에 서너 번씩 가족들과 다녔다는

한 산채식당에서 여정을 풀고 뱃속을 채운다.

 

“아 산채비빔밥의 그 표고버섯, 취나물, 곰취나물, 곤드레 나물, 더덕무침, 그리고 동치미!

그 중에서도 지금도 혀에 기억이 그리운 그 동치미!

<벌떡 주(酒)>(=술 이름)를 마시며 뱃속이 따뜻해지고 눈앞에 안개가 피어오른다.

다시 길을 떠나

<휴휴암>을 둘러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가다가 한 친구가 여러 해 자주 다녔다는 한 카페에 잠시 차를 쉬게 한다.

바깥에 매달아 놓은 벌집 모양의 스피커의 웅장한 소리에 홀려

모두 나가서 데크 주위를 맴돈다.

친구들은

“야 다음엔 여기에서 와인 한 병 팔아주고 저 앞집에서 생선회를 배달시켜

이 야외 데크에서 저 시원히 펼쳐진 바다를 보며 놀자.”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삼척 팰리스 호텔에 짐을 풀고 우리는 시장 통의 골목길에 있는

서너 평 남짓한 문어 전문집으로 간다.

적당히 살짝 데친 문어, 굴과 배추속을 잔뜩 담은 겉절이 김치와 두텁고 맛있는 두부,

기름 없이 구운 김, 그리고 푸짐한 수제비에 빈 술병이 늘어난다.

그날 저녁 스카이라운지에선 필리핀 남녀 가수에게

아바의 <댄싱 퀸>을 신청하고 친구는 앞에 나가

그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아침에 우린

아주 작은 번개시장에 있는 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집에서 먹는 밥처럼 산뜻하고 담백한 백반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임원 항(港)이다.

거기 공동어시장의 여러 좌판가게 중

친구가 십 여 년 다녔다는 싸고 친절한 세 과부 집에서

우리는 다시 싱싱한 회와 매운탕에 소주를 비워 나간다.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연스런 풍광으론 제일로 치는

용화리 언덕에서 멋있는 해안의 굴곡진 풍광을

눈 안에 꼭 꼭 담듯이 하염없이 내려다본다.

 

저녁 늦게 분당에 도착해서 그 동네에서 제법 알아준다는

냉면 집에 들러 늦은 식사를 하는데도 영 입맛이 밋밋하다.

 

이름이야 맛 기행이었지만 값이 비교적 착하면서도

오랜 전통을 간직한 곳이거나

공동어시장에 자리한 실속 있고 친절한 곳들을 두루 다녔고

거쳐 가는 곳곳에 자리한 아름다운 풍광까지 눈에 담으며 다닌 참으로 멋들어진 여행이었다.

 

양쪽으로 눈꽃 가득 안고 힘겹게 늘어진 한계령의 눈 터널과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무제의 푸른 동해 바다에 눈이 호사했고

갈매기 우짖는 소리와 파도의 신음소리에 귀가 씻어졌고

맛있는 음식들에 입이 행복했고 배가 흐뭇했다.

 

여행은 자신과의 내밀(內密)한 대화를 하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누구와 동행했느냐에 그 여행의 맛이 달라진다.

 

평생에 몇 번 볼 수 없는

흐드러진 눈꽃, 쑥을 버무린 백설기가 펼쳐진 듯싶은 사위(四圍)의 설산(雪山)!

1 년 내내 두고두고 옆에 끼고 먹고 싶은 동치미가 벌써 그립다.

탱탱하면서도 달작지근한 회가 생각만으로 입안에 침을 고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