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인천을 떠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뭉치는 모임이 <인천향우회>다.
인천향우회 가을 모임은 시청에서 (시정설명회, 그리고 팔미도 관광)이라고 하여
나는 산림아카데미 교육을 받는 공주 옆 소랭이마을에서 기를 쓰고 달려와 참석했다.
팔미도를 간다고하니, 참석자들이 많아져서 보통 버스 두대를 운행했는데, 이번에는 세대 이상 운행한 듯.
옛날 초등 입학도 전에, 온가족이 배를 타고 놀러 갔었는데
너무나 멀미가 심하여 나는 거의 기절했다가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응급주사를 맞고 살아났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까지 함께 어딜 놀러가는 적이 도통 없어서 특별히 팔미도 여행이 기억나는 반면,
작약도 등은 이젠 배타고서 가는 곳이 아니기에 배 타고 놀러갔던 추억이 시들하다.
팔미도는 상당히 오래 상륙 금지된 섬이다가 최근 다시 개방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팔미도 등대! 게다가 팔미도는
70세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작전 개시]를 외친 곳이니, 서방님 김장군도 동행하자 하였다.
제고/인일/인천고/부평고 출신의 동생들이 있으니, 서방님도 인천향우회 멤버일 수 있겠다.
지도에서 보니, 경기만의 섬중에 (인천공항과 송도신도시의 인천대학) 글씨를 연결하는 위치에 팔미도는 위치한다.
섬은 표주박 손잡이 같은 작은 북섬(=소팔미도)과 남서 방향의 본섬(=대팔미도)으로 구성된다.
대팔미도는 약450m고도이고, 팔미도 등대 역사관, 군부대, 팔미도 등대 등의 건물이 있다. 현재 위락시설은 없고...
선착장 바로 옆에 작고 다정한 팔미도 해수욕장 Beach가 있다. 즉 섬 주변은 절리가 발달된 분홍색 암반이고 남동쪽에 작은 모래사장의
beach가 형성되어 있음.
요즘 인천에는 애인愛仁 페스티발(9.24 -10.26)이 열리고 있다고 한다.
페스티벌에도 참여할 예정이지만, 인천시청에서 시정 설명회를 듣게 되어 좋았고; 오찬 시에는 바로 시장님 옆에서 식사하게 되어
시장님께, 인천을 먹여살리는 기업이 있는가? 여쭈었더니... 부산/광주 등과 달리 인천에는 삼성바이오/셀트리온 등의 제약회사가 향후 40여년 최고의 수익을 낼 터이며, 제철을 비롯한 기존의 산업체들도 믿을만하다는 말씀. 게다가 인구가 줄어드는 도시들과는 달리 인천은 거주인구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니, 우리나라 도시 중, 가장 희망이 넘치는 도시라고 하신다. 도시는 산업체가 시민들에게 월급을 주고, 또 세금을 내야 잘 살게 되는 것인데, 삼성전자의 수원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 대도시들에 기업이 없다. 요즘 울산포항과 거제도 등이 싸늘한 썰렁한 분위기라고 하지 않는가. 연전에 회갑잔치 LA여행에 시애틀 워싱턴대학에 갔더니 보잉이 먹여살리던 시애틀에 MicroSoft가 들어오고, Starbucks가 본사를 두게되어 살맛난다고 하던 기억이 있다. (사진 중앙의 흰 양복 입은 분이 향우회 회장 박호군 전 과기처장관. 보이는대로 그 우측 두번째가 향우회 만드는데 참여하셨던 역사의 증인 전석환 선생님) 전석환 선생님 당시는 제고는 없었고 인고가 인천에서 가장 명문이던 때였는데; 선생님은 인고 1학년이던 1953년 을왕리 밤바닷가에서....파도가 밀리는 바닷가에서/줄지어 밀려오는 파도를 보며... 이 노래를 작곡하셨다니 인천이 배출한 천재중 한분이라 하겠다.
예전에는 해안선과 섬에 해양채집을 많이 다녔다.
특히 환경부의 사업 중 하나인 <전국자연생태계 조사> 시에는 관련된 학자 모두를 동원하여, 각자가 조사할 포인트를 부과하였는데,
그래서 발을 딛은 곳이 강화군도의 볼음도/연평도/ 그리고 백령도 등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제법 다녀보았다. 선배님 한분은 경기만의 해조상이라는 논문을 쓰며 인천 앞바다 섬들을 모두 다니시니 쫓아 가보기도 하였다. 물론 갯벌이 넓은 인천은 해조상보다는 갯벌생물들이 다양하고(갑각류, 연체동물 등), 여수와 가덕도 등 남해안의 동서 및 동해안에는 섬마다 발디딜 틈 없이 해조류가 밀생한다. 해중림 또한 대단하여, 키가 30m 넘게 너울대는 해조숲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이번 팔미도 여행을 하면서 60년전 우리 가족의 행복했던 여행을 되돌이켜보니;
핸폰이 없던 시절이어서, 아이들 길 잃을까봐 엄청 신경쓰이는 여행이었고; 먹을 것을 미리 만들어 싸들고 다니는
고생스런 여행이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응급처치 용도의 약과 주사까지 싸가지고 가셨던 것. 그리고 돌이켜보니
젊은 아버지는 작약도 팔미도 뿐 아니라, 창경원 덕수궁 경복궁 등에도 함께 가주셨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늘 진찰실에 계셨던 아버지는 달력의 야자수 사진 등을 보시면서 "보기만해도 정말 시원하다" 하셔서, 하와이에 한번 가보세요.. 권해도, 결국은 해외여행은 못떠나고 마셨다. (반면 어머니께서는 노년에 일본 유럽 미주 등 참 많이도 다니셨다).
이번 팔미도 행은 아버지와 60년전 우리 가족의 모습을 그리는 여행이었다.
.
팔미도 여행에서 떠올린
어린 시절의 가족 여행, 아버지의 추억담 잘 읽었어요.
자세히 설명 해 주셔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가 볼 수도 있겠어요.
연안부두 출발 시에는 금어호를(위 사진) 탄다.
배에서는 낮은 곳일수록, 또 뒤로 갈수록 안전하며; 좌우보다는 중앙이 안전하다고 하는데
금어호는 1층에 노래방과 매점이 있고, 2층 전체가 객실로 꾸며져 있다.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팔미도는 한 40분 가량 운항하여 닿는다. (총 소요시간 50분)
소팔미도와 대팔미도가 잘록한 백사장으로 연결되어 있다. 북섬 소팔미도는 아주 작고 그저 바위 몇개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