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4일
72년만에 송도유원지가 경영난으로 폐장을  한다기에 아쉬운 마음에 찾았습니다.
없어질 것이라는 소식을 진즉에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했는데 바로 내일이라니 가슴 한 켠이 먹먹합니다.
유원지에 들어서니 나와 같은 심정으로 찾았는지 50대, 60대들이 주로 입니다.
명절 전만해도 입장료도 무료이고 마지막이라니 유치원 꼬마들이 관광버스로 줄을 섰다는데 오늘은 한적함에 그 쓸씀함이 더 합니다.
송도유원지라고 하면 인천사람들에게는 너나 할것없이 추억이 깃들인 장소이지요.

 

갈 곳이 별로 없던 우리네 학창시절
매번 가던 소풍길....
인일여고에서 송도까지 걸어가던 그 길이 생각납니다.
가는 도중 수인선 철로는 아래가 훤히 뚫려있어 그 철길을 건널 때는 친구 손을 꼭 잡고 조심조심 건너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깡통들고 송충이 잡으러 가던 길도 그곳이었습니다.
송충이가 무서워 엄두도 못내는 나를 위해 친구는 나무젓가락으로 집어서는 내 깡통을 채워주고는 했지요.
다정한 그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을까요?
유원지안에서 소풍때만 되면 거침없이 끼를 발휘하던  야외무대....
김밥, 사이다, 찐계란으로 싸온 도시락을 끼리끼리 둘러앉아 먹는 자유시간이면
송도 끝, 방파제 위에 있는 철망에 둘러싸인 초소에서는 긴총을 든 군인아저씨들이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아암도에는 절대로 가지 말아라" 라는 지시사항에도 불구하고
물이 빠지고 길이 나면 후딱 뛰어갔다 오는 담이 큰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아암도엔 특별히 추억이 많습니다.
저녁이 되면 나올 배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들어갔다가 할수없이 가겟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결혼을 한 친구도 있으니까요.
남편과 싸우기만 하면 "그 놈의 아암도 때문에...."라고 지청구를 늘어 놓지만
지금까지 산다 못산다 하면서도 아들, 딸 둘이나 의사 만들어놓고 잘 살고 있습니다.
서울사람인 이 친구는 그 때 제게 원망을 엄청했습니다.
너는 인천이니 알고 있었을텐데 사전에 이야기를 안 해 줬다고요.
유원지안에 있는 배터도 문제 였습니다.
첫데이트를 이곳에서 하더니 배는 타기도 전에 미끄러져 기브스를 하고 다니더니

결국은 그것이 인연이 되어 훌륭한 반쪽을 만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친구도 있습니다. 

 

국민학교때 걸.스카우트 야영지도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4학년 때 텐트에서 자다가 어찌해서인지 굴러굴러서 바다 바로 곁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순찰을 돌던 선생님이 발견을 하고는 혼비백산해 깨웠습니다.
밀물 썰물이라 물이 들어오는 중으로
무슨 일인가, 부시시 잠을 깬 쬐끄만 계집아이는 시퍼런 물을 보고는 무섭기도하고 창피한 마음에 울음을  멈추지 않으니
업고 달래다 달래다 지친 선생님 결국 집으로 연락을 하고 엄마가 와서는 데려가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이곳은 우리 집안의 단골 캠프장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생신이 음력 7월로 한참 더울 때라 만만한 곳이 송도유원지였습니다.
아이들을 풀어 놓아도 걱정이 없고 대식구가 1박2일을 지내도 비용이 저렴했으니까요.
솥단지까지 가져가서 끓여먹던 수제비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온갖 조개를 잔뜩 넣고 감자, 호박 숭숭 채썰어 넣고 손으로 수제비를 뚝뚝 떼어서 넣고 끓이던 그 곳
입술이 새파래진 아이들이 달려와서 후후 불며 먹던 그 맛은 지금까지 우리 집안의 전설이 되 버렸습니다.

그 모든 추억을 안겨준 송도유원지가 이제는 마지막이라고 안녕을 고합니다.

실상은 개인의 추억같은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할까요?
그러나 갯벌이 없어지고 이 좋은 소나무들이 없어지고.........과연 먼 훗날 우리가 원하면 다시 복원될 수 있는 것들일까요? 
갯벌을 메워 마천루같은 신도시를 만들고

수영할 수 있고 겨울엔 눈썰매 탈 수 있는 유원지가 테마파크로 변하고

산을 깍아 골프장을 만들고

우리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놀음을 언제까지 할  작정인가요?

 

명절 뒤 끝이

묵묵히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안녕"을 고하는 송도유원지때문에

왠지 더욱 더 우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