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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근.김근태 부부 아주 낭만적인 하루 동행 인터뷰


두 사람은 화창한 날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50대 부부답지 않게 작은 농담, 눈짓 하나에도 고개를 뒤로 젖히며 함박웃음을 짓는 부부였다. 보건복지부 장관 남편과 사회운동가 아내가 아닌, 이제 막 사랑을 꽃피우기 시작한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었다.
글 _ 류인홍 기자 사진 _ 박해묵 기자


비가 온 후 늦봄에 내리쬐는 햇볕이 상큼하면서 따뜻한 오후였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은 평일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적었다. 아트숍과 함께 있는 커피숍의 찻잔 부딪치는 소리가 정적을 깰 정도로 고요하고 여유로운 미술관의 오후 풍경.
가끔씩 도심에서 듣기 힘든 산새 소리가 반갑게 느껴질 무렵, 먼저 김근태(59) 장관의 부인인 인재근(53) 씨가 도착했다. 남편은 30분 늦게 온다며 미안함을 전하고는 생글생글 웃었다. 그리고는 기다리는 동안 전시회를 봐도 되겠느냐며 양해를 구했다. 그녀는 함께 온 지인과 같이 ‘김향안 추모전’을 감상했다.
그녀가 갤러리를 한바퀴 돌고 나오니까 약속이나 한 듯이 남편 김근태 장관이 도착했다. 두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 진한 포옹이라도 할 것처럼, 이제 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새내기 연인처럼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맞이했다.
“남편이 그림에 관심이 많아서 전시회에 가끔씩 와요. 샤갈전도 갔었고, 얼마 전에는 이왈종 선생 전시회도 가고, 피카소하고 네덜란드…. 영화도 뭘 같이 보지 않았나?”
“예전에 수배 중일 때도 영화 보고 그랬어요. 영화관이 시내만 있는 게 아니라 외곽에도 있잖아요. 거기가 부천 어디였던 것 같은데…. ‘디어 헌터’를 봤지 아마?”
두 사람의 데이트는 대체로 예정되어 있지 않다. 바쁘니까 어쩌다 만날 기회가 생기면 시간을 내서 오붓한 데이트를 즐긴다. 또 한동안은 일요일 오전에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하고 운동을 나갔다. 남편은 조기축구회에서 시합을 뛰고 부인은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데, 요즘은 일정이 바빠 그것마저도 못하는 게 내심 아쉬운 두 사람이다.
김근태 장관은 오랫동안의 수배와 감옥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인재근 씨는 아이들과 함께 남편을 기다리며, 석방운동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정치인이 되면서 공적인 일이 더 많아져 또다시 함께할 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그런지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 아껴 쓰는 사람처럼 달콤한 데이트를 즐긴다.
“남편은 예전에 구류를 한 20일 정도 살고 집에 올 때 꽃을 사온 양반이었어요. 그렇게 외박을 하고 새벽에 오면 몸이 무척 힘들잖아요. 지하철 역 근처에서 파는 싸구려 꽃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 가지고 집에 온 적도 있었죠.”
“그렇게라도 점수를 따야 다음에 또 구류를 살 수 있으니까. 하하하.”

광나루에서 매운탕과 소주 먹으며 프러포즈한 남편
꽃은 지난 4월 결혼기념일에도 받았다. 꽃바구니에 놓여 있던 카드에 ‘결혼기념일을 축하, 사랑하는 남편이’라는 문구는 남편의 작품이 아니라 보좌관의 것임을 아내는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그저 ‘지시’를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 얘긴 보좌관 부인한테 하라고 해요”라는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게 여자의 마음이다.
아내가 기억하는 프러포즈 역시 두 사람에게는 매우 낭만적인 사건이다.
“얼마 전에 W호텔 커피숍에 갔는데 창 밖으로 한강변이 보이더라구요. 그곳 광나루의 허물어져 가는 선술집에서 다 찌그러진 양재기에 매운탕하고 소주 먹으면서 프러포즈했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이런 알콩달콩한 부부생활은 그리 많지 않다. 보건복지부 장관인 데다 유력한 대권 후보인 남편을 아내 혼자 독차지할 시간이 얼마나 있으랴.
그래서 선택한 부부의 관계가 동지적인 삶이다. 아내 역시 남편 못지않은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두 사람은 공동으로 ‘케네디 인권상’, ‘평등부부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아내를 두고 ‘깡이 있는 여자다’라고 평하는 남편이었다.
“제가 세 번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고 중간에 대통령 선거 두 번, 그 외에 지자체, 보궐선거 등 여러 번 치렀는데, 그 선거의 상당한 몫을 이 사람한테 떠넘겼어요. 전 중앙정치 하구요. 생색은 제가 내고 어려운 부담은 아내한테 떠넘기고. 지역구(서울 도봉 갑)에서 이 사람이 더 영향력이 있다는 얘기도 있어요. 농담입니다. 하하하. 제가 지역구에서 축구할 때만 지역 분들 만나서 김근태가 강남으로 이사 갔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그걸 진화한 게 인재근 씨예요.”
아내의 배짱은 남편이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2002년 당시 민주당의 대선 경선 후보였던 남편은 양심선언을 한 적이 있었다. 투명하지 못한 정치자금을 근절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허물을 고백했던 것. 당시 남편은 ‘순진한 김근태’, ‘철없는 김근태’ 소리를 들으며 당 내부에서조차 ‘우리의 약점을 까발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몰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항간에서는 남편의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힘겨운 때였다.
“속으로 여러 가지 원망도 하고 걱정도 많이 했을 텐데, 격려를 참 많이 해줘서 큰 힘이 되었어요. 바르게 정치하는 사람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지해 주었고, 그래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인재근 씨는 항상 제 버팀목이 되어 주었죠.”

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고의 교육
수배와 감옥생활 그리고 정치활동으로 아이들 교육은 순전히 아내의 몫이었다. 남편 스스로도 “나는 애들한테 해준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아빠가 절실히 필요할 시기엔 함께 있지 못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잘 커준 것에 대해 늘 감사하다는 엄마이다. 큰딸은 현재 미술대학원에 다니고 있고 아들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부모가 열심히 사는 집 아이들은 절대 삐뚤게 나가지 않아요. 부모의 성실한 모습이 제일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한 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빠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아들 녀석이 착하고 잘 크긴 했는데, 한때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좀더 충실하고 파이팅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을 것 같아서 잔소리를 많이 하고 때려주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딸아이하고 인재근 씨가 반발을 하는 거예요. 좀 후에 생각해 보니까, 저의 행동에 ‘김근태 아들이 이럴 수 있느냐’는 식의 잘난 체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러섰죠. 그래서 지금은 같이 농구도 하고 잘 지내요. 선거 때는 휴학을 하고 유세차량 운전하면서 도와줬는데, 옆에서 보니까 ‘김근태 아들이다’ 하고 어깨에 힘주지 않고 심부름하고 청소 열심히 하더라구요. 그래서 고맙게 생각해요. 이제는 어른이 다된 것 같아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김근태 장관은 스스로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왠지 ‘항상 진지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하다는 말에 가벼운 반론을 편 것이다. 아내 역시 ‘웃으면 훨씬 인상이 좋다’고 자주 웃으라는 충고를 많이 한다고 한다.
“제가 운동하고 노는 걸 좋아해요. 학교 다닐 때도 운동을 많이 했는데, 데모할 거냐, 축구나 농구할 거냐 하면 스포츠를 택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우리 시대는 군사독재와 싸우던 때였고, 용기와 결단을 요구했고, 희생을 감당하던 시기였어요. 맞서 싸울 때마다 한발짝도 물러난 적이 없는데, 그런 점이 사람들한테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때론 엄숙하고 물러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지한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아내와의 데이트에 충실하고 싶은 남편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작별인사를 나누자 함께 다정하게 전람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재잘재잘 웃음꽃을 피웠다.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때때로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못하고 애정표현을 하기 마련이다. 부부가 전시장 안에서 안내요원에게 주의를 들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