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삼이사들의 기부로 이젠 사회변화 이뤄야죠
[한겨레가 만난 사람] 10돌 맞은 ‘아름다운재단’ 윤정숙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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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노점상을 하던 박음전씨는 매일 3천원씩 모은 돈으로 금을 사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바닷바람 거친 항구 앞에서 떡볶이와 커피를 팔아 번 돈으로 금을 사 모은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금을 모아 외환위기 때 나라를 구했듯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구하는 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런 박씨에게서 어느 날 재단 일꾼들 먹으라고 멸치 한 상자가 배달됐다. 정성에 감복한 간사들은 멸치를 ‘경매’에 부쳤고, 또다른 기부자가 30만원을 주고 사갔다. 멸치는 다시 작은 음식점에 기부되어 설날 연휴 3일 동안 실직자들에게 떡국을 끓여주는 데 쓰였다. 이 사연을 들은 한윤학씨라는 장애인이 그의 정부보조금 1%를 보탰다. 박씨의 금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던 재단은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앞으로도 더욱 수고해 달라는 뜻으로 반지를 만들어 선물했다. 그렇게 박음전씨의 멸치와 금은 동그란 반지가 되어 오늘도 이 세상을 돌고 돌며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이 들려준 ‘멸치 한 상자 기금’에 관한 이야기다.

아름다운재단이 8월로 설립 10돌을 맞이했다. 아름다운재단은 우리나라에서 기부와 나눔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큰 디딤돌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8년 한국인의 1년 평균 기부액은 1인당 5800원이었다. 2008년 아름다운재단이 조사한 한국의 기부지수(Giving Korea)는 1인당 19만9천원을 기록했다. 10년 새 34배가 늘었다.

설립자인 박원순 변호사에 이어 2006년부터 아름다운재단 운영을 맡아온 윤정숙(52) 상임이사를 서울 가회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재단의 이름처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선의와 열정이 균형을 이루는 데 성공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아름다움이었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나눔으로 함께 사는 세상

 

“그동안 우리는 부자들이 억대의 돈을 쾌척하는 것만을 기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시작은 기부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나눔의 평범성’이라 할까요. 나눔이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선행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누구나 가능한 ‘일상과 문화’로 바꾸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에 나누지 못할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월급 1%, 인세 1%, 유산 1%, 용돈 1%, 결혼축의금 1%, 돌잔치 1% 등 나눔을 생활화하고 기부를 하나의 문화로 확산시킨 것은 아름다운재단의 큰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내는 소액의 돈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이 된다고 하는 ‘자선의 민주화’는 아름다운재단의 존재 이유이자 일의 방식입니다.”

‘자선의 민주화’는 마이크로소프트 임원이었던 사회적 기업가 존 우드가 주창한 개념이다. 우드는 룸투리드(독서방)라는 사회적 기업을 세워 세계 곳곳의 빈민 지역에 도서관을 짓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자선의 민주화(democratization of philanthropy)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이 될 필요는 없다. 앤절리나 졸리나 브래드 핏처럼 잘생겨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는 그리 큰돈이 들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의 소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데는 250달러면 된다. 도서관 하나 세우는 비용은 2천달러에 불과하고 1만~1만5천달러면 학교도 세울 수 있다. 룸투리드는 2020년까지 아이들 1천만명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도록 해주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진정으로 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면 억만장자나 유명인사들에게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 세상을 바꾸다>(Leaving Microsoft to Change the World) 중에서.



사회정의·혁신으로 자선 패러다임 변화중 “돈을 모으는 것은 곧 변화를 만드는 것…
사회이슈 제기하고 기부 이끄는 것 늘 고민” 월급·용돈·인세 1% 등 소액기부 늘었지만
아직도 개인기부액 전체의 40% 불과해 “부유층 기부 적어…상속관행이 걸림돌”

 

새로운 세대들에게 기부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올드 세대들에게 기부는 아직 설명과 설득이 필요한 무엇이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기부와 나눔은 특별한 결단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연말연시에 회사의 부서 회식이나 종무식, 사원파티나 가족잔치 등에서 회식비를 모아 재단에 기부하는 나눔 이벤트가 늘고 있습니다. 퍼네이션(fun+donation)이란 말처럼 젊은 세대들에게 재미있고 쉬운 기부문화가 나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부협약식이나 모금을 위해 시이오들을 자주 만나는데, 30~40대 젊은 시이오들에게는 특별히 기부의 중요성이나 의미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들은 기부를 당연한 책무나 생활문화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젊은 세대가 앞으로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를 아름답고 건강하게 이끌어갈 것입니다. 나눔은 삶의 가치이자 습관이어서 젊어서부터 기부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사는 동안 내내 좋은 일, 좋은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기부란 무엇인가

 

“기부는 지갑을 열기 전에 마음을 여는 것이란 말이 있지요. 타인의 고통을 기억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는 삶을 꿈꾸려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1천원이면 어떻고 만원이면 어떻습니까? 그 만원은 나비효과를 갖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 주지 않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기부는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을 세상과 소통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가진 것 100개 중 99개는 내 것이고, 나머지 1개를 이웃과 세상을 위해 내주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확장하는 일입니다.”

 

아직은 먼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의 개인 기부액은 아직도 외국에 비해서는 매우 적다는 사실입니다. 종교헌금을 빼면 개인기부액과 기업기부액의 비율이 4 대 6 정도입니다. 개인 기부액이 전체의 40%에 불과한 데에는 부자들의 기부가 적은 것이 큰 이유가 됩니다. 부유층의 기부가 적으니 전체 기부 규모가 커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은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부유층의 기부가 나눔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절대 필요조건임은 분명합니다. 우리도 기부가 ‘명예의 원천’이자 ‘존경받는 부자’가 되는 최고의 덕목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부시 대통령이 상속세를 폐지했을 때 앞장서 반대한 사람들이 록펠러 3세,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같은 부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유산, 사회에 남긴 것은 영원하다

 

“오랫동안 우리는 자신이 힘껏 일군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대접받는 부모의 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런 상속 관행이 나눔문화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특히 자수성가한 분들 중에는 자식들에게 유산을 그대로 물려주는 게 옳은지를 다시 생각하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재단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0% 이상이 재산 일부를 사회로 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사회에 남겨진 것은 영원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가치관과 철학을 갖춘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유산을 물려받는 쪽도 변화에 직면할 것입니다. 상속우울증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갑자기 엄청난 돈을 물려받은 2세들이 그 돈을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그만 우울증에 빠지는 일이 생겨서 미국에서는 상속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생길 정도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부유층에서 어떻게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또한 다음 세대에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즉 ‘부의 이전’이 머지않아 개인적 사회적 이슈가 될 것입니다.”

 

기금에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

 

“개인과 기업 기부금으로 설치된 공익기금이 현재 187개가 있습니다. 기금에는 기부자의 삶의 흔적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름다운재단 공익기금 1호인 정신대 할머니 ‘김군자기금’입니다.

‘나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겨 기금’은 같은 이름의 책을 쓰신 고 전우익 선생이 남긴 인세로 만들어졌습니다. 비극적으로 숨진 딸을 추모하며 그 부모가 만든 ‘미연이 수호천사 기금’도 있고, 7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분들이 공익활동가 지원을 위해 만든 ‘미래마당기금’, 은퇴한 기업 임원이 자기 몫의 국민연금으로 만든 ‘은빛겨자씨 기금’ 등이 있습니다. 재단의 가장 큰 기부는 아모레퍼시픽의 고 서성환 회장 유가족의 기부로 만든 ‘아름다운 세상 기금’입니다. 이 기부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한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창업에 쓰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개업한 희망가게는 내년 봄 100개를 돌파하는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좋은 모델로 꼽을 수 있습니다.

작가들 중에는 신경숙 작가가 대표적인 기부자입니다. 안도현·김용택·도종환 시인 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민기씨는 <지하철 1호선> 공연 시 좌석을 기부했습니다. 3500회 기념공연 때는 전석을 기부해 평소 뮤지컬을 접하기 힘든 장애인 노숙인 단체활동가 등을 초청했는데, 참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구두를 닦아 번 수입금 일부를 수년째 매월 꼬박꼬박 기부하는 이창식 선생님은 어머니, 딸 3대가 기부자입니다. 복권 당첨금을 들고 안국동에서 가회동 사무실까지 단숨에 달려와 당첨금 모두를 기부하신 분 등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분들의 나눔을 ‘시티즌 오블리주’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돈을 모으는 것은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메이킹 머니, 메이킹 체인지(Making Money, Making Change). 돈을 만드는 것은 곧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펀드레이징(모금)은 단순히 돈을 많이 모으는 일이 아닙니다. 모금과 배분의 모든 과정에서 어떻게 ‘자선을 넘어 변화’를 만들어낼지, 사람과 사회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늘 고민하게 됩니다. 그 시기의 절박한 이슈를 사회에 제기해 사람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면서 기부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신문 사회면 1단 기사에서도 모금과 배분의 영감을 얻기도 하고, 많은 풀뿌리 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해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합니다.”

 

사회변화, 사회정의, 사회혁신을 위한 자선

 

“자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등장한 젊은 외국의 재단들은 ‘사회정의 자선’ ‘사회변화 자선’이란 개념을 사용하며 자선의 틀을 바꾸고자 합니다. 얼마 전 미국의 재단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했는데, 거기서도 전통적 자선의 정체성과 전략이 도전받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회의의 주제가 ‘사회변화, 사회정의, 사회혁신을 추구하는 자선’이었는데, 가장 붐볐던 회의는 ‘사회정의’ 세션이었습니다. ‘저스티스 이즈 스위트’(Justice is Sweet: 정의는 달콤하다)라고 상쾌한 구호를 내건 재단도 있었고요. ‘자선은 얼마나 세상을 바꾸었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다양한 사례 발표와 열띤 토론을 하더군요. 정부와 제도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빈곤과 양극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 스스로가 서로 돌보고, 서로 책임져 주는 사회를 꿈꾸는 비영리조직들의 고민과 새로운 실천들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이런 고민과 질문이 쏟아질 때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재단도 10주년을 맞아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많은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머물지 않고 내부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할 때 새롭고 창의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조직으로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희망은 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나눔운동을 꿈꾸어온 아름다운재단은 앞으로 10년도 ‘공익적 기부문화 확산’과 ‘시민과 공익을 잇는 가교’를 추구한 설립정신을 계속 구현해 나갈 것입니다. 공익은 ‘좋은 일 좋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실천이며, 그 꿈을 나누는 일이 아닐까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공익의 가치와 실천을 지지하고 참여해야 희망이 있는 사회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아름다운재단의 슬로건은 ‘희망은 지지 않는다’였습니다. 희망은 어느 경우에도 패배하지 않는다, 가라앉지 않는다는 의미였는데요, 앞으로도 우리 이웃들과 그리고 우리 자신들에게 늘 전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2000년 아름다운재단 출범 당시 349명이었던 기부자는 2010년 8월 현재 3만8천여명으로 100배 이상 늘었다. 기부금은 첫해 5400만원에서 지난해 174억원으로 322배가 증가했고, 배분사용액은 101억원으로 200배가 늘어났다. 개인 및 기업의 공익기금은 5개에서 2010년 현재 총 187개가 되었다. 지난 10년간 시민들과 기업 등이 기부한 돈은 총 803억원이며, 그중 444억원이 어려운 이웃의 재활과 교육 지원 등에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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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정숙 상임이사
■ 윤정숙은 누구

아름다운재단 윤정숙 상임이사는 인천 인일여고를 나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야학활동과 철거민촌 자원활동 중 빈민의 삶을 보면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시위 주도를 이유로 두번 제적됐다가 8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한국여성민우회 창립회원으로 여성운동을 시작했던 그는 1990년대 한국 여성운동의 핵심 일꾼이었다. 그는 여성운동을 했던 30, 40대는 여성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유의지로 꽉 찬 한 인간으로서 열정이 가득했던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한다. 30대 후반 중학생 아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영국 유학을 떠났다. 그 기간에 다양한 가치와 다른 삶의 방식이 인정되고 조화를 이루는 것,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구호와 담론을 넘어 사람들의 일상의 삶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이 ‘진보’임을 배웠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등을 거쳐, 2006년 아름다운재단 설립자인 박원순 변호사의 권유를 받고 여성운동가에서 나눔운동가가 되었다. 그는 “누구라도 자신의 개성과 가치를 키워갈 수 있는 세상,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는 좋은 삶과 좋은 일을 추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출처 :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