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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a의 긍정/신금재


눈이 녹으면서 잔디밭이 맨 얼굴을 드러냈다.

겨우내 눈이 쌓여있던 곳은 눈이 온실 역할을 하여서인지 봄햇살을 받아 다시 초록싹이 돋아나는데

통로로 사용한 잔디밭은 기운이 없다.

최악의 사태는 현관문 옆이다.

마치 기계충 걸린 선머슴 아이 머리처럼 흙이 그대로 드러났다.


눈이 많이 내리던 지난 겨울 유난히 자주 넘어지던 학부형이-다리가 유난히 길었는데 균형감각이 좀 떨어지던- 있었다.

어느 날 두 아이를 안고 미끄러져 넘어지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우리는 강한 제설제를 사다가 마구 뿌려대었다.

인과응보.

환경 생각을 하지않고 마구 사용한 제설제는 잔디를 죽게 만든것이다.

어쩐다지.

잔디를 볼 때마다 해결책을 생각하였다.

돌을 깔아볼까.

그러다 데이케어 아이들이 넘어지면 상처입을텐데...

아니면 제설제를 뿌려도 죽지않는 인조잔디를 깔아볼까.

이 궁리 저 궁리 하는 사이 여름이 깊어가고 있었다.


Oma는 나이지리아에서 이민온 엔지니어 학부형 엄마다.

염색체 이상으로 선천적 장애 아들이 있지만 언제나 웃고다니는 긍정의 힘을 가진 사람.

머릿 속으로 궁리만 하면서 그 어느 것도 실천해보지 못한 내가 어느 날 아침 물었다.

-오마, 저기 잔디말야,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을까. 걱정이네.

-뭘 걱정해. 간단하지. 잔디 씨앗을 뿌려봐. 이 주후면 나오는데.


그날 저녁 우리는 흙을 사다가 얇게 펴서 깔고 잔디 씨앗을 뿌렸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데 물을 듬뿍 뿌려준 흙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면서 초록빛이 올라오는 듯한

환상을 보았다.

그리고 이 주 후 정말 우리는 잔디의 여린 얼굴을 연초록 감동으로 대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오마는 예의 호탕한 웃음을 뒤로하고 출근길을 나선다.

그녀의 등 뒤로 아침햇살이 밝게 비치는데 함민복의 시가 떠오른다.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긁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이 하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