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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와 튜울립/신금재


지난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만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캘거리를 떠나 따뜻한 지방으로 이주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미국 국경 쪽이나 캐나다 서부 BC 주에 집을 사서 겨울 동안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캘거리의 겨울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가보다.

눈도 많이 와서 눈치우는 일 또한 버거운 것이었다.

우리집에서는 주로 남편이 눈을 치우는데 어느 날은 하루에 다섯 번을 치운 적도 있었다.

도저히 보기 미안하여 거드는 척 몇 번 삽을 움직였지만 습기를 머금어 무거워질대로 무거운 눈을 치우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었다.

마당에 쌓인 눈을 퍼서 잔디밭 위로 쌓아올리면서 내심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겨우내 눈을 쌓아놓으면 눈 밑에 깔린 잔디들이 얼어죽지않을까.

게다가 문앞에는 눈길이 미끄러워서 눈 녹이는 제설제까지 뿌려놓았으니.


아무리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려도 마침내 봄이 왔다.

마당에서 수선화가 올라오고 산부추가 고개를 내밀 때 질투하듯 눈이 또 몇 번 내렸지만 기어이 봄비소리가 처마끝에 찾아온 날 화사한 봄이 우리 마당에 내려앉았다.


옆집 잔디는 언제나 우리 잔디보다 푸른 법.

남편은 비료를 준다 레이킹을 한다하면서 부산을 떨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잔디가 살아나왔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는 남편의 첫 임무는 잔디에 물주기.

저녁 햇살에 물줄기가 퍼지면서 무지개를 만들어내면 잔디에서 반짝반짝 물이슬이 피어난다.

참 신통하다. 다 죽은 것처럼 누렇게 퍼져있더니 저렇게 다시 올라오네.


이제 잔디가 올라오니 우리의 할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

잔디따라 함께 피어나는 민들레 소탕작전이다.

잔디에 애착이 많은 그는 민들레 꽃이 피어나기가 무섭게 꽃봉오리를 따버린다.

차라리 민들레를 캐내버리는 것보다 꽃봉오리를 따내는 것이 나에게는 더 힘들다.

며칠만 더 꽃을 보리라 하다가 어느새 민들레씨가 맺혀 하얀 깃털을 따낸적이 있었는데 생명력이 어찌나 강하던지 마른 상태에서도 깃털이 떨어져퍼져나갔다.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흩날리듯이라는 노래처럼.


엊그제 아침 뒷마당에서 민들레를 캐다보니 화단 한쪽 구석 튜우립 옆에 민들레가 키다리게임을 하고있다.

잔디에 피어나는 민들레는 잔디 사이에서 납작하게 피어나는데 화단에 준 영양흙 때문인지 튜울립하고 마주서서 키자랑을 하고있다.

차마 손을 내밀어 만질수조차없었다.

민들레 꽃송이 위로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민을 결정하고 폭설이 내리던 2001년 2월 16일 캘거리공항에 내렸을 때 코끝을 스치던 칼바람

보름만에 얻은 데이케어직장

십년 넘게 근무하다 사소한 오해로 그만두게 되던 날 버스종점에 쏟아져내리던 뜨거운 여름날의 햇볕

중학생이던 두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수있을 지 노심초사하던 날들.


튜울립이 자신감있게 붉은 색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데 소박한 노란색으로 다소곳이 한쪽에서 피어나는 민들레가 마치 내모습같았다.

이민살이 십 사년.

이제 십 년 넘어 강산이 변하다는 세월이 지나가도 내 나라 내 땅이 아닌 이곳에서는 언제나 움츠려든다.


그런데 저 민들레를 보라.

보무도 당당하게 저렇게 꼿꼿히 서서 튜울립과 키재기를 하고있지않은가.

이제 버리자. 십 년 넘게 살아왔으니 이제 여기도 내 땅.

어려서하던 놀이 중에 땅따먹기 게임처럼.

이제 내 땅이지 하는 마음으로 민들레처럼 당당하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