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베토벤 '열정' 피아노 소나타 )




순서

맨 처음 마당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

그 다음에는
밭둑의 
조팝나무가 
튀밥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그 다음에는
뒷집 우물가
앵두나무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피어나고

그 다음에는
재 너머 사과밭
사과나무가
따복따복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사과밭 울타리
탱자꽃이
나도 질세라, 핀다

한 번도
꽃 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펑펑,
팡팡,
봄꽃은 핀다
(안도현·시인,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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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싯귀에서 

나에게 가장 실감나게 닥아온 귀절은...


한 번도 

꽃 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펑펑,

팡팡,

봄꽃은 핀다.


시인의 시어는 꽃처럼 피어나서 나의 시선을 꽉 잡는다.


나는 원래 도회지에서 자라난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시골과 자연의 추억이 없다.

성장해서도 잠시 잠깐 시골을 방문하며 자연에 대한 동경이 별로 없었다.


 그 후 오스트리아에 와서도 계속 도회지 생활을 해왔다.

그러다가 10여년전부터 시외 근교 동알프스 한 마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고,

얼마전부터는  터도 마련하여 직접 식물도 가꾸게되었다.

 

어떠한 경작을 위한 특별한 지식과 노력을 많이 안하고도 

자연이 주는 즐거움과 감사함 .. 무엇으로  표현하리... 

해마다 봄이되면 뽕긋거리는 식물들를 보며 느끼는 환희.

한여름의 싱그러운 녹색속에 열정적인 꽃들의 환성,

가을의 단풍과 낙엽속에 인생정리,

겨울의 나목들을 보며 고별후에  닥아오는 새로운 시작에  다시금 기대를 갖게 된다.


올 봄에는 더욱  새롭게 전원을 살피게 되었다.

작년부터  새로 일구기 시작한 전원에다 

가을에 양파형 뿌리근을 심었었다.

겨우내내  모두 잘 견뎌낼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봄이 되자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는데,

어디에서 그리도 생명력이 있는지 

요즘은 정신 없을 정도로 한창 이쁘게 피어나고 있다.


며칠전 주중에 비엔나 시를 거닐다 너무도 환한 하늘을 보며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봄의 빠른 템포에 주춤했던 느낌이 들어 조금 서글품마저 들었었다.


그러나 며칠후 나의 사랑이 숨쉬는 전원을 찾으며 ...다시 생명력에 대한 신비로움에 기쁨이 넘치기 시작했다.

우리 전원에도 순서대로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크로커스, 스노우드롭스, 겨울장미(슈네로제), 서향,난장이 아이리스 , 야생히야신스,그리고 이제 야생 튜울립이 ,,,

돌틈사이에서 피어나는 할미꽃,올해 내내 피어날 새생명들.. 얼마있으면 나리가 피겠지.. 그리고 또 또또 순서대로 ..


이제 이 나이에 자연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게 됨에 감사하다.

고국의 추억이 흐미하지만 이곳에서 동양의 정취를 숨쉬는 식물들과 지내며 정을 들이리라..

내가 언제까지 이런 즐거움을 누릴까?...

건강하여 좀더 해마다 누리고 싶다.

정말 순서대로 오래 살고 싶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이다.



2014년 3월 23일 

오스트리아 동알프스 부클리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