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나의 제자들


매년 음력설 다음날이면 간석8063 제자들이 모여와서 세배를 했는데 올해는 모두들 그날이 어렵다고 하여 올해엔 명절을 나흘 앞둔 오늘 세배를 왔다. 올해로 녀석들 나이가 서른아홉 정도 되는가보다. 지난해엔 열 여섯명이 왔는데 올해엔 열 세명이 왔다. 김성한, 김판규, 김동주, 동주댁 연순이, 김성태, 임현수, 송혜원, 정영미, 이재흥, 채현식, 최영광 최  원, 최태인, 이렇게 열 세명이다.
나는 올해도 녀석들에게 세배를 받고 빳빳한 만원짜리 한 장씩을 세뱃돈으로 주었다. 이젠 어른이 되어 세뱃돈을 주는 입장의 녀석들이 모처럼 세뱃돈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 눈엔 그저 사랑스런 아이들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 중 김성태란 녀석은 내가 주는 세뱃돈을 액자에 넣어 안방 벽에 걸어놓는단다. 새해가 되어 새 돈을 받으면 그것으로 다시 갈아 넣는다고 하여 나를 감동시키는 녀석이다.
몇 해 전부터 나를 편하게 한다면서 음식을 모두 싸들고 다니는 녀석들이다. 올해엔 회장인 태인이네 태능갈비에서 저녁을 먹고 안주 일체를 싸들고 왔다. 태인이 내외가 탕평채를 비롯하여 갖가지 전과 사라다, 수정과 등을 만들었고 나머지 녀석들이 각종 마른안주와 산사춘, 맥주, 포도쥬스, 등등을 마련하였단다. 금방 한 상 가득 안주가 차려졌다. 내가 준비한 것이라고는 상 펴놓고 수저와 술잔만 놓았을 뿐이다. 장성한 제자들과 술잔을 부딪히며 짠짠하는 즐거움이란 세상을 다 얻은 것과 같은 기분이랄까? 암튼 그 비슷하다. 설거지도 여자 제자들이 번쩍 해놓아서 내가 손댈 것이 없었다. 제자들 눈에 내가 꽤 늙어 보이는가보다. 부엌에서 뭔가 만지려고만 해도 깜짝 놀라 빼앗는다. 편히 뫼시려는 그 고운 마음이 한없이 예쁘다.
상을 물리고 나서 우린 두 팀으로 나누어서 다섯 명은 고스톱을, 여덟 명은 두 편으로 갈라 윷놀이를 했다. 밤 열두시가 조금 넘도록 집안이 들썩거리도록 놀았다. 이웃에게 미안했지만 나는 이해심 많은 이웃을 믿었다. 우리 이웃들은 일년에 단 하루 엄청 시끄럽게 노는 우리 집을 이해하여 한번도 항의 하는 일이 없었다. 나를 아주 훌륭한 교사로 알고 있으며, 제자들이 무더기로 세배를 온다는 자체 하나만으로도 그냥 흐뭇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자들 배웅을 하러 아파트 마당에 내려서서 보니 나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있는 것처럼 큰 제자들이 마치도 잘 자란 나무 같았다. 그 조그맣던 녀석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있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단 말에 실감이 났다. 나는 내게 장성한 제자들이 수북하게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
앞으로 나의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생전에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서 제자들에게 베푸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
                                                 (2005.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