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선선해지는 이맘때면 수험생을 둔 집에서는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큰 소리로 웃지도 못하고 텔레비젼조차 마음대로 못 본다.
오랫동안 긴장한 수험생들의 쌓인 스트레스가 신체적으로 하나 둘 드러나 머리가 아프다,
소화가 안 된다, 잠이 안 온다, 변비다 하고 호소를 할 때다.
고3 교실에 늘 한약 냄새가 배여 있는 때도 요즘이다.

나 역시 두 해를 연거퍼 입시 전쟁을 치렀지만 아무 것도 모를 때 한꺼번에 일을 치르고 나니
잠시 악몽을 꿨던 것같이 힘들었던 기억 뿐 지금은 그때 어떻게 보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엄마가 고아다 준 엿이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외할머니표 합격엿이라고 부른다.

나는 언니와 십 년을 한 동네에 살았다.
언니네 조카는 제 어미를 닮지 않고 생김이나 성격면에서 빼다 박은 것같이 이모인 나를 닮았다.
반면 우리 아이들은  돌연변이가 되어 태어난 것 같이 나를 전혀 닮지 않아
어떤 때는 언니네 딸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더 낯설 때가 있다.

그런 언니네 딸과 우리 큰 아이가 한 해에 같이 입시를 치르게 되었다.
시험 며칠 전 엄마는 시골에서 엿을 고아가지고 왔다.
어릴 때 정월이면 고아 콩가루 속에 파묻어 놓고 정월 내내 들며 날며 먹었던 그 엿이었다.
입시 날이면 할머니들이 엿을 교문 앞에 붙여 놓고 절을 하던 진짜 그 엿이었다.
아버지 말씀이 엄마가 밤새 자지 않고 엿을 고더라는 것이다.

"예전 불을 때서 엿 골 때는 타서 가마솥에 눌러 붙기도 하고,
덜 삭아 빛깔이 나빠 속을 썩이곤 했는데 이 엿은 속을 하나도 썩이지 않고 잘 고아 지더라.
그러니 두고 보아라. 꼭 합격할 테니......"

엄마는 두 손녀딸들에게 그런 식으로 시험을 잘 볼 거라는 암시와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 엿 덕분인지 아닌 지 엄마의 손녀딸들은 자신들이 만족할 만한 점수를 얻었고,
그 해 같은 대학을 나란히 합격했다.

꼭 당신이 외손주 둘을 한꺼번에 합격시킨 것처럼 엄마는 신이 났다.
이듬해는 일곱 살에 들어가 큰아이와 한 학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작은아이가 시험을 보게 되었다.
엄마는 더욱 정성을 드려 엿을 고아 가지고 왔다.
이번에는 인절미까지 함께 해 가지고 오셨다.
인절미를 방앗간에서 빼지 않고 아버지가 집에서 직접 찧었다고 했다.
쫄깃하기는 방앗간에서 뺀 것에 비할 바 아니지만 가끔 덜 찧어진 찹쌀 알갱이가 보였다.
아이들은 그것이 신기한지 그래서 더 맛이 있다며 좋아했다.
그것을 먹기 좋게 잘라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학교에 보냈더니
친구들은 콩가루 속에 묻은 엿과
쌀 알갱이가 들어있는 인절미는 처음이라며 신기해하며 먹었다고 했다.

작은아이 역시 외할머니의 정성 덕분인지 정시까지 어렵게 치른 시험 끝에 언니와 같은 학교에 합격을 했다.
외할머니표 합격엿은 외손주 셋을 이 년 연거퍼 합격시킨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듬해부터 몇 년간은 집안에 수험생이 없어 엄마는 엿 고는 일이 없어졌다.
대신 내가 엄마에게 엿 고는 방법을 전수 받았다.
알고 보니 별 것이 아니었다.
밥을 해서 보온 밥통에다 엿기름물과 함께 앉혀 놓으면 한나절만 지나면 알맞게 삭았다.
그것을 양파주머니에 넣고 짜거니 체에 받히면 물이 쏙 빠졌다.
그 물을 은은한 가스 불에 얹어 잘 졸이면 엿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엄마는 손바닥만한 거품이 일 때까지 고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거의 다 고아지니까 손바닥만한 거품이 쩍쩍 일었다.

해마다 대입시 전이면 백화점이며 상점에서 합격 엿이라며 이상한 물건들을 잔뜩 집어 놓고 판다.
잘 풀라는 의미에서 휴지를, 잘 찍으라고 도끼와 포크를, 잘 보라고 거울을,
잘 붙으라고 엿과 초콜렛을 넣은 거라고 한다.
포장이 현란하고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나는 인간관계가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닌데 아이들 입시 때마다 합격 엿을 별로 받아 보지 못했다.
엿 받는 것은 평소 엄마 아빠의 사회생활의 결산이라며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이벤트에 관심이 많은 작은아이가 은근히 핀잔을 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내 친구는 좀 과장되게 말해서
차 트렁크로 합격엿을 가득 받았다고 한다.

솔직히 엿을 많이 받는 것하고 합격하는 것하고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할머니 합격엿의 위력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합격했다고 믿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것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의식일 뿐이다.

날이 점점 더 선선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입시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해마다 묵은 쌀을  쏟아 만들던 합격역을 올해는 집안 사정으로 생각도 못하고 있다.
주지는 못하지만 수험생들이 평소에 쌓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수험생 어미의 마음이 되어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