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무스쿠리 공연장에서/신금재


눈이 내린다.

엊그제 봄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학부형 하나가 해피 뉴이어, 하면서 인사를 하였는데 기나긴 캘거리의 겨울이 물러설 줄을 모른다.


지난 달 어느 저녁 뉴스 시간 광고에 많이 보던 얼굴이 나오고있었다.

나나 무스쿠리

특유의 검은 안경 너머로 그녀의 눈빛이 빛나는데 얼굴 아래로 공연 날짜가 보였다.

3월 25일 저녁 7시 반 주빌리 오라토리움에서.


아직 한 달 남짓 시간이 남았지만 급한 마음에 딸아이에게 티켓 구입을 부탁하였다.

훠스트 발코니란다.

좌석 이름만으로도 나나 무스크리의 노래부르는 장면이 눈에 환하게 들어오는 듯 하다.


이민오던 그 해, 이웃 친구가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를 담아 CD를 구워주었다.

그때 나는 데이 케어에서 아기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있었다.

캘거리 다운타운 한가운데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바로 옆의 빌딩들이 회색의 침묵으로 다가오는 곳, 그 곳에도 틈은 있어 보우 강 너머 산 언덕 위로 이탈리언 마을이 보였다.


낮에 아기들에게 점심을 먹이고 낮잠을 재우는 시간, 룰라바이라 부르는 자장가를 틀어주다가 나의 손은 어느 새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를 잡는다.

낯설어서 더 길기만하던 캘거리의 겨울, 그때 눈은 얼마나 많이 내리던지...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건너다보이는 이탈리안 마을을 배경으로 눈이 내린 풍경은 마치 내가 가본 적 없는 어느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 풍경같다는 생각을 해보고 나나 무스쿠리가 이탈리아 가수가 아닌가 생각하였다.


공연 전 나나 무스쿠리의 공연 사진을 프로젝트로 보여주는 것을 보니 나나 무스쿠리는 그리스 크레타섬 출신이고 박쥐의 딸이라는 자서전을 펴내기도하였다는데.

첫 장면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기슭에서 열렸던 2008년 그녀의 오십 년 노래인생의 고별 콘서트였고  마지막에는 제우스 신전을 배경으로 한 어느 강가를 맨발로 걸어가는 그녀의 실루엣이었다.

신들이 많은 나라 그리스 가수 나나는 어딘가 모르게 신비로움이 감돈다.


이민오기 전 나는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이라는 노래를 좋아하였다.

알고보니 이 노래는 1967년 나나 무스쿠리가 내 조국의 노래라는 음반에 들어있는 번안곡이다.

스페인어로는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요? 라는 뜻이고 영어로는 눈물(TEARS)로 번역되었다고한다.

어릴 적 오페라 가수의 꿈을 키우며 아테네 음악원에서 공부하던 그녀가 졸업시험을 앞두고 만난 재즈음악은 그녀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고한다.

마치 우리 가족의 이민처럼.


공연장에 가기 전 남편이 물었다.

나나 무스크리 나이가 얼마인지알아, 아니 모르겠는데...

1934년 생이니 팔십이네. 한국 나이로는 팔십 하나네.

뭐라구, 팔십 노인이라구, 세상에... 나의 벌어진 입이 한참 다물어지질않았다.


주빌리 공연장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니게 아니라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할마버지들이 내려서 걸어가고있었다.

무대 위에는 벌써 조명등이 밝혀지고 네 개의 악기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어두운 불빛 아래 기대어있었다.


나나 무스크리를 맞이하는 키보드의 밝은 연주에 맞추어 그녀가 들어오자 드럼 연주자인 젊은이의 팔짱을 끼고 무대 가운데로 나왔다.

참으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나나 무스크리, 그녀의 노래를 CD나 YOUTUBE에서 듣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다니.

그녀의 나이 팔십이라니 살아생전 다시 우리가 만날수 있을까. 


나나 무스쿠리가 노래부르는 중간에 젊은 여자가 나와서 듀엣으로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얼마나 열정적이던지, 그녀의 딸이라고 소개하였다.

어머니의 노래 실력을 이어받은 그 딸이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를 영혼으로 대를 이어나가겠지.


노래 부르는 사이 자기의 부모님 이야기, 어린 시절의 추억 그리고 간단한 유머를 넣어 진행하는 그녀의 콘서트는 참으로 편안하였다.

팔십 고령의 몸으로 어쩌면 저리도 고음 처리를 잘할까.


무대 위의 그녀를 바라보며 과연 나는 저 나이에 어떻게 변하여있을까, 하며 스스로 물어본다.


캘거리 시에서 특별한 귀빈에게 주는 스탬피드 모자를 쓰고 활짝 웃는 그녀에게 커다란 박수를 보내며 함께 외쳐본다.


야----후---! 

그녀에게 신의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