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어느 날인가부터 취미가 무어냐 물으면 참 할 말이 없어졌다.

 옛날엔 무슨 신상 이력을 적을 때면 취미 난이 꼭 등장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주 어린  시절엔 진심으로 '독서'였고 그러다 어느쯤 해선 달리 별 수 가 없어서 '독서'였고 그러다 또 어느 순간에서부터는 차마 염치가 없어서 '독서'를 써넣지 못한다.

  그나마 사진 찍는 일을 즐겨하기는 했었는데 -고등학교 때 한 해는 취미부 활동을 사진반을 했었다.- 한창 일 할 때 아이들 단체로 어디 데리고 다닐 때면 얼마나 열심히 사진 찍어주고 열심히 인화 하고 분류해 나눠주고 하는데 재미가 들렸었는지 그때 내 손을 거쳐간 아이들은 아직도 만나면 그때 찍어준 사진들을 가보처럼 잘 보관하고 있노라 인사도 듣는데 한 10년을 그러다보니 그만 지쳐서 막상 내 아이를 키우면서는 사진을 많이 찍어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디지털 카메라가 생기면서는 일반 카메라의 번거로움이 일시에 사라진 듯 반가웠다. 필름도 필요없고 현상소 드나들 일도 필요없고 앨범 정리에 힘을 들일 일도 사라졌다. 툭툭 찍어 컴퓨터 모니터 화면으로 점검하고 지울 것 지우고 웬만큼 잘못된 건 수정도 가능했다. 적당히 한 귀퉁이 오려내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 일상을 영상에 담아 날짜별로 화면에 저장했다.
 그러던 지난 봄, 아는 분이 디카로 찍어준 사진들을 전해받았는데 거기에 담긴 인물사진들이 장난이 아니었다. 얼마나 따뜻하고 색감도 풍부하고 평범한 얼굴들이 특별하게 살아나 새롭게 다가오는지 당장 전화해 그 비결이 무엇인가 물었다. 조각을 하는 남자분이었는데 나름대로의 미적 감각은 둘째 치고라도 카메라 자체가 특별히 고가품이거나 화소 수가 높은 것도 아니고 전문가용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제조회사 특유의 색감의 문제인 것 같았다. 그와 같은 기종의 카메라를 근 1년간 뜸을 들여 지난 12월 무렵 마련했다.

 아직 사용설명서 한번 제대로 정좌 하고 읽어보지도 못한 채 이지만 앞으로 취미 난을 채울 수 있을 만 하게 기꺼이 얼굴들을 찍으리라 하는 것이 목표다. 잘 찍는 전문가 하고야 물론 비교 될 바 아니고 그야말로 아마츄어 그 자체이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진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 향기를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남과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는데 아마도 때로는 그러한 숨겨진 본인의 매력을 잘 모르거나 혹은 알더라도 차마 드러내놓지 못하고 거울 속에서만 비밀히 바라볼 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자신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의외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이런저런 본연의 얼굴, 본연의 아름다움, 본연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해 기쁘고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친구들 한테랑 무조건 '내가 사진 찍어줄께!' 한다. 찍혀진 사진을 보고 실망을 한다면 어쩔 수 없다. 내게 다시 다음 기회를 주는 수 밖에. 나이 들면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흠칫 놀라고 피하게 되기 십상인 우리의 자화상들로부터 과감해져서 매력 만점으로 아름답고 우아함에 자신감 빵빵하여 내가 렌즈 들이대면 씨익 뻐기며 한번 웃어주면 좋겠다.

 ..................................................................................

p.s  디카모가 모인대서 별러별러서 카메라 들고 갔는데 자상하게 챙겨주시는 송미선 선배님, 씩씩하게 가이드를 자처하신 정외숙 선배님, 조용하게 베스트 드라이버 임무를 수행하시는 송영애 선배님, 든든한 친구 리자, 만년 예쁜 친구 광희, 아유 그렇게 알뜰하고 칼 같은 총무는 첨 보았어요-손숙영 후배 ...덕분에 너무나 즐거운 봄나들이었고 게다가 모델도 되어주시고 이렇게 사진 올리는 것 까지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드실지 모르는데 그러면 할 수 없이 다음에 또 찍으러 가야됩니다.

 

 

-이제쯤 사진 다 보셨을 것 같아서 내려요.
같이 나눌 수 있게 해주셔서 다시 감사드려요. 200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