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밴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브라질 현지인 종업원을 쓰면서 수시로  ‘이 새끼, 저 새끼’  를  애용하던  어떤 부인은
한국에 와서 택시 기사님한테 혼줄이 났단다.

옛날 살던 동네를 찾아가는데 온통 달라진 서울 거리,  어딘가 어딘지 알 수가 없더란다.  
차창밖으로 목을 빼고 내다보아도 영 알아 볼 수가 없는데  불현듯
‘이 운전수가 요금 올리려고  먼 데로 돌아가는 거나 아닐까 ? ‘ 하는 의심이 들었단다.

자기도 모르게 혼잣 말로,
“ 이 새끼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거야 ? “   소리내어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브라질에서 택시를 타고 있는 줄로 착각을 한 것이다.

깜짝 놀란 운전수가 뒤를 돌아보며,
“ 뭐요 ? “  하고 고함을 치는 바람에 후딱 정신이 들었다는 게 아닌가.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도 언제나  우리들끼리의 대화는  절대 안전보장이 되는 분위기에 익숙해있는 교포들이다.
가게에  일꾼들이 암만 많아도 주인네 부부가 하는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없다.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유명한 식당에 수많은 손님들속에 끼어 앉아 있어도 아무도 우리의 대화를 짐작도 못한다.
  
“ 되게 맛있다더니 뭐 겨우 이 따위야 ?   우라지게 값만 비싸고..”
뭐 이런 괘씸한 비평을 고명하신 프랑스 요리 전문가 코 앞에서 한다해도
못 알아듣는 그는  근사한 미소만 짓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 그런지 언어 습관이 날이 갈수록 고약해진다.
가뜩이나 한국 문화와 소원하고 격조해서 문화인의 자질 ( 그나마  좀 가지고 있었던 )  이 점점 퇴색되어가는 중에  
이렇게 돈도 안 들이고  아무나 막 욕하고 살아도 무방한 무풍지대에서 살다보니
국어순화, 언어발달은 커녕 내내 ‘ 악화는 양화를 구축 ‘ 하고만 있다.

나는 이번에 한국에 와서 첫날부터 어쩐지 무언가가 좀 거북스러운 느낌이 들었었는데 왜 그런지 원인을 몰랐었다.  
얼마 후에야 확실한 자가 진단을 할 수가 있었다.
내 주위에 늘 둘러쳐 있던 이 편리한 언어의 방풍막이 여기 서울에서는 몽땅 제거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 들리고 다 보이고 …..
옷을 안 입기라도 한듯이  서로 서로 다 보여서 자칫하면 내 속내가 다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비록 저쪽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나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도 알아볼 수가 있었다.

특히 시장통에서는 매우 조심을 해야했다.
브라질처럼 생각하고 이것 저것 주물러보고  만져보고  값도 물어보고 하다가 나는 바가지 욕을 먹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
이런 일도 나를 고국에 와서 ‘이방인’ 으로  느끼게 하였다.
브라질에서는  열번 입어보고  사지 않아도 아무도 욕하지 않는다.

나는 두 딸과 함께 서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매우 불편하였다.
우리가 한국말로 대화를 해도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나의 두 딸들이 구사하는 한국말이 진짜 한국말처럼 유창하지 않았기때문이다.  
전철안에서 우리 셋은 묵묵히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을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우리는 묘한 강구책을 발견해 내었다.
우리끼리 폴투게스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편리해서 남들이 들어도 우리끼리는 폴투게스로  이야기를 했다.
물론 사람들이 또 쳐다보았다.  
우리는 이번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재미있고 편하기만 했다.  
그들이 아무도 못 알아들으니  속 편하고  오히려 재미있었던 것이다.

“ 어딧 말이야 ?   소련 말인가 ? “   소근거리면서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고 우리는 낄낄 웃었다.
오랫만에 만난 우리 셋은  삼인조 짝짝궁 친구사이처럼  신나게,   신나는 서울거리를  쏘다녔다.

어떤 궁금한 사람 하나가 그여이 가까이 다가와서 우리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큰 딸애가 대답했다.    “  아프리카에서 왔어요.”

그 사람이 멀어진 다음에 우리 셋은 배를 쥐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