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기왕에 당선된 룰라씨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이유인즉 나는 투표권이 없는 외국인이기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언제 언제까지나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영주권은 있으나 정치에 간여할만한 권한은 조금도 없다.
피선거권은 물론이지만 선거권도 없다.
나의 국적이 브라질이 아니고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영주권을 소유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브라질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선택사항이다.
별나게 결격사항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신청을 하기만 하면 시일은 좀 오래 걸리지만 누구나 귀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포들이 거기 사는지가 20 년, 30 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한국국적으로 살고 있다.
특별히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투철해서 그렇다기보다
브라질 시민권이 영주권에 비해 특별히 더 좋은 혜택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교포들의 생활방편이 대부분 옷장사인데 옷장사를 하기위해서는 영주권만 있어도 아무 불편한 점이 없다.
혜택도 없고 불편도 없으니까 무심히 그냥 그대로 살게 된다.
그렇지만 교포들이 브라질 국적취득에 무심한 이유는 은연중에
‘브라질은 영원한 나의 땅은 아니다’ 라는 잠재의식이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또는 더 좋은 제 3 의 나라로 다시 떠날지도 모른다는 의식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에는 이 두가지가 다 없는 것 같은데도 국적을 바꿀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어려서부터 브라질에서 살게 된 나의 아이들도 아직 모두 한국국적이다.
국가 공무원이나 군, 검,경찰쪽으로 진로를 택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굳이 귀화해야할 필요성도 없었다.
사회 일반의 분위기도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를 구태여 따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한국 사람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수십년씩 제 나라 국적 그대로 살아간다.
한 살때 브라질에 와서 지금 69 세가 된 우리 바느질 집 할머니도 아직도 폴투갈 사람으로 되어있었다.
그녀의 영주권도 나의 것과 똑같은 빨강색이다.
그녀는 폴투갈에 가 본 적도 없다.
오래전에 우리 가게 옆에서 과일상을 하던 떠들썩한 이태리 부부도 내내 이태리 국적으로 브라질에서 살았다.
수년 전에 그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한 핏줄, 한 집안 식구라도 국적이 각각일 수가 있다.
배 타고 이민온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직도 한국사람,
그분들이 데리고 온 자손들은
자라서 브라질 국적을 취득한 아들에
비행기타고 나중에 이민 온 한국국적의 한국인 며느리일 수가 있고
그 손주들은 브라질에서 태어났으니 자동적으로 브라질사람이다.
이들은 혈통은 모두 순수한 단군의 자손들이지만 신분증으로만 보자면 섞여사는 외국인들이다.
이 외국인들의 집단은 폴투게스와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면서 살고 있다.
이 집에서 할아버지의 언어는 물론 한국어이다.
그 아들의 언어도 한국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브라질에서 청소년기의 일부를 보낸 사람이니 브라질 교육을 받았으므로 폴투게스를 브라질 사람만큼 잘 한다.
그의 아내되는 사람은 남편과 나이는 비슷해도 나중에 이민을 왔기때문에 브라질 말을 남편만큼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서 난 아이는 부모가 종일 가게에 나가있는 동안
브라질사람인 가정부와 함께 지내고 브라질 학교에 다니므로 당연히 폴투게스로 말한다.
한국말을 더러 알아듣기는 하지만 제대로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손주 아이가 제 할아버지와 대화할 때 아이는 브라질 말로 하고 할아버지는 한국말로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의사소통이 된다.
두 사람의 상대방 언어에 대한 실력이 ‘알아듣기’ 에서 비슷하고
‘어휘 구사 능력’ 의 수준도 비슷하기때문이다.
이럴 즈음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조심해서 좋은 언어습관을 들여줘야 한다.
비록 할아버지만큼 한국말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랄수야 없지만
다만 간단한 말 몇가지라 할지라도 적어도 아래와 같은 실수는 없도록 해야 할게 아닌가.
어떤 집 할아버지가 말 끝마다 ‘그 새끼, 저 새끼’ 를 붙여서 썼던 모양이다.
어린 손주는 그게 욕인줄도 몰랐겠지.
어느 날 아파트 벨이 울려서 마침 이 어린애가 문을 열었단다.
문 앞에는 어떤 아저씨 손님이 서 있었다.
아이는 안에다 대고 큰 소리로,
“ 할아버지, 어떤 새끼 하나 왔어.” 그랬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나는 투표권이 없는 외국인이기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언제 언제까지나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영주권은 있으나 정치에 간여할만한 권한은 조금도 없다.
피선거권은 물론이지만 선거권도 없다.
나의 국적이 브라질이 아니고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영주권을 소유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브라질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선택사항이다.
별나게 결격사항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신청을 하기만 하면 시일은 좀 오래 걸리지만 누구나 귀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포들이 거기 사는지가 20 년, 30 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한국국적으로 살고 있다.
특별히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투철해서 그렇다기보다
브라질 시민권이 영주권에 비해 특별히 더 좋은 혜택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교포들의 생활방편이 대부분 옷장사인데 옷장사를 하기위해서는 영주권만 있어도 아무 불편한 점이 없다.
혜택도 없고 불편도 없으니까 무심히 그냥 그대로 살게 된다.
그렇지만 교포들이 브라질 국적취득에 무심한 이유는 은연중에
‘브라질은 영원한 나의 땅은 아니다’ 라는 잠재의식이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또는 더 좋은 제 3 의 나라로 다시 떠날지도 모른다는 의식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에는 이 두가지가 다 없는 것 같은데도 국적을 바꿀 생각은 해 본 적도 없다.
어려서부터 브라질에서 살게 된 나의 아이들도 아직 모두 한국국적이다.
국가 공무원이나 군, 검,경찰쪽으로 진로를 택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굳이 귀화해야할 필요성도 없었다.
사회 일반의 분위기도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를 구태여 따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한국 사람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수십년씩 제 나라 국적 그대로 살아간다.
한 살때 브라질에 와서 지금 69 세가 된 우리 바느질 집 할머니도 아직도 폴투갈 사람으로 되어있었다.
그녀의 영주권도 나의 것과 똑같은 빨강색이다.
그녀는 폴투갈에 가 본 적도 없다.
오래전에 우리 가게 옆에서 과일상을 하던 떠들썩한 이태리 부부도 내내 이태리 국적으로 브라질에서 살았다.
수년 전에 그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한 핏줄, 한 집안 식구라도 국적이 각각일 수가 있다.
배 타고 이민온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직도 한국사람,
그분들이 데리고 온 자손들은
자라서 브라질 국적을 취득한 아들에
비행기타고 나중에 이민 온 한국국적의 한국인 며느리일 수가 있고
그 손주들은 브라질에서 태어났으니 자동적으로 브라질사람이다.
이들은 혈통은 모두 순수한 단군의 자손들이지만 신분증으로만 보자면 섞여사는 외국인들이다.
이 외국인들의 집단은 폴투게스와 한국어를 섞어 사용하면서 살고 있다.
이 집에서 할아버지의 언어는 물론 한국어이다.
그 아들의 언어도 한국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브라질에서 청소년기의 일부를 보낸 사람이니 브라질 교육을 받았으므로 폴투게스를 브라질 사람만큼 잘 한다.
그의 아내되는 사람은 남편과 나이는 비슷해도 나중에 이민을 왔기때문에 브라질 말을 남편만큼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서 난 아이는 부모가 종일 가게에 나가있는 동안
브라질사람인 가정부와 함께 지내고 브라질 학교에 다니므로 당연히 폴투게스로 말한다.
한국말을 더러 알아듣기는 하지만 제대로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손주 아이가 제 할아버지와 대화할 때 아이는 브라질 말로 하고 할아버지는 한국말로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의사소통이 된다.
두 사람의 상대방 언어에 대한 실력이 ‘알아듣기’ 에서 비슷하고
‘어휘 구사 능력’ 의 수준도 비슷하기때문이다.
이럴 즈음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조심해서 좋은 언어습관을 들여줘야 한다.
비록 할아버지만큼 한국말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랄수야 없지만
다만 간단한 말 몇가지라 할지라도 적어도 아래와 같은 실수는 없도록 해야 할게 아닌가.
어떤 집 할아버지가 말 끝마다 ‘그 새끼, 저 새끼’ 를 붙여서 썼던 모양이다.
어린 손주는 그게 욕인줄도 몰랐겠지.
어느 날 아파트 벨이 울려서 마침 이 어린애가 문을 열었단다.
문 앞에는 어떤 아저씨 손님이 서 있었다.
아이는 안에다 대고 큰 소리로,
“ 할아버지, 어떤 새끼 하나 왔어.” 그랬다는 것이다.
2004.03.27 10:03:43 (*.93.252.246)
이 글 읽다보니 생각나는 한마디~~
전에 울남푠이 사우디로 해외근무를 갔는데
그곳 현지 근로자를 부를때 이름이 복잡하니까 "야~ 캄."하고
불렀는데 이곳 사장이 방문한곳에서 그 사람이 사장보고
"야~캄...뭐야?"해서 무안 했다고 하더군요.
어른도 배우는데 애들은 더 잘 배우겠지요.
암튼 말이라는게 조심 또 조심해야 지요.~~~~~~~(:k)(:k)(:k) 말조심!!입조심!!
전에 울남푠이 사우디로 해외근무를 갔는데
그곳 현지 근로자를 부를때 이름이 복잡하니까 "야~ 캄."하고
불렀는데 이곳 사장이 방문한곳에서 그 사람이 사장보고
"야~캄...뭐야?"해서 무안 했다고 하더군요.
어른도 배우는데 애들은 더 잘 배우겠지요.
암튼 말이라는게 조심 또 조심해야 지요.~~~~~~~(:k)(:k)(:k) 말조심!!입조심!!
2004.03.29 21:41:09 (*.117.72.189)
중국 사람들, 유태인들은 어디서든지 모국어를 가르친다지요?
몇 대가 내려가도 모국어를 잊지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실지로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정말 그럴까?" 싶어져요.
나부터도 우리 애들한테 유창한 모국어를 구사할만한 한국어실력을 배양해줄 수 없었거든요.
오늘도 브라질에 있는 우리 큰딸애하고 msn 으로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물론 한국어로 쓰지만 그애는 또박또박 폴투게스로 답하더군요.
물론 그애네 집에 한국어 자판이 없기도 하지만
(이 대목에서 참, 갸웃뚱해지네. 왜냐하면 내가 보내는 한글은 그 애가 다 읽으니까.......)
한글로 쓰기가 그 애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그리고 어느 정도 읽고 쓰다가도 수년간 사용할 일이 없다보면 또 퇴보해서 잘 안 되더라구요.
그렇다고 한국어 사용자들하고만 어울려 살 수도 없고.........
몇 대가 내려가도 모국어를 잊지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실지로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정말 그럴까?" 싶어져요.
나부터도 우리 애들한테 유창한 모국어를 구사할만한 한국어실력을 배양해줄 수 없었거든요.
오늘도 브라질에 있는 우리 큰딸애하고 msn 으로 한참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물론 한국어로 쓰지만 그애는 또박또박 폴투게스로 답하더군요.
물론 그애네 집에 한국어 자판이 없기도 하지만
(이 대목에서 참, 갸웃뚱해지네. 왜냐하면 내가 보내는 한글은 그 애가 다 읽으니까.......)
한글로 쓰기가 그 애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그리고 어느 정도 읽고 쓰다가도 수년간 사용할 일이 없다보면 또 퇴보해서 잘 안 되더라구요.
그렇다고 한국어 사용자들하고만 어울려 살 수도 없고.........
그러고 보면 화교중에 한국말은 잘하고 중국말은 잘 못하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한국에서도 요즘 한글을 알기도 전에 영어를 시작하는 부모들이 간혹 있다합니다.
말을 하고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자기나라 말을 배우면서 자기 나라의 모든 습관,
풍도, 나아가서는 민족의 동질성을 암암리에 터득을 하게 되는데, 아기때부터 와닿지
않는 영어를 자면서 까지 음악으로 틀어대는 母情,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