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린날엔......!

겨울만 빼고 날 좋은 일요일이면 집에 있질 못했다.
숙제도 많고 할일도 많은데 울엄니의 왕방울 만한 눈을 보면
딴소리를 못한다.

덕수궁...창경원...인천송도...문학산..등등 우리의 단골 소풍지이다.

봄날 햇살이 좋으면 울엄니는 우리 6명을 앞세우고
6번 버스를 탄다.

큰오빠는 솥단지를 새끼줄에 묶어 들고
작은오빠는 장작을 새끼줄에 묶어 들고
난 막내 여동생을 등에 업고(갸 태어나고 난 애보게로 전락했다...)
큰 남동생은 한일 스텐레스 김치통을 들고
작은 남동생은 연평도 굴비를 누런갱지에 둘둘 말아 들고......

엄니는 치마저고리에 아버지 못쓰는 넥타이 질끈 동여 매시고
진두지휘하며 앞장 서신다.

우린 조르륵 뒤따르며 어미닭과 병아리들 처럼
송도행 버스에 오른다.

동막골 바위 투성이 바닷가에 앉아
장작불에 밥을 앉히고....

근처 어부네 집에 가서 살아있는 주먹만큼씩한
조개를 사다가 조개탕을 끓이고 ....

팔뚝지만한 연평도 조기를 궤짝으로 사서
굵은소금 술술뿌려 장독대위에서 말린것을
잔불에 구워 쭉쭉 찢어 고추장에 박아놓고...

우리 6남매와 엄니는 바닷가에서
자연 그대로의 점심을 즐긴다.

엄니는 아버지와 함께 하길 원했으나
아버지는 그런 소풍보다 사람 만나는걸 좋아하셔서
우리들은 늘 아버지 없는 애들 마냥
엄니 보호 아래 돌아다녔다.

엄니는 아버지보고 같이 가시자고 하는걸 본적이 없다.

더워 죽겠는데 옷이 없어 교복입고 다큰것이
엄니가 가자면 두말않고 입 쑥 내밀고 따라 나섰다.

좋아서가 아니라 안가면 혼날까봐....

소풍은 시도 때도 없다.

한여름엔 송도 모래사장에 텐트도 치고
며칠씩 거기서 지내기도 했다

언젠가는 애기가 땀띠가 몹시나서
갯바닥이 드러날 때  수로에 고인 바닷물을 퍼오라고
하시기에 아뭇소리 않고 대야들고  가다가
심심해서 다시 돌아와 잠자리 채를 들고 쿡쿡 찍으며
갯바닥을 실실 미끄러지며 갔다.

물을 푸려고 수로 가장자리에 엎드렸는데
"미끄덩~!"하며 미끄러져 수로에 빠지려 할때
반사적으로 잠자리채를 수로에 "콱~!" 찍으며
간신히 버텼다 .
그 길다란 잠자리채가 머리까지 들어가는 지점이었다.
(평생할 머드 팩을 그때 다했다...)

미끄러지며 자빠지며 물을 한대야 떠다가 애기 머리를 감겨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무척 위험 한 상황이었다.
근데 난 지금까지 엄니한테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왜 한번도 안했는지 나도 그이유를 잘 모른다.
(아마도 해봐야 들은 시쿤둥두 안할것이라는 예감 때문 이었을것이다)

봄마다 기차타고 창경원 동물원은 연중행사고
애들중 누구든지 덕수궁으로 미술대회 나가면
기차타고 버스타고 온가족이 김밥 싸들고 따라 나선다.
김밥은 썰지도 않고 둘둘 만채로 그냥 들고 먹는다.
(김밥속에 소고기,시금치,계란,짠지를 넣었었는데
그만큼 맛있는 김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언젠가 첨으로 아버지가 송도 뒷산으로 갈 때 같이 가셨다.
아버진 관심도 없으신지 나뭇그늘에 길게 누워 주무신다.

의외로 엄니는 우리들한텐 신경도 안쓰고
주무시는 아버지를 위해 시원한 그늘인데도
아버지에게 부채질을 해드린다.

지나가던 대학생들이 우리 가족들이
단란해 보이는지 사진을 찍으려 한다.

지금도 흑백으로 송도 구석 구석 사진 안찍힌 곳이 없다.

6남매가 순서대로 서서 찍은 사진,
조그만 벤치에 큰놈 다섯이 서로 걸터 앉아 찍으려고
아우성 치는 사진,
오빠들 교모에 중,고등학교 마크가 선명하게 찍힌 사진,
나 중,고등학교 교복입은 사진 등등

감회가 새롭다.

소풍가서 찍은 사진들이 막내 태어나기 전부터
오빠들 고등학교때 교복 입고 찍은 사진 까지
있으니  근 10년간의 행사 였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볼 때....

우리의 어린날 정서 교육은 엄니의 소풍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우리 남매들은 모두 여행을 좋아한다.

나처럼 꼭두새벽에 떠나 일찍 돌아 오는 걸 좋아한다
서울에 이사오고 나서 큰 오빠네와 강원도를 몇번갔는데
난 양평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몇년후에 알았다.
새벽 3시, 4시에 출발하니 그 아름다운 강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강원도에 너무 일찍 도착해 콘도 체크인 시간이 아직 멀어
강원도 계곡에서 물고기 잡고 놀다가 걸리기도 했다.

가슴이 뭔가 답답한게 쌓이면 우리 남매들은 각자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난다.
동,서,남,북으로....해외로...
우리들의 스트레스 해결 방법은 모두 여행이다.
이모두가 울엄니의 각별한 정서 함양(?) 때문이 아닌가싶다.

근데 그렇게 열심히 교육을 시키셨는데
내 학교시절 통지표에는 늘~ 이 말이 따라 다녔다.

"주위 산만하고 정서 불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