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일이지만 내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여섯 학교나 다녔다.
일년에 한 번 꼴로 옮겨 다닌 셈이다.
작은 아이는 취직 시험을 보기 위해 낸 자기 소개서에다 
여러 학교 다닌 것을 특별히 강조를 하며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성이 자신의 큰 장점이라고 썼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부끄러운 부모다.

큰 아이 중 3 작은 아이 중 2 겨울에 남편의 실직으로 장사라는 것을 시작하였다.
책장사는 학생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이후 부터 시작된다.
아무 것도 모르고 처음 하는 장사라 전력 투구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처음 몇 년은 아침 일찍부터 밤 12시까지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 빵으로 떼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이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도 지금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큰 아이 고3  첫 모의고사를 본 후 상담을 하기 위해 은광여고를 갔다.

"고 3때는 누구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첫 시험 점수가 끝까지 갑니다.
1, 2점 오르면 잘 오르는 것입니다. 
 이 학생은 수능점수가 260(400점 만점)이군요. 
내신은 40명 중 29등이구요. 
이 성적이면 수도권 대학도 들어갈까 말까 입니다."

눈 앞이 캄캄하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 유난히 가파른 은광여고 산꼭대기를 울면서 내려왔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딸에게 담임의 말과 꼭 반대로 말했다.

"260점이면 앞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여지가 얼마나 많으냐. 
사탐과탐(각각60점 만점)에서 50점을 올리고 
언어에서 20점 올리고 남어지 과목에서 10이나 20점씩만 올리면 100점이 올라가네. 
그럼 360점이구나. 그러다가는 서울대도 가겠다. 
넌 수학을 잘 하니 가능하다. 엄마는 너의 저력을 믿는다."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전학이나 다녔을 뿐 
딸 애는 자기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질  않았다. 
허지만 엄마 말을 듣고 보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해 수학능력 시험은 다행이 쉽게 나와 변별력이 크지 않았다.
그저 침착하게 실수만 하지 않으면 되었다.
신기하게도 딸애는 엄마가 계산한 대로 360점을 받았다.

둘째 아이는 고3 첫 모의고사를 320점을 받아왔다.
언니에 비하면 놀라운 점수였다.

"언니는 100점도 올렸는데 50점은 못올리겠냐. 
여태까지 놀았으니 니 인생의 전부를 걸고 한 번 해 봐라."

첫 아이 때보다 변별력이 더 없었던 수능시험에서 
둘째아이 역시 엄마가 예상한 점수를 받아왔다.
원서를 쓰러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들이 고3 첫 모의고사와 수능 점수를 비교해 보고 있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첫 모의고사 점수와 비슷하게 나왔다고 한다.

지금 큰 아이는 이화여대 컴퓨터학과를 졸업하고 로펌회사 <김&장>에 근무하고 있고
작은 아이 역시 이화여대 신방과(언론홍보영상학부)를 졸업하고 
얼마 전 EBS에 입사했다.

돌아켜 생각하면 매순간 마다 아찔했던 시간들이었다. 
내가 애들에게 해 준 것은 좋은 환경도 고액 과외도 아니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것 뿐이다.
가르치는 것도 교육이지만 
믿고 기다리는 것 또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는 어떻게 강남에서 전혀 강남 엄마들 같지 않게 교육을 시켰어? 
대학에 와 들어보니 다른 애들 엄마들은 보통 극성이 아니었던데....."
"엄마가 극성을 떨었으면 너희들이 더 잘 되었을 거 같애?"
"그건 안 그래. 근데 놀란 것은 엄마가 어떻게 알파벳 겨우 가르쳐 중학교를 보냈냐는 거야. 
그 흔한 속셈학원이나 영어학원 한 번 보내지 않고...이건 무지인지 배짱인지....
중학교 들어가서 영어 잘 하는 애들한테 주눅이 든 것이 아직까지 난 영어 하면 주눅부터 들어."

이제 주눅이 든 영어를 극복하는 것은 아이들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