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움 닫기

 

“야 ! ---너 이리와 ~~~~~~~~오늘 나한테 딱 걸렸어------ !!!!!!!!”

큰 고함소리에 놀라 보건실 문을 열고 나갔더니 2학년 여학생과 남학생이 복도에서 대치하고 있는데, 나를 본 남학생이 구원을 요청한다.

“선생님, 그냥 한 번 놀린 건데 얘가 여기까지 쫓아 왔어요. 도와주세요!”

무섭게 쫓아왔다는 여학생은 몇 번 교사들의 입에 회자되어 들어본 아이, 바로 00이었다.

공격성이 강해서 한 번 화가 나면 욕을 하고 달려들다가 소리를 지르며 끝없이 운다는 그 애다.

상대를 놀려 화나게 했으니 대가를 치룬 건 마땅한 것이라며 남학생을 교실로 보내고, 00이를 데리고 보건실로 들어왔다.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애는, 로데오거리에서 초콜릿바구니를 팔거나 대부분 인형 뽑기로 소일하는 아버지와,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의 외동딸로, 세 식구가 단칸 월세방에서 살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어머니가 딸을 매우 아끼는 것과, 그 애가 ‘어머니가 불쌍해서라도 자기만큼은 똑바로 살아야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는 것이었다.

“저는요, 공부도, 생긴 것도, 집안도 모두 꿀려서 슬프고 우울해요. 애들이 저를 깔보는 것 같아서 놀리면 못 참겠어요. 지들이 한 건 생각 않고 저보고만 난리에요. 억울해요.”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뒤죽박죽 들끓고 있는 열등감과 염려, 분노와 슬픔 등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그 애에게도 즐거움과 희망의 한줄기 빛이 스며들어야한다고 생각한 나는 그 애를 긍정적으로 수용해주기로 했다.

애들과 싸우고 울 때, 방과 후 보건실 침대에 누워 한 차례씩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를 때 그냥 들어주고, 퇴근 시간에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그 애와 분식집에서 매운 떡볶이를 먹기도 하고, 집에 반찬이 없다는 말에 살짝 살짝 김치도 갖다 주었다.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기 시작한 그 애에게서, 끔찍한 욕설은 점점 사라지고 자신의 미래를 놓고 고뇌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워낙 공부에는 담을 쌓았지만, 그 애는 추리소설에서 대하소설에 이르기까지 책은 늘 계속 열심히 읽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가정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실업계고교로 진학을 결정한 뒤에 그 애가 말했다.

“제가 졸업하면 선생님 심심하셔서 어떻게 해요! 자주 올게요.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저 대학에도 꼭 가려고해요!”

“그래, 너 졸업하면 나 무척 심심할거야 --- 열심히 해! 내가 좋~은 곳에 취직 시켜줄게!”

나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중학교 때도 신림동 순대 촌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고교에 진학한 뒤 그 애는 방과 후에 본격적으로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자정이 가깝지만, 학기 초에 성적이 좋게 나온 뒤로는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며 공부도 열심히 했다. 중학교 때처럼 자주 만나진 못해도 우리는 메일로, 문자로 안부를 묻고, 방학 때면 만나서 맛있는 저녁도 함께 먹었다. 그 애는 ‘선생님, 감사해요! 제 인생에 멘토 이신 거 아시죠!”라며 꼭 인사문자를 했다.

그 애의 고3 시절 어느 가을날, 그 애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00전문대에서 학교홍보를 나왔는데 생활혜택자의 특차전형에 원서를 넣어보고 싶다고. 졸업 후에 전문직에서 일 할 수 있는 과에 어서 원서를 내라고 조언을 했고 얼마 뒤에 그 애는 합격의 소식을 전해왔다. 집에서는 취업을 하라며 반대하지만 열심히 해보겠노라고 뛸 듯이 기뻐했다. 요즘 그 애는, 대학에서 지원되는 학비 말고도 책값이며 교통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고 있고, 기초실력이 모자란다며 책도 사서 미리 공부하고 있다.

높이뛰기, 멀리 뛰기, 창던지기 선수가 우수한 기록을 위해 철저한 도움닫기를 준비하듯, 철부지 말썽꾸러기 싸움패 여학생이 포기하며 좌절하지 않고, 자기 안에 꿈의 씨앗을 심고, 싹을 내고, 무성한 가지를 내게 된 이 때, 그 애가 아름다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때까지, 따뜻한 마음으로 계속 그 애를 지지해 주려고 한다.

그 애도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있을 먼 훗날, 우리는 함께 늙어가는 친구가 되어있을 것이다. 오래~전 중학교 시절 떡볶이에 묻혀먹던 튀김의 맛을 이야기하며 깔깔~웃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