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과 가사노동

 

올해는 신정과 구정이 모두 1월에 들어있다.

신정휴일이 단 하루인데다가 요즘 경제상황도 안 좋아서 이중과세(二重過歲)의 추세는 많이 줄었지만, 명절에 원근각처의 모든 가족이 한 데 모여서 해후(逅)하고 덕담을 나누는 것은 아름다운 풍속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결혼을 한지 26년이 되고, 애들이 출가할 만큼 크다보니, 나도 이젠 독립적인 마음으로 설날 아침에 시댁의 큰 집에 모여 식사를 하고 오지만, 풋내기 새댁 시절에는 며느리로서의 확실한 역할을 수행해야한다는 의무감에 명절 전부터 벌써 부담이 컸었다.

“얘야, 네가 와서 뭐 할게 있다고 미리 오니? 명절날 아침에나 와라.”

하는 시어머니의 얘기를 곧이 들었다가 작은어머니께 호되게 야단을 맞은 이후로는 어른들의 말씀을 잘 새겨듣고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지혜도 터득한 터였기에. 남편은 6남매의 넷째이고 나는 며느리로는 셋째지만, 시댁은 작은 집 식구들까지 모여 제사를 지내다보니 음식도 골고루 여러 가지를 장만하고, 먹고, 치우고 또 차리고 하는 일이 며칠동안 반복됐다.

  제사를 지내지 않던 친정과 다른 문화적 이질감과, 구옥이어서 일하기 힘든 시댁의 집 구조 말고, 더 견디기 힘든 건 가부장적 남성위주의 집안분위기였다. 시어머니는 목욕재계하시고 엄숙한 몸짓으로 명절준비를 지휘하셨고 며느리들은 재래식 부엌의 문턱을 넘나들며 장보기, 청소, 음식장만 등으로 분주했다. 그동안 남자들은 뜨끈한 방에서 담요를 깔고 고스톱을 치면서 계속 주문을 해댔다.

“여기 떡 좀 줘요. 술도 더 있어야겠는걸! 물도 갖다 주고. 과일은 뭐 없나? ”

게다가 어린애들이라도 보채면

“아이 00엄마, 시끄러워. 애 좀 울지 않게 잘 봐요!!”

  모든 것을 다 여자들에게 미루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시어머니와 윗동서들 사이에서 나는 외로운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이었고, 한편으로는 아들이 없이 딸만 다섯이어서 쓸쓸히 계실 친정 부모님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결혼 한지 5년쯤 되던 해인가 여지없이 벌어지는 술과 고스톱 판과 심부름요청에 나는 드디어 남편에게 반기를 들며 일을 내고 말았다.

  “여보! 당신은 학창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운동권에서 활약하던 사람이 왜 정작 자기 집안에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노력을 안 해요? 일하는 여자들을 도와서 남자들이 애들이라도 봐줘야할 것 아녜요! 고스톱 치고 돈 갖고 실랑이 벌이는 어른들에게서 애들이 뭘 배우겠어요. 다들 창피하지도 않나보네요. ”

  이렇게 말하는 나의 손, 발과 가슴은 사실은 긴장감에 부들부들 떨렸다. 시숙, 시동생, 사촌시동생 들이 힐끔힐끔 나를 보며 화투장을 치우고 담요를 걷기 시작했다. 맏이도 아닌 셋째 며느리의 발칙한 항의에 시어머니는 모처럼 형제끼리 만나 노는데 뭘 그러냐고 꾸중하셨지만, 윗동서들은 내게 눈을 꿈쩍이며 잘했다는 신호를 보냈고, 남편도 나를 나무라지는 않았다.

  시댁의 남자들은 그때부터 상을 놓고 닦는 일, 아이들을 봐주는 일, 무거운 물건을 드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일들은 아이들에게까지 전수되어 오고 있다. 얼마 전 학교에서 양성평등에 대한 수업을 하면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만든 맞벌이 가정의 이야기 ‘그와 그녀의 24시’ 동영상 자료를 보여주었다.

  한 반에 35명 남짓한 아이들 중 7,8명을 제외하고 모두 맞벌이가정 자녀인 아이들에게 ‘그와 그녀’의 가정의 문제를 찾아보고, 이 다음에 어떤 남편, 아빠, 부인, 아내가 되겠노라는 각자의 생각을 쓰라고 했다. 다들 남성 여성을 가리지 않고 가사노동을 함께 나누어 하고, 서로 돕는 배우자가 될 것이며, 친구와 같은 다정한 부모가 되겠다고 한다. 미혼의 독신 남녀가 늘고, 자녀양육보다 부부의 삶을 중시하는 딩크족이 늘어나 인구의 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이 시대에, 모든 층의 남성 여성의 서로를 향한 배려가 저절로 실천되는 시대가 오고, 그것이 국가적 사회적 복지제도와 함께 정착된다면 실업자 없는 사회의 서로 돕는 부부, 24시간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어린이집,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자녀들과 교육비에 허리가 휘지 않아도 되는 부모들, 자기가 선택한 신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국민들로 가득 찬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꿈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