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작은 딸은 개띠라서 그런지 강아지를 좋아한다.
그 정도가 지나쳐 자기 몸 보다 두 배쯤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딸은 네이버에 블로그를 하나 갖고 있는데 이름도 <Welcome You Puppy>로 정하고
작은 글씨로 <나는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라고 써 넣었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안사돈>은 대단한 마당발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아지 얻는 것을 보면 마당발이 아니라 운동장 발이라고 해야 될 것 같다.
모르긴 해도 한 달이면 한 두 마리씩을 강아지를 얻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지난 번 왔던 이쁜이도 (그때는 예비) 안사돈을 통해서 우리집에 왔던 것이다.
딸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위 사람들은 강아지를 키우다가 여의치 않으면
안사돈에게 강아지 처분을 부탁하나 보다 .
천안에서 공장을 하는 사돈네는 강아지가 살만한 땅이 있어
강아지를 맡아 두었다가 적당한 곳에 보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온 강아지와, 거기 사는 진돗개가 낳은 새끼 다섯 마리까지
공장에 개들이 우굴우굴 하다고 했다. 

지난 해 이쁜이가 이웃에 사는 진돗개에 물려 죽은 이후
그렇게 온 강아지가 보낼 곳의 우선 순위가 내집이다.
딸이 아주 공손히 전화를 해서 머뭇거리면 틀림이 없다.
"엄마 강아지 안 키울래?"
"이번에는 뭐야?"
"3개월데 푸들인데 영리하고 이쁘대."
이쯤 되면 우리집은 또 한번 소용돌이 친다.
강아지를 다시 기르고 싶은 마음과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는 다짐이 교차되어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죽끓듯 한다.
지난 번에는 코카스페니얼이었다가 마르티스였다가 순한 안내견이었다가 이번에는 푸들이다.
내가 몹시 흔들렸고 남편은 초지일관 확고하게 거절 의사를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강아지가 우리집에 오지 않게 되었다.
딸은 무척 실망했다.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은 자식 하나를 다시 만드는 일이라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먼저 보내야 하는 자식 말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서도 또 강아지를 키운다.
외롭기 때문이고,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고,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동물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꽤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러는 나도 언젠가는 강아지를 키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지난 번에 딸이 치와와 한마리를 데려왔었다.
치와와를 보니 이쁜이가 더 생각나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다음 날 다시 치와와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강아지를 키우려면 이쁜이에 대한 마음의 상처가 더 아물어야 할 것 같다.